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천국에 들어가는자
본 문: 마태복음 7장 21-23절
설교자: 조 정 의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가는 자와 들어가지 못하는 자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먼저 이 말씀의 배경을 말씀드리면, 예수님은 처음 공적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세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3장) 성령에게 이끌려 광야에서 사단의 시험을 받으십니다(4장). 그 시험에서 승리하신 후, 돌아오셔서 본격적으로 천국복음을 전파하십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4:17)”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고 많은 병든 자들, 고통 받는 자들,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와 같은 사역이 성공적이어서 이스라엘 전역에 예수님의 소문이 퍼져나갔습니다. (당시 지역을 보면, 북쪽에 갈릴리 바다와 남쪽에 사해가 있고, 그 둘을 이어주는 요단강이 있습니다. 그 갈릴리 바다 북쪽에 수리아 지역이 있고, 요단강 동쪽에 데가볼리, 페레아 지역이 있으며, 서쪽에 사마리아와 유대,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4장 23-2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실 때 갈릴리, 데가볼리, 페레아(요단강 건너편)와 사마리아, 유대, 예루살렘 전역에 소문이 퍼져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병 고침을 받고 예수님을 따르던 그 많은 무리들이 산에 올라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산상수훈’입니다(5-7장).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 이어지는 이 산상수훈의 내용은 한 마디로 ‘천국복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에 많은 병든 자들과 고통받는 자들이 놀랐을 것입니다. 주님은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면서,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주기도문)를 가르치셨고, ‘하늘에 복을 쌓아두라’고 하셨으며, ‘구하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천국문은 열려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소망을 주는 복음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인 7장 21절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하는 자, 찾는 자, 문을 두드리는 자마다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주님께서, 이 천국복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곡식과 가라지가 있고, 좋은 나무와 못된 나무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무가 좋은 나무인지 못된 나무인지는 그 열매로 알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구원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과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이고, 그 열매는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21절 상)” 여기서 ‘주여’라는 단어는 가벼운 존경의 표현으로 ‘선생님’ ‘어르신’이라는 의미가 있고, 또한 육신의 상전을 칭하는 ‘주인님’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본문에서 사용한 ‘주여’라는 표현은 바로 이 ‘하나님’의 의미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같은 단어를 ‘야훼’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즉, 여기서 “주여 주여 하는 자”는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고백은 허풍이나 거짓이 아니었고 올바른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에 대해서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참 충격적인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예수님이 너의 죄를 다 용서하셨고 그것을 받아들이면 구원받은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고 너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100퍼센트 구원을 받은 것이다’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주님을 하나님이라고 알고 그렇게 고백할 지라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21절 하)” 이 말씀에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는 표현과 “뜻대로 행하는 자”라는 두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맺어져 있는 사람’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진실로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입니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와 같이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속에 있는 사람 말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마음 속에 들어있습니다. 그것으로 어떤 열매가 맺어집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고난을 겪으시고 피를 흘려 죽으신 것을 생각할 때 감사와 사랑이 넘치고, 그 사랑으로 인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15:8-10)” 예수님은 사랑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 사랑의 관계 안에 들어가 있는 증거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22절에 “그 날”은 그리스도의 심판의 날을 가리킵니다. 그날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한번은 장례식의 영정 사진에 자신의 얼굴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와서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22)” 그들은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고 있고 주님을 설득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고백했을 뿐만 아니라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던 사람, 오늘날로 말하면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던 사람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등의 사역을 담당했던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눈앞에서 누군가가 귀신을 쫓고 능력을 행했다면 당연히 그가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맺어진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과 관계가 없는 그들은, 교회 출석도 빠짐없이 하고 예배와 각종 집회, 캠프에 두루 참석했을 것입니다. 전파되는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성경을 공부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삶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그들의 삶의 열매가 무엇이었길래 그렇게 말씀하실까요?
 
예수님은 그들을 가리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23)”라고 하셨습니다. 즉 그들은 죄를 짓고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죄의 욕구에 따라 범죄하는 사람들, 마음의 중심에 자기 자신이 들어와 자신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주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고 그 증거로 나타나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가리켜 ‘죄인들’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에 합당한 예는 가룟 유다입니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실 때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던 자들 가운데 그가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제자들을 모아 권능을 주시고 각 마을로 보내셨을 때 그들 중에 가룟 유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원한 멸망으로 떠났습니다. 주님이 그를 가리켜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나을 뻔했다’고 말씀하셨으니 그는 멸망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주여 주여”라고 불렀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던 사람, 예수님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자들의 말미는 이와 같습니다. “내게서 떠나가라(23)”는 말씀은 ‘영원한 분리’를 의미합니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20:13-15)”,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마13:41,42)”
 
교회에 다니지 않고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덜 억울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복음을 듣고 예배에 참여하고 성경공부를 하고 각종 부서모임에 참석하고 형제자매라는 칭호를 받고 성경을 읽고 헌금을 하고 있는 여러분의 삶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가 있지 않다면,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없고 그 증거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아니라면, 예수님은 여러분에 대하여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하실 것입니다. 영원한 지옥으로 떠나게 하실 것입니다. 슬피 울며 이를 가는 불행한 결말을 맞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해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주여 주여”라고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그 안에 넘쳐나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관계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증거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고자 하는 마음이 분명히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뛰어난 일을 했더라도, 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말씀에 따라 순종하고 싶어하지 않고 세상의 열정, 꿈, 안정을 쫓아 삽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 삶을 편안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그 안에 있습니다. 그들이 주님이 말씀하신 “불법을 행하는 자”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은 모두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다면, 교회에서 어떤 중요한 일을 하고 있더라도 자신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없고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반드시 심판의 ‘그 날’이 오리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날에 예수님께서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신다면, 그에게 남은 삶은 영원한 멸망의 삶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