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침례, 제대로 알고 받으리!
본문 : 마태복음 28:18-20
설교자 :  이병권

  1.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2.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3.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은 침례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일반적으로 한 번 받는 침례를 저는 세 번이나 받았습니다. 그 중 두 번은 신학교에서, 목회학 실습이라는 과목을 통해서 제가 침례를 주기도 했고 침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서로 침례를 주고받는데, 그러면서 ‘침례를 이렇게 하면 안 된다!’라는 것을 몸으로 배웠습니다. 저에게 침례를 주었던 동기가 저를 물에 밀어 넣고 계속 누르고 있으면서 안 건져주는 겁니다. 코로 물을 먹으면서 제가 발버둥을 쳐서 물속에서 올라왔습니다. 제가 물에서 나와서 “왜 그러냐, 왜 나를 안 건져 주냐”고 하니까, 예수님의 죽으심을 제대로 경험하라고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이제 바꾸어서 제가 침례를 줄 차례가 되었습니다. 저도 동기가 보여준 그 배려에 보답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동기가 저보다 키도 크고 몸무게도 많이 나가서 안 되는 겁니다. 물속에 넣는데 제가 같이 들어갈 뻔 했습니다. 깜짝 놀라서 물속에서 들어 올리는데 힘에 부쳐서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수돗물을 바로 받아서 했기에 물은 또 얼마나 차가웠는지 모릅니다. 저의 입술은 파랗게 변했고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 실습을 통해 침례, 쉽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침례를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대로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침례를 제대로 알고 받아야 그 침례가 정말 의미가 있고 가치 있는 복된 예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침례를 받는다면 그것은 단순히 시간 낭비에, 에너지 낭비, 물 낭비, 옷만 젖게 되는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성경의 몇몇 구절들을 찾아보면서, 침례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침례 받기를 원하시는 분들이 침례를 제대로 알게 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침례를 받으신 분들은 그 의미를 되새기며, 침례 받았을 때를 추억하면서, 침례가 현재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돌아보며, 다시금 나의 신앙을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침례가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들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침례를 요즘시대와는 맞지 않는 옛날의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침례의 중요성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교회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 부차적인 것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존 맥아더는 “오늘날 교회에서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그 원인이 침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침례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직 잘 모르겠다하셔도 괜찮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왜 침례를 받아야 하며, 침례가 왜 그렇게 중요한지 함께 배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저는 오늘 네 질문을 가지고 침례에 대해서 살펴볼 것입니다. 이 네 가지 질문을 염두에 두고, 오늘 말씀을 잘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침례, 어떻게 받는 겁니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먼저, 침례라는 단어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침례라는 말은 물속에 잠기는 침수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침례라고 표현할 때 사용되는 동사가 “밥티조”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완전히 담그다”, “물에 잠기게 하다”, 혹은 “물들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침례를 베푼다는 것은 물에 들어가서 완전히 잠기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성경에는 ‘세례’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세례를 주는 장로교나 감리교가 우리나라에 먼저 들어와서 성경을 번역했기 때문에 그렇게 번역한 것입니다. 원래 의미대로 번역한다면 ‘침례’라고 하는 것이 보다 맞는 표현입니다.

뿐만 아니라 완전 침수로 행해지는 침례는 성경에서 침례를 베푸는 장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요한의 사역에 대해서 묘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회개의 침례를 베풀었는데 요단강에서 그 일을 합니다. 사람들이 강으로 들어가 그에게 침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3:23에서는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요한은 침례를 행하기 위해서 물이 많은 곳, 사람이 물속에 잠겨야했기 때문에 물이 많은 곳에서 침례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8장을 보면,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에디오피아 내시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서 이렇게 말합니다. 36절에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이어지는 38절과 39절을 보면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빌립과 내시는 둘 다 물에 내려가서 침례를 행한 후에 다시 물에서 올라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성경에서 침례가 어떻게 행해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물에 완전히 잠기는 침례가 그 단어의 의미와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침례의 모습에 맞는 방법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방법대로 침례를 행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침례, 누가 받는 겁니까? 침례를 누가 받는 것인지 알기 위해 침례의 기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침례의 시작을 말하면 구약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받았고, 참 하나님을 섬기는 축복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셔서 이러한 특권을 허락하신 겁니다. 그런데 이방인들 중에서도 이것을 깨닫고 이스라엘처럼 참 하나님을 경배하기를 원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 그들이 했던 방법이 있습니다. 이방인 가운데 종교적으로 유대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유대교로 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은 개종자 입문식이라고 불리는 세 가지 의식을 했었습니다. 그 세 가지는 ‘할례’와 ‘동물의 희생제사’, 그리고 ‘침례’였습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이방 세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 속에서 유대교의 구성원이 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해 침례를 행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교회가 시작된 후에는 교회의 구성원이 된 자에게 침례가 행해집니다. 오순절에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임하시고 교회가 탄생합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설교했을 때 그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침례를 받습니다. 사도행전 2장 41절을 보면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놀랍게도 삼천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침례를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삼천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가 전한 복음을 믿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사도행전을 보면 침례를 받는 내용이 여러 번 나오는데 모두 이와 같이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듣고 나서 그 말씀을 믿는 자가 침례를 받았음을 기록합니다.

성경은 언제나 믿음이 먼저 오고 다음에 침례가 옵니다. 8장 12절을 보면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순서입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사람들이 믿고, 그리고 침례를 받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침례가 누구에게 베풀어지는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침례는 이 전에 따르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따르는 자가 받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을 공적으로 선포하기 위해서 행하는 것입니다.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 사함을 받은 자, 세상을 따르는 것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심한 자가 받습니다. 이전에는 마귀에 매어 죄의 종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된 자가 침례를 받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침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된 자가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침례는 구원받은 자가 받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믿는 자가 침례를 받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침례는 구원을 주지 않습니다. 침례가 구원의 조건이 된다면 이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구원을 따내는 것과 같은 겁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옆에 있던 강도는 침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구원을 허락하셨습니다. 여러분 누가 침례를 받는지 아셨습니까? 침례는 오직 믿는 자들을 위한 것이며, 구원 받은 사람이 그 믿음을 고백함으로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침례를 받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저 마른 죄인이 물에 젖은 죄인이 되는 것뿐입니다.

세 번째 질문입니다. 침례, 왜 받는 겁니까? 우리가 침례를 행하고, 침례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교회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8-2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지상명령이라고 말합니다. 지극히 큰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침례는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간결하고도 분명한 명령입니다.

침례에 대해서 오늘날 다양한 반응들이 있습니다. 침례에 대해서 무지함으로 잘 모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예 무관심하거나 무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물에 들어가면 옷 다 젖고 불편한데” “에이~ 구원받았으면 됐지, 귀찮은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여러분은 예수님의 이 명령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침례, 이 명령에 순종함에 있어서 불편함이 있더라도 우리는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침례를 아무런 제재 없이 행할 수 있지만 믿음 조상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초대 교회는 여러 박해를 무릅쓰고 침례에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16세기 교회역사에서 믿는 자의 침례를 주장한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아나뱁티스트, 재세례파, 또는 재침례교도라고 부릅니다. 당시에는 아기가 태어나면 믿든지 안 믿든지 관계없이 유아세례를 통해서 교인이 되었고, 동시에 시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재침례교도들은 성경을 통해서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이러한 잘못된 전통에 저항하며 침례를 행했습니다. 이들이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다시 침례를 받는 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25년간 엄청난 박해를 받았습니다. 역사가에 의하면 초대 교회 300년 동안 믿음을 고백하며 죽은 자들보다 25년 동안 믿는 자의 침례를 주장하다가 죽은 자들이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단들에게 행해졌던 처형방법대로 화형을 당하기도 했고, 참수되거나, 침례를 주장한다는 이유로 물속에 수장되기도 했습니다. 고문을 당하며 비참하게 죽어가면서도 그들은 침례를 믿고 행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고난 받고 순교한 것입니다. 이 소중한 영적 유산이 바로 침례입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침례를 행하고 믿음을 지켰을까요? 우리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침례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침례를 행하는지 분명히 아시고, 침례의 그 가치를 기억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네 번째 질문입니다. 침례, 무엇을 의미합니까? 침례는 교회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행하는 예식입니다. 그리고 이 예식을 통해서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 있습니다. 믿는 자가 침례를 받았을 때,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는 자가 물속에 잠김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 지냄과 부활을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침례는 믿는 자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음을 증거합니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까?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누구의 죄를 짊어지셨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죄를 짊어 지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누구를 위하여 부활하셨습니까? 바로 여러분을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순간에,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영적인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두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우리도 그분과 함께 죽은 것이고, 그분이 다시 살아나셨을 때 우리도 그분과 함께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연합입니다. 그리고 침례가 그런 의미를 가지며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침례란 새로운 연합에 대한 공개적인 선포입니다. 침례의 근본적 의미가 연합입니다. 그래서 침례는 죄사함과 구원, 거듭남에 대한 상징이고, 이제 주님의 몸인 교회에 지체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영적 연합을 말하기 위해서 침례란 말을 사용합니다. 로마서 6장3-4절을 보면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메시지 성경을 참고하면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세례는 예수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물에 들어갔을 때 우리는 예수처럼 죽어 매장된 것입니다. 물 위로 일으켜졌을 때 우리는 예수처럼 부활한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일으켜 세우셔서 빛이 가득한 세상에 들어가게 해주셨고,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은혜가 다스리는 그 새 나라에서 길을 찾아 살게 되었습니다.”(롬6:3-5) 그리스도와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가 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이 침례입니다.

침례는 참으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예식입니다. 침례는 한 생명의 가치를 기억하고, 그 생명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그 영원한 생명을 기념하며 축복하는 것입니다. 침례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희생을 되새기며, 부활하신 주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침례가 주는 영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왜 우리가 침례를 받아야 하는지 보다 분명히 알게 됩니다. 그리고 왜 주님께서 침례를 명하셨는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침례, 제대로 알고 받으리! 라는 제목으로 침례에 대한 네 가지 질문을 던지며 그에 대한 대답을 살펴봤습니다. 침례를 어떻게 받는지, 누가 받는지, 왜 받는지, 그리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들은 말씀을 기억하면서 나름대로 정리하시길 바랍니다. 특별히 아직 침례를 안 받으셨고, 받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오늘 질문에 대한 말씀을 기억하고 자신에게 적용하십시오. 침례 받는 것이 단순한 형식에서 끝나지 않도록 여러분의 삶이 보다 더 주님을 닮아가는 기회가 되도록 하십시오. 주님을 위해 살기를 기대하고, 헌신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 감사함으로, 침례로써 여러분의 믿음을 선포하십시오. 십자가의 은혜를 힘입어서 부활의 새 생명으로 살겠다고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미 침례를 받으신 분들은 이전에 받았던 침례의 경험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때의 감격을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제 사는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어떻게 그분과 함께 살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정말 구원 받은 자답게, 침례에 순종한 자답게, 주님과 함께 부활한 자답게 살고 계십니까? 내가 주님과 함께 죽어야 하는 부분이 없는지 점검해보십시오. 나의 급한 성질, 남을 향한 비판적인 태도, 판단하는 마음 죽어야 하지 않습니까? 매사에 부정적인 자세나 습관적인 불평들 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주님과 함께 사는 자로서 더 주님을 닮은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봉사하며, 그 말씀에 겸손히 순종함으로 사람들을 세우고 격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내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침례는 내가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부활했으니, 이제는 주님과 함께 살겠다고,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고백하는 겁니다. 그러니 침례 받은 자로서 여러분의 삶에 우리 주님만이 드러나고 영광 받게 되시기를 원합니다. 아울러 우리 유평교회가 계속해서 말씀에 순종함으로 침례를 베풀며, 잃어버린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에 계속해서 쓰임받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이 속한 각 처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며, 주님의 향기를 드러내는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