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achurch.or.kr/media/yp20110529.wmv

설교 음성 파일 다운로드

 

주 제: 하늘에 간직한 기업

 

본 문: 베드로전서 1장 3-5절

 

설교자: 조 성 훈

 

“찬 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어 떤 사람은, “그리스도인들의 현재의 삶은 그들의 전체적인 삶에 있어서 최악의 삶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살게 될 영원한 삶에 비한다면 현재 이 땅에서 사는 삶은 가장 좋지 않은 순간입니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진들의 삶도 그러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히 11:36-37)” 우리가 현재 아무리 험난한 삶을 살고 있어도 이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경우에도 그러했습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9)”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있다면 세상은 우리를 미워하게 되어있습니다.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고전 4:11-13)” 수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고백하기를 세상이 자신을 미워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13)”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쉽고 편안한 삶을 예고한 곳은 없습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찬 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3)”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이유는 “그 많으신 긍휼” 때문이었습니다. “긍휼”이라는 것은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호의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거듭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격을 가진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 양과 질에 있어서 엄청난 것입니다.

 

“예 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3)”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소망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오래 살고 있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게 생각하곤 합니다. 모든 사람 위에 죽음이 지배하기 때문에 사망을 이길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사망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사람은 잘났든 못났든 다 죽어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는데, 긍휼하심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그것도 자신을 미워하는 자를 위해서 대신 죽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셔서 우리에게 산 소망이 있게 하셨습니다.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잘 먹고 잘 살고자 하는 소망은 이 땅에 국한 된 소망입니다. 수명이 다해 죽으면 끝이 납니다. 장례식장에서 흔히들 “고인이 편안한 곳에 가서 쉬기 바란다”고 말하지만 그 소망은 산 소망이 아닙니다. 자신이 죽으면 묘를 양지바른 곳, 전망 좋은 곳에 써 달라고 유언하지만, 그의 시체가 따뜻한 곳에 묻혀 먼 들판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바람일 뿐 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거지 나사로와 부자를 비유하여 말씀하셨듯이, 그가 구원받지 않았다면 불꽃 가운데서 물 한 방울을 바라며 영원토록 괴로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덕을 쌓아서 다음 생에 좋은 것으로 태어난다고 믿는 것도 헛된 소망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소망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인데, 한 평생 수고와 슬픔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이라면 그것도 별로 좋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떤 부모는 돌도 안 된 아기를 두고 의대에 보낼까, 법대에 보낼까 고민하는데 그 소망대로 자라주는 아이는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그 리스도인에게는 산 소망이 있게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말한 산 소망은 변할 수 없는 소망입니다. 한번 주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은 다시 믿음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어서 하늘나라의 기업을 받지 못하는 일도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이뤄지는 일이므로 그것은 분명한 약속입니다. 로또 복권을 사서 당첨되는 기대를 할 수는 있지만 결과가 발표되는 날에는 그것이 산산조각이 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은 절대 깨지거나 변하지 않는 산 소망입니다. 그 때 가봐야 아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뤄지는 소망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부활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몸으로 다시 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영원한 삶에 대한 소망, 영광의 삶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소망에 대해 성경에서 사용한 표현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3)”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골 1:5)”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3:7)”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8)”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7)”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갈 5:5)”

 

이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소망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고 말하고 항상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소망을 생각하면 우리는 늘 기뻐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 12:12)”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히 10:2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썩 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4)” 많은 사람들이 사는 동안 열심히 일해서 자손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자식들이 그 재산을 잘 간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기업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의 것은 더러워지고 썩게 마련이지만, 하늘의 기업은 절대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으며 쇠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행 26:18)”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너 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5)”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늘나라에 와서 약속하신 기업을 이을 때까지 우리의 구원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키십니다.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 29)”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히 6:17)”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늘나라에 설 때까지 우리를 보호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무엇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절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면 그 기록은 절대 지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부활의 소망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맹세로 약속하신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후 1:22)”

 

결론

 

하 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거듭나게 하시고 부활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늘나라의 기업을 주시기로 맹세하셨고 그것을 능력으로 보호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기업과 산 소망이 매일의 삶 속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우리는 영원한 생애를 통해 볼 때 현재 가장 어려운 때를 살고 있습니다. 훗날 하늘나라에 가게 되면 이 땅에서의 삶을 두고두고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산 소망 가운데서 즐거워하라고 말하고 있고, 이 소망을 가진 자는 자신을 깨끗케 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산 소망을 생각하시고 그것을 계속해서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소망 가운데서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