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다윗의 자손, 다윗의 주 예수 그리스도
본문: 누가복음 20장 41~44절
설교자: 조정의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시다

예수님이 고난 주간 첫날인 주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이렇게 외쳤습니다.

마 21:9 호산나(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가 기도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사람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받아들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왕 다윗의 후손인 요셉(마 1:20; 눅 1:69)과 마리아 사이에 태어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분명한 계보(족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마 1:1).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불렀습니다. 그분이 길을 가실 때 두 맹인이 이렇게 소리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마 9:27). 심지어 이스라엘 밖인 두로와 시돈 지방에서 이방인 가나안 여자가 예수님을 보고서 한 말이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였습니다(마 15:22). 

이렇게 사람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을 그렇게 부를 때는 다윗의 자손인 예수께서 자기를 구원해줄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 담겨있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경우는 질병에서 놓임을 받기를 기대했던 것이고,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들어가실 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부르며 기대했던 것은 그들이 지금 처해 있는 상황, 즉 정치적 사회적 탄압에서 구원해주기를 바란 것이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천사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눅 1:32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이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은 단순히 족보상 다윗의 후손으로 온 것이 아니라, 다윗의 왕권을 이어받을 자로, 영원히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로, 무궁한 나라를 통치할 자로 오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들이 기다렸던 그리스도(히브리어로 메시아)로서 오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윗의 자손으로 그리스도(기름 부음 받은 자)가 오셔서 왕으로 다스릴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을 반겼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와 그들을 억압하고 정복하고 있는 이방 민족을 몰아내기를 기대했습니다. 다윗의 후손으로서 다윗의 왕권을 이어받아 자주국가를 예루살렘에서 실현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바벨론, 그리스, 로마 수백 년간 계속해서 짓밟혀있던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고 견고한 나라로 오랜 세월 다스릴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친 것입니다. “호산나, 우리를 구하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예수님이 백성들 가운데 행한 기적과 가르침을 생각해보면 그들이 그렇게 기대할만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 질병, 귀신, 만물(파도, 바람)을 통제하는 능력, 권위 있는 가르침, 다윗의 왕위를 이어받을 자로 적격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주님이시다.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하나님 혹은 그와 동일한 성격의 표현인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과 있었던 첫 번째 논쟁을 기억하십니까?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당신의 권위는 어디서부터 온 것인가? 누가 준 것인가?”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반문하심으로 자기 권위가 하늘로부터 왔음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드셨습니다(눅 20:1-8). 그리고 이어진 포도원 농부 비유에서 하나님이 포도원 주인으로 등장하는데, 그 하나님의 독생자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눅 20:9-18).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더 직접적으로 예수님은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나와 아버지(하나님)는 하나이니라”(요 10:30). 하나님과 본질상 동등하다는 것이죠(요 5:18).

그냥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 가지고 있는 능력이 뛰어나고 머리가 비상하여 탁월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면 안 될까요? 그래서 백성이 가지고 있던 여러 질병, 정치적, 사회적, 영적 문제의 해결사, 구원자가 된다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왕이 되려 하셨다면 사람들은 충분히 예수님을 왕으로 세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정도 수준으로 자기를 소개하지 않으시고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로부터 왔다고 하시고,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이런 ‘신성모독자’를 가만히 둘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죽이려고 애썼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역사적 인물로 받아들이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 훌륭한 성인, 모범이 되는 사람으로 보는 것에 문제가 없습니다. 심지어 의지하고 기도할 대상, 나에게 복을 더해줄 대상으로 삼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피조물이 나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느냐?입니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구원하기도 하고 심판하기도 하는 하나님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냐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있어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입니다. 예수님을 사람으로서는 존경하지만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하고 따를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C. S. 루이스는 예수님이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것이 틀림없고, 그분이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신 사실이 분명하다면,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①정신이상자, ②사기꾼, 아니면 ③하나님 이 셋 중 하나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①먼저,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닌데도 자기 자신이 그렇다고 믿고 주장한 것이라면 그분은 정신이상자입니다. 오늘날 자기가 신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미친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미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온전하지 못한 특징을 전혀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헛소리하거나, 허황된 것을 주장하거나 이상행동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그분은 지극히 정상이었습니다. 단지 하나님이라고 주장했을 뿐입니다.

②둘째로, 만일 예수님이 자기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주장한 것이라면 그분은 사기꾼입니다. 거짓임을 알고도 남을 속이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보통은 거짓으로 남을 속이고 이를 통해 많은 유익을 얻으려 합니다. 예수님은 전혀 그런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자기가 만든 거짓말 때문에 목숨을 내놓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예수님은 사형선고에 이르는 심문 가운데도 자기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절대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③그러면 나머지 옵션은 하나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신 것입니다.

C. S. 루이스의 이 탁월한 논증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더 분명하게 그분의 하나님 되심을 입증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하나님의 말씀, 성경입니다.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약 1,500년의 세월 동안 40여 명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통하여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 이 성경이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입증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당시 사람들이 읽고 사용하던 성경, 구약성경을 통해 어떻게 자기가 하나님임을 확증하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약성경을 해석하면서 그리스도는 반드시 다윗의 자손이면서 동시에 다윗의 주님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증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렇게 자기의 뜻을 숨기지 않고 나타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성경을 어떻게 대하고 해석하는지 배우기 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성경해석을 통해 우리가 그분을 받아들일 때 단지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를 찾기 원합니다.

1. 예수님의 질문1(41절)

먼저, 예수님은 “그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아마 성전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있던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 가운데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있었을 것이고, 바리새인들(마 22:41)과 방금까지 질문한 사두개인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물으십니다. 

41절“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마태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은 먼저 그들에게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다윗의 자손”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마 22:42). 구약 성경을 필사하고 가르치던 서기관들이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입니다(막 12:35). 구약의 많은 예언이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삼하 7:14~17; 23:1~7; 시 89:28~37; 사 9:6~7; 11:1~10; 렘 30:9; 33:14~18; 겔 34:23~24; 미 5:2). 그 대표적인 예언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렘 23:5)

이런 구약성경의 말씀으로 서기관들에게 가르침 받은 많은 사람이 이스라엘의 구원자 그리스가 자기 백성의 땅에 오신다면 분명히 “다윗의 자손”으로 올 것이라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와야 한다고 분명히 예언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또 다른 성경 기록 하나를 그들에게 읽어주십니다.

2. 예수님의 인용(42-43절)

42절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43절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시110:1인용)

이 말씀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다윗이 기록한 시편 110편 말씀입니다(1절). 다윗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듯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람의 손에 의해 뽑힌 실패한 왕 사울을 이어 하나님이 선택하신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선택하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왕으로, 온 이스라엘을 하나님 뜻대로 선하게 다스린 왕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영원한 왕권을 약속하셨습니다(BC 1000년 정도).

제왕시라고도 불리는 이 시편은 다윗은 자기 이후에 세워질 왕,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 자기의 왕권을 이어받고 그 나라를 다스릴 자를 위해 지은 노래입니다.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사람은 솔로몬이었지만, 예수님은 여기서 다윗이 기대했던 후손을 솔로몬이 아니라 많은 유대인이 기대하고 기다렸던 바로 그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메시아)로 보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이들도 그러한 접근을 이상하게 보지 않습니다. 이미 죽어버린 솔로몬과 그 후손들보다는 다윗의 왕위를 이어받을 그리스도에게 적합한 말씀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시편 강해를 하시는데, 우리는 몇 가지 예수님이 성경을 해석하는 태도와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성경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를 주목해야 합니다. 그분은 구약성경의 일부인 다윗의 시편을 단지 인간의 책으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주장하려는 것,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일 뿐만 아니라 다윗의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그 주장이 온전히 이 본문의 권위에 달려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시편의 무오성, 권위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이것이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자기의 주장을 이어나가고 계십니다.

마태와 마가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은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했다”고 하십니다(마 22:43; 막 12:36). 예수님에게 있어서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절대적인 진리였습니다. 신화가 아니었습니다. 고대 근동 문화에 맞춰 설정된 표현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문학 장치를 통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말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류가 가득한 단지 종교적인 책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 그 자체에 범접할 수 없는 권위가 있었고, 성경이 말하는 것은 곧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예수님의 성경에 대한 태도는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의 태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조롱하고 예수님을 비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서 성경을 불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을 절대 권위의 아버지 말씀으로 대하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하면서 성경의 권위는 상황에 따라 무시합니다. 최근에는 창조와 진화의 논쟁, 성 정체성에 대한 논쟁 등에서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성경의 권위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성경에 오류가 있다. 성경이 항상 참인 것은 아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일부분만 옳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성경을 이리저리 재구성하여 자신들이 수용하고 싶어 하는 것과 조화를 만들어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 그 어디에서도 예수님이 성경을 조작하는 장면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고 그 권위를 확실히 인정했습니다. 조금의 의심이나 의구심을 나타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였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성경해석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자세히 관찰하셨습니다. 42절을 보면 다윗이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내 주께 이르되”.

여기에 “주”가 두 번 언급됩니다. 헬라어로는 큐리오스라는 같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주인”이라는 뜻이고,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을 가리킬 때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처음에 나오는 “주”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켜 “주께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누구에게 이르셨다고 말합니까? “내 주께 이르시되”라고 합니다.

여기서 다윗이 “나의 주”라고 표현하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바로 다윗을 이어 왕이 될 다윗의 후손을 말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적용하여 보면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지요.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켜 “주”라고 표현하고, 자기의 후손으로 왕위를 이어받을 자를 가리켜 “내 주”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그렇지요? 예수님은 이것을 정확하게 관찰하셨습니다. 우리도 성경을 이렇게 정확하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과연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다윗의 시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주라고 부르고, 그리스도를 또 주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예수님의 질문은 44절입니다.

3. 예수님의 질문2(44절)

44절“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의 질문입니다. 그리스도가 단지 다윗의 후손으로 와서 왕이 될 사람에 불과했다면 왜 하나님 말씀에 다윗이 그리스도를 가리켜 “주”라고 하였느냐?

합리적인 결론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는 단지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주라고 부르는 분, 다윗보다 먼저 계셨고 다윗보다 위에 계신 분, 곧 하나님이셔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윗이 성령 하나님에게 감동되어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입니다.

특별히 43절의 말씀을 더 살펴보겠습니다. 다윗의 시편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의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이렇게 말씀하신 내용이 있습니다.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여기서 “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다윗이 말한 첫 번째 ‘주’입니다. 그리고 “너”는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다윗이 말한 두 번째 ‘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있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는다’는 표현은 고대 동양 전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전쟁에서 패한 왕이 패배와 복종의 표시로 승리한 왕의 발아래 목을 밟혔습니다. 승리한 왕이 패배한 원수를 발판처럼 밟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10편 말씀을 찾아보면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편의 말씀은 예수님만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신약성경 저자들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모든 통치,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 사망까지 정복하실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노릇 하실 것이다”라고 말합니다(고전 15:25).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의 신성을 노래하면서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3)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얼마나 위대하고 전능하신지 노래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이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고 묻습니다(히 1:13).

하나님 보좌 우편, 왕을 대신하여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그 자리에서 죄를 사하고, 사망을 멸하고, 원수를 밟으며 만물을 붙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신 예수님뿐이라는 것입니다. 천사는 그저 그분을 섬기는 영일뿐입니다(히 1:14).

여기서 우리는 왜 예수님이 다윗의 주, 하나님이셔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통치,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권세보다 큰 권세를 가져야만 이 세상에 온전한 정의와 공의를 세우실 수 있습니다. 무궁한 하나님 나라를 영원히 다스릴 수 있습니다. 모든 악을 심판하고 모든 선을 보상하시는 권세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그래야 인류의 최고 원수 죄와 사망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위대한 왕이 죄와 사망을 멸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자기 죄때문에 사망을 맞이할 뿐입니다.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만이 죄와 사망을 밟고 그를 믿는 자에게 부활과 생명을 주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독교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합니다. 그 이유를 이제 아시겠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죄 사함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분은 우리에게 영원한 나라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생명의 부활을 약속할 수 없습니다. 자기도 사망을 이겨내지 못한 분이 어떻게 우리 인류를 얽매고 있는 사망의 저주에서 우리를 풀어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을 진지하게 대하시고, 그 말씀을 자세히 관찰하심으로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면서 동시에 다윗의 주, 곧 하나님이셔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선포하고 계십니다. 

구약에 다윗을 통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도 분명하게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또 그 말씀을 예수님께서 정확하게 읽고 해석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감히 예수님께 묻는 자도 없었습니다”(마 22:46).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를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다윗의 족보에 따라 다윗의 자손으로 살았던 한 사람으로만 보십니까? 여러분 삶에 교훈이 되고 도전이 되고 모범이 되는 성인으로 보십니까? 좋은 일을 가져다주고 복을 줄 귀인으로 보십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내신 것처럼 다윗의 자손이면서 동시에 다윗의 주님이신,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만물을 그 발아래 두고 통치하실 하나님, 죄와 사망을 이기고 생명과 부활을 허락하실 하나님, 공의와 정의로 영원히 다스리실 하나님. 그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믿는 자가 바로 영원한 생명을 받게 될 그 나라 백성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성경을 통해 그분이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그분을 어떻게 나타내셨는지 지속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겸손하고 진지한 태도로, 그리고 자세히 관찰하고 바르게 해석함으로 말입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데 우리가 힘을 잃고 믿음이 연약해지는 것은 우리가 말씀을 통해 우리와 연합하고 계신 그리스도의 신성과 능력을 보는 것에서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누구로 보는가에 따라 여러분의 운명이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을 누구로 보는가에 따라 여러분의 소망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제대로 아는 것은 여러분이 성경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어떻게 보십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영생을 결정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