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구원에 이르는 지혜
본문 : 디모데 후서 3장 16절~17절
설교자 : 조  정  의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은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는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기독교의 위기는 성경의 위기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지난 시간에 창세기 1:1의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오늘은 ‘성경’을 가지고 그것의 권위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위기’라고 말하는 부정과 부패, 기독교에서 흘러나오는 잘못된 교리들은 성경의 본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오는 것들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시기에 그런 것들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느끼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본문 비평학자, 바트 어만은 ‘성경 왜곡의 역사’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믿는다. 그러면 결론은 분명하다.’라는 말에 나는 이렇게 응답한다. 하나님이 그 말씀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을 전해주는 책이라고 당신이 옆에 끼고 다니는 책이 만일 인간의 말을 담고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성서가 낙태 문제와 여성 인권 문제와 동성애 문제와 종교적 패권주의 문제와 서구식 민주주의 문제 등 현대 사회의 제반 문제들에 대해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가 성서를 거짓된 우상으로 삼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살고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성서가 우리 삶에 대한 이러한 종류의 무오한 지침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할 명백한 이유는 많다”

성경은 인간이 쓴 책이고, 그 책은 현대 사회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다는 그의 생각에 동의하십니까? 이 책은 기독교서점 협회 베스트셀러이고, 문화관광부 교양도서(2006)로 선정되었으며 대한성서공회 총무와 성공회 대학원 교수, 서울대 종교학 교수가 추천사를 썼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추천한 책입니다.

CBS기독교 방송에 ‘신학펀치’라는 프로그램은 저명한 신학 교수들을 불러 놓고 토론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학자는 사도 바울의 명령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를 행할 것에 대해 명령한 것이 아니라 그런 방향으로 살면 좋겠다는 권면이라고 말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명령이 문자 그대로 행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살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제안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담당하고 있는 학자들이나 목사들의 생각에 있습니다.

서울대 천체물리학부 우종학 교수는 진화론을 지지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의 자연과학 공개 강연은 1500명의 학생이 수강하는 수업인데, 거기서 그는 “지구의 나이가 수백 억 년이든 1만 년이든, 진화가 일어나든 말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백성에겐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참 포용력 있는 생각이라 여겨지십니까? 왜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들이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이런 사태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디모데후서는 AD 66-67년,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으면서 자신의 영적인 아들인 동역자 디모데에게 쓴 편지로, 초대교회 전통과 편지 자체에 드러난 표현들을 볼 때 그는 아마도 죽음을 앞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선포하고 세례를 주어 제자를 삼는 이 일에 목숨을 다하고 있었고, 이제 죽음을 앞두고 유언을 남기듯 이 말씀으로 디모데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소제목은 ‘마지막 가르침’입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1-5).

이 말씀은 2천 년 전에 쓰인 것인데 마치 오늘날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특징은 바로 이것,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인정하나 그 권위나 능력은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6-7).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거짓교사입니다. 악한 행실을 가지고 경건의 모양만을 가지고 있는 교사들이 사람들을(“어리석은 여자”) 유인하는 것입니다. 그 가르침을 받는 여자는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습니다.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그 가르침으로 진리에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10절은 “나의 교훈과 행실과”로 시작하지만 원어와 영어성경에서는 “그러나 너는”으로 시작합니다. 바울은 거짓교사들에 대해 말한 뒤 “그러나 너는” 달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헬라어의 앞부분은 강조).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10-11). 디모데에게 너는 이 교훈을 붙들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보여주었던 삶의 간증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13절에서 악한 사람들은 더욱 악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13). 그들은 다른 사람을 속이고 자기 스스로도 속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14)고 말합니다.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14-15). 그는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사도 바울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에게 믿음 가운데 확신을 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성경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15). 거짓교사들의 지식은 끝내 진리에 이를 수 없지만,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성경이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본문을 가지고 ‘구원에 이르는 지혜’에 대해 3가지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성경의 근원, 성경의 본질, 성경의 목적입니다.

성경의 근원

우리의 말에는 권위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와 어른, 공무원과 대통령이 하는 말이 다릅니다. 그 말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고 그 직분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극에서 ‘어명’이라고 했을 때 백성들이 예를 갖추고 듣는 것과 같습니다. 왕이라는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은 성경이 누구의 말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16). 여기서 “모든 성경”은 무엇일까요? 일차적으로 구약성경을 가리킵니다. 앞 구절에서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라고 말했는데,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접한 성경은 구약성경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신약은 쓰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는 신약성경도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전후서에서 전하여 준 것들(“나의 교훈”)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복음서를 가리킵니다. 또한 벧후 4:15-16에서 베드로는 “바울이 받은 계시”라고 말하면서 그의 서신서들을 성경으로 분류합니다. 즉 복음서와 바울 서신, 일반 서신 등의 모든 성경을 이 말씀에서 말하는 “모든 성경”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모든”이라는 말은 각각의 성경이 빠짐없이 그렇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성경을 이루고 있는 각권의 책들, 그 책을 구성하고 있는 단락과 문장, 단어들이 모두 각각 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다고 말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16). 여기서 “감동”은 예술가의 어떤 영감이나 어떤 상황이 감동적일 때 쓰는 말과는 다릅니다. 원어에는 이것이 ‘하나님’과 ‘호흡하다’의 합성어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4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이 받아쓰기라는 견해입니다(기계적 영감설). 성경의 저자는 자신의 문체나 개성을 반영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이 부르시는 대로 받아적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성경이 예술작품이라는 견해입니다(동력적 영감설). 하나님께서 성경 저자들에게 강력한 동기를 주셔서 기록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특징을 담아 글을 쓰게 되는데 이 때에 성경은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시작했지만 인간 저자들의 실수가 반영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성경이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견해입니다(유기적 영감설). 인간 저자가 자신의 문체와 개성을 가지고 글을 썼지만 하나님의 주권으로 하나님이 드러내시고 싶었던 그대로의 말씀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성경이 평범한 글이라는 견해입니다(자연적 영감설). 성경이 인간이 쓰는 어떤 글과도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무엇이 가장 올바른 견해일까요? 성경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옮겨적은 부분도 있지만, 그 외의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개성이 드러나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어떤 오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인간이 쓴 어떤 책과도 다릅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한 다른 견해들이 있습니다. 성경의 일부만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고 나머지는 인간에 의해 쓰였다는 견해입니다(부분적 영감설). 또 다른 견해는 죄, 하나님, 사랑, 은혜와 같은 것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지만 문장, 단어는 인간이 쓴 것이라는 견해입니다(사상적 영감설). 그러나 ‘완전 축자영감설’은 어떤 특정한 부분이 아니라 각각의 성경 구절이 다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말씀이라고 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모든 성경의 구절, 표현, 단어들이 각각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듯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감독)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21). 하나님께서 특정 저자들을 영감시키신 것도 아닙니다. 베드로가 쓴 모든 글이 성경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 성경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봤습니다.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말씀에 있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제가 저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대할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그냥 땅에 떨어진 것은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빛이 있으라” 했을 때 빛이 있었고,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셨을 때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는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복 주리라는 말씀도, 구약의 예언자들, 선지자들을 통해 주신 예언의 말씀들이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만드신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분이 오셔서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에서 하나님의 권세가 나타났습니다. 질병이 고쳐졌고, 성난 파도가 순종하였으며, 죽음이 죽은 자를 내어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실 때 하신 약속, 보혜사를 보내주신다는 약속도 이뤄졌습니다. 성령님은 오순절에 사도들의 입을 열어 예수님을 전파하게 사셨고 사도행전 전반을 통해 복음을 전 지역에 전파하시고 죽은 영혼들로 하여금 새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이 말씀을 밝히 보여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십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에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본질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17). 교훈과 책망은 지식적인 것이고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 것은 실천적인 것입니다. “유익하다”는 것은 그것에 실제적인 능력과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짓교사들의 가르침은 진리에 이르지 못하는 것, 경건의 능력이 발휘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유익합니다. 우리를 진리로 가르치고 진리의 삶으로 인도합니다. “교훈”은 성경의 바른 교리를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창조,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죄, 거룩한 삶 등에 대해 올바른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런 것들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올바른 가르침들은,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오해, 율법주의 등 잘못된 교리들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지 지식적인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는 대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면 그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우리의 삶에 유익을 줍니다. 잘못된 삶의 방식에서 떠나 옳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우리로 하여금 경건의 능력으로 살 수 있게 해줍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3-4). 오늘날의 세상이 정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생각을 더 중요시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주관으로 성경과 하나님을 판단합니다. 내가 듣고 싶은 말, 내가 좋아하는 스승과 그의 가르침을 따릅니다. 오직 성경만이 오늘날 잘못된 가르침에서 떠나 진리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전 4:2).

성경의 목적

성경은 우리의 지식과 삶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게 하는 유익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성경은 어떤 목적으로 주어진 것일까요?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17). 이것이 하나님이 모든 성경을 주신 목적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즉 구원받은 사람, 성도를 말합니다. 우리 중에 믿지 않는 분이 있다면 그에게 성경은 그저 좋은 교훈들이 담긴 책일 뿐입니다. 어떻게 하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가를 가르쳐주는 책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이 책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주신 특별한 목적이 있는 책,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이 말은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모든 선한 일을 위해 온전히 준비되게 한다”는 말입니다. 선한 일을 위해 준비되게 하는 것, 그것이 성경이 주어진 목적입니다. 그렇다면 “선한 일”은 무엇입니까?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것입니까? 그것도 포함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선한 일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대로 사는 것이 선한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였다”(요삼 1:11).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벧전 2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을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를,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고”라고 말합니다.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의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9-12).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광고판입니다. 그리스도인을 통해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와 사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구원의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우리를 준비시켜 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은 성경을 볼 때 가능합니다. 성경이 우리가 그 목적에 합당하게 살도록 우리를 준비하기 위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나 학문을 가지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성경을 통해 주셨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내면에는 성령님이 내주하십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요 16:13). 그리고 그 성령님은 성경에 있지 않은 새로운 것을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과 삶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끌어주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그 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말세에 여러분 자신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기 원하신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보셔야 합니다. 교만과 비방의 죄를 버리기 원한다면, 부모를 공경하고 싶다면, 감사와 거룩한 삶, 진리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면 그 어떤 세상의 것들에 눈을 돌리지 마시고, 성경에 눈을 돌립시다. 이 성경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경건의 능력을 누리게 하고, 하나님의 구원 목적에 맞게 살게 할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이 성경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마음과 뜻과 생각, 힘을 다해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해야 합니다. 말씀에 비춰보아 나의 마음과 생각에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 말씀에 굴복하고 나의 삶을 기꺼이 수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사랑하신 선한 목자되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딤후 4:1-2a). 이 말씀은 저에게 늘 부담이 되는 말씀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서서 제 자신의 말을 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할 수 없기에, 늘 두려운 마음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권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어떤 학자들의 말처럼 인간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가진 모든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십니다. ‘어명’이라고 할 때 옷을 풀어헤치고 누워서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마땅한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과 삶을 바꿀 만큼 강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말씀이 가진 권위를 인정하고 매일의 삶 가운데 겸손히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