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나님께서 정하신 권세 Part 1

본문: 로마서 13장 1-7절

설교자: 조정의

 

교회력으로 오늘은 종려 주일이다. 내일부터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거하셨던 마지막 일주일, 특별히 잡히시고 수난당하시고 돌아가신 것을 기념하는 고난 주일이 시작되고, 돌아오는 주일은 주님의 다시 살아나심을 기념하는 부활 주일이다.

매년 교회가 기억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매우 중요한 이 사건을 기념하여 오늘과 다음 주 함께 나누기 원하는 주제는 “위에 있는 권세” 곧 이 땅에 세워진 권세이다(롬 13:1-7).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위에 있는 권세와 무슨 상관인지 의문을 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그를 믿는 자를 이 세상에서 불러내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소속을 바꾼 실질적인 사건이 아닌가? 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나라를 예비하고 계시지 않는가? 

어떤 그리스도인은 그래서 이 땅의 권세는 자신을 구속할 권리가 없고, 자신은 그리스도의 나라 백성으로 이 땅의 법에서 자유롭다고 주장한다. 생각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땅의 권세에 대한 생각(정치적 입장)은 완전히 신앙과 별개라고 여긴다. 보수를 지지하든, 진보를 지지하든, 정부에 반대하든, 정부에 순응하든 하나님은 아무 상관하지 않으시며, 하나님은 오직 당신의 나라만 신경 쓰신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이 로마서 13장이라는 사실은 그런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정치와 신앙이 구분되나, 분리되지 아니함).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이 위에 있는 권세에 말씀대로 반응하는 것이 곧 복음,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합당한 삶이다. 신앙이 있는 사람은 신앙에 따라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된 로마서는 1-11장까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곧 복음을 강력하게 선포한다.

만물과 양심을 통해 죄인은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자기 자신과 피조물을 섬기는 삶을 산다(롬 1).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롬 2).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에게 당신의 의를 선물하기 원하신다(롬 3). 우리가 노력해서가 아니라, 의로워서가 아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의 원수 되었을 때,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죄인의 죗값이 단번에 영원히 치러졌고, 하나님의 의가 죄인에게 입혀졌으며,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연합한 우리가 의인으로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새 생명, 곧 영생을 누리게 되었다(롬 6-8).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아시고 택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실 것이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이 주권적인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권세는 없다(롬 8).

로마서 12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실제로 맛본 자들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면한다. 

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2)

그러므로 로마서 13장에서 바울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 즉, 위에 있는 권세에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할 것을 말씀해 주신 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아무런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위에 있는 권세에게 어떻게 하는가는 곧 복음에 합당한 삶,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예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는 마땅히 로마서 13장 1-7절에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 온전하신 뜻에 따라 순종해야 한다.

그래서 두 번에 걸쳐 정치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기 원한다.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상관없는 개인의 견해가 아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으로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공동으로 지지해야 하는 정치 참여에 대해 말하기 원한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하나님 나라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기는 그 나라 백성은, 마땅히 왕이 직접 명령하신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해야 한다. 이것이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를 인정하면서도 모든 그리스도인이 믿고 따라야 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다! [본문 읽기]

1. 명령: 복종하라(1a절)

1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하나님은 각 사람(ψυχή), 특별히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한 모든 신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렇게 명령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다. 이것이 우리가 드려야 할 영적 예배다: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명령은 단순 명료하다. 복종하라(ὑποτάσσω). 복종은 신약 성경에서 오직 위에 있는 권세에만 쓰인 특별한 단어가 아니다. 하나님이 교회 안에 세우신 영적 권위(고전 16:16), 성도 간에 피차(엡 5:21), 종이 주인에게(딛 2:9), 아내가 남편에게(엡 5:24) 복종하라는 명령이 주어졌다.

로마서 13장 1절에서 복종의 대상은 위에 있는 권세들이다. 현재 내 위에 세워진 사람들과 그들이 만든 제도들을 말한다. 베드로는 “인간의 모든 제도”, “왕”, “총독” 등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했다(벧전 2:13-14). 오늘날 법으로 위임된 권리를 행사하는 모든 사람과 제도들이 바로 우리가 복종해야 하는 대상이다.

대상이 각각 다르지만, 복종하라는 명령이 공통으로 갖는 의미는 ‘위에 있는 권세 아래 자신이 종속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것’, ‘위에 있는 권세가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 권위에 자발적으로 순응하며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사람은 이런 명령에 곧바로 이렇게 반응한다. ‘그러면 정부가 하는 모든 일을 지지하고 칭찬만 하라는 것인가?’, ‘잘못된 것을 요구해도 아무 말도 못 하고 무조건 복종하라는 말인가?’

그 질문을 잠시 가지고 있으라. 이에 관하여 다음 주에 3-4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보겠다. 그 전에 먼저 우리 위에 있는 권세들을 인정하는 일에 순종해야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자기 기준을 가지고(심지어 성경의 기준이라 주장하며) 위에 세워진 권세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나아가 현재 세워진 권세를 무너뜨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위에 있는 권세들이 내린 명령에 어떻게 복종할 것인지 논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위에 있는 권세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권위가 있고, 그것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바로 이어서 나오는 말씀이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없게 만든다.

2. 이유: 하나님께서 모든 권세를 정하셨다(1b-2절)

1…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권세를 인정해야 하는 이유를 매우 확실하고 근본적으로 제시한다. 우리는 적당히 사회 구성원으로서 질서 있게 살려고,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혹은 불필요한 해를 입지 않으려고 권세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권세에 복종하는 이유는 그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났기 때문이다.

합당한 방법으로 세워진 권세만 하나님으로부터 났는가? 정책이 바르고 정직하게 운영하는 정부나 관리들만 해당하는가? 친미 정권,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강조하는 정권, 혹은 기독교 교리에 많이 부합하는 정권만 하나님으로부터 난 정권인가? 그렇지 않다.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로부터 났다. 하나님이 정하셨다.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했을 때만 해도 로마는 세습을 통해 황제의 권력이 주어지거나 심지어 무력으로 권력을 쟁취하기도 했다. 이 당시 로마 황제는 네로였는데, 의붓동색과 어머니, 아내를 살해하고 로마 대화재의 책임을 교회에 뒤집어 씌워 기독교를 대학살하려 했던 잔인무도하고 악한 왕이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이렇게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다.

무력으로 세워지든, 반역으로 세워지든, 세습으로 세워지든, 민중의 선택으로 세워지든 그 배후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뜻 밖에서 세워지는 권세는 없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정하신 권세를 거스르는 것이 곧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2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현재 우리 위에 세워진 권세가 올바른 방식으로 세워진 것인지를 평가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하는 일이나 추구하는 정책이 선한지 악한지 분별하지 말라는 말도 아니다. 

다만 우리 위에 세워진 권세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워진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거스르는 것은(권위 자체를 부정, 세워진 권위를 뒤집어 엎으려함) 곧 하나님이 세우신 뜻,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로부터 심판을 자초할 것이다.

베드로는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라고 물었다(벧전 2:19-20). 확실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난 권세를 인정하지 않고 거부해서 당하는 고난은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니다. 부당한 고난이 아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라 명하신 권세를 거슬러 받는 고난은 죄가 있어 매를 맞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답지도 않고 칭찬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당신은 위에 있는 권세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세워졌다는 것을 반드시 인정하고 그 권세를 통해 하나님이 이루실 뜻을 온전히 신뢰해야 한다.

3. 예증

어떤 사람은 모든 권세가 다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어한다. 정치 관련 칼럼을 썼을 때 로마서 13장 1-2절을 가지고 세워진 권세를 인정해야 한다고 했는데, 댓글에 그건 오직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바른 정부에만 해당한다고 쓴 사람이 적지 않았다. 과연 성경은 적법한 절차로 세워진 권세, 정직하고 의로운 정책을 펴는 권세만 하나님께로부터 났다고 말하는가? 남은 시간 성경의 예증을 통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겠다.

  1. 바로(창 15:13)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을 때 바로는 친이스라엘 정책을 펴는 좋은 왕이었다. 하지만 요셉이 죽고 바로는 약 4백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악한 권세로 백성을 노예처럼 착취했다. 최악은 태어난 남자 아기를 모두 죽이는 정책이었다.

그렇다면 바로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은 권세인가? 아니다. 약 2백년 전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 아브라함에게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라고 말씀하셨다(창 15:13-14).

모세는 자기 뜻대로 애굽 병사를 죽여 세워진 권세에 반역했지만, 오히려 미디안 광야로 쫓겨났고,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당신의 뜻대로 바로와 애굽을 징벌하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이스라엘과 애굽과 모든 민족이 여호와를 알도록 하셨다(출 7:5).

  1. 이스라엘의 침략(창 15:16)

약속의 땅 가나안에 살던 주민의 입장에서 이스라엘은 침략자다. 평안하게 잘살고 있는 남녀노소 백성들을 이스라엘 군사가 와서 모두 죽이거나 종으로 삼았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는 일은 모두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이방 민족과 가축을 아끼시는 분이다(욘 4:11).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한 것이 인정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은 사 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창 15:16). 하나님은 가나안 민족의 죄를 심판하시는 도구로 이스라엘을 사용하셨다(신 18:9, 12). 이것이 잔인한 가나안 족속의 멸절을 이해하는 올바른 방법이다.

  1. 사사기의 이방 민족들

약속의 땅을 차지한 이스라엘이 아직 군주제를 갖추기 전(왕이 없었을 때), 신앙연맹체 형태로 있어 각각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 사사기 시대. 하나님은 약속하신 땅에 그들이 불순종으로 남겨둔 민족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가시와 올무가 되게 하셨다.

미디안, 블레셋 등 모든 남겨진 가나안 족속은 수시로 이스라엘 각 민족을 괴롭히고 침략하고 약탈하고 착취했다. 그렇다면 오랑캐 같은 이들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세워진 권세들인가?

그렇지 않다. 사사기 저자는 사사 시대 전체를 요약하는 내용을 기록하며 가나안 오랑캐를 이렇게 소개한다: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삿 3:1-2).

하나님의 분명하신 뜻이 있었다. 하나님은 이방 민족을 통해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시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며 전쟁을 할 수 있도록 훈련하시려는 분명한 뜻을 두고 이방 권세를 그들 가운데 세우셨다.

  1. 사울 그리고 다윗(사무엘상하)

사사 시대가 끝나고 마침내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졌다. 이스라엘에 처음으로 세워진 왕은 사울, 그다음은 다윗이다. 사울과 다윗 모두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께서 직접 기름 부으신 왕이다.

특별히 다윗은 기름 부음 받았을 때 사무엘 앞에 세우지도 않았던 후보에도 못 든 소년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윗과 그 후손을 통해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것을 약속하셨다(삼하 7:12).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고도 약 25년간 사울 왕을 피해 도망 다녔는데, 그 도망자의 삶을 통해 다윗이 보여준 삶이 바로 오늘 로마서 13장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하고 아름답고 온전한 뜻에 순종하는 삶이다.

다윗은 사울을 제거하기 딱 알맞은 상황에서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삼상 24:6). 다윗은 모든 권세가 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임을 진실로 믿었다. 그리고 거스르지 않았다.

다윗은 진정성은 사울의 죽음 후에 또다시 증명된다. 그는 전쟁 중에 죽은 사울의 왕관을 벗겨 다윗에게 뭔가 얻을 것을 기대하고 온 아말렉 청년을 칭찬하지 않고 죽였다. 그리고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책망했다(삼하 1:14).

  1. 분열 왕조(열왕기상하, 역대상하)

하나님이 사랑하신 솔로몬이 죽고 왕국이 둘로 분열되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왕국에 각각 19명의 왕들이 세워지고 사라짐이 반복되는 역사가 열왕기상하, 역대상하에 기록되어 있다.

남유다는 다윗의 왕조를 계속해서 이어나갔지만, 북이스라엘은 여러 번 왕조가 바뀌었다. 반역과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말이다. 하지만 왕들이 세워지는 데 있어 하나님은 적극적인 개입을 하셨다. 하나님은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북이스라엘 초대 왕 여로보암에게 열 지파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왕상 11:26-40). 시므리 왕조를 일으켜 반란을 성공시킨 것도 여호와 의 말씀에 따른 것이었다(왕상 16). 

하나님은 선지자(엘리야, 엘리사)들을 통해 이스라엘과 유다에 세워진 권세를 책망하셨고, 권세를 평가하실 때 여호와 보시기에 옳은 대로 행했는지에 따라 평가하셨다. 실패하는 왕들도 많았지만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다”(왕하 8:19).

결론적으로 분열 왕국의 38~40명의 왕들은 각각 반역, 쿠데타, 세습 등으로 세워진 왕조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들 모두를 세우시고 평가하시고 심판하셨다.

  1. 이방 제국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당하고,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정복당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포로로 잡아간 국가 앗수르와 바벨론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권세인가?

구약 선지서에서 여러 번 강조한 것은 두 제국이 하나님의 도구로 범죄한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남유다는 바벨론에 맞서기 위해 이집트에게 도움을 요구하거나 그 뒤에 숨으려 했지만, 선지자들은 계속해서 바벨론에 투항하라고 명령했다. 바벨론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있기 때문.

선지자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모든 이들에게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전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렘 29:4-7).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실 뿐만 아니라 평안하게 지키시려고 제국을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끌려간 다니엘을 통해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게 말씀하셨고 이방 제국의 왕을 통해 분명한 진리를 드러내기 원하셨다: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단 4:17).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를 선택하셨는데, 이사야를 통해 그를 “내 목자”라고 부르시며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사 44:28). 이스라엘을 무너뜨린 제국의 왕, 회복시킨 제국의 왕 모두 하나님의 손안에 그 뜻 안에 있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1. 헤롯(마 1)

헤롯은 이두미안(에돔)으로 유대인 혼혈 출신 왕이었다. 출신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론 로마 제국과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하는 탐욕스러운 왕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헤롯을 좋아하지 않았다. 예수님도 헤롯을 “여우”라고 말씀하셨다(눅 13:32).

헤롯은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전부터 예수님을 대적하는 원수였다. 동방 박사에게 예수님 태어나신 곳을 물은 이유와 베들레헴 근방 두 살 아래 아기를 다 죽이라고 한 것도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예수님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왕의 왕되신 예수님을 죽이려 한 헤롯의 권세도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 분명한가? 그렇다. 하나님은 선지자 호세아를 통해 애굽으로 예수님을 피신시키실 것을 예언하셨다(호 11:1). 헤롯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성경엔 또 다른 헤롯 왕이 나오는데 사도행전 12장에 나오는 헤롯 아그립바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아 벌레에게 먹혀 죽었다(행 12:23). 하나님이 왕을 세우시고 왕을 심판하신다.

  1. 빌라도

빌라도는 예루살렘을 다스리도록 로마 황제가 세운 총독이다. 재판관으로서 공정한 사람은 아니었고 사람들의 인기나 정치적 입지를 더 신경 쓴 사람이다. 그래서 분명히 살인죄가 입증된 바라바를 내주고 아무 죄가 없다고 세 번이나 선포한 예수님을 십자가형으로 내줬다. 예수님은 빌라도에 대해 이 말씀을 하심으로 우리가 살펴보는 진리. 모든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났다는 것을 확증하셨다.

빌라도가 예수께 묻기를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요 19:10). 예수님은 “네가 무슨 권세가 있냐?”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라”(요 19:11)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빌라도 위에 권세를 주셨다는 것을 확증하고, 예수님께서 자기 목숨을 내어주기까지 아버지 하나님이 정하신 뜻에 따라 위에 있는 권세에 순종하셨음을 보여준다.

  1. 적그리스도

최악의 정부는 계시록에 나오는 적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다. 이름 자체가 적그리스도(안티-크라이스트)다. 적그리스도의 정부는 마귀적이다.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그리스도의 추종자를 제거하는 절대군주이다. 누구든지 자기를 좇지 아니하면 매매가 불가능하고 평안히 먹고 쉴수 없으며 죽기를 각오해야 한다(계 13).

아무래도 적그리스도의 권세는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난 권세라고 말하기 힘들지 않을까? 

부활하셔서 하늘 보좌에 앉은 우리 왕 예수님은 요한에게 이렇게 그 정권에 대해 말씀하셨다. “또 짐승이 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계 13:5).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7절). 

적그리스도의 권세 역시 하나님의 주권 아래 권세를 받는다. 하나님은 마귀적인 적그리스도의 나라를 통해 참된 신자를 구별하시고 재림하여 멸하실 원수들을 모으신다. 뜻을 이루신다.

  1. 천년 왕국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

마지막은 천년 왕국과 그 이후에 있을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천년 왕국 이후에 둘째 사망 불못의 영원한 심판과 함께 시작될 영원한 나라이다. 하나님께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실 그 나라는 민주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절대적 군주제이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신다. 마태복음 25장 34절을 보면 인자가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 임할 나라를 가리켜 예수님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라고 말씀하셨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 말씀하시기를,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라고 하셨다(계 21:6).

하나님 나라는 처음부터 하나님이 계획하신 나라며, 그동안 이 땅에 세워진 모든 연약하고 부패하고 온전치 못한 권세가 궁극적으로 바라고 믿고 소망하게 하는 그 나라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방대하지만 간략하게 살펴본 권세들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원리는 분명하다.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다는 것,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란 진리다. 그러므로 권세가 잘 하고 있는지 못하는 지, 적법하게 세워졌는지, 그렇지 않은지 평가하고 따지기 전에 먼저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권세를 인정해야 한다.

무력이든 세습이든 적법이든 불법이든 반역이든 침략이든 위에 있는 권세에는 하나님이 두신 분명한 뜻이 있다.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권세를 세우는 일에 절대로 실수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위에 있는 권세들을 인정하라. 그들 위에 세우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라. 

4. 교훈(적용)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적어도 세 가지 태도를 가지고 살 수 있다. 첫째, 우리는 평안을 누린다. 위태롭고 악한 정책이 펼쳐지더라도 우리는 국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손에 모든 권세가 온전히 붙들려 있음을 알기에 평안을 누린다.

둘째, 우리는 확신을 갖는다. 사람 하나 잘못 세워서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고 하거나 곧 나라가 재앙에 빠질 거라는 불안과 공포, 불평으로 우리 마음이 채워지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나라를 통하여 합력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의 최고선이 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을 믿기에 확신할 수 있다.

셋째, 우리는 소망 가운데 기뻐한다. 불안정하고 부패한 정부의 연약함이 크게 느껴질수록 우리는 완전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한다. 궁극적인 하나님의 다스림을 기다리며 하나님으로 온전히 만족할 수 있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며 온전히 기뻐할 수 있다.

결론

선지자 하박국은 자기 때에 세워진 권세를 보며 한탄했다. 이스라엘의 권세가 휘두르는 겁탈과 강포, 변론과 분쟁, 불의와 악을 보며 하나님께 왜 이들을 심판하지 않으시냐고 부르짖었다(합 1). 하나님은 바벨론이 그들을 칠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러자 선지자는 어떻게 더 악한 바벨론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도구가 될 수 있냐고 물었다. 하나님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언젠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한 나라가 임할 것이라 말씀하셨다(합 2:4, 14).

선지자의 마지막 고백이 바로 권세를 바라보는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하나님이 모든 권세를 정하셨다. 하나님이 모든 권세를 통해 주권적인 뜻을 이루신다. 하나님이 궁극적인 권세, 온전한 나라를 반드시 세우실 것이다. 믿음으로 그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기뻐하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권세를 인정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