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어메이징한 하나님의 은혜

본문 : 요나 3장

설교자 : 이병권

[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3]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4]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7]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다음 주에는 수능시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수능을 기념해서 영어 단어 하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어메이징(amazing)이란 단어입니다. 어메이징은 놀랍다는 말인데 놀라도 보통 놀라운 게 아니라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울 때 어메이징 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나서 제가 성도님들 앞에 나옵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는 게 아니라 앞에 서서 특송을 하는 겁니다. 놀라운 일이죠? 그런 일이 없잖아요. 그런데 특송을 하는데 너무 잘 하는 겁니다. 지난달에 교회에 초청했던 남궁송옥 찬양사역자보다 더 잘 하는 겁니다. 그럴 때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어메이징.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랍다는 것입니다.

근데 세상에는 참 놀라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표현할 만큼 다양한 일들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어떤 어메이징한 일들을 경험하셨습니까? 여러분이 경험한 일들 중에서 가장 어메이징한 것은 무엇입니까?

저는 우리가 경험한 일들 중에서 정말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만큼 어메이징한 것은 없습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자에게 거저주시는 하나님의 호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을 주신다는 겁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말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만약 대통령이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호의를 베푼다면 어떨까요?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호의를 갖다 붓습니다. 그건 정말 놀라운 거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호의를 베푸신다는 겁니다. 그것이 정말 어메이징한 겁니다.

우리가 보는 이 요나서의 말씀이 그 어메이징한 은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면에서 요나서의 주인공은 요나가 아니라 하나님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만드신 피조물들을 주관하시고, 그 가운데 요나를 이끄시고, 요나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요나뿐만 아니라, 요나를 통해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에게까지 은혜를 베푸시는 이야기입니다. 그 은혜의 이야기를 오늘 함께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어메이징한 하나님의 은혜”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특별히 요나서 3장은 이 어메이징한 은혜가 강조되어 있는 장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지난번 말씀에서 살펴본 것처럼 요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도망가서 물고기 뱃속에까지 내려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제 물고기 뱃속에서 다시 육지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또 다시 말씀하십니다. 2절에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1장에서 요나가 처음 받은 것과 같은 명령입니다. 일어나라, 가라, 외치라. 이 말씀에 대해서 요나가 어떻게 합니까? 또 도망갔을까요? 아닙니다. 3절을 보십시오.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요나가 순종했습니다. 예전에는 도망갔는데 이번에는 순종했습니다.

1장 2절과 3장 2절의 하나님이 말씀하신 명령은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 뜻은 같습니다. 하지만 3절은 달라졌습니다. 1장의 3절은 “그러나 요나가”라고 시작하지만 3장의 3절은 “요나가”라고 시작합니다. “그러나”가 없어진 겁니다. 현대인의 성경이나 다른 영어 성경에서는 3절 앞에 “그래서 요나가”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그러나”로 반응했던 요나가 이제는 “그래서”로 반응하는 겁니다. “그러나”“그래서”로 바뀐 겁니다. 바닥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요나는 이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해서 니느웨로 갑니다.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아주 큰 성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 요나는 큰 목소리로 외칩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요나가 선포한 말씀은 엄청 간단했습니다. 다섯 단어가 다입니다. 그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바꾸면 이렇습니다. “너희들 회개하지 않으면 다 죽을거야!” 저는 나름대로 말씀을 짧게 한다고 생각하는데 절대로 요나를 따라 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매주 듣는 설교가 이렇다면 어떨까요? 혹시 이렇게 짧은 설교를 원하십니까? 만약 우리가 니느웨 사람들과 같은 반응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그들은 믿을 수 없는, 어메이징한 반응을 합니다. 5절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사람들은 요나가 외치는 경고의 메시지를 심각하게 받아들입니다. 요나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멈추어 서서 그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는 포악한 이방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반응합니다. 어떤 위치에 있든지, 높은 자든지 낮은 자든지 관계없이 죄에 대한 회개의 표시로 금식을 하고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거룩한 두려움이 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사람들은, 감정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들의 악한 행위를 돌이킵니다. 온 도시가 그 짧은 경고의 말씀에 반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 하나님 앞에서 엎드렸던 겁니다. 니느웨에 사상 최대의 부흥이 일어난 겁니다.

이 일이 이제 니느웨 왕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화를 냈을까요? “아니 내 명령도 없이 이게 뭐하는 짓이냐?” 백성들에게 자신의 권력을 내세우며 당장 이 일을 그만 두도록 명했을까요? 아닙니다. 놀랍게도 왕 조차도 그 말씀 앞에 자신을 낮춥니다.

니느웨의 왕은 잔인하고 안하무인이고 자신을 신으로 여기는 자입니다. 그러한 왕이 외국에서 온 초라한 선지자의 말을 듣고 반응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가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장례식 때 입는 굵은 베옷을 입고, 그리고는 재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 그리고 그의 대신들을 통해 모든 백성에게 조서를 내려 이렇게 선포합니다.

7절에서 9절까지를 보면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어떤 것도 겁내지 않는 왕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너졌습니다.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는 니느웨에 회개를 선포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고 굵은 베 옷을 입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을 명했습니다. 행한 악에서 떠날 것을 명령했습니다. 사람은 물론이고 심지어 짐승들까지도 금식해야 했습니다. 왕이 지금 왜 이렇게까지 하겠습니까?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 마음으로 반응했던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낮추고 자비를 구했던 겁니다. 그래서 회개함으로 악한 길에서 떠난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매주 마다 이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습니다. 매주 반복되는 일이라서 특별한 느낌 없이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말씀이 정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리고, 내가 정말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셔서 나를 붙들어 움직입니다. 나로 하여금 주님을 바라보게 하고, 나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겁니다. 그래서 아! 정말 이 땅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다가 아니지, 맞아!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은혜와 자비가 무한한 분이시지. 그렇게 느끼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우리 안에 부흥이 일어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가 변화되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기적입니다. 누군가가 하나님 말씀에 반응하여 그 말씀 앞에 엎드리고 돌이키는 것이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기적입니다. 거대한 폭풍이 일어나고, 거친 풍랑이 순식간에 잔잔해지는 기적,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있다가 나오는 기적, 그런 기적보다 더 놀라운 기적은 니느웨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자신의 죄에서 돌이킨 것입니다. 그런 놀라운 기적이 니느웨에서 일어났던 겁니다. 왕이 애통하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악에서 돌이키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이 회개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보시고 자비를 베푸십니다. 어메이징한 은혜의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셔서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재앙을 내리는 대신에 은혜의 단비를 니느웨에 부어주셨습니다. 10절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이것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이 본문을 통해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교훈은 이것입니다. 어메이징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신다는 겁니다. 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번째로”라는 말입니다. 요나가 누구입니까? 요나가 어떤 일 했었습니까? 요나는 자신의 사명을 저버리고 하나님께로부터 떠난 도망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역한 선지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바다에 내동댕이쳐진 비참한 실패자입니다. 그런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또 다시 말씀하십니다. 처음과 똑같은 사명을 또 다시 주십니다. 그에게 또 다시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쓸 사람이 없어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요나에게 특별히 뛰어난 그런 자질이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왜 쓸 사람이 없겠습니까? 하나님이 누구신데, 뭐가 아쉬워서 요나에게 집착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또 다시 말씀하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바다에서 건져주신 것만으로도 놀라운 은혜인데, 하나님은 그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로서 요나를 완전히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정말 어메이징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요나에게만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는 애굽의 왕자일 때 자기 혈기로 사람을 죽이고, 광야로 도망간 살인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모세를 부르시고, 위대한 리더로 세우십니다. 베드로는 또 어떻습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습니다. 엄청난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한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회복시켜 주십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들린 여자를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율법에 의하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죄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죄인을 살려주시고 공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8:11)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거라.” 여러분 이게 가당한 일입니까? 이게 상식에 맞는 일입니까? 이게 법대로 하는 일입니까? 아닙니다.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어메이징한 은혜를 우리가 받았고, 그 은혜를 우리가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두 번째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혹시 과거의 실패 때문에, 잘못 때문에 좌절하신 분이 계십니까? 너무 심하게 넘어져서 다시 일어날 엄두를 못 내는 분이 계십니까? 아직까지 무언가의 죄책감이, 수치심이 여러분을 계속해서 끌어당기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은혜의 하나님을 기억하시고, 다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새로운 기회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다시 니느웨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시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어메이징한 것입니다.

이러한 어메이징한 하나님의 은혜는 결국 사람을 바꿉니다. 그 은혜로 인해 요나가 변화되어 말씀에 순종하게 되었고, 그리고 그 은혜가 니느웨의 백성들에게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마음을 뒤집어 놓을 만큼 강력하고 놀랍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말고는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지속적으로 근원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조용합니다. 핏대를 세우며 그렇게 떠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조용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에 혁명을 일으킵니다.

여러분 그 은혜에 집중하십시오. 그 은혜를 묵상하십시오. 죄인인 우리를 위해서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그 은혜, 아무 조건 없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자녀로 삼아주신 그 은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면서 우리 안에 무엇이 있는지 다 아시면서도 우리를 받아주시는 그 은혜, 수시로 넘어지고 실패해도 다시 일으켜 주시고 다시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그 은혜, 아침 마다 새로운 그 은혜, 그 은혜를 마음에 담고 묵상하고, 그 은혜에 푹 빠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은혜가 여러분의 마음을 바꿀 것입니다. 그 은혜가 여러분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보다 회개를 원하십니다. 실패한 요나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 완전히 멸망당해야 할 니느웨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그 은혜를 허락하시고 우리를 바꾸어 가십니다. 이 얼마나 어메이징한 은혜입니까? 단 한 순간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에,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우리의 일상 가운데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를 그냥 흘려보내지 마십시오. 놓치지 마십시오. 무엇보다도 십자가의 은혜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내게 어떤 은혜를 주셨는지, 나 같은 자를 살리기 위해 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는지, 그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를 묵상하며, 그 은혜를 찬양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그 은혜에 대해서 말하고 나누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은혜를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 어메이징한 하나님의 은혜에 감탄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기적이고, 우리가 바라는 부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