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주권자 하나님
본문: 시편 33편
설교자: 최종혁

 

지난 주에 우리는 조금 특별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정의의 시국선언’이라는 제목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하나님의 기준을 가지고 불의에 대한 정의를 외치자”, “복음의 능력을 전파하자”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고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첫번째 언급한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이다”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기준으로 정의를 말하거나, 세상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요즘 교회 안에서는 크리스마스 행사로 바쁜 시즌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중요한 시국에 크리스마스를 준비한다고 찬양 연습을 하고, 어울리지 않는 율동을 준비하고 하는 일을 세상의 기준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개인의 문제, 국가, 사회 문제의 근원은 ‘죄’입니다. 그리고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분이 바로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통해서 기념하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크리스마스 찬양들을 보면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왕’으로 표현하는데, 정말 그분이 왕이시고 우리는 그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왕만 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왕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것의 차이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는 왕권을 행사하실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행사하지 못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시편이 바로 그런 메시지를 우리에게 줍니다. 특별히 오늘은 4절에서 12절의 말씀을 통해서 주권자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시편 33편의 저자는 먼저 하나님을 찬양할 것에 대해서 여러 차례 강조한 후에 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면 ‘하나님이 주권자’이시기 때문에 찬양해야 합니다. 조금 길게 요약하면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시는 인자하신 주권자’이시기 때문에 찬양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4절)

정직하다는 말은 우리가 주로 사람에게 쓰는 표현이라 말씀이 정직하다고 하면 어떤 의미인지 바로 와 닿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의미 그대로 ‘올바르다’, ‘곧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거짓이 없고 그 말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애매하거나 모호하지 않고 직접적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 계획은 다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는 것이 4절 말씀의 요지입니다.

사람들 중에서도 신뢰할 만한 사람은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믿을 만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100%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진실성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자신이 말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도 없고 권리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대통령이나 수상은 말할 것도 없고 절대왕정시대의 왕들도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과 권리는 없었습니다. 한정된 시간, 한정된 장소 안에서 제한된 능력과 제한된 권리를 가졌을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전능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분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피곤하거나 지치지도 않으십니다. 기력이 쇠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했던 일을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못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나 동일하게 전능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왕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그분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시간이나 장소에 제한되지 않은, 무한한 능력과 권리를 가지신 진정한 주권자시기에 그분의 말씀은 애매할 필요가 없고 그분이 하시는 일이 성취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주권자이십니다.

5절 말씀은 그 하나님이 어떤 주권자이신지를 말합니다.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5절)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통용되는 말입니다. 하나님도 그럴까요? 하나님도 오직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하고 타인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으실까요? 반은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익을 위해 일하십니다. 좀 더 성경적인 표현을 사용하자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영광을 다른 이에게 주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끔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하나님을 굉장히 이기적이고 자기만 생각하는 존재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오해는 하나님을 인간의 관점에서 보는 잘못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고 우리와 다른 분이시라는 점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피조물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바울도 그래서 진흙과 토기장이의 비유를 들어 토기장이에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말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논리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진흙의 입장에서 이런 논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죄에 있어 우리와 다릅니다. 하나님은 죄에 전혀 오염되지 않은 절대적인 ‘선’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시는 것은 ‘최고의 선’을 위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최고의 선을 추구하시는 것이기에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선으로 돌아옵니다. 따라서 절대 주권자인 하나님은 절대로 부패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는 주권자시고, 인자하신 주권자이십니다. 정말 세상 사람 모두가 원하는 그런 지도자의 특징일 것입니다. 하나님도 성경을 통해 지도자들에게 계속해서 이런 지도자가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공의로우셔서 죄를 그냥 눈감아주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또한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들에게 한없는 용서와 인자를 베푸십니다. 그분이 온 우주의 주인이시고 다스리고 계시는 주권자, 통치자이십니다.

우리의 공의는 거의 내가 아닌 다른 사람만 향하고, 인자는 나를 향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공의에 따른 즉각적인 심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나와 관련된 일이 되면 한없이 너그러워지고 이해심이 많아집니다. 이것이 죄로 물든 우리의 공의와 인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이에 그리고 사회에 문제를 가져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공의를 베풀고 그분의 인자가 온 세상에 충만합니다. 그런 주권자가 바로 우리가 섬기고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어떤 주권자이신지를 말하고(4-5절)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역사를 통해 드러났는지 예를 들어 말합니다. 그 첫번째 증거로서 창조 사건을 제시합니다.

 

1. 하나님은 주권자시다(4~12절)

(1)창조(6~9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6절)

시편은 때로 하나님께서 그 손가락이나 손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시적인 표현을 사용하지만, 여기서는 창세기의 말씀과 동일하게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능력과 권위가 있으심을 보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만드셨고 그 만상, 즉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말씀으로 만드셨다고 창세기 1장에서 분명하게 밝힙니다.

창 1:6-8 [6]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창 1:14-15 [14]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어서 하나님께서 바다와 육지를 구분하신 것도 언급합니다.

“그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 같이 쌓으시며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7절).

창세기 1장 말씀에는 9절과 10절에 드러나 있습니다.

창 1:9-10 [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특별히 바닷물은 고대인들에게 많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 두려움의 산물로 바다에 대한 많은 신화들도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런 바다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한 곳에 모인 물에 불과함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그런 바다가 아니라 바다를 명해서 원하는 대로 움직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8절)

많은 나라들이 각자의 신을 섬기고 그들을 두려워합니다. 나는 나의 신을 너는 너의 신을 섬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너희가 두려워하는 바다도 하나님이 다스리는 것이니 바로 그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을 경외하라고 말합니다. 그 분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9절 말씀은 창세기 1장에 기록된 창조의 역사에 대한 가장 간결한 해설입니다.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9절)

창세기 1장을 보면 계속해서 반복되는 표현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이 이르시되 … 그대로 되니라”입니다. 하나님께서 궁창이 있을 것을 명하셨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궁창을 하늘이라 하시고 하늘에 광명체들이 있으라고 하셨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이 한 곳으로 모이라고 하셨을 때 그대로 되었습니다.

창세기의 말씀에 보면 어떤 실패도 없고 어떤 반항도 없었습니다. 특별히 여기 원문에서는 “그”라는 말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우리말로 비슷하게 바꾸자면 “바로”라는 말을 첨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가 말씀하시매 이뤄졌으며 바로 그가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입니다. 누구의 말이 이루어지고 누구의 명령에 모든 것이 순종합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주권자이십니다. 창조에 대한 기록은 세상의 시작은 빅뱅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의 주인이 되셔서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가지신다는 메시지도 주는 것입니다.

 

(2) 역사(10~12절)

두 번째로는 역사를 통해 하나님이 주권자이심이 증명됩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일하시는 분입니다. 세상을 창조하고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으셨습니다. 창조 후에 하나님께서 “쉬셨다”고 하지만, 그것은 창조의 일을 끝내신 것이지 그 후로 모든 일을 멈추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목적을 갖고 일하셨습니다.

하나님만 목적을 갖고 일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천사들도 목적을 갖고 일하고, 인간들도 모두 목적을 갖고 일하고 있습니다. 각자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애쓰고 노력합니다. 때로는 그 목적을 이뤄서 기뻐하지만, 때로는 실패하여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럼, 하나님도 그럴까요? 하나님의 계획도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할까요?

“여호와께서 나라들의 계획을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하게 하시도다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10-11절)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다른 모든 계획들은 실패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틀어져서 차선의 계획이 실행되거나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어떤 계획을 하다가 실패하기도 하고 방향을 바꾸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여기 말씀이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계획들이 그냥 어쩌다 보니 실패하기도 하고 본래 없었던 것처럼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계획들을 실패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어떤 계획은 성공하기도 하고 어떤 계획은 실패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다르다면 그 계획은 성공할 수 없는 계획입니다. 그 계획이 꼭 우리가 보기에 ‘선’해서 성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악한 자들의 계획이 더 성공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일을 그냥 보고 계실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더 나가서 하나님은 세상의 일에 관심이 없거나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 다 이해할 수 없음을 하나님께 토로했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더 이상 관여하지 않으신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이런 악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해 여부와 관계없이,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그대로 행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경의 역사, 우리 인류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될 것이지만 400년 후에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 살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창 15:13~14).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려고 하실 때 당시 최고의 힘을 가지고 있었던 바로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바로의 동의가 필요했을까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데 그의 동의가 필요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계획을 폐하시고 자신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상황이 악화되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는 계속해서 거짓을 말하며 이스라엘 백성들 보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바로의 반응에 하나님께서 당황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어떻게 될 것을 알고 계셨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임을 애굽과 이스라엘과 주변 모든 나라에게 선포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계획을 폐하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셨습니다. 가나안 지역에 살던 이방인인 라합까지도 그 소식을 듣고 하나님이 참 신임을 알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나라들도 모두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는 일을 했을 때 그들은 다른 나라에게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나라들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가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셨고, 이방왕 고레스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귀환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셨습니다.

악한 자든 선한 자든 하나님은 자신의 큰 뜻 안에서 그들을 통해 일하셨고 그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 절정에 있었던 것이 예수님에 대한 예언들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설명하려면 우연에 우연이 겹쳤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주관하셔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해서 그런 주권을 보이셨다면, 11과 같은 고백은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지금까지 주권자로서 이러한 일들을 행하셨다면 앞으로도 하나님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분이 목적하신 일은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2절만큼 위안이 되는 말씀도 없습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12절)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들을 보며 우리는 염려할 때도 있고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금은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들에 관심을 갖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상황이 어떠해서가 아니라 결국 우리가 믿고 섬기고 있는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편에 있다는 것, 그분의 백성이라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복이고 우리 마음이 평안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또 하나, 우리가 그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 것 또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2절 말씀은 당연히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우리와 관계가 없는 말씀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의 하나님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업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엡 1: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있지 않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진정한 백성이 아니라면, 우리를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않으셨다면, 세상의 주권자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나 두려운 존재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편에 선 자라면 이 세상의 상황을 초월해서 마음 속 깊은 곳의 평안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왕이시고, 그분이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권자라는 사실은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진지하게 이런 질문을 할 필요는 있습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이 주권자이심을 믿고 이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가? 만물이 그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가? 세상 나라의 계획과 의도가 무너져도 하나님의 계획은 무너지지 않음을 믿기에, 세상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분노하기보다 평안함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내 삶으로 선포하고 있는가? 그것이 하나님을 주권자, 왕, 통치자라 부르는 우리가 살아야 할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