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나님 내 삶에
본문: 창세기 46장
설교자: 이병권

 

창세기 46장을 보겠습니다. 46:1-34절입니다.

오늘은 “하나님 내 삶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에서 요셉의 생애를 살펴보고 있는데, 그동안의 이야기는 요셉에게 초점이 맞춰져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형들과의 갈등이 해결되고 나서는 그 초점이 요셉뿐만 아니라 좀 더 넓게 야곱과 그의 자손에게 맞추어지고 있습니다. 야곱의 가정이 번성하여 이스라엘 나라가 되어가는 모습,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 나라의 태동 단계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태아가 엄마 뱃속에서 심장을 뛰기 시작한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모습이 어떠한지 본문에서 이스라엘 나라가 그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는 장면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1) 요셉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은 모든 소유를 가지고 길을 떠납니다. 아마도 야곱은 그동안 살고 있었던 헤브론에서 출발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략 40킬로 정도 떨어진 브엘세바에서 걸음을 멈춥니다. 브엘세바는 가나안 땅의 경계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를 지나면 이제 가나안 땅이 아닙니다.

야곱은 그동안 죽은 줄로 알았던 요셉을 만나러 갑니다. 기쁜 마음으로 한 걸음에 달려가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야곱은 이 약속의 땅을 떠나야 합니다. 지금 모든 소유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살아생전에는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야곱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그 심정이 복잡했을 것입니다. 옛적에 에서를 피해서 이 땅을 떠날 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28:15)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리고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외삼촌의 집에서 신데렐라처럼 엄청 고생했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셨고 때가 되었을 때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 땅을 떠나려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 야곱은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생각하면,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마냥 기쁨으로 그에게 달려갈 수 있는 그런 나이가 아닙니다. ‘이 땅을 떠나도 괜찮을까?’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불안했을 것입니다. 그 때에 야곱은 가던 길을 멈추고 이 땅을 떠나기 전에 브엘세바에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창세기 저자는 1절에서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기록합니다. 야곱이 예배드리는 하나님은 야곱의 아버지 이삭이 섬겼던 하나님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언급한 것, 그리고 예배드리는 장소가 브엘세바라는 것은 야곱의 하나님과 그의 조상의 하나님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브엘세바에서 아버지 이삭이 하나님을 예배했었고(26:23~25). 브엘세바에서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예배했었습니다(21:33). 야곱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벗어나기 전,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예배했던 곳에서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야곱이 섬기고 있는 하나님이 그의 조상들이 섬겼던 바로 그 하나님 여호와이심을 다시금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날 밤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2) 옛적에 야곱이 에서를 피해 약속의 땅을 떠나면서 두려움으로 떨고 있을 때 하나님이 벧엘에 있던 그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지금 브엘세바에서 야곱이 다시 약속의 땅을 떠나려고 할 때 하나님이 또다시 찾아오셔서 그를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야곱아, 야곱아’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3-4)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야곱아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왜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까요?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이 일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야곱의 자손은 큰 민족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서요? 거기서 애굽에서 그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애굽에 내려가는 일은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일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야곱만 애굽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가족들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 내려가십니다. 두려울 것이 있을까요?

셋째, 야곱은 이 땅으로 평안히 돌아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야곱은 애굽에 내려가서 평안히 죽음을 맞을 것이며,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삶은 해피엔딩을 끝날 것임을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불안해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훗날 야곱은 이 말씀대로 거나안 땅 막벨라 굴에 장사됩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고,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그 끝까지 하나님이 완벽하게 이루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여러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그 계획을 이루어 가실 때, 삶의 아픔들과 어려움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그런 힘든 일들을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럴 때도 친히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 삶의 형편을 살피시고 합당하게 역사하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예배드렸고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셔서 애굽에 내려가는 일을 승인하셨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시작은 어느 누군가가 살다보니까 그냥 된 일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고 하나님이 그 뜻에 따라 각 사람에게,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야곱에게 그리고 요셉에게 약속하신 것을 신실하게 지키신 결과입니다.

야곱은 이렇게 하나님의 허락하심과 인도하심 가운데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이어지는 본문은 이스라엘 나라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보고됩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는 야곱의 자손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 순서대로 레아의 자녀들과 실바의 자녀들, 그리고 라헬의 자녀들과 빌하의 자녀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집을 떠나 외삼촌의 집으로 갈 때만 해도 혼자였는데, 지금은 엄청난 대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럼 그의 가족이 모두 몇 명일까요? 애굽에서 요셉이 낳은 아들은 두 명이니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칠십 명이었더라(27)

모두 칠십 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 나오는 칠십 명이라는 숫자는 야곱의 모든 가족을 다 말한 것은 아닙니다. 야곱의 며느리나 손녀들은 숫자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저자는 칠십 명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한 모습이 보이는데 가나안 땅에서 죽은 엘과 오난을 대신해서 여자로서는 특별하게 야곱의 딸인 디나와 아셀의 딸인 세라를 포함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칠십 명의 숫자는 야곱과 그의 열두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 손자들과 증손자들, 그리고 한 명의 손녀를 포함한 것입니다. 여기에 들지 않은 여자들까지 모두 합하면 실제 가족의 수는 훨씬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럼 창세기의 저자는 왜 야곱의 가족을 칠십 명으로 맞추려고 했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70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의미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에게 70이라는 숫자는 완벽한 수로 인식되었고 그래서 어떤 것을 시작할 수 있는 충만한 숫자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 시작하기에 가장 알맞은 숫자라 할 수 있습니다.

70이 사용된 예를 보면 창세기 10장에 노아의 홍수 이후 여러 민족들이 나오는데, 그 수가 모두 70민족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그들의 장로들을 언급할 때 70명의 장로라고 말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70명의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기 위해 70명의 학자들이 모여서 번역을 했는데, 그래서 헬라어로 번역한 구약성경을 칠십인 역이라고 부릅니다. 유대인의 종교적 최고의회인 산헤드린을 구성하는 사람도 70명입니다.

저자는 의도를 가지고 70명의 숫자를 맞추어서 이스라엘의 시작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70명이라고 할 때 많이 나오는 질문이 있는데 그것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말씀과의 차이입니다. 사도행전 7:14을 보면, 스데반이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면서 야곱과 온 친족이 75명이라고 말합니다. 창세기에는 70명인데, 사도행전에는 75명이라고 하니까 그 다섯 명의 차이에 대해서 질문하는 겁니다. 스데반이 설교할 때 75명이라고 언급한 것은 스데반이 당시 유대인들에게 익숙했던 칠십인 역을 인용했기 때문입니다. 칠십인 역에는 애굽에 내려간 야곱의 자손이 75명이라고 하는데, 이 숫자는 애굽에 살고 있던 요셉의 손자들 다섯 명까지 추가해서 말한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야곱은 많은 자손들을 이끌고 애굽에 내려갑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이 성취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칠십 명으로부터 이스라엘은 크게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본문에서 언급되는 것은 이스라엘이 나라로 성장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무엇일까요? 성장하려면 먹을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잘 성장하려면 다른 위험이나 공격으로부터 안전해야할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그들이 살기에 알맞은 땅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자라는데 꼭 필요한 장소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이 살게 될 고센이라는 땅이 반복해서 언급됩니다.

야곱은 애굽으로 내려가면서 유다를 미리 보내는데, 앞서 가면서 길을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유다에게 맡긴 것입니다. 무사히 야곱의 가족들은 고센에 도착했고, 요셉도 야곱을 맞으러 고센으로 갑니다. 이렇게 해서 대략 23년 만에 아버지와 아들이 다시 만나게 됩니다. 요셉은 아버지를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고 울고 있는 요셉에게 야곱은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30)

20년 넘도록 죽은 줄로 알았던 아들이, 그것도 특별히 더 사랑했던 아들이 살아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아들을 만나 품에 안는다면 어떤 마음일까요? 야곱은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는 안식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요셉이 살아있기 때문에 안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평안히 죽을 수 있다고,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야곱은 전에 한 얼굴을 보고나서 삶의 태도가 완전히 바뀐 적이 있었습니다. 언제일까요? 야곱은 브니엘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지만 죽지 않고 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지금 또 다른 한 얼굴을 보았습니다.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요셉의 얼굴은 야곱의 삶의 태도를 또 한 번 바꾸게 합니다. ‘나는 지금 죽어도 좋구나!

야곱의 품에서 한참 울고 난 요셉은 형들과 아버지에게 바로를 만났을 때 해야 할 말을 알려줍니다. 자신들의 직업을 목축하는 사람으로 말하라는 것인데, 애굽 사람들이 목축을 아주 싫어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면 고센 땅을 허락할 것이고, 이곳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고센 땅은 풀이 많았고 물이 풍부했기에 목축하기에 적합한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중심지와 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에 특정한 간섭이나 제한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땅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형제들이 이렇게 자신들을 목축하는 사람으로 말하는 것은 그들을 애굽 사회와 분리시키는 일을 합니다. 야곱의 가족들이 애굽에 대해 어떠한 정치적인 야망도 없다는 것을 밝히는 것입니다. 야곱의 가족들은 기근을 피하기 위해서 애굽에 온 것이지, 직업을 바꾸기 위해 혹은 애굽에서 출세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애굽 사람들이 목축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에게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고, 또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애굽 사람들과 분리되어서 그들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강대국이었던 애굽의 보호 아래, 애굽 사람들과 구별된 가운데 이스라엘이 나라로서의 모습을 갖추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시작하면서 이스라엘을 태아로 비유를 했었는데, 애굽은 마치 외부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양분을 공급하는 엄마의 태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애굽을 인큐베이터와 같이 사용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나라로서 모습을 갖추기까지 애굽의 보호 아래에 두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조상에게 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며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가십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의 계획안에는 이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말 원대한 계획부터 정말 세세한 부분까지 하나님이 다 이루어가십니다. 야곱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까? 애굽의 고센이라는 땅, 목축하기에 좋지만 목축을 싫어하는 애굽 사람들, 반면 조상 때부터 다 목축을 해왔던 이스라엘 자손들, 때마침 애굽에 찾아온 7년의 풍년과 흉년, 그로 인해 총리가 된 요셉, 그 일이 있기까지 술관원과 떡관원이 요셉과 함께 감옥에 있었고,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모함했고, 형들이 요셉을 시기해서 팔았습니다.

하나하나 생각해보면 끝도 없습니다. 이 모든 일이 있기까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던 약속이 지금 이렇게 이루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얽혀있고 다양한 사건들을 있었는지 생각하면, 하나님의 계획과 역사하심을 다 헤아릴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바울처럼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하나님은 우리와 다릅니다. 우리는 자주 이렇게 합니다. 미래를 계획하느라 지금 벌어지는 실제적인 일들을 깜박하고, 작고 세세한 일들을 신경 쓰고 챙기느라 큰일을 놓쳐버리고, 계획은 세우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때로 계획을 바꾸어 버립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드넓은 우주를 다스리면서 동시에 정말 작고 작은 나에게 일어나는 일, 그 하나까지도 다 아시고 다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정말 놀랍도록 큰 계획을 가지시고,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 일어나는 지극히 작은 일 하나까지 모두 주관하고 계시고, 그 뜻대로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섬세한 손길을 생각할 때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 크신 하나님 앞에 한 없이 작은 나를 발견하고 엎드리게 됩니다. 감히 그 앞에 설 수 없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함께 하시며 그들의 삶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시고 내 삶에 역사하고 계십니다.

때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잘 보이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는 것이 손해 보는 것만 같고, 어려운 일만 더 생기는 것 같고, 다른 것으로 마음이 빼앗기기도 하지만, 약속을 기다리기보다 그냥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 어떤 때에라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은 이루어지고 하나님은 약속은 성취됩니다.

다만 하나님 때가 이를 때까지 기다림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기에 내 현실에 와 닿지 않고, 내 삶과는 별로 상관없어 보이고, 멀리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릴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내 삶에 역사하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가 보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내 삶에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 다르게 살게 하는 힘이 됩니다. 두려워하고 있는 야곱에게 찾아오셔서, ‘야곱아 야곱아’ 부르셨던 하나님, ‘두려워하지 말라’ 위로하시며 ‘너와 함께 하겠다’ 말씀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걸음, 한걸음 그 인도하심에 따라 내 삶을 맡길 뿐입니다.

 

하나님 내 삶에♬

하나님 내 삶에 역사하시네. 실수 없는 손길 날 어루만지네

그 어떤 고난도 그 어떤 상황도 실수 없는 주의 손에, 계획안에 있네

 

하나님 내 삶에 말씀하시네. 변함없는 사랑 내 삶을 적시네

그 어떤 고난도 그 어떤 상황도 변함없는 주의 사랑 내 삶에 넘치네

 

그 어떤 고난도 그 어떤 상황도 변함없는 주의 사랑, 주의 은혜

내 삶에 가득 넘치네. 변함없는 주의 사랑 내 삶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