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경, 그 놓칠 수 없는 유익
본문: 디모데후서 3장 14-17절
설교자: 이 병 권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옥스퍼드 출신의 복음주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는, 만약 자신이 마귀라면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을 못 믿게 하고 그 권위에 도전하게 하며 그 신뢰성을 의심하게 하고 성경을 접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습니다. 마귀가 하는 일은 어떻게 해서든 사람들이 성경을 믿지 못하게 하고, 성경을 멀리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마귀가 원하는 대로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얼마나 믿고 계십니까? 성경의 권위를 어떻게 받아들이시고 계십니까? 성경을 온전히 신뢰하고 가까이 하고 계십니까? 지금 여러분에게 마귀가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전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오늘 성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함께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성경, 그 놓칠 수 없는 유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자신의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쓴 편지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을 내다보며, 아버지의 마음으로 디모데에게 권면과 격려의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유언과도 같은 편지입니다.

디모데가 겪고 있는 현실은 그리 순탄치 않았습니다. 호락호락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증명해주듯이 바울은 사람들의 삶의 태도를, 인간의 타락한 모습을 열아홉 가지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2-). 이것이 디모데가 처한 환경이었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디모데가 맞서야 할 악은 점점 더 세력을 떨치며 그를 어렵게 할 것입니다. 그는 승리의 날을 바라보며 영적인 전투를 대비해야 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이점을 잘 알고 극복하기를 바라며 경고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12). 바울은 말씀을 위해 살고 그것을 당당히 드러내며 말씀에 따라 사는 모든 믿는 자가 겪게 될 고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과 다른 가치관으로, 세상과 다른 목적과 방법으로 사는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뭔가 손해 보는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으며 다른 사람의 정당하지 않은 질책이나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세상이 주는 일시적인 만족을 거절하신, 세상이 자랑하며 보여주는 쉬운 길을 마다하시고, 사람들이 가기를 꺼려하고 가지 않는 어려운 길을 걷고 계시는 여러분. 몰아치는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많은 수고와 어려움을 감수하며 인내하시는 유평교회 성도님들. 그 모든 어려움을 이기며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 주님을 더 닮아가기를 소원하시는 사랑하는 형제님 그리고 자매님.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한 오늘 본문 말씀을 주목해보십시오. 이 말씀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15). 이 말은 “여전히 너에게 어려움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너를 힘들게 할 것이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거라”라고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디모데야! 너는 네가 배웠고 확신한 이 일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어라” “우리에게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앞으로도 별로 달라질 것은 없다. 오히려 더 안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할 일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디모데야, 네가 하고 있는 이 일을 앞으로도 계속 해나가거라”

세상은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를 대적하고 우리를 시험하며 넘어지게 만듭니다. 디모데가 직면했던 문제들,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는 차이가 있지만 우리도 겪고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사도 바울은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신실하게 따르고 순종할 때, 그런 우리에게서 사람들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지금 당장은 그 결과가 드러나지 않을 수 있지만,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결과가 없을 수 있지만, 하지만 당신이 정말 주님을 따르고 있다면 그러한 결과와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계속하십시오.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생각하지 말고 주를 신뢰함으로 계속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십시오.

세상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세상이 그런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상황이 어떠하든지 간에 관계없이 배우고 확신한 일에 계속해서 머물러 계시기 바랍니다.

디모데가 배우고 확신한 일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다시 말해 우리가 배우고 확신해야 하는 일입니다.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14-15).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그의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성경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진리를 바울로부터 배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과 함께함으로 그가 무엇을 목표로 하고 사는지 실제적으로 보고 배웠던 것입니다.

여기서 '어려서부터'에 사용된 단어는 ‘유아’를 뜻하는 것으로 ‘복중에 있는 아이’나 ‘젖먹이’를 가리킬 때 쓰는 단어입니다. 디모데는 정말 어릴 때부터 성경을 배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경이 디모데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셨습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배웠고 무엇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것이 성경이라면 여러분은 계속 그것에 확신을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나의 감정이나 경험이 아니라, 사람들의 판단이나 기준이나 생각이 아니라, 세상의 문화가 어떻게 바뀌든지, 가치가 어떻게 변하든지, 세상이 도대체 뭐라고 말하든지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바 성경에 확신을 두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성경을 배우고 확신을 가지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경에 대해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이어지는 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뿐만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16-17).

이 말씀은 성경에 대해 가르쳐주는 가장 중요한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을 결정하는 중요한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어떻게 믿고 있느냐가, 여러분 삶의 모든 것에 영향을 주고 여러분이 내리는 모든 결정을 좌우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이 성경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성경의 본질’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16).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어느 날 하나님이 감동을 받아서 그 결과로 성경이 만들어졌다는 말은 아닙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호흡을 불어넣었다’ 또는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었다’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는 구약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던 장면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흙으로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생령’, 곧 육체와 영혼을 겸비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벧후 1:21을 참고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따라서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말씀의 의미는 성경의 기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각과 뜻을 사람들에게 알려 줌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록자에게 받아쓰기를 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인간저자의 교육, 환경, 배경, 개성 그리고 문체 등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 원본에 있어서 아무런 오류가 없이 인간의 언어로 기록하셨다는 것입니다. 참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 뜻을 우리에게 전달하시기 위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사람의 언어를 사용하셔서 자신을 표현하시고 자신을 계시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정확하고 오류 없이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에게 전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감동으로 된 성경은 진리입니다.

이처럼 성경의 기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져다줍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그의 대변인을 통해서 어떤 정책을 발표하면 그것은 대통령의 권위를 지니고 효력을 가집니다. 비록 대변인의 입술을 통해 전달되었지만, 그 말이 대통령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대통령의 권위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성경도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하나님의 권위를 가집니다. 따라서 성경이 우리의 삶의 최종적인 권위가 되고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선택과 행동에 있어서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한 모든 환경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이슈들을 성경에 비추어 평가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좋다고 해서 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무엇이 바른 것인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기에 모든 것의 참된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2층 예배당을 청소하고 의자를 재배치할 때의 일입니다. 한 형제님과 나름의 기준으로 의자를 정렬했습니다. 그런데 의자의 간격이 너무 좁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제일 앞에 있는 의자를 기준으로 여유 있게 다시 정렬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게 기준이 아니라고, 옆에 있는 의자를 기준으로 맞춰야 한다는 겁니다.

기준이 분명하지 않으면 혼란에 빠지고 불필요한 수고를 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삶의 기준이 성경이라면 우리 삶의 방향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성경을 신뢰함으로 성경이 말씀하는 것에 따라, 성경의 기준으로 내 인생을 정렬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본문 말씀은 ‘성경의 유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16).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 있으면 굉장한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 유익을 얻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러한 노력과 수고들은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성경이 얼마나 유익한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나 혹은 잊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고, 왠지 안 보면 안 될 것 같아서 억지로 보게 되는 것이 성경일까요? 그래서 성경을 보고 나면 그래도 말씀을 봤으니까 하는 뿌듯함이 성경이 주는 유익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유익을 주며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합니다. 그러면 어떤 면에서 유익한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성경은 교훈하여 주기 때문에 유익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에 대해서 가르쳐줍니다. 교회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이 세상에 대해서 알 수 있도록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참 진리가 무엇인지 교훈하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을 알지 못한다면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바르고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경이 주는 교훈이 필수적인 것입니다. 성경이 주는 교훈에 대해서 무지하다면 우리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 잘 모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청년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젊은이, 젊은이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그랬더니 청년이 대답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믿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청년은 대답합니다. ”교회는 제가 믿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질문자는 약간 짜증이 난 얼굴로 세 번째 질문을 합니다. ”그럼, 자네와 자네 교회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그랬더니 청년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와 교회는 같은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서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알고 확신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성경은 유익합니다.

또한 성경은 책망하여 주기 때문에 유익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책망하여 행동을 다르게 할 수 있도록 깨우쳐줍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거나 우리가 일부러 무시하는 부분들도 드러내십니다. 성령님께서 성경으로 우리 안의 죄나 어리석은 모습을 꾸짖어주시는 겁니다. ‘책망이 유익한 것인가?’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책망은 죄짓기를 잘하는 우리를 돌이켜 회개하게 만듭니다. 책망이 없으면 우리는 우리 멋대로 살고 돌이키지 않을 것입니다. 어떠한 잘못을 해도 아무런 책망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절대로 유익한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책망을 받으며 살고 계십니까?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책망 받을 가능성이 줄어드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어른이 되면 책망 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면이 있겠지만, 한편으로 나를 책망할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들기 때문에, 또는 내가 책망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발전이 둔하고 성장이 더딘 건지도 모릅니다.

그런 우리를 성경은 책망합니다.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지적하시고 책망하십니다. 얼마나 다행스런 일입니까? 그러니 우리는 성경이 우리를 책망할 때 열린 마음으로 듣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익이 없습니다.

스데반이 설교했을 때 그가 전한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찔림을 받은 자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큰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귀를 막고 달려들어 스데반을 죽였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이 행동 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귀를 막고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듣고 싶은 것만 적당히 걸러서 들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때로 책망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감사함으로 나를 돌아보고 회개함으로 반응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성경은 바르게 하여 주기 때문에 유익합니다. ‘바르게 한다’는 말은 책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회복’이나 ‘개혁’을 의미합니다. 책망이 우리의 죄나 어리석은 모습을 드러내준다면, 바르게 함은 그러한 잘못을 바로잡아 주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바르게 하는 과정은 책망과 함께 반드시 따라와야 합니다. 그냥 책망만 한다면 우리는 좌절감이나 죄책감에 빠질 것입니다.

만약 의사가 환자를 진찰을 하고 나서,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 자세하게 가르쳐주고, 상태가 어떠한지 설명한 다음에 그냥 집으로 돌려보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환자는 자신의 병에 대한 정보를 얻었을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그 병으로 인해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바르게 함이 없이 책망만 계속 된다면, 그 책망은 우리를 깊은 수령에 빠지게 할 것이고 긍정적인 결과로 이끌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유능한 의사처럼 우리를 치유하고 회복시켜 줍니다. 훌륭한 교사처럼 학생의 잘못된 점을 알려주고 그것을 어떻게 바로잡을지 가르쳐주며,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의로 교육하기 때문에 유익합니다. 여기서 교육이라는 말은 자녀를 훈련시킨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 바탕에는 아이를 어른이 될 때까지 지도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바로잡을 뿐 아니라, 마치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바른 상태에 머물 수 있도록 우리를 훈련합니다.

아이들은 한 번 바로잡는다고 해서 계속 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바르게 되는가 싶다가도, 금세 또 잘못된 행동을 하곤 합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가르친 것을 적용하여 훈련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교육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을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익숙하고 편합니다. 훈련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나 같은 수준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아니 더 나빠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냥 내버려 둔다면 거듭해서 실수를 반복하고 어리석음을 드러낼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것을 막아줍니다. 우리를 의로 교육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훈련시켜 주는 것입니다.

요즘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을 가야할 때도 별 걱정이 없습니다. 길을 잘 안내해주는 내비게이션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길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얼마나 유익한지 모릅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에서 마치 내비게이션과도 같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알려줍니다. 때로 우리가 그 길을 벗어나게 되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리고 벗어난 길에서 다시 올바른 길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인도해줍니다. 그래서 최종 목적지를 향해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안내하고 우리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다른 어떤 것과도 비길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며 의로 교육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주는 이러한 유익은 우리를 어디에 이르게 할까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이루기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은 ‘성경의 목적’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17).

이 말씀은 하나님이 개개인을 향하여 품고 계신 구체적인 목적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하여 그분의 진리를 계시하셨고, 그들은 그것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기록한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여기서 ‘온전하게 하며’ 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여러분이 어느 회사의 사장이 되셨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어떤 사람을 직원으로 뽑으시겠습니까? 회사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뽑을 것입니다. ‘온전하게 하며’라는 것은 일자리에 꼭 맞는 사람에게 쓰는 표현입니다. 쉽게 말해 온전하게 한다는 것은 일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격 없는 우리를 예수님의 공로로 조건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해서는 그 모습 그대로 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적합하도록 빚어 가시는 겁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그 일을 하십니다. 다시 말해, 성경은 우리가 모든 선한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를 갖추어줍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갖추어져 모든 종류의 선한 일을 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춘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책임들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한 일은 재능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쓰실 만한 사람이 되어야 선한 일을 잘 감당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다 부족함이 있습니다.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우리를 준비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도록 우리를 빚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낮추시고 우리의 인격을 다듬어 가십니다. 말씀으로 지혜를 주시고 마음의 눈을 밝게 하시며 믿음을 견고하게 하십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해야 하는 ‘선한 일’ 앞에는 ‘모든’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교회와 관련된 일만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모범적인 성도가 사회에서는 불량 시민이 되고, 주일에 천사 같은 사람이 평일에는 마귀처럼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예배당에서 뿐만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주일뿐만 아니라 주중의 모든 날에, 교회적인 일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겸손히 말씀을 받아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굳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성경은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고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미국에 “평평한 지구 학회”라는 특이한 이름의 단체가 있습니다. 1956년부터 시작된 이 단체는 지구가 둥근 것이 아니라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협회의 회장인 찰스 존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초등학교에서 지구본을 처음 보았을 때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우주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을 비롯해 그 어떤 증거를 제시해도 믿지 않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이 이와 같을 때는 없습니까? 설사 그것이 지금까지 내 생각과 맞지 않더라도, 때로 나를 힘들게 하더라도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고, 말씀을 환영하며 받아들여야 합니다. 고정관념과 편견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과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냥 피상적으로 지나치지 말고 말씀을 공부하며 깊이 그 의미를 묵상하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핑계를 대며 변명하려고 하지 말고, 순종하려고 애쓰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그래야 우리가 변화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갖추어 질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길을 잃을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고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 주의 말씀은 우리 발에 등이요, 우리 길에 빛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우리 인생의 최고의 안내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로 우리를 이끄시며, 유능한 의사처럼, 훌륭한 교사처럼, 자상한 부모처럼 우리를 양육하며, 모든 선한 일에 적합하도록 우리를 갖추어 줍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을 귀하게 여기도록 합시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권면하신 것처럼 이 성경을 가까이 하고 주야로 묵상하며 그 가운데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도록 합시다. 그리하면 우리의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으로 미국과 유럽을 흔든 전도자 D.L 무디의 성경에는 그 여백에 알파벳 T와 P가 잔뜩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그것을 보고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무디는 웃으면서 T는 tried, ‘시도해 보았다’의 약자이며 P는 proved, ‘증명되다’의 약자라고 대답했습니다. 무디는 성경을 믿음으로 실천했고, 그 결과 말씀이 증명됨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우리의 인생을 걸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모든 약속을 하나님이 보증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성경을 읽고, 읽은 말씀을 실천해 보십시오. 한번 시도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말씀의 가치를 증명해보이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