제목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본문 : 마태복음 4:17
설교자 : 조정의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1945년 8월 6일 미국의 대통령 해리 트루먼의 명령으로 일본 시로시마에 원자폭탄 ‘리틀 보이’가 투하됩니다. 그리고 3일 뒤 9일에는 ‘팻맨’이 나가사키에 투하되고, 이것으로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고 한국이 광복을 맞이하게 됩니다. 폭탄이 떨어진 당일 히로시마에서 5만~8만, 나가사키에서 3~4만명이 죽었고 이후 섬광화상, 후폭풍, 질병 합병증 등으로 대략 70만 명이 죽었습니다. 오산시 4개 정도가 사라진 것입니다. 미국은 그 이후에도 7기의 추가 투하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두 폭탄이 떨어진 이후 8월 15일, 일본 제국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고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이하게 됩니다.

두 폭탄이 떨어지기 전에 중국, 영국, 미국 등의 연합국은 6개월간 일본의 약 67개 도시에 집중 포격으로 수차례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으나 일본은 끝내 거절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전해진 최후의 경고 메시지가 바로 ‘리틀보이’와 ‘팻맨’이라는 원자폭탄이었습니다. 일본이 6개월 간의 지속적인 항복요구를 무시함으로써 70만 명의 목숨을 잃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마태복음 23장의 말씀을 기억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마 23:37-3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경고하기 위해 여러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보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그것을 무시하였습니다. 무시할 뿐만 아니라 그 보내신 선지자들을 핍박했습니다. 그 분명한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는 마치 일본에 6개월 동안 항복을 요구했던 연합군의 모습과 같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스데반은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행 7:51)라고 말합니다. 눅20장의 비유를 보면, 농부에게 소출을 맡기고 먼 곳으로 떠난 주인이 세 차례나 자신의 종들을 보냈는데 농부들은 그 종들을 무시하고 때립니다. 결국 주인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기로 합니다. 설마 자신의 아들은 무시하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입니다. 수많은 선지자들을 죽이고 수차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경고의 메시지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오늘은 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어떤 말씀을 전하셨는지, 메신저로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마태는 본문 4장 17절에 오기까지 예수님의 공식적인 어떤 말씀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즉 이 말씀이 예수님이 공적으로 말씀하신 첫 번째 메시지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어떤 부르심을 받고 오셨는지에 대해 밝히고 있는데,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과 기름 부음을 받은 선지자로 오셨다는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2장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알고 찾아와 경배를 드린 동방박사들의 이야기와, 반대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헤롯왕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3장에서는 하나님이 정하신 또 하나의 메신저, 빛이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인 세례 요한에 대해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과 성령이 나타나셔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단을 통해 시험을 받으신 후 돌아오셔서, 이제 사람들 앞에서 처음으로 공적인 선포를 하십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4:17). 여기서 “이 때부터”는 무엇을 말할까요? 예수님은 나사렛이라는 작은 시골 동네에 사셨다가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오십니다.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시니”(4:13). 가버나움은 여러 지역을 이어주는 도로가 그 가운데 있었고 국경지역이었으며, 세관과 군대도 있었던 대단히 큰 규모의 도시였습니다. 인구가 1500~2000명 정도 되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도시에서 주님은 공적인 말씀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잠 1:20-23). 예수님의 첫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전에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던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 2장을 보면, 예수님은 가나의 혼인잔치에 가셔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말할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잘못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꾸짖는 장면도 나옵니다. 3장에서는 밤에 몰래 니고데모가 찾아왔을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요3:16은 예수님이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말씀하신 구절이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4장에서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예수님 자신이 메시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지금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메신저로서 이 땅에 오셔서 처음으로 공적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4:17)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선포한 말씀은 “회개하라”입니다. “기뻐하라”, “즐거워하라”, “행복하라”가 아니라 “돌이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살던 방식에서 돌이키고, 자신의 욕심과 죄를 따라 갔던 이전의 것에서 완전히 돌이키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중심을 고치는 것이고, 뉘우치는 것이며 전인격적인 변화를 말합니다. 삶의 방향을 틀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항복’입니다. 이것은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조심스러운 부탁이나 제안이 아닙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 회개하지 않는 것,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최후의 경고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경고의 메시지를 무시합니다. 제가 만난 많은 학생들과 청년들이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교회에 나오던 이들로 복음의 메시지와 회개하라는 말을 수없이 많이 들어온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끝까지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마치 뭔가를 구걸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기독교 안에 사랑과 은혜와 구원이 있는 것은 맞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기독교의 메시지는 경고의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이 있으리라는 무서운 메시지입니다. 수많은 선지자들이 경고했어도 돌이키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셔서 마지막으로 경고하신 것입니다. 복음은 즐겁고 기쁜 메시지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무서운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온 세례 요한도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마 3:1-2)라는 같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성령님이 오신 오순절에 설교할 때 “회개하라”고 말합니다. 너희가 가는 방향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충분히 기록하고 있지만, 예수님의 메시지를 거절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분명한 심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11장에서는 회개하지 않는 도시들에 대해 “화 있을 진저”라고 말하며 소돔과 고모라보다 심각한 심판을 받으리라고 경고하십니다. 13장에서는 들을 귀 없는 자들이라고 하면서 비유로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듣지 않는 교만한 자들, 경고의 메시지를 거절하는 자들이 더 이상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신을 믿고 사는 사람들,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 하지 않고 죄를 사랑하며 육체가 원하는 대로 하는 자들에게 무조건 항복하고 회개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왜 항복하라고 하실까요? “회개하라 (왜냐하면)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우리가 회개해야 하는 이유는 천국이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천국의 임함이 아주 임박했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 그 왕권이 완벽하게 이뤄지는 나라,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하나님이 온전히 통치하시는 나라가 아닙니다. 여전히 부조리가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완벽하게 통치하시는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 바로 그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이십니다.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엡1:21). 그 나라가 되면 모든 만물이 그 예수님 발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 중에 사신을 보내는 것처럼 예수님은 전쟁을 이끌고 있는 최고 사령관으로서 직접 적군의 진지에 가서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항복하지 않으면 너희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왕국의 능력과 권세에서 벗어날 길은 없습니다.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지만 다른 나라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는 피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세계를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선택은 둘 중 하나입니다. 무조건 항복하는 것과 이 경고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도 둘 중 하나를 택하시는 것입니다. 왕의 명령을 받아들이고 항복하는 사람과 거부하는 사람, 둘 뿐입니다. 항복한 사람은 특권을 받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더 큰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항복하여 그의 포로가 되면 그 나라의 백성이 되고 모든 혜택과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왕과 함께 다스리는 것, 이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그러나 이 경고를 무시할 때는 원자폭탄보다 무서운 결과를 맞게 됩니다. 계8장은 장차 임할 일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님의 경고를 무시한 사람에게 일어날 일들입니다.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하더라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계8:6-13). 계시록은 이 땅에 임할 무서운 진노에 대해 기록합니다. 땅과 강, 물, 해, 달의 1/3이 멸망합니다. 계시록은 계속해서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멸망할 것인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조건 항복하라는 메시지를 거절한 사람들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마24:15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이 왕으로 다시 오시는 날에 대해 물었을 때 주님은 많은 이들이 산으로 도망가고 높은 지붕으로 올라가며, 사람들이 목숨을 지키기 위해 도망하는 무서운 일이 일어난다고 경고하십니다. 무조건 항복하라는 경고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항복하지 않는 자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선지자로 오셔서 전하신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구원받지 않은 분들은 특히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그런 분들은 전에도 복음의 메시지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동안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기쁨을 주기 원하신다는 말을 들어왔을지 모릅니다. 자신은 예수님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분명한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무조건 항복하고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것이고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이며 무서운 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하고 계십니다.

연합군의 경고를 ‘별거 아니야’라고 생각했다면 오늘날 일본은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들이 항복한 것은 상대가 자신들을 능히 멸망시킬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전하시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왕이십니다.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시는 분, 만물을 말씀 하나로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받으신 분들은 이 땅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다. 죄와 사망, 사단의 세력과 싸우는 것도 힘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왕이 오고 계심을, 그 나라의 도래가 가까워짐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그 나라에서 왕처럼 다스릴 것이고 참 기쁨과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하늘나라를 바라보시며 기쁨과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지옥에 있는 사람의 증언을 통해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눅16장에는 한 부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항복의 메시지를 거절하고 결국 지옥에 갔습니다. “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눅16:24).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무조건 항복 메시지를 거절한 사람은, 영원한 멸망에서 물 한 방울 만큼의 은혜나 자비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다시 이렇게 요청합니다.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27,28).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단호합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29-31).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자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의 증언이 여기 있습니다. 날마다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신다면 바로 죽은 자가 살아나서 말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경고의 메시지는 그것을 받아들였을 때 넘치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절했을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 한 방울의 자비와 긍휼도 기대할 수 없는 무서운 심판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 아직 구원받지 못한 분이 있다면 더 이상 구원의 메시지를 무시하지 마시고 주님께 나와서 항복을 외치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미 구원받으신 분은 자신이 받은 축복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십시오. 왕이 곧 오십니다. 우리는 때로 천국이 내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 이 땅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다리는 그 나라가 오고 있습니다. 왕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유업을 주실 것입니다. 그 사실에 기뻐하시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기쁨으로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