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때를 아는 지혜
본문 : 전도서 3장 1-2절 외
설교자 : 염창훈

전 3:1-2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오늘은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 시기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인생살이에 대해 유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기간을 나누는데, 저는 오늘 어릴 때와 청년의 때, 그리고 노인의 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1,2절). 이 말씀은 세상 모든 일에 적절한 시기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 때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저 역시 그러한 것들에 대해 막막할 때가 있는데, 주님 앞에서 기도하며 공부할 수밖에 없음을 느낍니다. “누가 지혜자와 같으며 누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이냐”(전 8:1), “명령을 지키는 자는 불행을 알지 못하리라 지혜자의 마음은 때와 판단을 분변하나니”(전 8:5). 이 말씀이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은 왕의 명령을 수행할 시기와 방법을 안다. 모든 일을 하는 데는 적절한 시기와 방법이 있으나 우리는 그것에 대해 잘 모른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사람이 어떤 시기에 닥치면 대처할 방법을 잘 모른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 때에 맞게 행동을 해야 하는데 그 시기를 놓쳐서 인생이 어렵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린 시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집을 지을 때로 말하면 주춧돌을 놓는 시기와 같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어릴 때 꼭 가르쳐야 할 것, 하나님의 길과 좋은 습관 등을 잘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었을 때 부모가 자녀를 때려 순종하게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어릴 때 분명하게 훈육을 하고 지도를 했다면 수월했을텐데 시기를 놓친 것입니다. 자식 때문에 걱정하는 부모들을 보면 대부분이 그러합니다. 제가 아는 분은 자녀가 나이 50이 되었어도 계속 돈을 대주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잠언 22:15). 아이에게는 죄인의 습성이 드러납니다. 학교에 들어가고 많이 배울수록 더욱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아담으로부터 받은 죄의 성품, 마음에 미련한 것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고 고집을 꺾어주어야 합니다(신6:7,8). 아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고 부모님께 순종하게 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커가면서 점점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게 됩니다. 자녀가 하나님을 모르고 나이를 먹어갈 때 얼마나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모릅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에 있어서 성경은 축복과 저주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부모님께 순종하고 공경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언 30:17). 부모님께 순종할 줄 모르고 하나님께 순종할 줄 모르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모에게 순종하거나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뭔가 손해를 보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을 내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잠언 19:23).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 두려워하고 경배하는 사람은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 기쁨, 축복을 얻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언 15:33). 많은 것을 아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우리 아이들을 부모에게 순종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아이들로 길러야 할 것입니다. 어린 아이 때부터 예배에 참석하여 어른들이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며 이 예배가 얼마나 귀한지, 하나님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길 분인지를 알게 해야 합니다. 예배에 올 때 예의를 갖춰서 옷을 입는 것도 좋습니다. 마음가짐이나 옷차림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여자아이들에게는 어릴 때부터 아담한 옷을 입게 가르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다는 것, 하나님이 내 삶에 주인이라는 것을 본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말을 하고 야단을 칠 수도 있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 스스로가 먼저 자신의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본이 될 것입니다. 아이들에게는 해롭다고 못하게 하면서 부모 자신은 조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여호야긴이 그의 아버지의(여호야김)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왕하24:9). 하나님을 사랑하는 훌륭한 왕이었던 다윗도 밧세바를 범하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죽인 일은 자식에게 좋은 본이 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모이기를 힘쓰는 것으로 자녀들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어린 시기에는 부모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전도서 11장 9절에서는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고 말하지만, 그 뒤에는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고 말씀합니다. 청년의 때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한 일에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으로부터 심판받을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시기는 매우 좋은 시기이면서 매우 위험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요즘 시대는 도덕적으로 정결하게 살기가 매우 어려운 시대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 3:22)고 말합니다. 청년의 때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깨끗한 마음을 섬기고 주님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딤전 2:8). 청년의 때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넘치는 열정을 주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 써야 합니다. 암송도 많이 하고 친구들에게 전도도 많이 하며 주님을 열심히 섬겨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다 큰 청년들도 아이 취급을 하는 것 같습니다. 부모가 이것저것을 챙겨주다보니 자녀들이 너무 나약하게 자라는 것 같습니다. 점점 젊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열정을 내지 못합니다. 다윗, 요셉, 다니엘 등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들을 보면 어릴 때부터 주님 앞에서 쓰임을 받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열두 살 때 성전에 올라가서 랍비와 토론을 하셨고, 헬리 무어하우스라는 위대한 복음전도자는 17세에 전도자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요한복음 3장 16절을 가지고 일주일 동안 복음을 증거했다고 합니다. 그가 디엘 무디 전도자를 감동시킨 사람입니다. 가 있는데 17살 때 전도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요3:16을 가지고 일주일동안 복음을 증거했는데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가 유명한 무디를 감명시킨 사람입니다. 다니엘과 같은, 헬리 무어하우스와 같은 젊은 청년 일꾼들이 일어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성실하게 살기만 하면 주님께서 생계를 책임져 주십니다.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에는 시기가 있습니다. 매 시기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것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시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젊었을 때는 나이가 들어서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보니 힘이 없어서 ‘젊어서 논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노인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바르게 살아갈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할 일이 많습니다.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신중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하게 하고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딛2:2). 나이가 들어서는 절제할 것이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겸손해지는 것이 아니라 고집이 세집니다. 점점 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믿은 지 얼마 안 되신 분들에게 술 담배를 끊으라고 말합니다. 늙을수록 절제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섬기고 깨끗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일에 나이든 사람일수록 더욱 힘써야 합니다.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며”(딛 2:3). 늙은 여자들에게는 특별히 말하는 것을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경건한 사람, 선한 것을 가르치는 사람,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가랴나 엘리사벳, 안나처럼 늙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늙으면 낙심을 많이 하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우리의 마음은 늙지 않습니다. 주님 안에서 새롭게 더욱 열정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재물에 대한 것도 생각하게 됩니다. 자녀들은 부자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아버지의 유산을 생각합니다. 어차피 물려줄 것이니 미리 달라고 말하는 자녀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리 돈을 줬는데 부모를 모시지도 않는다며 불효소송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나이가 든 사람은 재물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맞는가 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재물을 가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재물을 어떻게 써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한경직 목사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녹음한 것을 들었는데, 그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가지는 것을 부끄럽게 느껴 자신 앞으로 통장을 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5만 명이 넘는 교회에서 목회를 하셨는데 참으로 청렴하게 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 죽을 걱정을 많이 합니다. 고통 없이 가기를 바라지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은, 죽음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극심한 고통을,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참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내가 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죽음, 우리는 그것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전 8:7),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전 9:11,12). 우리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면 됩니다. 각 시기마다 어릴 때는 주님에 대해 부지런히 가르치고 배우고, 젊어서는 열심히 헌신하며, 나이가 들어서도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갈 때 어떤 시기에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