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이야기

본문 : 여러 본문

설교자 : 조정의

매년 12월 25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합니다. 우리가 이날을 기념하는 것은 단지 이순신이나 세종대왕과 같은 위대한 위인의 탄생을 기억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있어 정말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눅 2:10). 여러분 정말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하십니까?

사도 베드로가 돌아본 소아시아 지역 성도들에게 그리스도는 진정 살아있는 기쁨과 소망이 되셨습니다. 그들 중 누구도 그리스도를 본 적이 없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했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으로 근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귀한 믿음이 더욱 연단 되어 그 고난 속에서 오히려 예수님을 더욱 신실하게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했습니다(벧전 1:3-9). 베드로는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고 있는 소망을 “산 소망”(living hope)이라 불렀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을 둘러싼 여러 가지 시험과 환경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기쁨을 갉아먹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스도를 너무 사랑해서 모든 시험을 초월할 정도로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을 느끼고 기뻐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면, 12월 25일 우리가 기념하는 그리스도의 탄생은 여러분에게 천사가 크게 외친 것처럼 큰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와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쁨을 회복 시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번 맛보아 알게 해주시길 원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하고 부요한지 깊이 느끼게 하시길 원합니다. 사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우리뿐만이 아니라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벧전 1:10, 12).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이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천사들이 왜 이 구원에 대하여 살펴보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일까요?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지능과 죽지 않고 계속해서 존재하면서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역사를, 구원의 섭리를 모두 지켜본 이들이 무엇을 더 간절히 알고 살펴보기 원하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하지만 천사들은 계속해서 놀라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발견하기 원합니다. 이 작업을 위해서 성경에 천사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수행하는 장면을 찾아 살펴보겠습니다. 무수히 많은 성경 구절이 있겠지만 세 가지 장면을 선정하여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것을 천사의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작업을 통해 하나님이 죄인인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나 크고 기쁜 소망을 주셨는지 우리가 확실히 보게 되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로 우리가 살펴볼 장면은 이사야 6장입니다. 우리는 이사야 6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천사들을 만납니다.

1.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천사들(사 6)

이사야 6장은 주전 740년경,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선지자로 세우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연대가 추정 가능한 것은 1절에서 분명히 “웃시야 왕이 죽던 해”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인 한 시점에 이사야는 하늘에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봤습니다. 주님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는데, 그분의 영광이 성전에 충만한 것을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묘사한 것입니다. 

주님의 곁에는 그분을 모시는 스랍들, 즉 천사들이 있었습니다. 스랍들은 세 쌍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는데, 두 날개로 날면서 나머지 네 개의 날개로 둘로는 얼굴을 나머지 둘로는 발을 가리고 서로 이렇게 화답하며 찬양했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3절).

천사의 날개가 날아다니는 데 필요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나머지 네 개의 날개로 얼굴과 발을 가리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주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실 때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임재하신 그 땅이 거룩하기 때문입니다(출 3:5). 모세는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나올 때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는데, 이는 모세의 얼굴 광채가 이스라엘 백성을 두렵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출 34:29-35).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그 영광이 모세의 피부에 광채로 묻어난 것만으로도 백성들은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죄가 조금도 없는 영적인 존재 천사일지라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너무나 커서, 감히 그분의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 발을 드러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날개로 가린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 만물 앞에 설 때 경외심을 느끼고 그 아름다움에 압도됩니다. 하지만 그때라도 우리는 더욱더 시선을 집중하여 경이로운 만물을 바라보지 눈을 가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영광 앞에 우리는 눈을 가릴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나 거룩해서 볼 수 없을 정도로 주님은 위대하고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죄가 없는 천사들도 눈과 발을 가린 채로 세 번이나 강조하여 크게 외친 것입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그분의 영광은 성전뿐만 아니라 그가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온 땅에 충만하십니다.

천사들이 얼마나 크게 화답하여 외쳤는지 그 소리가 문지방의 터를 요동시키고 성전을 연기로 가득 채웠습니다(4절). 

여러분, 이 광경을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들었던 이사야의 심정을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지진이 나는 것처럼 터가 크게 요동칩니다. 불이 나듯 연기가 무섭게 성전을 가득 채웁니다. 천사들이 천둥소리처럼 큰 소리로 서로 화답하며 하나님의 거룩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높은 보좌에 천사가 감히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던 주님이 계십니다. 온 땅에 충만한 영광을 가진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고 이사야의 심령에 어떤 생각이 가득 찼을까요?

5절에 이사야의 입술에서 터져 나온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이제 죽었다’, ‘나는 이제 끝났다’라고 탄식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사야가 말합니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예수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5:11). 이것을 생각하면 이사야가 “입술이 부정한 죄인”이라 말한 것은 단지 입술만 부정하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되는 온갖 더러운 죄가 입술로 나오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지 확실히 보고 그 앞에서 죄인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으며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마치 거룩한 예수님 앞에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한 베드로처럼 이사야는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했습니다(눅 5:8). 눈을 뜨고 감히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하나님의 거룩 앞에서 죄인은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직시합니다. 

지금 하나님 앞에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는 분들도 언젠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 앞에 자신을 바라보며 이사야처럼 탄식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제 망했구나’라고 고백하며 자신의 영원한 운명, 곧 멸망을 직감하게 될 것입니다. 부정한 사람은 결코 거룩한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사이를 좁힐 수는 없습니다. 모든 죄인은 영원히 멸망할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그런데 이사야가 자신의 멸망을 직감했던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구원의 손길을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역사를 이행한 것이 바로 스랍들 중 하나였습니다. 천사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숯을 가지고 이사야에게 날아와서 이사야의 입술에 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7절).

하나님께서 은혜의 구원을 천사를 통해 이사야에게 베푸셨습니다. 부정한 사람들 중 하나로 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을 하나님이 선택하셨고, 그의 죄악을 사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8절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을 위하여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백성들, 마음이 둔하고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긴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선지자로 세워진 것입니다. 

자, 여기서 저는 스랍들 중 하나인 이 천사를 주목하기 원합니다. 천사는 두 눈과 발을 가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큰 소리로 찬양했던 존재입니다.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는 어떻게 이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께서 부정한 입술을 가진 죄인들 중 하나를 택하시고 그 말씀을 대신 선포하게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제단에 핀 숯 하나를 가져다가 그의 입술에 대고 모든 죄가 사해졌다고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700여년이 지난 후 천사는 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펴볼 두 번째 장면입니다. 본문은 누가복음 1장입니다.

2. 하나님의 탄생을 선포하는 천사들(눅 1, 2)

하나님의 곁에서 그분을 섬기면서 중요한 소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천사가 바로 26절에 나오는 가브리엘입니다. 그는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소식을 전달했습니다. 그가 전달한 내용은 30절부터 나옵니다.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0-33)

마리아는 처녀로서 아기를 잉태한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지만, 천사는 다른 측면에서 놀랐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놀라서 질문했고, 천사는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심으로 나실 것이라고 담담하게 대답합니다(35절). 전능하신 하나님께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천사가 놀란 부분은 이것입니다. 마리아를 통해 나실 아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거룩하신 이라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께서 사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무궁한 하나님 나라를 영원히 다스리실 왕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거룩하고 거룩하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입술이 부정한 백성들 중에 거주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도 인간의 모습으로 나실 수 있단 말입니까? 천사는 이 부분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천사가 받았을 충격, 경이로움을 놓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펴본 첫 번째 장면과 지금 살펴보고 있는 두 번째 장면을 이어주는 본문인 요한복음 12장을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 일인지 헤아려 볼 수 있을 것입니다(12:37).

요한복음 12장에서 우리가 첫 번째로 살펴본 장면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요 12:41). 여기서 “주”는 대명사 “그”인데(“그의 영광”), 그가 가리키는 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말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바르게 번역했습니다.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그가 예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가리켜 이런 예언을 했습니다.” 

이사야가 본 거룩하고 거룩하고 거룩한 하나님, 온 땅에 그 영광이 충만한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 하나님이신 말씀(요 1:1)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1:14). 아버지의 영광, 충만한 은혜와 진리를 가지고 아무도 본 적이 없는 하나님을 나타내신 하나님, 그분이 바로 천사가 아기로 나실 것이라 예언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러니 천사에게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소식이었겠습니까? 두 눈과 발을 가리고 큰 소리로 거룩하다 찬양했던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께서 가장 연약하고 의존적인 존재인 아기의 모습으로 입술이 부정한 백성들과 함께 거주하러 오신다는 소식을 전하는 천사의 마음을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왜 하나님은 이렇게 엄청난 일을 하시는 걸까요?

누가복음 2장에서 천사가 선포한 두 번째 메시지에서 우리는 그 대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기 양 떼를 지키고 있던 날 밤, 목자에게 천사가 나타나 이렇게 외칩니다. “무서워 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10-11절)

예수님은 구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로 이 땅에 나셨습니다(마 1:21). 부정한 백성들 가운데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예수님을 통해 전파되었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 모든 죄를 사하십니다. 영접하십니다. 받아주십니다.

이사야의 부정한 입술에 천사를 통하여 제단에 핀 숯을 가져다 대시고는 ‘너의 모든 죄가 사해졌다’고 선언하신 하나님께서, 부정한 백성의 삶을 직접 어루 만지고 그들의 죄를 사하기 위해 이 땅에 가장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낮고 천한 모습으로 나신 것입니다. 그분을 모시고 예배하던 천사가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선포할 때 얼마나 감탄했을지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살펴볼 마지막 장면이 아닙니다. 우리는 천사가 가장 놀라고 어쩌면 그 경이로움에 떨며 바라봤을 세 번째  장면을 살펴볼 것입니다. 그 장면은 누가복음  2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죽음을 조력하는 천사들(눅 22:39-46)

누가복음 22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나눈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7-23). 주님은 떡을 가리켜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하시고, 잔을 가리켜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9-20). 마태복음에서는 잔에 대하여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하셨습니다(마 26:28).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마치시고, 예수님은 감람 산 겟세마네 동산이라는 곳에 가셔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41절).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42절). 

제자들과 잔을 나누며 하신 말씀처럼 많은 사람을 위해 피를 흘리게 될 일을 앞두고 예수님은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습니다(막 14:34). 곧 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예수님이 모든 죄인의 죄를 짊어지실 것이었습니다. 죄를 심판하실 권세가 있는 예수님이 죗값을 치르기 위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끊어지는 고통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은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습니다(히 5:7). 그리고 누가복음 22장 43절 말씀을 보면 바로 그때,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였습니다.

여러분 천사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십시오. 그분은 거룩하고 거룩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고, 온 땅에 충만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너무나 거룩하여 눈을 가리고 발을 가리고 쉼 없이 찬양을 돌리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분 앞에서 입술이 부정한 백성은 망하게 될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거룩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망하게 될 인간의 모습으로 아버지께 울부짖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정한 백성의 입술에 제단에 핀 숯을 천사를 통해 전달하여 죄를 사하신다 선포하셨지만, 예수님은 직접 부정한 백성들 중에 거주하면서 그들을 대신하여 죽임당할 제단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죄인이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거룩하고 높은 보좌에서 직접 내려오셔서 죄인의 모습으로 죄인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모두 그 몸으로 받으시고, 부정한 백성을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할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그 일을 행하기 앞서 예수님은 아버지께 심한 통곡으로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천사가 함께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바로 이것이 천사가 그토록 구원에 대하여 간절히 살펴보기를 원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거룩하고 영화로우신 하나님께서 그 높은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부정한 백성들과 함께 거주하며 그들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셨던 그 크고 깊은 겸손과 낮아지심,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크시기에, 높은 하늘에서 낮은 땅까지 자기를 낮추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천사들은 계속해서 묵상하고 헤아리고 그 놀라운 은혜에 감탄하며 찬양하기 원하는 것입니다(시 103:11).

곧 있으면 예수님의 나심을 기념하는 성탄절입니다. 천사들은 예수님의 나심을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0). 수많은 천군과 천사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며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외쳤습니다(눅 2:14).

저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진정 주님의 나심을 큰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여기십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셔서 하나님이신 자기 아들을 부정한 우리와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시고 부정한 우리를 대신하여 죽을 제물로 삼으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영원한 평화를 선언하셨다는 것에 관하여 천사처럼 간절히 살펴보기 원하십니까? 신령과 진정으로 찬양하고 예배하기 원하십니까?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성탄절을 늦잠 자는 날이나 아이들 선물을 사주는 날, 연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날, 나아가 좋은 일이지만 어려운 이웃을 돕는 날로만 기억하지 마십시오. 가족과 함께 모여 빌립보서 2장 6-8절 말씀을 간절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의 영광을 천사처럼 바라보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예수님을 찬양하십시오. 

자기를 비워 사람들과 같이 되신, 종이 되신 주님을 생각하십시오. 사람으로 오신 주님을 선포하며 찬양했던 천사들처럼 부정한 백성과 함께하러 오신 임마누엘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신, 십자가에 우리를 대신하여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아버지께 울부짖는 예수님과 함께했던 천사처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높은 하늘에서 낮은 땅까지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의 크신 인자하심을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신령과 진정으로 그분을 경외하고 높이시기 바랍니다.

지금 천사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거룩하신 보좌에 계신 예수님을 찬양했고, 이 땅에 아기로 나신 예수님을 선포했으며, 십자가 앞에 울부짖던 예수님과 함께 했던 천사들, 그들은 지금 예수님 앞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계시록 5장 11절에 보면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인 천사들이 큰 음성으로 예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 5:12)

계시록 말씀에 따르면 이 천사들의 큰 찬양에 함께 동참하여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예수님을 이렇게 찬양합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 5:13).

천사들의 찬양소리에 동참하여 우리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아버지와 보좌 우편에 계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 세세토록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오는 성탄절 우리가 하늘 보좌 앞에서 영원히 하게 될 그 일을 가족과 함께, 교회와 함께, 또 천사들과 함께 드리기 원합니다.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신 예수님만 온전히 높여드리는 성탄절이 되기를,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