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인생의 결단이 필요할 때
본문 : 창세기 21장 8-21절
설교자 : 이병권

 

오랜 기다림 끝에 때가 되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서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아브라함 나이 100세, 사라 나이 90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된 것입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잘 자랐고, 아이가 젖을 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아이가 젖을 뗀 기념으로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우리식으로 하면 돌잔치를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잔치의 분위기가 어떠했을까요? 아이를 축복하며 웃음과 즐거움이 넘치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이삭으로 인해 아브라함과 사라의 마음에는 기쁨이 가득했을 것이고, 사람들은 이삭을 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잔치에서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기뻐했던 것은 아닙니다. 잔치에서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이스마엘입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사라의 몸종인 하갈에게서 낳은 아들입니다. 사실 이스마엘은 이삭이 태어나기까지 거의 14년 동안을 혼자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컸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태어나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는 찬 밥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관심은 이삭에게 쏠렸습니다. 지금 이스마엘은 16~17세 정도 되는 나이입니다. 마냥 어린 나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른처럼 성숙한 나이도 아닙니다. 그런 이스마엘에게 이삭을 위해 베풀어진 이 잔치가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이 잔치는 이제 더 이상 이스마엘 자신이 중요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입니다. 이스마엘은 소외감을 느끼며, 이삭을 시기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스마엘 입장에서 이삭이 얼마나 밉게 보였을까요? 그래서 이스마엘이 이삭을 어떻게 합니까? 유대인의 문헌에는 이스마엘이 잔치가 벌어진 것을 시기하여 자기가 이 집안의 장자임을 떠들며 외쳤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정말 이스마엘이 그렇게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성경에 기록된 것은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라가 이 장면을 본 것입니다. 사라는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자기 아들 이삭을 놀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90세에 낳은 아들이 희롱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좋은 잔치의 분위기가 단번에 뒤집어집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개정성경에는 ‘놀렸다’고 번역되어 있는데, 옛날 개역성경에는 ‘희롱했다’고 번역했습니다. 놀렸다는 것이 비웃음으로 희롱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신약을 참고하면,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이 사건을 인용하면서 이스마엘이 이삭을 ‘박해’했다고 기록했습니다(갈 4:29).

이스마엘에게 자기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이 생겼습니다. 그 동생은 출생부터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아이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아들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그 동생에게 빼앗깁니다. 그런 상황에서 눈에 가시 같은 동생을 어떻게 했을까요? 어쩌면 실제로 괴롭히거나 때리는 일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찌되었든 사라는 이 장면을 보고 아주 강하게 대응합니다.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사라는 하갈을 ‘하갈’이라고 부르지 않고, ‘여종’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을 ‘종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을 통해서, 그들에 대한 사라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라는 ‘이 여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유산을 나누어 가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종의 아들’과 ‘내 아들’을 구분하며 그 둘이 함께 할 수 없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사라는 이스마엘의 행동을 단순히 십대의 철없는 행동이 아니라 더 심각한 문제로 보았습니다. 이스마엘을 이대로 두면 이삭의 자리가 위험할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쫓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라의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아브라함은 깊은 근심에 빠집니다. 정말 마음이 괴롭습니다.이스마엘이 사라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입니다. 어떻게 집에서 내쫓을 수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괴로워하면서 자책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 일은 아브라함 자신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했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아브라함이 괴로워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로하시며, 사라의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너무 냉정하신 것 아닙니까? 좀 더 좋은 방법은 없나요? 사라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라의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까?‘ ‘사라는 지금 화가 나서 그럴 수 있지만, 하나님마저도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도 이스마엘은 제 핏줄 아닙니까?‘

하갈과 이스마엘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갈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물론, 그녀에게 미숙함이 있어서 주인을 멸시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주인의 선택에 의한 피해자 아닙니까? 이스마엘은 어떻습니까? 진짜 아들이 태어났기 때문에 집안에서 자신의 존재의 이유가 사라졌고, 오히려 존재하면 안 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충분히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지금 어떤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사라의 말을 들어주고, 이삭의 편이 되어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섭리 가운데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계획은 이삭과 이스마엘은 물론, 모든 인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자녀인 이삭을 통해 그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삭과 이스마엘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이스마엘은 이삭이 약속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데 방해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이 아브라함의 아들 됨에 있어서 문제가 되었지만, 하나님은 참된 아들이 이삭임을 분명히 하심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그냥 외면하신 겁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라고 하신 것은 이스마엘을 버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삭을 보호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마엘도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실 거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특별히 눈여겨 볼 수 있는 것은,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사건을 통해 서로 대조되고 있는 ‘웃음’과 ‘희롱’입니다. 이삭이라는 이름 자체가 웃음이라는 뜻이며, 이삭은 태어나면서부터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마엘은 그 이삭을 희롱합니다. 웃음을 희롱하는 것입니다.

이삭의 웃음은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얻게 되었지만, 이스마엘의 희롱은 약속에 대한 불신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웃음’은 하나님을 신뢰한 결과이지만, ‘희롱’은 하나님을 불신한 결과입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이 함께 할 수 없는 것처럼 믿음과 불신은 함께 할 수 없고, 그 결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은혜로운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통해서 그분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따랐을 때,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하갈에게 주어 이스마엘과 함께 집을 나가게 합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 이들을 내보낸 것은 다른 사람들과 작별하는데 어려움을 피하게 하고, 또한 광야의 열기를 피해 조금이라도 시원할 때 길을 떠나게 하려는 그의 배려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집에서 나온 하갈과 이스마엘은 광야에서 방황합니다. 아브라함이 주었던 가죽 부대의 물도 다 떨어졌고, 그 사이 떠오른 태양은 광야의 지면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갈증을 호소하던 이스마엘은 뜨거운 태양을 견디지 못합니다. 하갈은 ‘아이가 죽어가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구나!’하고 이스마엘을 작은 나무 아래에 두고 자신은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앉아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합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약속의 하나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이스마엘’의 이름처럼 하나님이 들으셨습니다. 오래 전에 하갈이 고통 중에 있을 때, 그 소리를 들으셨던 하나님이 이번에는 이스마엘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그녀를 위로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의 대해 말씀하신 약속을 지금 하갈에게도 다시 말씀하시며 확인시켜주십니다. 이스마엘이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들의 필요도 채워주셨습니다. 물이 없어 고통 하는 것을 아시고, 하갈의 눈을 밝혀 물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은 이스마엘의 이야기를 요약적으로 정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마엘과 함께 하셨기에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은 그의 어머니 하갈과 같은 애굽 출신의 여인과 결혼을 합니다. 이렇게 하여 이스마엘은 이삭과 완전히 분리된 자신의 길을 가게 됩니다.

이렇게 오늘 본문이 마무리됩니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을 누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주인공 같지는 않지만, 이스마엘이 제일 많이 언급되었습니다. 그럼 본문에서 이스마엘의 이름은 몇 번 나올까요?

재미있게도 계속 이스마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의 이름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름 대신에, 본문의 앞부분에서는 ‘아들’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본문의 뒷부분에서는 ‘아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본문의 저자는 의도적으로 ‘이스마엘’ 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름은 “이삭”으로만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브라함의 아들은 이삭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집에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신 약속의 아들은 하나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여종의 아들을 내보냅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보냈을 때, 그에게는 심한 아픔과 깊은 슬픔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스마엘을 보내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스마엘은 이삭에게 방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삭이 약속의 자녀로 살아가는 데에 어려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일을 명하셨고, 아브라함은 그 일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 뜻을 이루기 원한다면, 그것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지혜롭게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고통이 있고 불편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 모든 것을 선하신 하나님께 맡기며 그분을 신뢰하는 가운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내리는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염려하는 문제들을 해결하시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나타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면, 믿음으로 결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세상 적이며 육신적인 생각이 나를 다스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없습니다. 불신이나 죄로 이끄는 것들이 내 삶에 자리 잡고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없습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나쁜 습관이 있다면 그것은 버려야합니다. 나를 죄로 이끄는 환경이 있다면 그것에서 나와야 합니다. 육신적인 생각을 마음속에서 즐기지 말고 단호하게 쫓아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때로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면서 실제로 그러한 일을 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세 가지 제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우리는 삶을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방해나 위협이 되는 요소는 없는지 나의 모든 삶의 영역을 살펴봐야 합니다. 나의 인간관계, 습관, 환경, 사고방식, 시간 관리, 돈 사용, 감정상태, 언어생활 등, 모든 것을 살피고 점검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주님이 내 삶을 주관하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내 삶을 점검하는 것은 시작입니다. 내 삶을 점검한 결과를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나의 의지만으로 육신의 정욕과 마귀의 공격을 이길 수 없습니다. 기도 없이는 안 됩니다. 기도의 능력을 절대로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기도는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기도하십시오.

세 번째로 우리는 결단함으로 실제로 행동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는 어느 순간에는 행동해야 합니다. 자신을 점검하고 기도하며, 실제로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결국 제자리에 머무는 것입니다. 영적인 승리는 실천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두고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그냥 하십시오.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성령님의 도우심 가운데 세상적인 것들, 더러운 생각들은 그냥 버리십시오. 나의 시간을 잡아먹는 것들, 나와 내 가족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이 있다면, 그냥 끊어야 합니다. 나를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것들을 그만두십시오. 내 영혼을 망가뜨리는 곳에는 가지 마십시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삶에 붙어있는 군더더기들을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가운데 단호하게 결단할 때 우리는 주님 안에서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깊은 근심에 빠져 고민했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결단은 계속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러합니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염려하는 문제들을 해결해주시고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방해되는 것들을 결단함으로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냥 실천하십시오. 미루지 마십시오. 지금 여러분이 속한 곳에서 승리를 선포하고, 승리를 깃발을 꽂으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