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나님은 왜 시험하실까?

본문: 사사기 2장 20~3장6절

설교자: 이병권

 

오늘 본문에서 핵심 단어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시험”입니다. 22절과 3장 1절, 그리고 4절 세 번에 걸쳐서 시험이 나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가지고 드리는 질문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그의 백성들을 시험하실까요?

시험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이 뭘까요? 시험은 대상에 대해서 모를 때 그 대상을 잘 알기 위해서 합니다. 대상의 실력이나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서 시험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사람을 뽑을 때 자격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 시험이라는 과정을 거칩니다.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면 제품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시험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 시험하기도 합니다.

왜 이런 시험이 필요합니까? 대상에 대해서 모르니까 알기 위해서 시험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시험하실까요? 하나님께 시험이 필요할까요?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 대해서 모르시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께서 왜 그의 백성들을 시험하시는 걸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시험하실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측면에서 시험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생깁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기에 시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닙니다. 우리는 시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하나님이 시험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영역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에 따라 선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 종류의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다만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우리를 죄로 이끄는 유혹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죄로 이끄는 유혹은 우리 각 사람의 욕심으로부터 나오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시험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뜻에 따라 그의 백성들을 시험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이 시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을 살펴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신 시험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둘째로 왜 그 시험을 허락하셨는지, 시험의 이유를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시험을 만날 때 어떤 자세로 시험을 대처해야 하는지 교훈 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험이 무엇인지 그 정체를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한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그 이방 민족들을 머물러 두사 그들을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셨으며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 주지 아니하셨더라(20-23)

하나님이 진노하시며 이스라엘에게 직접 말씀하시는데, 이방 민족들을 쫓아내지 않고 남겨두신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방 민족들을 남겨두신 이유는 이스라엘을 시험하시려고, 이방 민족들을 이스라엘을 시험하는 도구로 사용하시려고 남겨두셨습니다.

여호수아 때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것은 단순히 그들의 노력이 부족했거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뜻하신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이방 민족들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길로 가는지, 다른 길로 가는지 시험하셨습니다.

이방 민족들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대적입니다. 이스라엘에게 가시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런 가시를 원하지 않습니다. 가시 같은 존재들은 아예 없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시가 되는 이방 민족들을 그들 곁에 두셨다는 것은 모순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이런 시험은 없는 것이 더 좋을까요?

여러분은 시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험을 좋아하십니까? 혹시 이 자리에 나는 타고난 시험체질이야! 시험이 너무 좋아서 시험 받고 싶다 하시는 분, 계십니까? 저도 시험을 원하지 않습니다. 시험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이 자리에 혹시 시험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 계십니까? 시험은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시험은 시간 낭비와 같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 계십니까?

이 질문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시험을 원하지는 않지만 누구에게나 시험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험 자체는 즐거운 일이 아니지만, 그렇지만 그 시험을 통해서 얻는 유익이 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나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얻게 됩니다. 시험을 거치면서 보다 더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북유럽 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인기 있는 생선 중에 정어리가 있습니다. 바다에서 잡은 정어리들은 항구에 도착하는 동안 대부분이 죽게 됩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정어리들은 식감이 아주 좋아서 비싼 가격에 팔립니다. 그래서 과거에 어부들은 바다에서 잡은 정어리를 살아있는 상태로 온전히 항구까지 운반하는 일이 최대의 관심사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유일하게 정어리를 살아있는 상태로 운반하는 자신만의 기술을 가진 노르웨이 한 어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죽기까지 절대로 그 비법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 어부가 죽은 후에야 그 비법이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 비법은 아주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정어리를 담은 수조에 정어리의 천적인 메기를 집어넣는 것입니다. 수조에 메기를 넣으면 정어리들이 잡아먹힐 것 같지만, 오히려 정어리들은 살기 위해 꾸준히 움직여서 항구에 도착할 때까지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수조에 있는 정어리에게 메기라는 존재는 시험이지만 메기가 있기 때문에 정어리가 살 수 있었습니다. 그처럼 시험이라는 것이 우리에게는 힘들고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시험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수조의 메기와 같은 이방 민족들을 남겨두셨습니다. 그리고 이방 민족들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시험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신 시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을 시험하셨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첫째 이유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전쟁을 가르치려고 시험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블레셋의 다섯 군주들과 모든 가나안 족속과 시돈 족속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입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주하는 히위 족속이라(3:1-3)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시험하시려고 이방 민족들을 남겨두셨는데 어떤 목적으로 그렇게 하셨습니까?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쟁을 가르치려고 남겨두셨습니다.

여호수아와 그 세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민족들과 전쟁을 하면서 그 땅을 정복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세대들은 그런 경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전쟁을 가르치려고 이방민족들을 남겨두셨습니다.

여기서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전쟁을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려고 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다시 말해,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전쟁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을 가르치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필승의 전략을 세우고, 무기 사용법을 익히고, 부대를 어떻게 배치하는지, 적의 공격에 따라 어떻게 대응하는지 이런 전쟁의 기술을 배워야 할까요?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이기는 비결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앞에 넓은 바다가 가로 막고 있습니다. 그 때 모세가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선포합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3-14)

누가 싸웁니까? 하나님이 싸우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요?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입니다. 백성들이 할 일은 하나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이 가만히 있으라고 하시면 가만히 있고 싸우라고 하시면 싸웁니다.

승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알아야 할 것은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이방 민족들과의 전쟁에서 배워야 할 것은 신뢰입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느냐가 승리의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상황이 어떠하든지, 적들이 가진 무기가 얼마나 뛰어나든지, 적들에게 얼마나 대단한 용사가 있든지, 적들의 수가 얼마나 많든지 관계없습니다. 그런 눈에 보이는 것들은 사람들에게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하나님께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외적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앞서 싸우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것입니다. 단 하나 승리의 조건,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 우리도 이스라엘과 같은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창과 방패를 들고 싸우는 전쟁은 아니지만 우리 매일의 삶도 전쟁과 같습니다. 다르지 않습니다. 나의 죄악 된 본성과 매일매일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집안에서는 나의 마음을 뒤집어 놓는 나의 남편 혹은 아내 그리고 자녀들이 있습니다. 집밖에서는 정말 주먹으로 때리고 싶은 상식밖에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적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렇게 힘들게 삶의 현장에서 수고하고 사람들과 부딪히고 그러다 보면 내 마음이 전쟁터와 같을 때가 많습니다. 이 땅에서 믿는 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힘겹다고 느낄 때도 있고 어느 정도까지 해야 되는지 모를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여러 가지 고민들로 힘들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가!’ 살펴보는 일입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 걸까요?’ 이것이 우리의 시험입니다. 하나님이 계속 우리에게 주시는 시험 문제입니다. ‘이 상황에서도 너는 나를 신뢰하겠느냐?’ ‘네 앞에 보이는 문제보다 나를 더 신뢰하겠느냐?’ ‘지금 너에게 있는 어려움 중에서도 너는 나를 끝까지 신뢰하겠느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그 뜻대로 훈련시키시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전쟁을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방 민족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가르치셨던 것처럼 우리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적들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를 시험하시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래서 시험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왜 시험하셨습니까? 첫째는 전쟁을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신뢰”를 가르치려고 시험하셨습니다. 그리고 둘째 이유는 이스라엘에게 “순종”을 가르치려고 시험하셨습니다. 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4)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주어진 명령에 대해서 순종과 불순종의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선택에 대해서 이방 민족들을 사용하셔서 시험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은 순종과 불순종을 선택하는 것 이상으로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졌을 때 그 명령에 대해서 여러분은 왜 순종하십니까? 적어도 왜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순종하려고 노력하십니까? 왜냐하면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마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순종했을 때 찾아오는 유익과 보상이 있고 불순종했을 때 찾아오는 징계와 저주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결과들을 생각하기 전에 순종 그 자체만으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순종의 시험 앞에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명령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왕이시고 나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나는 그 명령에 대해서 순종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고, 내가 하나님 말씀을 따라야 하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에게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항상 내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주인 되려고 합니다. 그래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평생토록 계속되는 치열한 전쟁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남편은 왜 아내를 사랑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명령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다면, 그리고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아내가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를 사랑하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나와 아내와의 관계 이전에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내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아내와의 관계만을 생각한다면 배우자의 태도에 따라 미워할 수 있고,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사랑하기를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면 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다른 핑계는 없습니다.

자녀가 부모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녀 스스로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교회인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무엇입니까?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 하나님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우리에게 시험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험을 통해서 나의 부족함을 깨닫게 됩니다. 나의 연약함을 알게 됩니다. 그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힘으로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험을 통해서 이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우리에게 순종이 자연스럽고 완벽한 순종을 실천한다면 뭐가 문제겠습니까? 시험 자체가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시험이 필요한 것은 이렇게 부족한 우리가 시험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시험이 기회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순종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성장하고 조금 더 우리 주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많은 말씀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들을 내가 얼마나 알고 순종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풍성함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그 풍성한 은혜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남편과 아내, 배우자는 시험에서 정말 빠질 수 없는 항목입니다. 얼마나 자주 출제되고 또 얼마나 자주 시험거리가 되는지 모릅니다. 자녀들, 때로는 정말 답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까다로운 시험입니다. 회사 사람들, 친척들, 이웃들, 하나님은 정말 다양한 도구들을 사용하십니다. 때로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시는 것만 같은 상황을 허락하실 때도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답답한 상황을 주기도 하십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상황에 따라 정말 다양한 시험들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감사하는 것은 정말 다양한 시험 문제들이 있지만 문제의 답은 정말 단순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모든 시험에 대한 정답을 이미 알려주셨습니다. 답이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이 우리에게 모범 답안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정말 풀 수 없을 정도로 까다로운 시험 문제를, 우리 생각을 초월하는 문제를 내셨습니다. 100세에 얻은 하나뿐인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풀었습니까? 그 문제에 대한 아브라함의 풀이 과정과 답은 간단했습니다. 그는 “신뢰”라는 과정으로 시험을 풀었고, “순종”이라는 답을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과 답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면서 이미 어린양을 준비해두셨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어린 양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했고, 순종했습니다.

우리는 신뢰와 순종이라는 두 과목으로 계속해서 시험을 치르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시험들 속에서 여러분은 어떤 답을 제출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선하신 계획을 가지고 자신의 뜻대로 우리에게 다양한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그 때 마다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신뢰하느냐?’여러분은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삶에서 순종으로 답하시기 바랍니다.

‘네! 주님! 제가 주님을 신뢰함으로 순종하겠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신 시험에서 주님을 신뢰함으로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제가 주님의 기쁨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