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어디에 둘 것인가?

본문 : 디모데전서 6장 17-21절

설교자 : 이병권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봤던 말씀이 생각나십니까? 지난 본문이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아멘”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높이며 하나님을 찬송하며 “아멘”하고 끝을 맺습니다.

이렇게 편지가 끝나도 될 것 같은데, 마지막 인사말이나 축복을 비는 것으로 편지를 끝내면 될 것 같은데 편지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바울은 또 다른 대상을 언급하면서 당부의 말을 덧붙입니다. 그럼 바울이 편지의 마지막에서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대상은 누구일까요? 17절에서 19절까지 그 대상을 향한 말씀입니다.

딤전 6: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딤전 6: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딤전 6: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누구를 대상으로 한 말씀입니까? 부한 자들입니다. 쉽게 말해 부자입니다. 생각해보면, 바울은 이미 앞 단락에서 부하려는 욕심에 대해서 자족하는 마음을 가질 것을 교훈했고 돈을 사랑함에 대해서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부자에 대한 명령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것과 오늘 본문을 구분하면 앞에서는 돈을 사랑하는 마음, 더 가지려하는 욕심에 대한 경고였다면 오늘 본문은 이미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주의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가 가진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마땅히 지켜야 하는 명령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도 부유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도들 중에 부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우리 교회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일까요? 우리 교회에 부자가 있을까요? 아무도 자신이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오늘 말씀은 아무에게도 해당되지 않는 말씀일까요?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은 어느 정도 돈을 가지면 부자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까? 지금 가진 것에서 얼마가 더 있으면 부자일까요? 대기업 회장 정도가 되어야지 부자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이미 부자입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면 오늘 말씀의 교훈을 충분히 나에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교훈으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지 말씀의 제목을 가지고 세 가지 질문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마음입니다. 마음을 어디에 둘 것인가?

딤전 6: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사람은 자기 마음을 자기가 원하는 곳에 둘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집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좌우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본문에서는 ‘마음을 높이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비슷한 표현이 나오는 말씀을 로마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6절을 보면 바울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롬 12: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라고 도리어 낮은데 마음을 두라고 명령합니다. 마음을 높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낮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높은데 둘 수도 있고 마음을 낮은데 둘 수도 있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마음을 높은 곳에 두어 교만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고 반대로 마음을 낮은 곳에 두어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내가 가진 것들이 내 마음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할 때 내 마음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나보다 적게 가진 사람에 대해서 나보다 부족한 사람에 대해서 상대적인 우월감을 가지고 교만한 마음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난 저 사람보다 더 나아!’ 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의 마음은 더 높은 곳으로 점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높아진 마음은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게 만듭니다. 거짓된 자만심에 빠져서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같은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마음을 어디에 둘 것인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할 일은 마음을 높이지 않는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높아지려는 마음을 붙잡아 내리기 위해 내가 가진 것이 나의 어떠함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주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기억할 때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가진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나의 만족이나 나의 자랑으로 삼는 일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기억할 때 나의 마음을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에 둘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품어야 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다음으로 살펴볼 두 번째 질문은 소망입니다. 소망을 어디에 둘 것인가?

딤전 6:17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우리는 소망을 재물에 둘 수도 있고 소망을 하나님께 둘 수도 있습니다. 재물과 하나님, 둘 중에서 소망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은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두라고 말씀합니다. 소망을 어디에 둘 거냐고 물었을 때 그에 대한 대답은 쉽습니다. 우리 중에 하나님이 아니라 재물에 소망을 둔다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머리로는 그렇게 알고 있는데 실제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일시적이지만 재물이 주는 만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즐거움이 있습니다.

새 차를 샀을 때 얻는 즐거움이 있고 새 집으로 이사를 했을 때 얻는 만족이 있습니다. 통장에 돈이 쌓였을 때 얻을 수 있는 안정감이 있습니다. 차에 기름이 떨어졌을 때 주유소에서 가서 기름을 가득 넣으면 어떻습니까?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집에 먹을 음식이 풍족하게 있으면 하다못해 라면이 넉넉하게 있으면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재물이 주는 만족이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 삶에 우선순위가 되고 나에게 있어서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이 재물로 인해 무너질 수 있습니다.

말씀을 보십시오. 재물에 대해서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정함이 없는 재물”이라고 말씀합니다. 불확실하다는 의미입니다. ‘덧없는 재물, 믿을 수 없는 재물, 확실치 않은 재물, 곧 없어질 재물’ 정함이 없는 재물에 대해서 이렇게 다양하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곧 없어질 재물에 소망을 두고 산다면, 그렇게 헛된 것을 좇아 더 가지려고 수고한다면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재물을 가지고 있다면 그 재물은 누가 주신 겁니까? 나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있고 그것으로 만족을 누리고 있다면 그 만족은 궁극적으로 누구로부터 온 것입니까? 그 모든 것을 허락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 아닙니까?! 재물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것을 누리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재물이 주는 만족에 빠져서 재물을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선물을 받았는데 선물에만 마음을 빼앗겨서 정작 선물을 주신 분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식적으로 지금 나는 나의 소망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자신을 돌아보며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무엇을 얻으려고 노력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진정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재물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누리는 안정감은 재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을 돌보시고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뢰해야 할 마땅한 대상은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본문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주 그러는 것처럼 속 좁고 인색하고 나누어주기를 아까워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후하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넉넉하시고 아낌없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주신 모든 것들을 우리가 만족함을 느끼고 즐거움으로 누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은 물질이 주는 즐거움을 버리고 만족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물질을 우선순위에 두고 물질을 좇아 사는 물질주의를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반대쪽 극단에 있는 금욕주의를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우리는 즐거움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신 선한 선물들을 우리가 감사함으로 즐기기를 원하십니다.

재물이 주는 만족에 빠져서 재물을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재물을 신뢰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소망을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하나님께 두시기 바랍니다. 주신 것에 감사하고 주신 것을 만족하며 즐거움으로 누리며 계속해서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어디에 둘 것인가? 세 번째 질문은 터입니다. 터를 어디에 둘 것인가?

딤전 6: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딤전 6: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19절에 ‘터’라는 것은 건물을 지을 때 토대가 되는 기초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땅에 터를 둘 수도 있고, 하늘에 터를 둘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둘 차이는 분명합니다. 땅에 있는 터는 지금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지금 눈으로 볼 수 있지만 잠시 잠깐이면 사라지게 됩니다. 죽음 이전까지만 유효합니다. 반대로 하늘에 있는 터는 지금은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장래에 때가 되었을 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원합니다. 죽음 이후에도 영원까지 안전한 기초가 됩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비록 지금은 잘 보이지 않지만 더 가치 있는 하늘에 터를 쌓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마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그럼 어떻게 하늘에 보물을 쌓을 수 있습니까? 1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하며 나누어 주기를 즐겨합니다. 그렇게 너그러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 너그러운 자라는 표현은 기꺼이 나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기꺼이 나누는 사람이 자신의 터를 하늘에 쌓아서 그 곳에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재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가진 재물에서 더 많은 재물을 가지기 위해서 재물에 재물을 추가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렇게 재물을 쌓으면서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재물에 재물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재물에 선을 더하는 것입니다. 재물을 통해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선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지혜롭게 미래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곳을 준비하시겠습니까? 하늘에 터를 두고 쌓으시겠습니까? 땅에 터를 두고 쌓으시겠습니까? 어디에 투자하기를 원하십니까?

한 부유한 사람이 은퇴를 하고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금융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주목 받는 기업에 투자를 했습니다. 그 사람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기업에 투자를 했습니다. 돈을 투자한 기업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고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는 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투자한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누가 조작이라도 한 것처럼 하룻밤 사이에 그 회사는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를 비롯된 수많은 사람들의 예금증서가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그는 집을 유지할 형편도 되지 않아 초라한 집으로 이사를 해야 했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민해야 했습니다. 재물을 좇는 인생의 모습, 그 마지막이 이러합니다.

혹시 이 땅에서 파산을 맞이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결국 이 땅을 떠날 때 자신의 가진 것의 실체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 속한 것을 다 두고 갈 때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럴 할진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겠습니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보물을 하늘에 두는 일, 하늘에 터를 쌓는 일은 곧 영생을 취하는 일입니다. 19절 마지막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참된 생명을 가진 자에게 나타나는 결과라는 것입니다. 믿는 자로서 나의 생명은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는 일, 가진 것으로 선을 행하는 일로 증거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이 말씀은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가난하다면, 우리는 그 상황에 맞는 순종을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넉넉하다면, 역시 그 상황에 맞는 순종을 할 수 있습니다. 각자에게 맞게 주어진 인생을 하나님을 위해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치 각 사람에게 다른 달란트를 주신 것처럼, 주신 것으로 만족하고 그 말씀에 따라 충성스럽게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한 주석가는 미술가를 비유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훈련 중인 미술가처럼 다른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닌 자신에게 주어진 대리석 덩어리로 자신의 작품을 조각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나에게 주신 것으로 나의 수준에 맞게 하나님을 위한 작품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됩니다. 나에게 주신 것에 만족하고 형편이 허락되는 대로 선을 행하며 나누어 주고 하늘에 투자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있는 영생을 취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면서 오늘 세 가지 질문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어디에 둘 것인가?” 우리 마음과 소망과 터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높은 곳에 마음을 두지 말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가난한 사람이나 나보다 부족한 사람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을 수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이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인 영생을 취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선을 행하고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영원한 하늘에 터를 쌓아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두 구절을 통해 디모데 전서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딤전 6:20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딤전 6:21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개인적으로 주는 마지막 권면과 끝맺는 기도입니다.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바울은 디모데뿐만 아니라 교회를 생각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거짓과 맞서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진리를 지키며 말씀에 따라 자격 있는 일꾼을 세우며 경건에 이르도록 훈련할 뿐만 아니라 악을 피하고 선을 따라 살고 욕심을 버리고 자족과 너그러운 마음을 기르며 살아갈 때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교회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은혜가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우리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안 됩니다. 은혜로 우리가 여기까지 왔고 은혜가 있기에 주님에까지 갈 수 있습니다. 은혜를 누릴 수 있는 말씀이 여기에 있고 진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은혜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교훈과 우리의 삶을 더 복되게 하는 귀한 가르침이 성경에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여러분에게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을 어디에 두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진리의 말씀 안에 여러분의 인생을 두시겠습니까? 진리의 바른 교훈을 따라 여러분의 인생을 정돈하시겠습니까? 그 진리에서 벗어난 것이 있다면 명령과 다른 동작을 취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고쳐 가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을 진리의 말씀인 성경에 두고 주님의 변함없는 은혜를 의지한다면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