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나님의 은혜
본문 : 시편 116
설교자 : 조 성 훈

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저는 지난 수 주 동안 한 해를 마감하면서 현재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말씀이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던 중에 본문 말씀을 찾게 되었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받은 은혜가 너무나 큽니다. 연말이면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음식을 먹고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은데 얼마 전 저희 마을에도 마을 잔치가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이 각자 잔에 술을 따르고 함께 마시는데 저는 매실주스를 따라 마셨습니다. 구약에서 보면 “내 앞에 와서 짐승을 잡아서 먹고 즐거워하라”는 말씀이 있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모여서 한 해 동안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면서 기쁨의 잔을 들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고 감사를 표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을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한 해를 보내면서 마음 깊은 속에서부터 은혜가 넘치십니까. 그런데 우리의 얼굴에는 그런 마음이 잘 담겨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시편 136편을 보면 1절부터 감사가 시작되어 매 구절마다 감사의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은혜로우신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1-4절을 보면 시편 기자의 감사의 내용이 ‘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셨습니까. 들으시기는 다 들으셨는데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여 하나님께 100가지를 받았다고 해도 한 가지 못 받은 것에 대해 마음이 좋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기도한 것을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셨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큰 복을 받았는데 그것에 감사하지 못하는 구제불능일 때가 많습니다. 저는 목포교회에 내려갈 때면 사랑이 많은 성도들을 통해 지극한 섬김을 받습니다. 어느 날은 한 형제님이 직장이 바쁜 대도 시간을 내서 저와 함께 낚시를 갔습니다. 그런데 고기가 한 마리도 물리지 않는 것입니다. 저의 얄팍한 마음이 하나님께 등을 돌립니다. 마음이 상하고 틀어지는 것입니다. 한 해 동안 받은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인데 그 한 가지 일 때문에 그분께 토라지는 순간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구제불능인 것입니까. 이 육체를 가지고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길 수가 없습니다. 수십 년간 신앙생활을 해도 사람의 마음에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시편 기자는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5-7).

어떻게 이 시편 기자는 매 구절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찬양할 수 있을까요. 영혼을 구원한 하나님, 긍휼을 베푸신 하나님에 대해 찬양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매일 삶을 통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에 예배당에 와서 떡과 잔을 놓고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일주일 간 받은 은혜와 감사를 표현하는 예배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 년을 살면서도 입을 열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감사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살아있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 중에는 목 이하로 전신이 마비되어서 수십 년을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시를 쓰고 찬양을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멀쩡히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시를 써도 더 쓰고 찬양을 해도 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캄보디아나 미얀마에 가면 가난한 그리스도인이 많은데 그들 중에는 참 감사가 넘칩니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좋은 시설을 사용하고 풍족하게 사는데도 감사가 점점 줄어듭니다. 무엇에 문제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을 돌이켜보십시오. 여러분의 눈이 하나님에게서 세상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시선이 머물수록 우리에게는 감사와 찬양이 넘치게 됩니다. 내가 만일 감사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내 눈이 다른 곳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몇 주 동안 이 말씀을 공부하면서 스스로에게 이러한 감사가 넘치는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너무 커서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자녀들 중에는 엄마 아빠가 나에게 해준 것이 무엇이냐고 하는 자녀가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있을 수 없고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사랑과 은혜가 몇 개월 지나면 사라질만한 것입니까. 몇 년 지나면 빛이 바래는 은혜인가요. 영원토록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은혜인 것입니다. 날마다 찬송과 기도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내가 생명이 있는 땅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포기하셨다면 이렇게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로마서 말씀에서,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여 한 것들이 온갖 추악한 일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보호하지 않으시고 제 안에 있는 육체의 소욕에 맡겨두신다면 저는 비극적으로 타락할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선한 것이 거하십니까. 과연 하나님이 없어도 나는 잘 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보호를 중단하시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사단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오늘날 이렇게 주님 안에 산다는 것이 은혜이고 자비인 것입니다. 우리가 한 것을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은혜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신 하나님,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에 대해 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15-17). 세례 요한의 죽음을 생각하면 하나님은 믿는 자의 죽음을 귀하게 보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의 죽음에 관심을 두십니다. 여러분은 부모로서 잘 사는 자식보다는 병들고 가난한 자식에게 더 마음이 가지 않습니까. 연약한 자식에게 사랑이 더 가지 않습니까. 평생을 몸이 마비된 채로 살아가는 아이의 부모는 아이가 그저 살아만 있는 것도 고맙다고 말합니다.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무관심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관심 없으신 그리스도인은 없습니다.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키신다고 하셨습니다. 다윗 왕이 므비보셋과 한 자리에서 음식을 먹으며 그에게 은혜를 베푼 것은 그의 아버지 요나단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왜 이렇게 은혜가 넘쳤을까요. 그는 이렇듯 마음에 쌓인 은혜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성도님들도 한 해를 보내면서 마음속에 은혜와 감사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얼굴에서부터 그것이 드러났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느냐로 좌우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과 내가 처한 환경을 보면 그렇게 평안할 수 없습니다. 환경은 절대 우리를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나름대로 좋은 집에 산다고 했는데 다녀보면 더 좋은 집이 많지 않습니까? 시편 기자는 환경이 좋아서 기쁨이 넘칠까요. 아닙니다. 보는 눈이 다른 것입니다. 그의 시선이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사랑, 영광과 하늘나라에 머물러 있기에 감사가 넘치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것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할 때 감사가 넘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 더 많습니까, 받지 못한 것이 더 많습니까. 받은 것을 바라보고 있다면 우리에게는 감사가 넘칠 것입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요일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