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서로 대접하라
본문 : 베드로전서 4:9
설교자 : 조정의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오늘은 이 짧은 구절의 말씀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저는 벧전 4:7-11을 하나의 시리즈의 말씀으로 여러분께 전달하고 있습니다. 모든 말씀들은 7절에 첫 문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우므로 더욱 힘써 이러한 일에 열심을 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을 내야 하는 것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근신하여 기도하고 정신을 차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마음을 두지 말고 하늘에 우리의 마음을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8절에서는 무엇보다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말세가 될수록 자기 자신을, 돈을, 쾌락을 더욱 사랑할 것인데 너희들은 서로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나서 오늘 살펴볼 본문에서는 그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방법으로 ‘서로 대접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강단에서 구체적인 명령이나 적용 따위를 잘 전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아침에 큐티를 하십시오’라든지 ‘매일 저녁 잠들기 전 기도하십시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선포될 때 여러분의 삶 속에서 그 말씀이 구석구석 적용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매우 구체적인 적용이 등장하는 구절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에 매우 구체적인 적용으로 ‘대접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대접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알지 못했을 때 천사들을 대접했고,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출하고 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규례를 주시기를 ‘나그네를 대접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출 22:21; 신 14:29).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헬라인 문화에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에게도 역시 이것은 아름다운 미덕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러합니다. 사회적으로 볼 때 대접하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입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대접이라는 것은 더욱 큰 의미가 있습니다. 초대교회에 갑자기 사람들이 더해져 하루 아침에 3천 명이 더해질 정도였습니다. 당시는 오늘날과 같은 예배당이 없었으니 넓은 성전이나 광장에서 모였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집집마다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 2:46).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누군가가 자신의 집을 제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집을 치우고 음식을 준비하고 손님을 맞을 준비를 했을 것입니다. 날마다 그러한 대접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편지를 받고 있는 소아시아 지역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각 성을 다닐 때 머물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당시 그곳은 이교도적인 문화가 팽배했기에 그리스도인이 머물 수 있는 장소가 적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성도가 여행을 다닐 때 집집마다 대접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고전 16:19),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골 4:15). 이 말씀들을 볼 때 누군가 가정을 개방해서 교회로서 모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행 16:15을 보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할 때 루디아가 구원을 받는데 그녀는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성도들마다 집을 개방했고 그 집이 바로 교회였던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대접에 대한 명령을 많이 합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마 10:11). 오늘 본문의 베드로의 명령은 그 “합당한 자”가 서로 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 12:13)고 했고, 히브리서 기자도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2)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요한이 칭찬했던 사람, 가이오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요삼 1:5). 그가 칭찬받았던 것은 나그네 된 형제들을 잘 대접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형제자매를 대접하는 것은 특별히 교회에게 요구된 사랑의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왜 손님 접대가 힘들까요. 우리나라 속담에 ‘숭어와 손님은 사흘만 지나면 냄새난다’ ‘손(님)은 갈수록 좋고 비는 올수록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집에 손님으로 왔을 때 사흘 동안 있다면 이제는 집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반응이 나올까요?

손님을 초대하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가 요구됩니다. 그것은 시간, 비용, 헌신하는 마음입니다. 모든 선택은 기회비용을 치르게 되어있습니다. 이 시간 설교를 들으면 이 시간에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포기하고 이것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손님을 접대하는 것도 이외에 다른 것들을 포기하고 손님에게 시간을 쏟겠다고 선택한 것입니다. 나의 개인적인 쉼이나 여가 생활, 취미생활, 일 등을 포기한 것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공부할 때 아내와 함께 공부하면서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방학이 되면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계획했는데 제 동생이 미국에 여행을 와서 2달을 지내고 갔습니다. 저희 부부는 기쁨으로 동생을 섬겼지만 저희들이 하고자 계획했던 많은 일들은 할 수 없었습니다.

대접하는 일에는 비용이 듭니다. 손님을 접대할 때 손님을 태워오고 태워가고 음식을 준비하고 그 손님이 사용하는 물과 전기 등이 소비됩니다. 제가 갔던 미얀마에서는 저희를 대접하기 위해 하나 뿐인 개를 죽여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아이를 키울 때도 생활비가 하나 하나 들어가듯이 손님을 대접할 때 비용이 듭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누군가를 대접할 때 헌신하는 마음이 요구됩니다. 손님이 불편한 점이 없는지, 관심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은 것들이 손님 대접이 어려운 이유입니다.

우리 교회는 주일에 방문하시는 분들이 매주 더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오시는 분들도 있고 타 지역에서 방문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멀리서 2-3시간을 차를 타고 오시기도 합니다. 그런 분들과 주일 오후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함께 식사를 나누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다른 모임이 있기도 하고 성경공부도 해야 하고 축구도 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시간과 비용, 헌신을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가족들과 쉬고 싶다, 다음날 출근해야 한다, 재미있는 것을 즐겨야 한다, 등의 이유로 우리 안에 헌신의 마음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세에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헌신의 마음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과는 반대되는 것입니다. 말세가 될수록 사랑하는 것, 섬기는 것이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에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서로 대접하되 원망 없이 하라는 말씀에서, ‘원망’의 의미는 ‘들리지 않게 혼자 중얼거리다’입니다. 손님이 집에 있는데 속으로 조용히 불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접을 하되 불평하는 마음 없이 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 섬기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눈치없이 이런 행동을 하지’, ‘과연 내 희생을 알까’, ‘왜 나에게 고맙다고 하지 않지?’ 등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한 원망 없이 헌신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대접하는 것은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는 말씀의 구체적인 실천입니다. 우리가 이것으로 인해 불평하는 것은 뜨겁게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명령에 따라 여러분에게 구체적인 명령을 드립니다. 서로 대접하는 일에 힘쓰십시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베드로가 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소유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로 갑옷을 삼은 군인이라고 했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대장이 되신 분입니다. 천지 만물을 지으신 분이 우리에게 이와 같이 명령하실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순종뿐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자기 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 아낌없이 주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순종하는 이유는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순종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했던 명령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실천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대접하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매주 여러분에게 기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실질적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세상에게, 그리고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가 말하는 것을 우리 스스로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까? 그것을 가늠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이 있습니다. 서로 대접하는 것입니다.

또한 대접하는 것에는 보상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 10:42)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갔을 때 주님께서 ‘그 때 고마웠다, 내가 힘들고 어렵고 배고팠는데 네가 나에게 베풀었던 사랑에 고마웠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주님은 직접 제자들에게 그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니라” 매주 매 순간 여러분들이 주님을 대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매주 성도를 대접하고 있습니다. 자매님들이 수고하여 매주일 점심을 교회에서 먹고 있습니다. 전날 미리 와서 재료를 손질하시고 주일 설거지가 끝난 뒤에도 뒷정리 하는 등 수고가 많으십니다. 그 일에 시간을 들여야 하고 비용을 사용해야 하며 헌신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주 거르지 않고 맛있게 점심을 먹고 있습니다. 교회에 새로 오신 분들도 타지역에서 방문한 분들도 그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참 잘하고 있는 일입니다. 이 일에 베드로의 마지막 명령을 주목하십시오. 그 일을 “원망 없이” 하시길 바랍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다면 우리도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구역집회를 하면서 우리는 가정을 개방하여 모입니다. 가정을 개방하면 청소도 해야 하고 음식을 준비해야 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에 있어서 원망 없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성도를 대접하십시오. 교회에 방문한 분들을 초대하여 대접하십시오. 제가 그레이스 교회에 참석했을 때 작은 소그룹에서 인사를 했는데 그날 두 가정에서 각자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느낀 것은, ‘이 교회가 만 명이나 모이는 교회인데 이렇게 사랑이 넘치는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지식으로 알아가는 교회가 아니라 사랑으로 드러나는 교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역시 그러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올해도 8월이 되면 위드바이블 캠프를 진행합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가정을 개방해달라고 요청할 것입니다.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는지 우리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드러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헌신하면서 대접할 수 있는 힘은 주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우리는 성도들의 필요를 돌보는 일을 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너희도 나그네였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출 22:21). 그 구원의 능력,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베푸신 은혜를 헤아려 보십시오. 그분이 우리에게 얼마나 겸손하게 대하셨으며 얼마나 헌신하셨습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내어주셨습니까? 그분은 이 땅에서의 모든 삶이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한 희생제물로서의 삶이었습니다. 주님이 어떤 비용을 제공하셨습니까? 주님이 피 값을 주고 행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베푸신 것을 우리만 누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존 웨슬리는 ‘내 신발장에 있는 신발은 가난한 누군가의 신발이고, 옷장에 있는 옷들은 가난한 누군가가 입을 옷들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주님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라고 이러한 것들을 허락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것들을 이 땅에서 누리고 산다면 그저 사라지고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으로 성도들 섬기고 대접한다면 영원한 썩지 않는 보상이 주어질 것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서로 대접하기를 힘쓰시길 바랍니다. 유평교회에 누군가가 방문했을 때 대접과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내가 너희를 떠나겠다 하셨습니다. 그분이 이 땅에 계셨다면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를 선포하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떠나시면서 이것을 너희에게 맡기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너희가 내 제자인 것을 알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뜨겁게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세상에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성경적인 교회는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교회입니다. 그것은 뜨겁게 피차 사랑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서로 대접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영광이 이 땅에서 드러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