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전도의 내용, 무엇을 전할 것인가?
본문: 로마서 1~8장
설교자: 조정의

 

우리는 지난 주에 전도의 중요성에 대해 들었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둔 데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시고 그분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벧전 2:9).

전도는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맡기신 지상 대사명입니다. 주는 우리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르셨습니다(마 5:13-14).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은 죄의 질병을 앓는 이들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유일한 치료약입니다.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롬 1:16). 복음은 말 그대로 영원한 멸망으로 가고 있는 그들의 운명을 뒤바꿔줄 수 있는 좋은 소식(good news)입니다.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좋은 소식’입니다(요 3:16).

그래서 존 맥아더 목사님이 말한 것처럼 “복음 전도보다 더 중요하거나, 그보다 더 영원한 결실을 맺는 임무는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이 복음 전도의 중요성을 기억하며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말과 행동으로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살면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만난 적이 있으십니까? 복음을 꺼내놓기까지 고민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복음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 상황이 주어졌을 때, 전달할 복음의 내용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저에겐 극적인 장면 하나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자기 아버지가 혼수상태에 있는데 와서 복음을 전해줄 수 있겠냐고 아들이 저에게 요청했습니다. 아버지는 한국사람이고, 자기는 미국에서 태어나 우리말을 잘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어머니는 가톨릭신자라 개신교 사람이 와서 복음 전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점심에 식사하러 어머니가 자리를 비우실 때 그 틈을 타서 복음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혼자 차를 끌고 가서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처음보는 사람, 혼수상태에 있어서 내 말을 듣고 있는지 반응을 확인할 수 없는 사람, 언제 어머니가 들이닥쳐 전도를 방해할 지 모르는 상황, 그 속에서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복음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면 될까요? 그 촉박한 시간 안에 반드시 전달해야 할 내용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람을 구원하는 능력은 하나님께 있지만, 그것을 전달해야 할 우리가 ’무엇을 전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할 내용을 분명히 알려주셨고, 우리가 전달하는 것에 죽어가는 영혼의 운명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전달해야 할 복음의 내용에 대해 살펴보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로마서입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회에게 쓴 편지로 복음을 담고 있습니다. 편지 인사말에 바울이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는지 보십시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입었다’고 소개합니다(1:1). 로마서의 핵심구절은 1장 16-17절인데, 여기서 바울은 또 다시 복음을 설명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16-17)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전도는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복음의 대상은 “모든 믿는 자”, “유대인”과 “헬라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입니다. 또한 복음의 핵심 내용은 “하나님의 의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핵심 구절을 시작으로 바울은 복음을 써내려갑니다. 1장에서 11장은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의 내용(교리)을, 12장에서 16장까지는 우리가 살아내야 할 복음의 내용(행위)을 설명합니다.

지난 주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방식으로 말과 행동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로마서는 우리가 전달할 말과 따라야 할 행동 모두가 자세히 적혀 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전반적으로 둘러보는 것은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의 내용을 파악하는데 아주 유익합니다.

먼저 우리가 말로 전달할 내용, 복음의 교리입니다. 로마서 1장에서 11장까지의 내용입니다.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에게 자신이 사명을 받아 전달한 복음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서 전달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의 내용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죄(1-3), 칭의(3-5), 성화(6-8) 등 복음의 핵심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입니다.

1. 복음 교리(1-11장)

⑴ 하나님(1장)

오늘날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에 대해 들어본 사람은 적지 않습니다. 우리의 전도 대상 역시 한 번쯤 하나님에 대해 들어봤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이 성경의 하나님은 아닙니다. 사람들 각자 만들어낸 신인 경우가 많습니다.

바울은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할 때는 하나님에 대한 소개를 적게 합니다. 하나님을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아덴에 갔을 때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없던 사람들에게 바울은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행 17:23-29)

바울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먼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그가 어떤 분이신지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며 만물의 주인이시고, 만민은 그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 호흡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절대적인 주권자, 능력자,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복음을 설명할 때 그는 동일하게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1장 19절을 보시면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인다”고 말합니다. 20절에는 “만물에 하나님의 신성, 능력이 분명히 보여 알려졌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우리 안에 있는 양심과 우리 밖에 있는 만물이 널리 알려져 있다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하나님을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의 전도 대상은 주로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정면으로 부정하거나 말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부인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교회 안에서는 인정하나 밖의 사회에서는 인정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요 17:3). 영생의 복음에는 반드시 그 하나님을 바르게 소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존 파이퍼는 “하나님이 복음이다”라는 제목의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복음도 없습니다.

왜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부정하는 진화론을 받아들이면, 교회와 복음을 속히 떠날까요? 하나님이 없으면 복음도 없기 때문입니다. 만물이 저절로 생겨난 것이라면, 만물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없고, 설명도 없습니다. 인간은 그 어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으며, 자기 스스로 신이 되어 자기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됩니다. 선악을 구분하는 기준을 자기가 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중심적 이야기입니다. 처음부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창 1:1)고 선포하고 마지막엔 그 하나님이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계 22:1-5). 만물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역사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고, 생명이 철저하게 의존하고 있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전달할 복음에는 그 하나님에 대한 선포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이웃으로 하여금 우리가 창조주가 만든 피조물로 그분께 철저히 의존하고 있으며 그분의 주권과 통제 아래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⑵ 죄(1-3장)

다음으로 우리는 죄를 선포해야 합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하나님을 소개하면서 함께 이야기 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바울은 18절에서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를 언급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모든 것을 말합니다. 그 모든 죄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입니다(18절).

그런데 1장에서 바울은 “모든 불의”의 시작점을 밝힙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21절부터 보시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1:21-23)

이것이 죄의 근원입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버리고, 대신 다른 것을 섬기는 것입니다. 참 빛인 하나님을 버리니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참 지혜를 떠나 미련하게 됩니다. 생명을 버리니 죽음이 찾아옵니다. 참 신을 버리고 거짓 신을 좇습니다. 그 결과 찾아오는 것이 28절부터 나오는 “합당하지 못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버린 것에 대한 심판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내버려 두신 결과물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1:28-31)

우리는 여기 나열한 온갖 더러운 죄의 열매를 맺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버린 결과로 우리가 맺는 열매입니다. 이 심각한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 복음의 내용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암 환자를 바로 치료하기 위해 암 진단을 내려야 하는 것처럼, 죄의 질병을 가진 자에게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바르게 알려줘야 합니다. 증상만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증상이 나오는지 원인을 말해줘야 합니다.

가끔 우리는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들의 죄를 찾기 위해 진땀을 흘립니다. 한 번도 거짓말 한 적 없어? 한 번도 음란한 생각한 적 없어? 초등학교 5학년 때 구원 받은 저는 죄를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사람의 기준에서 볼 때 무슨 큰 잘못을 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바울처럼 죄의 뿌리까지 바로 보여줘야 합니다. 죄는 겉으로 드러나는 온갖 더러운 행위나 그에 관련된 생각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의 뿌리가 되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그의 다스림을 거부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려줘야 합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내게 생명 주신 이에게 감사하지 않고, 매순간 호흡을 주고 계신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것 자체가 죄라는 것을 분명히 전해야 합니다. 단 일초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 수 없는 피조물로서 그 하나님에 대해 안하무인인 죄가 얼마나 배은망덕한 것인지 알려야 합니다.

양심이 마비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율법이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 율법으로 죄를 비춰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들에게 율법이 요구하는 높은 기준을 설명하셨습니다. 살인, 간음만 안하면 되는 게 아니라 형제를 미워하거나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도 하나님 앞에 심각한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본래 율법은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요구합니다. 누가 그 거룩한 기준에 오를 수 있겠습니까? 그 거룩한 기준 앞에 스스로 죄인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우리는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2장 5-6절에 기록된 것처럼, 우리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경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죄인을 반드시 의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5절 말씀처럼 “진노의 날”에 죄인에게 쌓아둔 진노를 쏟으실 것입니다. 6절처럼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실 것입니다. 16절 말씀처럼 “그 날”에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그냥 간과하신다면, 그냥 넘어가신다면 복음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이 괴롭고 고통스럽긴 해도, 그렇게 살다 고통스러운 이곳을 떠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죄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 영원한 심판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 세상이 그나마 덜 고통스러운 곳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구원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에서 구원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상한 복음을 전합니다. 교회 나오면 하나님이 병도 낫게 해주고 건강도 회복시켜 주고 사업도 잘 되게 해준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이 많이 있으니 사교성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좋은 격려와 위로를 받고 삶의 위로와 활력소를 얻어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고해성사를 하듯 자기의 잘못된 행위를 쏟아내고 용서를 받아 후련함을 얻고 가는 곳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가 함께 모여 그런 유익을 나눌 수 있지만, 이런 것은 복음의 본질이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를 사망까지 끌고 가는 죄의 무서움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린 결과 우리가 당한 처참한 현실을 알리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이사야가 외친 것처럼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사 6:5). 부정한 사람으로서 만군의 여호와 앞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3장 9-18절에 기록한 것처럼, 의인은 하나도 없고, 깨닫는 자도, 하나님을 찾는 자도, 선을 행하는 자도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심판을 피할 수 없고, 모두에게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너무 섣불리 그리스도의 은혜를 말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은혜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부정하고 죄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에게 그리스도는 고마운 구세주가 아니라 오히려 많은 것을 요구하는 귀찮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구원자를 간절히 찾을 때까지 먼저 우리는 그들이 구원 받아야 할 상태라는 것을 계속해서 알려줘야 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다 거룩하고 전능하며 의로운 분이신지, 죄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살아계신 하나님의 진노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달을 때까지 기도하며 경고해야 합니다.

⑶ 구원(3:21-8장)

1) 칭의: 바울은 이어서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대해 설명합니다. 핵심구절은 3장 23-24절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3-24)

바울은 3장에서 5장까지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것을 두 글자로 “칭의”라고 부릅니다(이신칭의). 복음의 핵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공로나 열심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라 우리 힘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오직 그리스도가 대신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에 대한 대가를 다 치르셨고(속량), 그분이 가지고 계신 온전한 의로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 보내주셔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이 놀라운 은혜로 인해 우리는 아무런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은 것입니다(칭의)

바울은 4장에서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5장에서는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여 모든 사람이 범죄한 것처럼, 마지막 아담 예수께서 자기 생명이라는 큰 값을 치르고 의를 이루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은혜의 복음, 하나님의 의롭다하심이 값없이 넘치도록 임했다고 말합니다. 특히 5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다고 말합니다(5:1). 마침내 죄인과 거룩한 하나님 사이에 화평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또 다른 핵심 구절인 5장 8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복음은 은혜의 복음이며,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입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나 다른 복음을 전합니다. 가령 열심히 노력하고 봉사해야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방언을 하거나 특별한 체험을 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님 앞에서 바른 마음을 가지면 뭔가 이 땅에서 좋은 일을 허락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죽었을 때 천국에 가는 입장권을 얻는 것이 복음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나의 공로나 열심이나 봉사나 노력이나 특별한 체험이나 기도를 통해 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오직 그것만 의지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혜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 그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조금이라도 덜 의지하고 우리의 공로에 눈을 돌리는 복음에 대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갈 1:8-9).

2) 성화: 구원이 그리스도를 통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의롭다하심을 입고 영원히 화평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이라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죽고 나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도 진행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단지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다고 선포만 하시고 죽어서 하나님을 만나는 그날까지 손을 놓으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6장에서 8장은 하나님이 신자에게 두고 계신 구원의 더 넓은 개념을 설명합니다. 바로 신자를 거룩하게 하시는 현재형 구원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가 이미(과거형) 구원을 받았다면, 이제는 그것을 시작으로 날마다 더 거룩해지는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성화”라고 부릅니다.

핵심구절은 로마서 8장 29-30절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8:29-30)

구원은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이 구원을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미리 아셨고, 정하셨고, 부르셨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고 선포하셨으며(과거),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지금 신자를 거룩하게 하시는 것(현재)을 “성화”, 온전히 아들의 형상을 이루게 하실 것(미래)을 “영화”라고 합니다. 칭의-성화-영화는 구분할 수 있지만 절대로 분리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우리가 전할 복음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과거에 매여 있는 어떤 사실에 국한 시켜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네 죄를 다 가져가셨으니 이제 너는 막살아도 천국행이라고 말해거나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구원의 미래에 치우쳐도 안 됩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을 어떻게든 견디면 좋은 세상이 온다는 식으로 복음을 전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마치 죄인을 의롭다 하는 것이나 죽고 나서의 죄인의 복지에만 관심 있고 여기서는 어찌 살아도 상관없어 하는 분으로 묘사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과거 십자가 위에서만 위대했던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위대하고, 미래 영원한 삶 속에서도 영원히 위대할 것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서 과거, 현재, 미래 언제든 우리를 끊어낼 수 없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구세주가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말해야 하고, 동시에 구세주가 지금 내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십자가의 복음을 말하고 그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이 현재 자기에게 미치는 능력에 대해 전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상품을 보여주면서 그 상품의 효과나 장점을 말하지 않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가 나에게 지금 어떤 사랑을 부어주시는지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가치를 알 수 없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가장 무거운 죄의 짐과 그로 인해 겪는 고통을 함께 가지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 앞에서 세상 짐을 내려놓고 주 안에 참 평안과 쉼을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소망을 찾으려 애씁니다. 재물, 권력, 자식, 평안, 안락함 등 이 땅의 것에서 뭔가 붙들 것을 찾습니다. 거기에 참 소망이 없기에 항상 목마르고 갈급합니다. 우린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 내 속에서 솟아나는 생수가 되시는 그리스도가 언제나 내 영혼을 만족시킵니다. 우리는 그분을 말할 수 있습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그 소망을 노래하며 자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면서 어떻게 이렇게 다른 마음을 갖고 사는지, 우리 안에서 지금 그리스도가 어떻게 일하시고 있는지 그들에게 선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요 17:3).

바울의 이 말로 오늘 말씀을 마치기 원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3-15)

전파하는 이가 없으면 세상은 복음을 들을 수 없습니다.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면 전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보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복음 전도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 아름다운 주의 발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구원을 가져올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이 되기 원합니다. 그 “좋은 소식”을 바로 알고, 제대로 전하고, 힘 있게 살아내는 우리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