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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인류의 소망

본 문: 요한복음 20장 11-18절

설교자: 조 성 훈

 

 

“마 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사람이 젊었을 때는 죽음을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 점점 죽음이 현실로 다가옵니다. 세월의 흐름이 나이의 속도로 흐르고 있다고들 합니다. 여러분의 세월의 속도는 몇 킬로입니까?

 

본 문 말씀은 주님의 부활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다 오래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자동차를 고치고 낡은 부속을 갈듯이 사람들도 자신의 장기를 교체하고 얼굴도 바꿉니다. 그러나 부속품을 바꾼다고 자동차를 언제까지나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듯이, 우리 인간도 언젠가를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인류의 숙제 : 죽음

 

하 나님께서 처음부터 사람을 죽게 만드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 옛날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는 육체를 영원히 죽지 않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범하고 그 때 사망이 들어와서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인간이 생각하는 것이 악할 뿐임을 보시고 세상에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시며 물로 심판하신 뒤에는 인간의 수명이 900세에서 120세로 대폭 단축되었습니다.

 

오 늘날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은 뒤에도 삶이 있다고 믿습니다. 묘자리를 기름지고 좋은 땅에, 전망도 좋은 곳으로 정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어떤 할아버지는 자신의 부인이 죽자 아내를 땅에 묻는 것이 싫어서 시신이 든 관을 곁에 두고 살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의 영혼이 죽지 않고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렇듯 죽은 뒤에도 영혼이 살아있다고 생각하지만, 부활을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생에서 선을 쌓아야 다음 생에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믿는 사람은 열심히 선을 베풉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도 부활을 믿지 는 않습니다. 그러니 부활의 소식을 전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조롱의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주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그 말을 믿지 못했고 실제로 주님이 부활하신 뒤에도 그 사실을 믿기 어려워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장례

 

나 라마다 장례 문화가 다릅니다. 시신을 나무 옆에 안치하는 경우도 있고 관에 넣은 뒤 그냥 두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땅에 묻는 우리나라의 장례 문화에서는 부활을 기대하기 어려울 지 모릅니다. 이스라엘은 굴 속에 여러 개의 시신을 두고 돌로 막아놓는 문화입니다. 마리아가 무덤 곁에 서서 울면서 굴을 들여다봤습니다. 그 때 주님은 보이지 않고 세마포가 제껴 있었으며 그곳에 천사들이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이 살았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주님이 곁에 다가 오셨을 때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일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일입니다. 개구리는 죽기 전에 꽁꽁 얼었다가 얼음이 녹으면 다시 살기도 한다고 합니다. 사람도 그렇다면 참 좋겠지만 그런 일은 없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믿기 어려웠습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믿지 못합니다. 이단 종교의 교주들 중에는 자신이 죽으면 다시 살아날 것이라며 땅에 묻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인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주님의 부활과 약속

 

주 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즐거운 것은 우리가 곧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대단한 능력이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어 냄새가 날 때에도 주님의 부르심에 썩어가던 시체가 일어나 나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무덤에서 부활시키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능력 가지고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부활의 소망입니다.

 

주 님은 3년 반을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바다가 잔잔케 하고 죽은 자를 살리셨으며 앉은뱅이와 문둥병자 등 수많은 병자들을 살리셨는데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힘없고 무능하게 군병들에게 끌려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부활하신 것을 제자들에게 인식시키는 것도 참 어려우셨을 것입니다. 결국 40일 동안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이시고 부활하신 것을 증명하셨습니다. 주님의 손은 만질 수 있었고 그 손에는 못자국이 있었습니다. 이 땅에 살았던 표시가 있는데도 주님의 몸은 전혀 다른 몸이었습니다. 부활한 몸은 상식적으로 참 이해하기 어려운 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보면 제자들과 음식도 함께 드셨는데, 부활한 몸은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 아닙니까?

 

 

주님의 부활과 인류의 소망

 

우 리가 가지고 있는 몸은 환경이 변해도 만족이 오래가지 않는 몸입니다. 우리는 돈 10억이 생긴다면 전혀 불행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만큼 가지고 있는 사람도 걱정하고 불평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걱정이 더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입을 새로운 몸은 그런 환경으로부터 만족을 얻는 몸이 아닙니다.

 

부 활은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반대로 부활이 없다면 모든 삶에 의미가 사라집니다. 공동묘지를 가보면 수많은 묘들이 있는데 저마다 사연이 있고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명예스럽게 산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도 죽으면 아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젊은 날 열심히 돈을 벌어 퇴직하고 연금으로 즐겁게 여행 다니며 사는 것을 꿈꾸고 있다가, 은퇴 후 바로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그의 꿈은 어디로 갔을까요? 죽음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앗아갑니다. 그러나 부활은 모든 것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살아야할 이유가 있고 참으로 삶 속에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놀랍게도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기쁜 것은 주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도 보증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함께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몸으로 부활할 지 얼마나 영광스럽고 완벽한 몸일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징 그러운 벌레가 고치가 되더니 아름다운 호랑나비로 변하는 것처럼, 우리는 놀라운 몸으로 변화되게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소망이 없어지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소망이 더 깊어지고 강해집니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것, 매일의 어려움을 이기게 해주는 것은 바로 부활의 소망입니다.

 

 

결론

 

우 리는 사망을 이길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주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더불어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게 될 약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여러분과 제가 부활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의 삶을 등한히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이 땅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직장생활을 해야 하지만 그곳에 마음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신 부활의 주님과 하늘나라에 있어야 합니다. 그곳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세 상은 급속도로 타락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하루에 700명 정도가 세상을 떠나는데 일 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만 5천명이 된다고 합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와 같지 않습니다. 약 2천 년 전 어느 날 우리 주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것이 여러분과 저에게 삶의 의미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머지않아 우리는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고 영원히 눈물 없는 곳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 때까지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즐거워하며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