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

본문 : 빌립보서 2장 5-11절

설교자 : 염창훈

빌 2:5-11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 교회는 건강한 교회였고 주님을 사랑하는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에는 감독들과 집사들이 있었고 체계가 잘 서 있었을 뿐 아니라, 그들은 한 뜻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힘썼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 물질과 기도로 돕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장 말씀을 보면, 빌립보 교회에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2절).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4:2).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자매였고 복음을 위해 일하는 일꾼이었지만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연합하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이 연합되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13:10). 그들이 하나가 되지 못하는 원인은 교만이었습니다.

그래서 2장 3절에서는—“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겸손하라고 했고, 5절에서는—“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번역을 보면 ‘예수님과 같은 태도를 가지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6절 말씀에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요 1:1에서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고 했고, 요 1:14,18에서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고 말하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서의 영화로운 신분을 버리셨다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17장 1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기도하시면서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가지는 모든 영광을 포기하시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 17:4).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같은 영광 중에 계신 분입니다. 이사야 6장과 요한계시록 5장을 보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 모든 영화를 버리시고 이 땅에 내려오셨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8절). 하나님은 육체가 없는 영으로 계신 분으로서 우리와 똑같은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은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우리가 벌레를 구하기 위해 벌레의 몸을 입은 것과 같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주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얼마나 가난하게 사셨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지 40일 즈음 되어서 제사 드리러 갔을 때 원래는 어린 양을 제물로 드려야 했지만, 비둘기 한 쌍을 가지고 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아버지의 직업은 목수였습니다 막 6:3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목수의 아들이라고 무시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53장 말씀대로 사람들의 멸시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한 없이 낮추셨던 것입니다(8절).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8절). 복종은 하기 싫어도 하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뜻을 다 버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의 뜻을 꺾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람들이 다른 이들과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과 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태어날 지역과 가정을 선택할 수 있다면 아마도 부유하거나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기를 원할 것입니다. 가난한 나라는 피하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편한 것을 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와 똑같은 몸으로, 매우 가난하고 멸시받는 동네인 나사렛을 택하셨고, 그 곳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 예수님의 겸손, 희생의 마음을 본받으라고 말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연합을 이룰 수 있고 그 곳에 영혼 구원의 역사가 있으며 기쁨이 있습니다. 시 133편 말씀에는 형제가 연합함이 아름답다고 말하면서 여호와께서 복을 내리시니 곧 영생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믿는 자들이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가 될 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 9-11절에서는 예수님께서 낮아지심에 대한 보상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위하여 낮아질 때 주님은 어떤 상을 주실까요? 우리가 예수님의 겸손을 품고 살아갈 때, 주님께서 기쁨을 주시고 마음이 쉼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잠 22:4, 시 26:22, 사 24:19, 마 11:9). 또한 주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내 의견이 옳다고 생각될 때, 내 고집을 세우고 싶을 때, 주님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겸손히 행하시고 희생하십시오.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강과 기쁨을 주실 것이며 이를 통해 다른 믿지 않는 자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