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경이 말하는 침례1
본문: 여러 본문
설교자: 조정의

유평교회는 오래전부터 성경이 말하는 침례에 순종해 왔습니다. 하지만 아직 성경이 말하는 침례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침례식을 앞두고 3차례에 걸쳐 성경이 말하는 침례에 관해 말씀드리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침례의 방식과 의미에 대해 배워보겠습니다.

먼저 용어 정리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보통 “세례”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사실 개역 개정 성경에는 “침례”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럼 “세례”라는 표현이 맞을까요? 아니면 “침례”가 맞을까요?

“세례”와 “침례”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례(예)”는 예식, 예절, 예의를 뜻하고, 앞에 있는 글자만 서로 다릅니다. “세례”의 “세”는 ‘씻다’라는 뜻을 갖습니다. 그래서 “세례”는 물로 씻는 예식을 총칭합니다. 영어로는 ‘wash’인데, ‘그릇을 씻다’라는 뜻을 가진 ‘Wash the dish”는 그릇을 씻는 여러 방식을 총괄하여 말합니다. 그릇을 물에 담글 수도 있고, 흐르는 물에 씻을 수도 있고, 물을 뿌려서 씻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물로 씻는 것을 “wash”(‘씻다’)라고 합니다.

반면, “침례”의 “침”은 기본적으로 ‘잠그다’, ‘담그다’라는 뜻을 갖습니다. 물에 완전히 잠그는 것, 담그는 것을 의미합니다(immerse). 그래서 “침례”라고 말하면 물에 완전히 잠그는 방식의 예식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념적으로는 세례가 물로 하는 모든 방식의 예식을 말하기 때문에, 물에 잠그는 방식인 침례를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어떤 방식의 예식을 지지할까요?

성경은 ‘물에 잠그는 예식’인 침례를 지지합니다
몇 가지 이유에 있어서 성경은 ‘물에 잠그는 예식’인 침례를 지지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세례를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 ‘밥티조’가 ‘잠그다’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밥티조’는 예식으로서 세례를 베풀거나 세례를 받는 것을 가리킬 때 가장 많이 사용되었고, 다른 의미로는 ‘뿌리다’, ‘씻다’, ‘잠그다’, ‘담그다’를 내포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표현이 있으므로 예식으로서 세례가 씻는 것이나 물로 뿌리는 것을 허용한다고 볼 수 있지만, 성경에서 ‘씻다’, ‘뿌리다’를 가지고 이 단어가 사용될 때엔 예식으로서가 아니라 몸을 씻는 것(막 7:4, ‘목욕’)이나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것(눅 11:38)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식을 가리킬 때는 ‘잠그다’와 ‘담그다’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리가 있습니다.

둘째, 성경이 묘사하는 세례의 장면이 ‘물에 잠그는 예식’인 침례를 지지합니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을 통해 세례를 받으실 때 물이 많이 있는 요단강으로 오셔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셨습니다(막 1:9-10). 머리에 뿌리거나 붓기만 해도 된다면 두 사람이 강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빌립이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세례를 베풀 때 역시 물이 많은 곳에 두 사람이 내려가 세례를 행하고 물 위로 올라왔습니다(행 8:38-9). 이를 통해 성경이 묘사하는 세례의 모습이 뿌리거나 씻기보단 물에 잠그는 방식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성경이 말하는 세례의 의미를 ‘물에 잠그는 예식’인 침례가 더 분명히 드러냅니다. 골로새서 2장 12절에서 세례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2)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는 것을 가장 잘 묘사하는 방식은 이마에 몇 방울의 물을 뿌리거나, 머리에 물을 붓는 것보다는 물에 완전히 잠기는 것입니다. 침례가 더 분명하게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보여줍니다.

넷째, 초대교회의 세례 방식이 ‘물에 잠그는 예식’인 침례를 지지합니다.

네 가지 증거를 통해 우리는 성경이 ‘세례’라고 말할 때, 다양한 방식의 예식이 아니라 ‘물에 잠그는 예식’인 침례를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온 ‘세례’를 무조건 ‘침례’로 바꾸려고 할 필요는 없지만(예: 세례 요한이 아니라 침례 요한으로), 적어도 성경이 지지하는 세례의 방식이 ‘침례’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침례는 구원의 실재가 아니라 외적 증거입니다.
침례가 생소한 사람은 왜 교회에서 침례를 강조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마치 침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침례가 구원의 조건이나 근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게 잘못 가르치는 종교집단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가톨릭이 그렇게 가르칩니다. 가톨릭 교과서 제2부 교회의 일곱성사 중 제1절 세례성사에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1257) 세례는 복음을 듣고 이 성사를 청할 수 있는 사람들의 구원에 필수적이다
1258) 교회는 영원한 행복에 들기 위한 확실한 보증으로 세례 이외의 다른 방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1263) 세례를 통하여 모든 죄, 곧 원죄와 본죄, 그리고 모든 죄벌까지도 용서 받는다

가톨릭이 예수님의 죄 사함이나 십자가 공로를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세례 예식을 가르칠 때 이처럼
1) 세례가 구원에 필수적이다 
2) 세례가 구원의 확실한 보증이다 
3) 세례는 죄를 용서하는 효력이 있다
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정말 성경이 말하는 세례일까요?

첫째, 성경은 침례가 아니라 “믿음”이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가르칩니다.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행 15:1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9-10)

특별히 사도행전 15장의 사건은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할례가 구원에 필수적인지 공적으로 논의했던 사건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할례는 오늘날 세례보다 더 강한 의미를 가진 예식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필수적으로 가져야 할 표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분명히 결론을 내렸습니다.

빌립보 감옥 간수에게 복음을 전할 때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고 명령하고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침례는 그들이 구원받은 이후에 행해졌습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분명히 말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침례는 구원의 조건으로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침례는 구원에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믿음이 구원에 필수적입니다.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둘째, 성경은 침례가 아니라 “성령”이 구원을 보증한다고 말합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엡 1:13-14)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 1:22)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후 5:5)

구원의 기업, 그 보증이 되는 것은 “침례”가 아니라 “성령”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구원을 인치시는 보증이 되십니다.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지는 구원의 보증으로 하나님이 주신 분은 바로 성령님입니다. 구원의 보증은 침례가 아니라 “성령”이라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분명한 진리입니다.

셋째, 성경은 침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이 죄 사함의 능력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막 2:5)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 10:43)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죄 사함은 ‘믿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받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말씀에 따르면 그 근거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바 된 그리스도의 보혈, 속량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죄를 씻기는 것은 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6절?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

이 말씀은 조금 혼동을 가져옵니다. 믿는 것뿐만 아니라 세례를 받는 것이 구원을 얻는 조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강도는 세례를 받지 않고 낙원에 주와 함께 있을 것이란 약속을 받았고(눅 23:43), 이방인의 첫 열매 고넬료와 그 가족 역시 물로 침례를 받기 전에 성령이 임하여 구원을 받았다는 증거를 얻었습니다(행 10-11장). 그뿐만 아니라 앞에서 살펴본 대로 신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죄 사함을 받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습니다. 성령께서 이를 확실히 보증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마가는 이렇게 표현한 것일까요? 그것은 “믿는 사람”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이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당시에 “믿는 사람”이 필수적으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이라고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몇 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했을 때 많은 사람이 믿었고, 그 후 남녀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행 8:12). 시몬도 믿고 즉시 세례를 받았습니다(행 8:13). 사도행전 18장 8절을 보면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었는데, 그때 바울이 전도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습니다. 여기서 누가는 고린도 사람이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하는데, 그리스보와 그 집안 식구들은 믿었다고만 말합니다. 문맥상 그들 역시 세례를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믿었다”와 “믿고 세례를 받았다”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 필수적으로 세례를 베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침례는 구원의 필수적이지 않고, 구원을 보증하는 것도 아니며, 죄 사함의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고, 구원을 보증하는 것은 성령이며, 죄를 사하는 능력은 오직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을 얻은 사람이 필수적으로 침례에 순종한 것이 성경이 말하는 사실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여러 가지 사회적, 경제적 핍박을 감수하면서 침례에 순종했고, 교회 역사 가운데 침례에 순종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성도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구원의 필수조건이 아닌 침례, 왜 그렇게까지 순종해야 할까요? 우리는 마지막으로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순종해야 할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침례에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침례를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하셨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가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그 크신 은혜로 창세 전에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고, 아들 하나님은 그 크신 은혜로 자기 피로 우리 죄를 사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그 크신 은혜로 우리의 구원을 영원히 보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침례에 순종함으로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우리 앞에 선 증인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침례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실재를 외적으로 증거하는 순종의 행위입니다. 복음의 증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