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
본문 : 베드로전서 3장 13~17절
설교자 : 조정의

 

곧 추석이 되어 여러분은 믿지 않는 친척, 친구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는 말씀으로 오늘의 주제를 정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오늘 주제를 다루기에 합당한 성경입니다. 이 성경의 수신자는 여러분이 잘 알듯이 소아시아에 흩어져있는 성도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야 할까를 말하려고 할 때 이는 참 유사한 상황입니다. 소아시아 성도들은 자신들의 믿음 때문에 여러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또한 오늘 설교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때 소망이 있다, 그 소망을 가지고 고난을 이겨내라는 메시지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전도’에 대한 명령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믿지 않는 가족들과 만날 때 여러분의 믿음과 소망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는 베드로전서 말씀을 통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법 3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열심으로 선을 행하여 불필요한 고난을 막는다(13, 16)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13절)” 열심히 선을 행한다면 너희를 해할 자가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경험하는 여러 핍박, 고난, 시험 중에는 우리가 받지 않아도 되는 시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악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서 받는 고난은 아무 칭찬이 없습니다(2:20). 하루는 제가 라디오 사연을 들었습니다. 한 주부가 제삿날 음식을 만들기 위해 고생을 하는데 기독교인 가족들이 자신들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돕지 않는다는 사연이 나왔습니다. 기독교인이 이런 행동으로 인해 미움을 받는다면 이는 주님을 위한 고난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내 자존심이나 이기심, 내가 하는 말이나 상처를 주는 행동을 통해 고난을 당할 때 이는 칭찬받을 수 없습니다.

또는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 죄로 반응해서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9절)” 그리스도인이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으면 비난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너도 다를 것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다툼과 분열이 생길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먼저 잘못했더라도 우리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한다면 그로 인해 받는 고난 역시 칭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세상은 뺨을 맞으면 나도 때리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리스도인은 다른 뺨도 돌려대는 것이 원칙입니다. 청년들 중에 명절 때 친척집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청년이 있습니다. 친척집에 가면 결혼에 대해, 진로에 대해 비꼬듯이 말하는 친척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할 때 똑같이 반응한다면 우리에게 칭찬이 없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욕을 욕으로 갚지 않을 때 우리에게 보상이 있는 것입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16절)” 선한 양심은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하는 마음,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선한지 분별하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지키고 있으라는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십니다. 믿지 않는 가족들, 친척들이 우리를 비방할 때 우리가 선한 양심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악으로 갚지 말고 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주님은 다 알고 계시고, 우리가 악을 선으로 대할 때 훗날 주님께서 그들을 부끄럽게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심판하시는 분인 하나님께 맡기고 마음을 선하게 지키시기 바랍니다.

구원받은 목적이 거기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우리가 구원받은 이유도 역시 선한 일을 하는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친척,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서 여러분의 선한 양심을 지켜내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선하게 지켜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이 당하는 고난이 줄어들 것입니다.

친척, 친구,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이미 죄로 인해 틀어져 갈등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당사자 앞에서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선을 행하는 첫걸음입니다. 그럴 때 믿지 않는 자들이 우리 안에 있는 소망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비난할 때 선을 행하십시오.

2. 두려워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라 복이 있다(14-15a)

제가 미국에서 다니던 교회에 어떤 자매님의 믿지 않는 남편은 여러 여자와 불륜관계에 있었고 그 자매님은 그로 인해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결국 남편의 요구로 이혼을 한 아내는 그 이후로도 명절이나 생일 등 기념일마다 전남편에게 편지를 하고 선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훗날 전남편이 아내의 행동에 감동하고 그 이유를 물었을 때, 아내는 하나님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내의 행동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거듭나서 주님께로 갔다고 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악하게 대할 때 우리가 왜 힘들까요? 우리가 득실을 따져볼 때 유익이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용서하면 억울하고 내가 참으면 바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서 선을 행한다는 것이 당장 보상이 없고 손해 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참았을 때 얻는 것들 돈, 명예, 권력, 쾌락, 만족이란 것들은 모두 이 땅에 있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을 따져보며 세상에 있는 것들을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삶은 죄를 멀리해야 하는 것, 말세와 멀어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니 믿지 않는 자들의 삶과 우리의 삶을 비교할 때 스스로 부끄럽게 느껴지고 손해 보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돈이 있느냐 없느냐, 자존심이 높아지느냐 낮아지느냐, 내 주장과 목소리가 커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있는가, 아닌가를 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를 올바로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반응하는 이유는 그들이 우선수위에 둔 것들이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들의 삶을 통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이면 서로 사랑하고 베풀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세속적인 것의 통제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첫째자리에 두는 사람입니다. 이외의 것들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신다고 믿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통제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만을 경외하고 그분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핍박을 받는 것이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복을 주실 것이기에 복된 것입니다.

내가 참으면 돈을 받고 승진하고 명예가 높아진다면 우리는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높아진다고 하면 잘 와 닿지 않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상이 있고 그분의 영광이 있습니다. 갈등 가운데 어떻게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짐이 지워지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크심을 알 때 여러분에게 어려움을 주는 가족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애굽의 모든 부와 명예, 권력을 포기하고 이스라엘의 노예의 삶을 선택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모세입니다. 왕자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어떨까요?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삶일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을 택한 것입니다. 그랬을 때 그가 여러 고난을 당했지만 그가 하나님과 마주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누렸던 가치를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 그분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은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비방을 받고 살아갈 때 여러분은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여러분의 죄로 인해 얻는 핍박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며 받는 핍박에 대해 기뻐하십시오. 주님이 상 주실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인종차별에 대해 저항했던 사람입니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말로 그를 욕하며 협박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연설을 하고 있던 중에 그의 집에 폭탄이 터졌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다행히 피할 수 있었으나 집이 온통 불타고 있었습니다. 목사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흑인들이 모여 백인들에게 복수하자고 했을 때 목사는 “예수님은 지금도 원수를 사랑하라고 외치고 계신다. 사랑으로 증오에 맞서라. 불타는 믿음과 빛나는 확신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라!”라는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고난을 당할 때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선으로 되갚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3. 온유와 두려움으로 소망을 말하라(15b, 17)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15).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 전도하는 일은 참 쉽지 않습니다. 복음을 설명하는 것이 어려운 것보다는 그들이 듣지 않으려하기 때문입니다. 가족에게 소망을 전하기 위해 적어도 네 가지 과정이 필요합니다. 먼저는 “너희 속에 있는 소망” 즉 소망이 있는 것 같이 살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들이 우리 속에 있는 소망을 알고 싶어 해야 합니다. 또 대답할 것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며(“대답할 것을 준비하라”) 하나님 앞에서 온유와 겸손으로 해야 합니다(“온유와 겸손”). 그들이 생각하는 가치관, 말투를 그대로 따른다면 우리도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뭔가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이유를 묻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억지로 복음을 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족 예배를 억지로 진행할 때 그 자리를 일부러 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에게는 억지로 전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우리가 준비되지 않은 채로 복음을 전할 때도 있습니다. 풍성한 복음의 원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온유와 겸손이 빠진 선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가족이 진화론을 믿는다고 할 때 너는 원숭이 자식이라고 한다거나 너는 지옥의 불쏘시개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이러한 태도로 전하는 복음은 오히려 복음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에게 소망의 이유 되신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자로부터 받는 고난에 대한 최고의 선은 영생에 대해 알려주는 것, 우리의 소망을 전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소망을 전할 수 있을까요?

하늘나라 소망에 사로잡혀 살아야 합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9-10)”

믿지 않는 가족들과 친척들과 함께 있을 때 이런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다른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소망에 붙들려 사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건강을 잃어도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 사람처럼, 재산을 잃어도 영원한 기업이 보장된 사람처럼, 가족을 잃어도 수많은 주의 백성들과 한 가족이 된 자처럼 사십시오.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말씀을 믿는 자처럼 사십시오(롬 8:39). 병원에 가면 아무 소망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암투병을 하고 있어도 건강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 있기에 우리 안에 있는 소망이 너무 커서 두려움과 염려를 몰아냅니다.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과 지혜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와 보라” 한 마디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늘 기도제목에 두고 기도하는 누군가가 갑자기 나에게 물어온다면 여러분은 복음을 어떻게 전하시겠습니까? 복음에 은사가 있는 사람이 모든 곳에 가서 전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전해야 합니다. 어느 누가 여러분에게 복음에 대해 물어볼지 모릅니다. 복음을 전하는 멋진 뮤지컬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지만 그들 중에 구원받는 사람은 1% 정도 밖에 안 됩니다. 그러나 지인을 통해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 구원받는 사람들이 43%라고 합니다.

우리는 온유와 겸손으로 옷 입고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진리가 전해질 때 불편함이 있을 수 있으나 내 목소리나 어조로 상대방을 불쾌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윽박지르기, 계속 반복하여 주입시키기, 모욕, 무시 등으로 진리는 전달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복음의 진리를 전한다면 사랑을 담아 전하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사랑 없이 전달하지 마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온유합니다.

오늘 저는 선을 행함으로 불편한 고난을 피하는 것, 고난에 대해 근심하지 말고 복된 삶에 감사하는 것, 그리고 복된 삶을 전하는 것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찬양 중에 “전하고 기도해 매일 증인 되리라 세상 모든 사람 다 듣고 그 사랑 알도록”이란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는 놀라운 복음에 담긴 사랑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매일 증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추석에 내려가서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고 온유하게 전하며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