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비방하지 말라
본문 : 야고보서 4장 13절-17절
설교자 : 이 병 권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야고보서는 사람들을 두 부류로 구분합니다. 참된 믿음, 진정한 믿음, 살아있는 믿음, 행함으로 증명되는 믿음, 그 믿음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 스스로는 믿음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짓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계속해서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말하며 스스로를 점검하라고 경고합니다.

야고보는 소리 높여 외칩니다. “들으라” 이것은 주의를 환기시키며 말씀을 듣는 자의 관심을 모으기 위한 것입니다. 구약에서 선지자들이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할 때 했던 것처럼 그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그들 가운데 이렇게 말하고 있는 자들을 향해 경고합니다. 야고보는 왜 이런 경고를 하고 있는 걸까요? 그들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한번 들어보십시오. 그들이 말합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13)

그들은 사업을 위해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말합니다. 오늘이나 내일, 시간을 결정합니다. 어떤 도시에 가서, 장소를 결정합니다. 일 년을 머물며, 기간을 결정합니다. 장사하여, 방법을 결정합니다. 이익을 보리라, 결과를 예상합니다. 아주 신중하게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계획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결과를 예상하는 것 당연한 것 아닙니까? 여러분이 장사를 계획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무엇을 할지 정하고, 시간과 장소, 결과를 예상하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장사하기 위해서는 미리 계획을 세워야만 합니다. 계획하지 않고 일에 뛰어든다면 그냥 망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에서 야고보는 계획하는 것이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혹은 장사하여 이익을 남기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업에 있어서 미리 계획하고 이익을 남기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입니다. 여기서 야고보가 지적하는 것은 그들의 계획에서 하나님이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 모든 일들이 자기 손 안에 있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대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며 말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있는 어리석은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자신의 본분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를 벗어나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버린 교만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에게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많은 곡식을 쌓아두고, 더 이상 쌓아둘 곳이 없어서 자신의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기로 계획합니다. 그리고 이제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가 인생의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며 장밋빛 인생을 계획했지만, 모든 것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때에 그의 인생을 거두어 가십니다. 더 많은 곡식을 쌓아두고 즐기기를 원했지만, 결국 죽음으로 그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버렸습니다. 이 어리석은 부자의 모습이 바로 야고보가 말하고 있는 장사를 계획한 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야고보는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하나님의 자리에 앉은 자들, 교만한 자들을 향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이나 관점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신앙고백은 하지만 여전히 세상의 철학이나 가치관에 의존해 사는 사람, 주일마다 교회는 다닙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기도 합니다. 찬양도 부릅니다. 기도도 합니다. 예배도 드립니다. 말씀도 듣습니다. 그런데 인생에서 무언가를 계획하고 선택할 때 하나님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겁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실제적인 무신론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삶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에게서 예수님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주님의 향기를 맡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교회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구원 받았다고 말하지만 삶에서 구원의 열매를 찾을 수 없습니다. 생명이 있다고 말하지만 생명력을 느낄 수 없습니다. 여전히 세상의 가치를 좇아서 살아갑니다. 여전히 자신이 가장 중요한 자이고 자신에게만 몰두해 있습니다. 여전히 높아진 마음으로, 교만한 태도로, 자신의 욕심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리에 내가 앉아 있는 겁니다. 그것은 자기 스스로가 하나님이 되어 살아가는 겁니다. 그런 자들을 향해 야고보가 말합니다. “도대체 너는 누구이기에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느냐?“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자리에 앉아 계십니까?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이, 그 분의 자리에 앉아 계십니까? 아니면,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여전히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고 계십니까?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너무도 교만하게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있는 건 아닌지 말입니다.

야고보는 우리가 그런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인생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일깨워줍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14) 우리는 어떠한 존재입니까? 우리는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도 알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제한적이고,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저의 짧은 인생을 돌아보더라도 예상치 못한 일투성이입니다. 여러분도 동일한 고백을 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만나게 될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 인생에서 우리는 이처럼 제한적인 존재일 뿐입니다. 우리는 내일을 알 수 없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인생은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도 같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안개처럼 짧은 것입니다. 제가 학교 도서관에서 나왔는데 안개가 정말 자욱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멋진 광경에 사진도 찍고 기숙사로 걸어가는데 앞이 잘 안 보이는 겁니다. 그렇게 기숙사에 와서 수업 준비를 하고 강의실로 가려고 나오는데 이제는 그 안개가 없는 겁니다. 그 짧은 시간에 언제 안개가 있었는지도 모르게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생명이 그러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 안개와도 같습니다.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겁니다. 이렇게 제한적이고 유한한 인생인데, 이렇게 연약하고 의존적인 인생인데, 그런데 우리가 인생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배제한다면 얼마나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일이겠습니까? 인생에서 하나님이 없는 계획처럼 불안하고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큰 부를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대단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없습니다. 그 누구도 내일 일을, 미래를 알 수는 없습니다. 그 누구도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수는 없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인생은 추운 겨울에 숨을 크게 내쉴 때 잠시 보였다가 사라지는 입김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할 찐데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 없이, 그러한 태도로 살아간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자기 힘과 노력으로 끙끙거리며 나름의 노력을 다 하지만 결국은 그 모든 것이 헛수고로 끝나버릴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을 빠뜨리고 뭔가를 계획하고 있다면 그 계획을 수정하십시오. 하나님 자리가 없는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면 당장 멈추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내 인생의 주인이 바로 나 자신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의 설계는 맥없이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그 기초부터가 잘못된 엉터리인 것입니다. 동로마 제국에서는 황제가 즉위식을 할 때 특별한 관례를 지켰다고 합니다. 새로 즉위하는 황제에게 멋지게 깎은 여러 대리석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황제는 그 중에 하나를 자신의 묘비로 선택해야 합니다. 황제가 즉위하면서부터 먼저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을 제대로 바라보십시오. 혹시 여러분은 자신을 의지하는 가운데 세상적인 기쁨만을 추구하며 미래에 대한 화려한 기대만을 가지고 인생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자리를 내어드리고 겸손하게 인생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을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믿음을 가진 자로서 인생을 바르게 바라보고 겸손하게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적용에 대해서 저는 오늘 두 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십시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15).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을 겸손하게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삶에 어떤 것은 하나님께 드리고 어떤 것은 나 자신이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나의 모든 인생에서 그 분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 뜻이면, 주님이 허락하시면, 이것이 우리 삶의 원칙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 되심을, 범사에 그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가짐과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날마다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십시오. 우리의 인생은 그 분의 손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교만을 버리고, 허탄한 자랑을 버리십시오. 그것은 악한 것입니다. 겸손히 주님의 뜻을 구하십시오. 주님의 뜻 안에서 우리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며 주님이 허락하시는 참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의 뜻이면,주님이 허락하시면, 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 뜻이면 내가 이것을 하고, 주님이 허락하시면 내가 저것을 하고,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내가 이러이러 하리라“ 이러한 태도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기계적으로 말을 할 때마다 “주님 뜻이면”이란 말을 붙여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말할 때마다 “주님 뜻이면”이라고 반복해서 말해야 한다면, 얼마나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울까요? 서로 대화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계획을 말하면서 “주님 뜻이면”을 말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21절에서는 “하나님의 뜻이면”이라고 말하지만, 동일한 사도행전 19장 21절에서는 이러한 언급 없이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 19절에서는 “주께서 허락하시면”이라고 말하지만, 동일한 고린도전서 16장 5절에서는 이러한 언급 없이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사도 바울이 그것을 말하든지, 말하지 않았든지 간에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의 계획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은 “주님 뜻이면” 이 말을 공식처럼 무의미하게 입술로만 끊임없이 반복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의미 없는 암송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진심으로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마다, 여러분의 계획마다, 여러분의 모든 삶의 자리에, 여러분 인생의 목표와 그 모든 준비 가운데 “주님 뜻이면”을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이것이 여러분의 삶의 모토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이고 참 믿음의 가진 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다시 돌아와서 한 번 더 질문해봅니다. 우리가 참된 믿음을 가진 자로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둘째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십시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17).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함으로 그 분의 뜻을 아는 자의 의무는 행함입니다.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선을 행하는 것, 하나님 앞에서 옳은 일. 그것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안다면 이제 실천하십시오. 내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도록 꼭꼭 감추어두고, 보물찾기 하듯이 숨겨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무도 모르는 어떤 비밀을 내가 깨닫게 되거나, 특별한 꿈을 꾸거나, 직접 그분의 음성을 듣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분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청년 자매가 단기 선교여행을 두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선교 여행을 가는 것으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시계를 봤는데 7시 5분이었던 것입니다. 선교 여행 출국 날짜가 7월 5일인데 정확히 그 시간에 눈을 떴던 것입니다. 만약 이런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는 얼마든지 알람을 맞춰놓고 하나님의 뜻을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할 일은 삶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가운데 성경을 통해 명하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지혜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의 모든 것을 이미 결정해 두시고, 우리는 그 길에 조금도 벗어나지 않기 위해 불안해하며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향한 확신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무시하는 것은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 우리에게 말씀하셨고 또 그것을 행할 수 있는 힘을 허락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말씀을 그분이 주신 능력으로 실천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편14:1절에서 말씀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런데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고 그렇게 사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것은 하나님을 알고 믿으면서도 그분이 하나님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질문합니다. 여러분 정말로 하나님이 계십니까? 아마 이 자리에서 직접 하나님이 없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로 그렇게 하지 않지만, 삶으로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지금 이 곳에는 얼마나 많은 무신론자가 있는지 저는 모릅니다. 아마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도 그 호칭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산다면 여러분은 실제적인 무신론자입니다. 말보다 행동이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은 여러분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엇이 올바른 일인지 알았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십시오.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십시오. 그릇된 일을 하지 말고 그것을 옳은 일로 바꾸십시오. 변화를 위한 결정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교만해서 너무나 자주 나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죄를 범합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우상숭배, 거짓 신을 섬기며 그 신을 따르는 죄 가운데 최악의 경우는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유일하신 하나님의 자리에 나 자신이 앉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신”으로 올려놓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여러분은 지금 어느 자리에 앉아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