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오늘을 견디는 힘
본문: 시편 40편
설교자: 최종혁

 

위드 바이블 캠프에서 질의응답시간에 나온 질문이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주님만으로 만족하는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항상 주님만을 기뻐하고 주님만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누구나 말하지만 누구도 그렇게 살지는 못합니다. 누구나 항상 주님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하루를 생각해볼 때 하루를 주님으로 만족해보자 보다는 견뎌보자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루를 보내고 나서 주님으로 만족했다는 생각보다 오늘 하루 잘 견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어떻게든 견뎌야 하는 날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요? ‘그냥 세상 사는 게 다 그렇지 뭐’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면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참으면 다 병이 되고 화가 되니 그것을 어떻게든 표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화도 내고 원망도 하고 욕도 좀 하면서 스트레스라도 풀어야 할까요? 아니면 막연히 상황이 좋아지기를 바라면서 그냥 긍정적인 생각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저절로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 주변의 사람들, 개인의 경험, 매체를 통해 여러 가지 해결 방법을 들었을 것입니다. 오늘은 다윗의 경우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어떻게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지 배워보겠습니다.

이 시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10절은 ‘과거의 일’에 대해서 말하고, 11~17절은 ‘현재의 일’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두 부분이 사실 매우 다른 내용을 담고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전혀 관련이 없는 두 시편을 하나로 묶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시편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관계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 이 시편을 이해하는데 핵심이 됩니다. 견뎌야 하는 하루를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1. 과거의 경험과 찬양(1~10절)

– 경험(1~3절)

다윗이 처한 상황에 대한 힌트가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1절),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2절)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과 같은 일을 당해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입니다. 다윗이 언급하는 상황은 “벗어 나고 싶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기가 막힐 웅덩이”와 같았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라기 보다는 절망적인 상황을 말합니다(다른 번역에서는 “멸망의 구덩이”, “파멸의 웅덩이”, “절망의 웅덩이”). 수렁도 마찬가지입니다. 밖에서 누군가가 꺼내주지 않으면 내 스스로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을 말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비유적으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이런 상황을 겪었습니다. 바벨론과 전쟁을 하면 패배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에 대한 대가로 진흙 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그 안에 물이 없고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스스로 빠져 나갈 수 없는 웅덩이에 갇혔습니다. 다윗이 실제로 이런 일을 겪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공통적인 것인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내가 무언가 할 수 없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지도 않을 것 같은 그런 상황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겪습니다. 낙심하고 절망하고 소망이 전혀 없는 것 같은 상황 속에 빠지게 됩니다. 생각지 않았던 질병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상황, 부모를 먼저 보내거나 자식을 먼저 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오랜 시간 준비했던 뭔가가 실패로 돌아가는 상황을 봅니다. 어떤 죄에 계속해서 빠질 때 그것으로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수렁에 빠집니다. 다양한 기가 막힐 웅덩이에 빠지곤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몇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상황이 어떻게든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아질 것이라고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합니다. 혹은 부정적으로,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상황을 한탄하거나 상황의 원인에 대해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당한 것을 갚아주겠노라고 복수를 다짐합니다.

때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이런 상황에서 그런 원망과 분노의 화살을 하나님께 돌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얘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선택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1절)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을 기다리고 기다렸다고 표현합니다. 정말로 간절한 기다림입니다. 다윗의 표현처럼 실제로 깊은 웅덩이에 빠져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에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예레미야처럼 물도 없는 그런 웅덩이(마른 우물)에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루 하루의 시간이 지나면 한 시간 한 시간이 견디기 힘들어 질 것입니다. 더 시간이 지나면 1분 1초도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구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고, 그가 오기를 기다린다면 그 간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윗이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때론 우리가 처한 상황이 그런 실제적인 웅덩이보다 훨씬 더 절망적일 때가 있습니다. 차라리 눈에라도 보이면 되든 안 되든 뭔가를 해볼 것 같은데, 그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응답을 몇 단계로 나누어서 표현합니다.

“귀를 기울이사

먼저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스쳐가는 소리를 그냥 듣는 것이 아니고 관심을 가지고 기도를 듣기 위해 그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모습입니다.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다윗이 어떤 어려움 가운데 있는지, 그가 어떤 마음상태에 있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하나님께서 다윗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지만 지금 상황은 그런 상황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들으셨고 행동하십니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2절)

다음으로 하나님은 그를 건져주셨습니다. 그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항상 이런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역사하시지는 않으십니다. 많은 경우 하나님은 상황을 변화시키지 않으시고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내가 어쩔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을 이길 수 있도록 나를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나를 강하게 하시고 나에게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하실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가 즉시 경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뒤돌아 볼 때에야 ‘하나님께서 그 때 나를 도우셔서 그 어려움을 이겨내게 하셨구나’라고 깨닫게 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때로 하나님은 이렇게 상황 자체를 극적으로 바꾸기도 하십니다. 다윗이 지금 기억하고 있는 상황이 그렇습니다.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건져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약속하신 땅으로 갈 때 바로 왕이 마음이 바뀌어서 그들을 쫓아옵니다. 앞에는 홍해가 있었고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가만히 있어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상황을 바꾸셨습니다. 그들 앞을 막아서던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셨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뜨거운 불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보호해주실 것이라고 했고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뜻을 바꾸지 않겟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상황에 개입하셔서 머리카락 하나 다치지 않게 하셨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졌을 때 사자의 입을 막으셨고 에스더를 통해 유대인들을 모두 구원하셨습니다. 신약으로 와서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그들을 구원해내십니다. 그러한 일을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황에 개입하셔서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그런 경험을 매우 강렬하게 기억합니다. 다윗도 지금 그런 경험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다윗은 경험은 건짐을 받은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반석 위에 두셨습니다. 발을 제대로 디딜 수 없는 수렁에서 건져서 무엇보다 견고한 반석 위에 그 발을 두셨습니다. 가장 안전한 곳, 가장 평안할 수 있는 곳에 두신 것입니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3절)

또한 찬양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냅니다. 새노래는 꼭 한 번도 불러보지 않은 노래를 말하지 않습니다. 아주 오래된 노래도 새로운 노래가 될 수 있습니다. 수렁에서 건짐을 받은 다윗이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한 오래된 찬양을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별 감흥 없이 부를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방금 경험한 하나님 때문에 모든 가사가 새롭게 느껴질 것입니다. 새로운 노래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삶에서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면 우리가 드리는 찬양이 새로운 찬양이 됩니다. 새노래가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하나님의 구원은 한 사람의 삶만 바꾸지 않습니다. 다윗에게 일어난 일을 보고 안 사람들은 그들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다윗이 과거에 경험한 일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하셨을 것입니다. 혹은 앞으로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정말 즐겁고 신나는 경험입니다. 내가 믿는 것이 현실화 되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신나고 즐거운 일입니다. 비록 거기까지 가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을 때 하나님께서 절망적인 상황에서 건져주셨을 뿐 아니라 가장 희망적인 상황에 두셨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셨고, 내 주변의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 중의 하나입니다. 이보다 즐겁고 신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 일을 경험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윗은 아래와 같이 반응했습니다.

 

– 경험에 대한 반응(4~10절)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4절)

첫 번째 반응은 교훈입니다. 다윗은 어떤 사람이 정말 복이 있는 자인지에 대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결국 복이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고난의 순간에는 교만한 자, 거짓에 치우치는 자의 성공과 평안함을 바라보고 그들의 도움도 바라고 싶은 마음이 들 것입니다(“돌아보지” – 향하다. 바라보다). 정말 이 순간만은 그렇게라도 해서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들이 잘되니 그들을 바라보게 되고 도움을 얻을까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이 깨달은 것은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안전한 착륙이지, 평안한 비행은 아니다.” 비행기나 배를 타는 사람들은 약간의 긴장과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타게 됩니다. 발을 땅에 딛지 않고 떠 있다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 되는 것입니다. 배가 크게 흔들리거나 비행기가 갑자기 떨어지거나 하면 그 불안함은 더 커집니다. 파선이나 추락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00%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것을 안다면, 그런 일이 있을 때 잠시 불안한 마음이 들고 멀미를 하게 될 수는 있어도 궁극적으로 절망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렇습니다. 환경 자체가 언제나 평안하고 우리가 보기에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물론 언제나 요동치는 것도 아닙니다. 환경은 수시로 달라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실 것이고 목적지까지 도착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정 중에는 그것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잠시 어지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안전하게 도착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다른 것을 바라거나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5절)

두 번째 반응은 만족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그분의 선하신 계획을 생각할 때 누구도 하나님과 같지 않음을 더욱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경험은 다윗에게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너무 좋아서 널리 알리고 싶은데, 그것이 또 너무 많아서 다 말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아이를 둔 부모들은 가끔씩 이런 일을 경험할 것입니다. 아이가 너무 들뜨고 흥분해서 달려와서 뭐라고 말하는데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 아이는 정말 재밌는 일을 경험해서 그것을 알리고 싶은데 제대로 표현조차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다윗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으로 온전히 만족한 자의 모습입니다.

세 번째 반응은 순종입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한 자는 또한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6절)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곧 제사와 예물을 드리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정말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단순한 의식적 예배를 하나님은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종입니다.

“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7, 8절)

신약에서는 이 말씀이 예수님에게 적용되었습니다(히 10장).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전적으로 순종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사셨습니다. 누구도 예수님처럼 순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고 하나님으로 만족한 한 성도로서 진실하게 이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나온 것은 단지 형식적인 제사와 예물을 드려서 예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진실로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하신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두고 그 뜻에 따라 살아가기를 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공의로우심,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자로서 그렇게 순종하며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반응은 선포입니다.

“내가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가 주의 공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 내가 주의 인자와 진리를 많은 회중 가운데에서 감추지 아니하였나이다.”(9, 10절)

앞서 5절에서 다 말할 수 없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일을 하셨는지 선포합니다. “의의 기쁜 소식”, “주의 공의”, “주의 성실”, “구원”, “주의 인자”, “진리(신실하심)”를 회중에 감추지 않고 선포하였습니다.

그저 형식적인 찬양이 아닙니다. 그 마음 속에 있는 것을 그냥 감춰둘 수가 없을 정도로 다윗의 마음은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어떤 일을 그 삶 속에서 하셨는지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그렇습니다. 단지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하나님을 선포하여 전하고 높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험한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안 자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은 단순한 감정적 뜨거움이나 지적인 즐거움이 아닙니다. 삶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을 선포하는 그런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입니다.

그런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날이 언제나 계속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그분을 기쁘게 찬양하는 것을 우리는 원합니다. 하지만 삶이 그렇지 않고, 우리가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는 정말 하나님 한 분이면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필요 없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정말 감사해서 앞으로 다시는 죄 같은 것 내 삶에 없을 거라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 다시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집니다. 그곳에서 허우적댑니다. 때로는 나의 어리석은 선택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까닭 없이 그런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견뎌야 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런 상황에서 다윗이 드리는 기도입니다.

 

2. 오늘의 고난과 간구(11~17절)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11절)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 회중에게 선포했던 다윗이 이제 그 하나님께 다시 도움을 구합니다. 그가 사람들 가운데서 선포했던 하나님의 공의, 성실, 구원, 인자, 진리를 지금 다시 구합니다. 지금 상황은 다시 한 번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12절)

5절에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찬양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수를 셀 수도 없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자신의 죄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재앙이 머리털보다도 많다고 고백합니다. 다른 것을 바라볼 수조차 없다고 말합니다. 더 이상 무엇을 하고 싶은 마음조차 없는 자포자기의 상황이라고 할 그런 상황입니다. 어느 곳을 바라봐도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 상황에서도 다윗이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이런 수렁과 같은 상황을 다윗은 견뎌냈던 적이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이 10절까지의 말씀과 지금 말씀의 관계입니다. 10절까지의 상황은 과거의 경험이고 다윗은 그 과거의 경험에 기초해서 이제 지금 상황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은총을 베푸사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13절)

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뿐입니다. 다만 지체하지 마시고 속히 도와주시기를 구합니다. 구체적으로 다윗이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악인은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의인은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내 생명을 찾아 멸하려 하는 자는 다 수치와 낭패를 당하게 하시며, 나의 해를 기뻐하는 자는 다 물러가 욕을 당하게 하소서. 나를 향하여 하하 하하 하며 조소하는 자들이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놀라게 하소서”(14~15절)

이들에게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임해서 그들이 수치를 당하고 그들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기를 구합니다.

“주를 찾는 자는 다 주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16절)

16절이 4~10절의 요약과도 같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항상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것, 다윗이 전에 경험했던 그것을 주의 구원을 통해 다시 경험할 수 있기를 구합니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17절)

다윗의 마지막 간구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기다리고 기다렸을 때 구원을 얻었던 것처럼, 다윗은 지금 다시 하나님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생각하는 분이시고 그의 도움이 되시며 구원이 되시는 분이심을 인정하며 지체하지 말고 속히 구해 할라고 구합니다. 그래서 다시 주 안에서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위대하심을 자랑스럽게 선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견디는 힘은 바로 하나님, 특별히 내가 경험한 하나님입니다.

 

도전

주님을 믿고 계속 신앙생활을 해오신 분이라면 누구나 과거의 좋은 기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구원 받았을 때 경험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한 다윗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말할 수 없는 감사와 기쁨을 누렸던 경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경험들을 주시고 또한 그 경험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때로 우리는 이 기억을 잘못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참 좋았었는데”라고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좋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리워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좋은 기억을 그리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러 있어서는 오늘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것을 통해 오늘을 살 수 있는 힘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쨌든 오늘을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래라는 희망을 바라보고 오늘을 삽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무엇보다 선명하고 놀라운 과거의 경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영혼을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바르게 기억하고 있다면, 우리는 오늘을 바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저 견디는 것을 넘어서서 정말로 환경을 뛰어 넘는 진정한 만족과 기쁨과 평안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시 34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을 세상 가운데 선포하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선하심을 나타내시고 그 하나님을 경험한 자들은 수렁에 있어도 견고한 반석에 있는 자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그들의 반석이시고 도움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분의 선하심을 맛보면서 그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