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당신은 외인에게도 그리스도인입니까?

본문 : 골로새서 4장 2-6절

설교자 : 조정의

오늘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이 마지막으로 남긴 권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당신은 외인에게도 그리스도인입니까”인데, 그것은 바울의 마지막 권면이 ‘외인’에 대하여 골로새 성도들이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5절).

여러분이 주중에 만나거나 함께 일하는 사람 중에 ‘외인’ 즉 비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됩니까? 대부분 주일에 몇 시간, 어떤 분들은 수요일과 토요일에 몇 시간 그리스도인과 함께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주 많은 시간을 ‘외인’과 함께 보낼 것입니다. 가족과 친구 중에 외인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오늘 이 말씀이 꼭 필요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골로새 성도를 비롯한 모든 하나님의 성도에게 이 말씀을 주시기 원하셨습니다. 외인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갖춰야 할 것, 반드시 입어야 할 새사람의 옷이 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이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 주말에 교회에서 그리스도인처럼 살다가 주중에 외인과 함께 있을 땐, 외인처럼 사는 분이 한 분도 없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외인에게도 그리스도인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과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외인과 함께 있을 때도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겨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3:17).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기도(2-4절), 또 다른 하나는 전도(5-6절)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5절에 나오는 명령은 ‘지혜로 행하라’인데, 이는 분명히 ‘외인에 대해서’ 주어진 명령입니다. 6절에서는 ‘각 사람’ 즉 외인에게 어떻게 은혜롭게 말할 것인지 설명해줍니다.

2절에 나오는 명령, ‘기도를 계속하라’ 역시 외인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기도의 내용이 3-4절에 나오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는 것 즉 외인을 대상으로 한 전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 주석가 딕 루카스는 오늘 본문을 두 가지 개요로 정리했습니다. 2-4절은 기도로 “하나님께 사람들(외인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고, 5-6절은 전도로 “사람들에게(외인들)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BST, 226).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 전심으로 외인들에 대해 하나님께 말하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 말과 행동으로 외인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알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부탁하신 대사명이 무엇입니까? 가서 그리스도를 외인들에게 전파하는 것입니다(마 28).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기 위해 존재합니다(벧전 2:9). 그리고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 손아귀 아래 있는 외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려면 기도의 방패와 전도의 검이 필요합니다(엡 6).

1. 기도에 전념하라(2-4)

2절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첫 번째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명령은 기도입니다. 바울은 그냥 ‘기도하라’가 아니라, ‘기도를 계속하라’는 성령의 뜻을 기록했습니다. ‘계속한다’는 말은 도중에 지치거나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매우 헌신적으로 기도하는 일에 전념한다는 말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공급함을 받고 연합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자라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기 때문입니다(골 2:19).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습니다(3:3).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기도하지 않는다면, 기도를 멈췄다면, 기도를 잊고 산다면, 기도해봐야 별 소용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충분한 공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생명력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으며 영적 성장판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감히 말하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영적 나태함에 빠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명령과 함께 “깨어 있으라”고 권면합니다. 영적으로 잠들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는데(마 26:41), 잠들지 않고 깨어 있는 것, 경계를 늦추지 않고 늘 주시하며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 바로 기도를 계속하게 하는 힘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잠들지 않고 깨어서 기도할 수 있을까요? 일상의 반복되는 삶, 분주한 일 중에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고 인정하며 아뢰는 기도를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성령님은 바울을 통해 “감사”가 바로 우리를 깨어나게 하는 열쇠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고 또한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살전 5:18).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7), “감사하는 자가 되라”(3:15),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3:16), “(그리스도)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7) 등 여러 번 힘주어 ‘감사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만일 우리가 이 땅을 바라보며 산다면, 세상에 속한 것에서 감사 제목을 찾는다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감사하려고 한다면, 감사가 아니라 불평만 잔뜩 생길 것입니다. 내게 없는 것만 보이고 남이 가진 것만 보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자는 위의 것을 찾습니다. 거기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기 때문입니다(골 3:1).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감사할 이유가 넘쳐납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원수였으나 우리의 모든 죄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거되었고(2:13-14), 하나님과 온전한 화목을 이루어 영원한 생명의 기업을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 앞에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움 받을 것입니다. 이 놀랍고 복된 구원을 생각하면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1:21-22).

하나님은 지금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그리스도로 옷 입히고 계시며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충만한 공급을 통해 우리를 자라나게 하십니다(3:12-4:1). 매일의 삶 속에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를 멈출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구원의 완성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잠시 고난을 받을지라도 우리에게 장차 나타날 영광은 지금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롬 8:18).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우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날 것입니다(골 3:4).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마음은 감사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여러분의 시선을 위에 두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만족을 찾으십시오. 그분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가득하며(2:3) 하나님의 신성의 모든 충만이 거하시므로 우리를 충만하게 하십니다(2:9). 그럴 때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엡 5:20). 그리고 감사로 깨어 있는 자는 기도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는 기도의 메아리를 불러내는 아름다운 목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우리는 3절과 4절에서 바울이 기도의 내용을 확장하는 것을 살펴볼 것입니다. 바로 외인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해야 하지만(딤전 2:1), 특별히 외인들의 구원을 위해서, 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3절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4절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바울은 “우리” 즉 복음의 일꾼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편지 인삿말에 나오는 바울과 디모데, 그리고 4장 7절부터 14절까지 나오는 많은 복음의 일꾼들을 가리킵니다(두기고, 오네시모, 아리스다고, 마가, 유스도, 에바브라, 누가, 데마).

흥미롭게도 바울이 요청한 기도 제목은 육신의 건강이나 안위가 아니었습니다. 필요한 재물이나 어려운 환경의 개선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열어 주”시기를 기도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그리스도를 모르는 외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바울은 바로 이 복음을 전하다가 지금 로마에 있는 셋집에 조금은 느슨하지만 감금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행 28:30-31). 골로새서와 함께 쓴 편지인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엡 6:20). ‘사신’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로마의 셋집에 이 년 동안 매여 있었지만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습니다(행 28:30-31). 복음 때문에 자신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고 확신했습니다(딤후 2:9). 

자신은 단지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나타내시는 데 사용하시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을 여시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는 분이라고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 성도의 기도를 요청한 것입니다. 그들의 기도로 더욱 담대하게 마땅히 할 말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비밀을 기회가 닿는 한 나타낼 수 있도록 성도들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께 구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전도의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을 이끌어 인적이 드문 광야에 수레를 타고 애굽으로 돌아가고 있는 에디오피아 내시 간다게를 만나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도할 문을 열어주십니다(행 8:26-40).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외인들에게 전도의 문을 열어달라고 구하십시오.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도 우리를 통해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하고 영원한 지옥에 떨어진다면, 이 얼마나 슬프고 가슴 아픈 일입니까? 특별히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척에게 전도의 문을 열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주님의 때에 분명히 열어주실 것을 믿고 낙심하지 말고 항상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실 것입니다(눅 18).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눅 11:13).

둘째로 마땅히 할 말로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고 권면했습니다(벧전 3:15).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주께서 전도의 문을 열어주실 때, 대답할 것이 준비되어 있는가? 목말라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생명수를 전해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실질적인 준비가 필요하지만, 그 준비의 첫 단추는 바로 기도입니다. 바울이 골로새 성도들에게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낼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요청한 것처럼, 하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비밀, 복음을 올바르게, 담대히, 확신을 가지고, 하지만 온유하게 나타낼 수 있게 해달라고, 제대로 설명할 수 있게 해달라고, 나를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는 죽은 영혼의 가슴에 생명의 씨앗이 심길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하십시오.

마지막 세 번째로 전도자와 목사,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직접 택하신 복음의 일꾼, 사도 바울에게 골로새 성도의 기도가 필요했다면, 오늘날 복음의 일꾼들에게 더더욱 성도의 기도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실제로 복음을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들에게 전도의 문을 열어달라고, 복음을 힘 있게 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정기적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여러분이 복음의 일꾼과 함께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에 동참하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외인들에 대해서 기도로 무장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면 이제 보다 적극적으로 전도하는 방법을 성령의 말씀을 통해 배워봅시다. 기도의 방패를 갖췄다면 이제 전도의 검을 들어 올릴 차례입니다.

2. 전도에 힘쓰라(5-6)

5절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6절 너희 말을 항상 은혜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외인을 향한 전도의 방법은 5절에 나오는 “지혜로 행하는 것” 그리고 6절에 나오는 소금으로 맛을 낸 “말”입니다. 행함과 말, 두 글자로 ‘언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앞서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고 명령했는데(3:17), 바로 이것이 전도의 삶입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를 외인에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지혜 가운데 행함으로 외인에게 그리스도를 나타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 보다 행함을 먼저 언급하신 이유는 사람들이 말보다는 행동을 먼저 그리고 크게 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랑을 정의할 때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러고 나서 바울은 사랑을 15개의 동사, 15개의 행함으로 설명합니다(오래 참다, 온유하다 등).

그러면 “지혜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은 이 세상의 지혜, 융통성, 세상에서 통용되는 합리적인 사고나 적절함, 올바름에 맞춰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편지 처음부터 그들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할 때마다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기를 하나님께 구했습니다(골 1:9). 바울이 “지혜 가운데 행하라”고 말할 때의 지혜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참된 지혜를 말합니다(골 2:3).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풍성히 거할 때 우리는 모든 지혜로 가르치고 권면할 수 있습니다(골 3:16).

그러므로 외인 앞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들의 기준, 세상의 기준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다니엘을 죽이려고 총리들과 고관들이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했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한 것처럼(단 6:1), 그리스도인은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어야 합니다(딤전 3:7). 완벽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손가락질당하고 책잡히고 나무랄 데가 많은 삶을 살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데 있어 도리어 방해가 되는 행동을 일삼아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행위를 통해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귀한 것이 안에 들어 있어도 더럽고 냄새나는 포장지에 싸여 있으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비밀이라는 아름답고 고귀한 복음의 정수가 더럽고 냄새나는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포장된다면 아무도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고 말했습니다. 에베소에 쓴 편지에서는 “세월을 아끼라”는 말 뒤에 “때가 악하니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엡 5:16). 이 악한 세상에 휩쓸려 악한 삶을 살지 마십시오. 옛사람과 그 행위는 벗어버려야 합니다. 오직 새사람, 그리스도로 옷 입고 새사람의 행위를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전도의 문을 영원히 열려 있지 않습니다. 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선을 행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주어진 하루하루 매시간을 복음을 드러내는 기회로 삼고 열심히 그리스도를 삶으로 나타내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은혜 가운데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말하는 것을 통해 외인에게 그리스도를 나타내야 합니다.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은 말’이 어떤 의미일까요? 싱거운 음식에 소금을 넣으면 어떻게 됩니까? 맛이 있습니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러므로 ‘소금으로 맛을 낸 말’은 다른 사람이 듣기 좋은, 아름다운 말을 가리킵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흥미롭고 생생하고 다채로운 말을 가리킬 때 “말에 소금 끼 있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톰 라이트, 228-9).

하지만 이 말은 단순히 남이 듣기 좋은 말, 아첨이나 감언이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 가운데”라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듣는 이의 기분만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끼치는 말입니다. 에베소에 쓴 편지에도 유사한 명령이 나오는데 거기서 바울은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권면했습니다(엡 4:29).

이 명령은 평소 외인 앞에서 그리스도인의 언어생활을 돌아보게 합니다. 과연 내 입에서 나온 말들은 외인들이 듣기에 맛이 좋고 은혜로운 말일까? 나의 말은 상냥한가? 나의 어조는 호감을 주는가? 나의 말은 상대방에게 은혜를 끼치는가? 덕을 세우는가?

여러분, 외인들이 쓰는 단어 중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하지 않은 것을 버리십시오. 누추하고 어리석은 말, 희롱하는 말은 그리스도인에게 마땅하지 않습니다(엡 5:4). 아무리 유행하는 말이고 큰 의미 없이 사용되는 말이라고 해도, 모든 종류의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마십시오. 그 말로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말의 어조나 말하는 방식에 유의하십시오. 아무리 좋은 의도와 동기를 가졌더라도 말하는 방식으로 인해 상대방의 영혼을 죽이고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특별히 복음을 전할 때 이 말씀을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외인들은 거짓에 속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은 비밀을 모두 아는 박식한 사람으로 여겨 자랑하듯, 무시하면서 복음을 전해서는 안 됩니다. 

준비되지 않은 영혼에게 무서운 지옥의 공포탄을 남발해서 쏘는 것은 은혜로운 복음 전도가 아닙니다. 은혜받은 사람으로서 은혜를 전달해야 합니다. 용서받은 사람으로서 용서를 전해야 합니다. 지옥을 말하더라도 협박이 아니라 애걸하는 마음으로 말해야 합니다.

복음이 지루하고 따분한 것인 양 제시해서도 안 됩니다. 엉뚱하고 때로는 악의적인 질문을 계속해서 던져도 온유하고 겸손하게 친절하고 끈기 있게 대답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빌립보 교회에 편지할 때 바울이 말한 이것이 여러분이 말하는 것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외인에 대하여 갖춰야 할 새사람의 옷 기도와 전도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설교의 마무리는 실제로 기도와 전도를 통해 그리스도에게 돌아온 외인의 간증으로 하는 것이 가장 합당할 것 같습니다.

그의 이름은 어거스틴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라고도 불리는 그는 AD 354년 아버지 파트리키우스와 어머니 모니카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철학에 심취하여 마니교에 빠졌고, 열일곱 살에 한 젊은 여자와 동거하여 14년간 함께 살면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정말이지 탕자처럼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로마서 13장 13-14절을 읽고 회심합니다. 그리고 391년 사제가 되었고 396년 히포라는 교구의 주교가 되었습니다. 그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에 따른 하나님의 능력의 산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인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와 전도를 사용하여 어거스틴을 구원의 자리로 인도하셨습니다. 어거스틴이 직접 기록한 “참회록”에 그 증거가 나와 있습니다.

어머니는 불성실한 남편을 인내했으며, 그것 때문에 결코 남편과 다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초지일관 믿음 가운데 남편을 위해 주님의 자비를 간구했습니다…아버지가 어쩌다 화를 내는 일이 있어도 어머니는 화를 내지 않았고, 대항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지 침묵할 뿐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화가 진정된 후에야 비로소 조용히 잘잘못을 가렸습니다.

…나는 어머니에게서 남편을 비난하는 소리를 들은 적도 없고, 남편을 싫어하는 얼굴빛을 본 적도 없습니다…결국 아버지는 어머니의 끈질긴 기도로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주님을 영접했습니다(참회록, 179-182)

자기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도 하나님 앞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오, 하나님이시여 , 당신은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내 주시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헤매던 내 영혼을 건져 주셨습니다. 이는 자식의 죽음을 애통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갈급한 마음으로 내 영혼의 구원을 위해 매일 눈물로 주님께 매달렸던 내 어머니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신 것입니다. 어머니는 당신이 주신 믿음과 통찰력 있는 영혼으로 내가 처한 영적 죽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미리 아셨고, 당신은 그 간구에 응답하셨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엎드려 기도하는 곳이면 어디든 눈물로 그 땅을 적셨는데, 신실하신 당신은 그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참회록, 51, 195).

어거스틴은 어머니 모니카의 헌신적인 기도와 지혜롭고 은혜로운 언행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외인, 사랑하는 자녀와 부모님, 친척과 직장 동료의 입에서 여러분에 대하여 어거스틴과 같은 간증이 흘러나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기도와 전도의 삶에 전념하는 데 필요한 그리스도의 모든 지혜와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