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무엇을 위해 살죠?

본문: 디모데후서 4장 1~4절

설교자: 이병권

 

오늘 말씀의 제목은 지난 8월에 출간된 책의 제목을 빌려왔습니다. 출간되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가수 박진영이 쓴 책입니다. 우리 표현으로 하면 구원 간증문 같은 책입니다. 그동안 자신이 가졌던 인생의 목표, 행복을 위해 추구했던 것들, 사랑, 돈, 성공, 이런 것들이 참 만족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성경을 통해 진지하게 인생의 답을 찾아가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박진영이 진리를 알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모르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살죠?”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없거나 틀린 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에서 참된 만족과 안식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하십니까? “무엇을 위해 살죠?” 이 질문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생각한 대답에 맞게 살고 있는지요?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마치 이 질문에 답을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바울이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말씀을 기록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충분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죠?” 라는 질문에 대해서 바울이 말하는 답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질문에 대한 바울의 답은 하나의 명령으로 요약됩니다. 참 중요한 명령입니다. 그 명령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바울이 이 명령이 하고 있는 상황, 그 분위기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이 명령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 것인지 얼마나 중대한 명령인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바울의 상황을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대략적으로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말 쉬지 않고 수고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고 힘을 다해 교회를 섬기며 헌신했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는 감옥에서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곧 죽음을 맞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이 지금 디모데에게 마지막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명령하기에 앞서서 그만큼 중요한 명령이 잘 전달되도록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딤후 4: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여기 “엄히 명하노니”라는 말은 법정에서 맹세하고 증언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그동안 주님을 위해 사명을 다한 바울이 세상 떠날 날을 눈앞에 두고 디모데를 법정으로 초대합니다. 디모데를 초대한 이 법정에 누가 계십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바울은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서 엄숙하게 맹세하고 마지막 증언을 합니다. 이 법정에 초대된 디모데는 어떤 마음으로 이 증언을 듣게 될까요? 가벼운 마음으로 듣거나 대충 흘려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마음에 박히는 말씀으로 자신의 남은 인생, 평생을 두고 기억될 말씀으로 자신의 삶을 움직이며 목표가 되는 말씀으로 간직할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그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우리 마음에도 동일하게 새겨져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이 말씀이 우리에게도 엄숙하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도 때가 되었을 때 언젠가 그 앞에 서게 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우리도 심판하실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 때에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고 그의 나라를 완성하실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심판자로 다시 오셔서 그 나라를 세우시고 통치하십니다. 이 사실은 우리 인생의 목표를 바르게 하고 우리 인생을 다르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중이고 때가 되면 주님께서 우리 인생을 결산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 주님을 만날 날을 고대하며 자신뿐만 아니라 디모데 역시, 그리고 주를 따르는 모든 자들이 그 날을 바라보고 살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언젠가 주님 앞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할 때 “무엇을 위해 살죠?” 라는 질문에 바르게 대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바울의 답을 들어볼 차례입니다. 바울이 엄숙하게 우리 인생의 답을 주는 명령을 전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목표로 삼고 마음에 새겨야 할 명령, 2절에 나옵니다. 2절에는 5개의 명령이 있는데, 그 핵심은 가장 먼저 나오는 명령입니다. 바울은 이 명령으로 2절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전파하라

바울은 엄숙하게 이 명령을 전합니다. 전파하는 것은 왕의 사자로서, 메신저로서 왕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전파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것은 왕의 부름을 받았다는 것이고 왕이 전하는 메시지를 가졌다는 것이고 왕에게 위임을 받아 왕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전파하라는 명령의 중요함과 명령의 가치를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이 명령에 대해서 성실하게 반응하도록 우리를 자극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위임받은 자라는 사실이 이 명령에 충성하도록 우리를 도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명령에 대해서 어떻게 충성할 수 있을까요? 전파하라는 명령을 육하원칙에 따라 살펴보려고 합니다. 말씀의 순서에 따라 차례로 생각해보겠습니다. 먼저 ‘누가’ 와 ‘무엇을’입니다.

딤후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첫째로 ‘누가’에 대해서 살펴보면, 전파하라는 명령은 이 편지의 수신자인 디모데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이고 사도 바울의 영적인 아들인 디모데가 이 명령에 직접적인 대상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서신을 함께 받은 자들, 특별히 에베소 교회에서 디모데와 함께 수고하는 자들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바울이 그의 편지에서 전하는 많은 명령들이 그러하듯이 간접적으로 주님을 믿는 모든 자에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명령은 받은 은사와 분량에 따라 순종하는 모습이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모두는 전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고 이 명령은 우리 모두가 따라야 하는 명령입니다.

둘째로 ‘무엇을’에 대해서 살펴보면, 우리가 전파해야 하는 것은 말씀입니다. 말씀을 전파하라고 명령합니다. 여기 말씀이라는 단어 앞에는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이 말씀, 저 말씀, 그런 말씀이 아니라 ‘그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파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바로 ‘그 말씀’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세상의 논리와 철학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과 그 지혜와 그 교훈을 전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 바른 교훈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만들어 낼 권한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셨고 기록된 말씀을 교회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권한을 위임받아서 ‘그 말씀’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셋째와 넷째는 ‘언제’와 ‘어디서’입니다.

딤후 4:2 “…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우리는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전파해야 합니다.

여기 “항상 힘쓰라”는 말은 문자적 ‘위에 서다’는 말인데, 일반적으로 ‘다가오다’, ‘곁에서다’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곁에서다’는 말에서 의미가 확장되면 곁에서 언제든 바로 움직일 수 있다, 대응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확장된 의미로 ‘준비하다’는 뜻으로도 사용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확장된 의미로 사용되었기에 ‘항상 준비되어 있으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라는 말과 함께 이해하면 언제든 어디서든 말씀을 전파할 수 있도록 늘 준비하라는 명령입니다.

베드로는 이와 관련해서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벧전 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우리에게 언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기회가 되었을 때, 준비되었다면 말씀을 전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가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물었는데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시간이 얼마만큼 남아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힘쓰라, 항상 준비되어 있으라는 이 명령에 대해서 말씀 전파의 긴급함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시간이 주어진다면 시간제한이 없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어진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또 어떤 일이 생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준비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언제든, 어디서든 이 명령에 따를 수 있도록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회를 잡기위해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이 말씀에 대해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는 것은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자에게 적용을 해서 듣는 사람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상관하지 않고 어떻게든 무조건 말씀을 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무모하고 무례하게 말씀을 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듣는 자에 대해서 무례함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전하는 자에 대해서 나태함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준비된 자가 되어 가정에서 자녀들이나 부모님이나 배우자나 아직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 그리고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삶으로 그리고 입술로 말씀을 전하는 일에 수고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이 귀하게 전해지도록 지혜롭게 이 일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질문이 다섯째 질문입니다. ‘어떻게’ 전파해야 합니까?

딤후 4:2 “…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해야 합니다.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계해야 합니다.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권해야 합니다.

세 명령을 하나씩 살펴보면 경책하는 것은 틀린 생각을 바른 생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거짓을 바로 잡고 진리를 깨닫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논증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계하는 것은 책망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적하고 책임을 묻는 일입니다. 진리로 죄를 일깨우고 회개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권하는 것은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입니다.

세 개의 명령을 다시 정리하면 의심에 시달리는 사람은 말씀으로 논증하여 확신을 줍니다. 죄에 빠져 고통 하는 사람은 말씀으로 책망하여 건져줍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는 사람은 말씀으로 격려하여 세워줍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사람의 상태에 맞게 적절하게 처방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세 개의 명령에 대해서 기본 전제가 되는 것은 오래 참음과 가르침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말씀을 전함에 있어서 태도와 내용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태도가 좋다 하더라도, 오래 참음으로 사람에게 다가간다 하더라도 가르침이라는 말씀의 내용이 없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마치 밭에 씨를 뿌리지 않고 수고하는 것과 같습니다. 농부가 아무리 많은 수고를 한다 하더라도 씨를 뿌리지 않으면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아무리 공을 들여도 잡초만 거두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아무리 내용이 있고 내용이 바르다 하더라도 태도가 좋지 않으면 열매를 잘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전하는 대상은 사람입니다. 그만큼 그 관계 안에서 우리의 태도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선물이 오해되지 않도록 그에 맞는 포장이 필요한 것입니다. 계속되는 사랑의 수고와 오래 참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수고를 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열매는 우리 권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속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합당한 때에 주님의 일을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주어진 명령에 충성하며 기다리며 인내할 뿐입니다.

이렇게 전파하라는 명령에 대해서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를 다섯 개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하나가 남았습니다. 육하원칙의 마지막 여섯째 ‘왜’입니다.

딤후 4: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딤후 4: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3절은 우리 성경에는 생략되어 있는데 이유를 가리키는 단어로 시작됩니다. 명령에 대한 이유를 3절과 4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까? 때가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겪게 될 일을 미리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때는 디모데에게 다가올 미래를 말씀하고 있지만 바울이 앞서 3장에서 말세를 말한 것과 같이 디모데는 이미 이때를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는 계속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야 합니다.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말씀을 지혜롭게 전해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말씀을 전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라는 말씀에서 ‘받지 않는다’는 말은 단순히 전하는 말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바른 교훈을 고통 받는 것처럼 여긴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진리에 대해서 고난 받는 것처럼 생각하고 거절합니다. 진리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거부합니다. 고통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 자신에게 맞는 스승을 많이 두는 것입니다. 자기 입맛에 맞는 선생을 찾는 겁니다. 내가 듣기에 좋은 가르침, 내 마음을 편하게 하고 부담을 주지 않는 사람, 진리가 아닌 거짓에 좇으며 그렇게 자기 욕심을 채우는 것입니다.

구약의 거짓 선지자들이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거짓을 예언했을 때 사람들은 거짓을 좋아했고 거짓 선지자를 따랐습니다. 하지만 진리를 전하는 선지자는 미워했고 핍박했습니다. 지금도 그러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진리보다 듣기 좋은 거짓을 좋아합니다.

예를 들어, 의사가 누군가에게 식이요법을 말하며 먹으면 안 되는 것들, 잘못된 생활 습관에 대해서 경고하며 고칠 것을 권합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말을 들을까요? 정말 자신의 건강에 문제를 겪고 있는 환자라면 다르게 듣겠지만 건강에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듣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길들여진 입맛을 바꾸지 않습니다. 자기가 뜻대로 사는 겁니다. 딱히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경고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그러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바른 교훈을 받지 않습니다. 진리를 떠나 거짓을 선택하고 거짓을 따릅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제가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서두에서 말씀드린 책에 대해서 사람들의 리뷰를 좀 찾아봤습니다. 사람들의 평가는 좋지 않았습니다. 종교에 대한 거부감, 진리에 대한 적대적인 반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서부터 책을 덮었다, 종교적인 부분은 제외하고 읽으면 좋겠다‘ 이런 식의 평가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정작 저자가 이 책을 쓴 의도는 무시되고 그와 관련된 내용, 성경이 말하는 진리에 대해서는 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전파해야 하는 사람들의 상태가 이러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명령을 따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말씀을 전파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명령에 대해서 책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시대의 흐름으로 인해, 말세에 나타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인해 말씀을 전파하라는 명령이 무겁게 보이고 순종이 어려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일은 더 멀리 보는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의 반응,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습, 오늘의 답답한 상황과 우리에게 다가오는 어려운 내일보다 더 멀리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조금 더 먼 내일을 내다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말세보다 조금 더 멀리 보면 말세가 끝나는 날이 보입니다. 바로 그날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주님, 그 주님을 만나는 날, 우리에게 이 명령을 허락하신 주님, 그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그날을 내다보십시오.

우리의 내일이 우리의 진짜 삶이 거기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 나라를 세우시고 통치하실 것입니다. 그분이 그날에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소망이 그날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그날을 바라보시고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힘든 오늘과 어두운 내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 조금 더 멀리 바라보고 그날을 준비함으로 지금의 책임을 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갖추어야 할 것은 성공이 아니라 충성입니다. 그러니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늘 준비하시고 오래 참음으로 말씀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입술로 전하고 삶으로 전하고 그러한 수고를 계속 하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논증하고 때로는 책망하고 때로는 격려하며 지혜롭게 적절하게 말씀을 전하는 일에 충성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