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가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이사야 28:16
하였으니
7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시편 118:22
8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이사야 8:14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오늘 살펴볼 본문 말씀에서 사도 베드로는, 앞에서 살펴본 4-5절의 말씀을 확증하기 위해 구약성경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 베드로는 지금 소아시아 성도들을 대상으로 구약 성경을 강해설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설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라는 메시지입니다.

한글 성경에는 6절의 “보라”(사 28:16)로 시작하는 구절과, 7절의 “건축자들이”(시 118:22) 구절, 8절의 “부딪치는”(사 8:14) 구절이 안으로 들어 쓰여 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각각의 구절을 구약성경에서 인용했음을 나타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구약의 기록이 가리키는 대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이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 앞에서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마 21:42; 막 12:10; 눅 20:17). 사도들도 역시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행 4:11)라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말씀이 그저 과거의 역사적인 기록이 아닌, 힘 있고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것이 우리를 거듭나게 할 뿐만 아니라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갓난 아기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이 구약의 말씀은 B.C.1000년에 기록된 것이지만 당시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우리의 거듭남과 구원에 이르는 것에 직결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살아있고 능력이 있어서 영혼을 거듭나게 하고 구원에 이르기까지 자라게 할 것을 확신하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구원에 이르는 길, 예수 그리스도라는 유일한 구원의 길에 대해 말씀을 통해 보여주는 것입니다. 2천 년 전에 베드로가, 그리고 오늘날에 지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이 말씀을 대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인용한 구약의 세 구절은 동일하게,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4절)를 확증하고 있습니다.

6절의 인용구절은 “성경에 기록되었으되”로 시작합니다. 바로 구약성경 이사야 28장 16절을 가리킵니다.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문맥을 파악하기 위해 이사야 28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이사야 28장은 에브라임의 불순종과 불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입니다(사 28:1-3). 당시 바벨론의 공격을 받고 있었던 이스라엘은 하나님만 신뢰하고 의지하라는 말씀에도 불구하고 애굽을 의지하게 됩니다. 애굽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들과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들과 맺은 언약이 헛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본문의 인용구절; 사 28:16). 바로 이 말씀을 베드로가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온에 세우신 기초를 통해, 즉 다윗 왕조를 통해 역사하실 것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구원의 길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회복과 축복이 있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말씀을 신약의 성도들에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벧전 2:6). “내가 택한”은 바로 하나님이 택하신 것을 가리키고, “시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왕조를 말합니다. 즉 “시온에 둔 돌”은 바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 세우시고 결정하신 것을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길로 택하셨다면 그 법은 절대 바뀔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듣기에 그럴듯하게 들리는 또 다른 구원의 길이 있다고 주장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예수를 택하셨으므로 다른 모든 길은 거짓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보배로운 모퉁잇돌”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무 것이나 구원의 길로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그 자체가 귀하고 가치있는 것을 ‘보배롭다’고 말합니다. 당시 건축자들은 건물을 지을 때 가장 기초가 되는 모퉁잇돌을 매우 신중하게 골랐습니다. 그것이 건물 전체의 각과 균형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할 대상으로 삼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보배로운 분입니다. 구약을 통해 하나님이 세우셨던 수많은 지도자들을 생각해보면, 모세와 다윗 등 참 훌륭한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이었고 때때로 넘어지고 실패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보배로운 돌은 흠 없고 죄 없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실패하지도 넘어지지도 않으시는 온전히 의로우신 분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퉁잇돌”이 되셔서 그 위에 세워진 모든 사람의 기준이 되십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이 믿음은 지속적인 믿음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기대하고 소망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머리를 돌리는 믿음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하는 믿음,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그런 자들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모든 인생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께서 모퉁잇돌을 세우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모욕과 핍박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이 세우신 ‘모퉁잇돌’ 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기독교 안의 부정부패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오랜 역사를 통해 볼 때 다른 종교, 천주교나 불교가 저지른 비리나 부패가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만을 ‘개독교’라고 비하하고 모욕하는 이유는, 기독교가 ‘우리만이 진리이다’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상대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로, 한 마디로 ‘나도 맞고 너도 맞다’라는 사고가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천주교도 불교도, 모든 종교에는 나름의 구원의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시대에 절대적인 진리를 주장하면 비난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고, 그 외에 길이 없다’고 말한다면 여러분 역시 ‘개독교인’이라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기독교 내에서도 그런 사람은 사랑이 없고 고지식하고 꽉 막힌 사람이라는 비난을 들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는 분명히 하나님이 택하신 구원의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고 말합니다. 본문 7-8절은 이 구원의 길을 거절한 사람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7절).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은 보배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 예수님이 보배롭지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8절)가 되는 것입니다. 7절의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는 시편 118편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 시는 왕이 적군을 무찌르고 성전으로 돌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권을 무시한 다른 나라들이 “건축자들”과 같다고 말하고, 그들은 이스라엘을 무시했지만 이 이스라엘이 “모퉁잇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다윗의 왕권이 모퉁잇돌이 된다는 확신의 찬송인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건축자들”) 예수 그리스도가 별 볼 일 없는 사람(“버린 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장 보배로운 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대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에게 “너희가 거절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모퉁잇돌을 거절한 것입니다. 그것이 믿지 않는 자들이 심판받는 이유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성인’이라고 부르고 존경을 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퉁잇돌로 삼지 않는 것은 곧 그분을 버리는 것입니다.

8절에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는 이사야 8장 14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에게는 이 명령이 “거치는 반석”과 “넘어지는 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모퉁이 돌을 신뢰하라고 하시면서, 또한 어떤 이들은 이것을 결국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딪치는 돌”은 올무나 함정처럼 숨겨져 있다가 사람을 죽이는 돌을 말합니다. 그러한 위험한 돌이 되는 것입니다. ‘모퉁잇돌’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를 거절한 자에게 심판자 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8절에는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라고 했습니다. 순종하지 않을 때 그리스도를 인하여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심판자 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거절한 자를 심판하실 것이고 부끄러움이 드러나게 하실 것이며 영원한 멸망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말은 기독교인들이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 성경의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그분은 이것을 믿지 않고 거절한 모든 자들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온유, 자비하심은 세상 사람들에게 달콤하게 들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임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8절). 하나님이 예수님을 거절한 모든 사람을 멸망시키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의 삶도 변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곳에도 길이 있다고 말해선 안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어떤 것과도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이러한 믿음을 우리의 삶에 드러내야 합니다. 재물이나 권력, 명예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만으로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 나를 통해 나타나야 합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행복하고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을 입술과 삶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오늘날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빠른 속도로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당하고 있습니다. 동성애 등 하나님이 금하신 것들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유일한 구원의 길을 말할 때 그것이 법적인 문제에 맞닥뜨리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살아갈 때 우리에게는 결코 타협하지 말아야 하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세우고 택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과 진리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고 나의 입술과 삶으로 그것을 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