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너는 이 일을 계속하라

본문: 디모데전서 4장 11~16절

설교자 : 이병권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지난 시간의 본문과 연결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은 디모데가 주님의 좋은 일꾼으로써 해야 하는 일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각 절마다 하나 이상의 많은 명령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명하라, 가르치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 본이 되라, 전념하라, 가볍게 여기지 말라, 전심전력하라, 살피라, 계속하라‘ 이렇게 오늘 본문에는 아홉 개의 명령들이 나옵니다.

이 명령들은 교회의 목회자로 수고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주어진 명령이기에 1차적으로는 교회의 목회자에게 해당되는 명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회자에게만 해당되는 명령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명령은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며 교회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천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직접적인 명령을 통해서 교회가 어떤 일을 마음에 두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힘을 모아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핵심이 되는 하나의 명령을 중심으로 다른 명령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11)

‘명하라’와 ‘가르치라’는 두 개의 명령인데, 가르치라는 하나의 명령으로 묶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가르치라고 명령했습니다.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바울은 “이것들”이라고 말합니다. ‘이것들’이 가리키는 것은 먼저는 본문 앞에 나오는 교훈들이지만 넓게는 이 편지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모든 교훈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하여 주었고 또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에게 전해 주어야 하는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진리 가운데 거하도록 가르쳐야 했습니다. 진리를 가르쳐 거짓으로부터 교회를 지켜야 했습니다. 디모데는 이 일을 해야 했습니다. 디모데에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디모데가 이 일을 하는데 어땠을까요?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니까 순탄하게 이 일을 할 수 있었고 사도 바울의 도움이 있었으니까 어려움이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이어지는 말씀에서 디모데에게 있었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12)

학자들은 당시 디모데의 나이를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으로 말합니다. 바울의 사역을 도왔고 바울과 함께 했던 에베소 교회가 지금은 바울이 아닌 디모데를 따라야 하는 상황입니다. 바울과 디모데를 비교하면서 디모데에 대해서 부족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가 하는 일에 대해서 불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디모데가 스스로 느끼는 부담감도 컸을 것입니다. 모세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인도해야 했던 여호수아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계속되는 격려와 확신이 필요했던 것처럼 디모데에게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디모데는 그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할 때 이겨내야 하는 어려움과 반대가 있었습니다. 디모데가 가르쳐야 할 대상에는 디모데 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에게 맡겨진 책임은 크고 무거웠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런 어려움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쉽게 외적인 기준으로 사람들을 비교하고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의 경우에는 나이였지만 요즘에는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로 사람을 비교하고 재산으로 평가합니다. 우리는 이런 외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일을 조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교회에 교육부 장관이 참석한다면 어떨까요? 우리가 그 사람에 대해서 외적인 기준으로만 평가한다면 진리와 다른 것을 말할 때에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대기업의 회장이 우리 교회에 참석한다면 또 어떨까요? 교회 재정에 대해서 잘못된 가치를 가지고 불만을 이야기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각자에게 적용해서 내가 믿는 자로 사는데 세상 사람들이 외적인 기준으로 나의 믿음을 업신여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럴 때마다 그러려니 하고 무시하고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12)

여기 “오직”이라는 말은 강한 반대의 말입니다. ‘그러나’입니다. 어떻게 하라고 명령합니까? ‘그러나’ 믿는 자에게 본이 되라고 합니다. 그런 외적인 기준으로 평가를 받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대응은 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로 표현되는 나의 삶을 통해서, 나의 인격을 통해서 주님을 믿고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우리는 믿는 자에게 본이 되는 모습을 삶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교회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우리는 믿는 자로서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른 모습을 삶으로 보여줍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가르침을 더 분명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가르침이 반대에 부딪힐 때 본이 되는 삶은 그 반대를 무릅쓰고 가르침을 계속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삶이 뒷받침 될 때 그 가르침은 더 진실하고 설득력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이런 명령을 합니다.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5:3)

디모데가 본이 된다면 그의 연소함은 업신여김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거나 반대할 때 겪게 되는 유혹은 나의 생각을 더 강하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며 자신의 뜻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나의 의견을 따르지 않을 때 자녀가 나의 말을 듣지 않을 때 더 강하게 몰아붙일 수 있고 윽박지르며 화를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힘이 아니라 본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자입니다. 우리는 내가 가진 힘으로 사람을 이끌지 않습니다. 주님이 하셨던 것처럼 본이 되는 삶으로 사람을 이끕니다. 내가 먼저 본을 보임으로써 사람에게 따르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우리는 힘이 아니라 본으로 사람을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여기 전자제품이 두 개가 있다고 했을 때 하나는 국산이고 하나는 중국산입니다. 만약 비슷한 가격이라고 했을 때 여러분은 어느 제품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가격 차이가 없으면 당연히 국산을 선택할 것입니다. 품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품은 품질로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삶으로 말합니다. 우리 믿음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는 것은 우리 삶이 말해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피 값으로 나를 새로 만드셨으니 나는 삶으로 말합니다. 내가 다르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본이 되는 삶으로 말입니다.

디모데가 반대를 만났을 때 대처하는 방법은 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디모데가 반대를 무릅쓰고 가르침을 계속 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13)

전념하라는 명령은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하는 것입니다. 여기 말씀에서 디모데가 전념해야 하는 세 가지가 나옵니다. 읽는 것, 권하는 것,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언급하면서 정말 중요하지만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생략되어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읽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무엇을 권하고 가르치는 겁니까?

성경입니다. 읽는 것,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 모두 성경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말성경에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내가 갈 때까지 너는 성경 낭독과 설교와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여라

디모데가 반대를 무릅쓰고 가르침을 계속 할 수 있는 이유는 가르침의 권위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의 가르침의 근거는 성경입니다. 가르침의 근거가 성경이기에 그 가르침의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자신의 연소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가르쳐야 했고 계속해서 가르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일을 해야 했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의 권위는 성경에 근거한 것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담대함으로 가르쳐야 했고 교회는 디모데의 연소함과 관계없이 그 가르침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리하면 이러합니다. “너는 이 일을 계속하라”, 어떤 일입니까? 가르치는 일입니다. 반대가 있을 때는 어떻게 합니까? 반대를 무릅쓰고 계속하라본이 되는 삶으로 반대를 무릅쓰고 성경의 권위로 이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럼 다음으로 어떻게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지 다음 말씀을 보겠습니다.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14-15)

디모데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능력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디모데는 교회를 섬기고 가르치는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셨으니 그 일을 하는데 필요한 것도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사도행전에서 성령께서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우셨던 것처럼 디모데도 그러한 방법으로 은사를 받아 세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장로들은 공적으로 그의 부르심을 인정합니다. 그의 부르심과 은사가 교회를 통해 확증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모데는 자신의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명령은 교회의 몇몇 일꾼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은사를 분별하고 개발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시고 일을 하라고 은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각 사람에게 일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의 경우는 직접 가르치는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은사를 사용합니다. 우리 중에 누군가는 가르치는 은사를 가지고 직접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를 사용하면서 간접적으로 가르칠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은사를 가진 사람만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다 이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은사에 따라 서로를 가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봉사의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섬김의 본이 되어 가르칠 수 있습니다. 구제의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긍휼의 본이 되어 가르칠 수 있습니다. 돌봄의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사랑의 본이 되어 가르칠 수 있습니다. 전도의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믿음의 본이 되어 가르칠 수 있습니다. 격려의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인내의 본이 되어 가르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주님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은사를 사용하면서 삶으로 가르칠 수 있습니다. 서로를 섬기고 서로에게 본이 되어 주님의 가르침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를 가르치며 말씀에 따라 서로를 도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일을 위해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전심전력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그 안에 있으라’는 뜻인데 다양하게 번역됩니다. ‘이 일에 네 자신을 푹 담그라’, ‘마음을 다해서 이 일에 네 자신을 헌신하라’ 쉽게 말해, 힘을 다해서 이 일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자신의 성숙함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라고 명령합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은사를 사용할 때 맡겨진 일에 충성하여 이 일을 계속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주목하고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를 생각합니다. 이것이 우리 감사의 제목이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할 때 우리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 성장에 대한 질문입니다.

우리는 계속 자라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나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하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얻었으니 계속해서 그 신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성장하는 모습을, 발전하는 모습을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서 주님의 은혜를 볼 수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성장하는 성도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신나는 일이 없습니다. 주님의 신실하심과 주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내가 이 일에 동참할 수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 다시 만날 때까지 주님을 닮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주님을 닮아가야 할 모습들이 너무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그 성장에 있어서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몸은 성장기가 끝나면 더 이상 자라지 않습니다. 계속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속사람은 우리의 인격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자질은 계속해서 자랄 수 있습니다. 주님에게까지 자랄 수 있습니다. 더 성숙할 수 있고 더 좋아질 수 있습니다. 더 주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한계를 스스로 정해놓고 그 자리에서 멈추지 마십시오. 더 자랄 수 있습니다. 더 자라가야 합니다. 당신의 성장을 보여주십시오.

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한창 자랄 때인데 성장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매년 같은 옷을 입어도 옷이 작아지지 않습니다. 계속 같은 신발을 신어도 불편함이 없습니다. 좋은 일인가요? 아이가 먹고 움직이고 에너지가 넘쳐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늘 그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다면 부모로서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저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나를 보시면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실까? 나는 성장하고 있는가? 나의 은사, 나의 섬김, 나의 인격, 나의 삶, 나는 자라가고 있는가? 나는 아버지의 기쁨이 되고 있는가? 아니면 아버지의 걱정이 되고 있는가?

전심전력하여 여러분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시기를 바랍니다. 계속해서 자라가시기 바랍니다. 은사를 사용하여 섬김으로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함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분이 자라가고 있음을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그분의 함께 하심을 그 능력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을 정리하면 이러합니다.너는 이 일을 계속하라”, 첫째로 반대를 무릅쓰고 계속해야 합니다. 둘째로 은사를 사용하여 계속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론입니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16)

우리가 이 일을 계속했을 때 어떤 결과가 있습니까? 우리가 계속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가르치는 일을 계속할 때, 반대를 무릅쓰고 본이 되는 삶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갈 때, 주님이 허락하신 은사를 사용하여 힘을 다해 수고하고 계속해서 자라갈 때, 어떤 결과가 있습니까?

나 자신과 나를 통해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을 구원하게 됩니다. 우리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구원한다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누구도 자신의 어떠함으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무엇을 행함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고 누군가를 구원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구원은 언제나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이 하신 일에 근거해서 되는 일입니다.

여기 말씀은 미래의 구원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은 구원의 증거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나의 고백이 진실하다면 그 고백은 한순간의 고백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영원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과정 속에서 삶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그렇게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 구원의 증거가 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통해서 이루시는 구원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 자신을 주의 깊게 살피고 주님의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래서 내가 먼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그 가르침에 따라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부르신 목적에 따라 은사를 사용하고 계속해서 마음과 힘을 다해서 자신을 훈련하고 자라간다면 사람들은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나의 가르침을 무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외적인 기준과 세상적인 평가가 아니라 성경의 권위를 인정할 것입니다.

그러니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어떤 일에 시간을 쓰고 어떤 일에 마음을 쓰고 계십니까? 그 일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요? 우리가 계속 해야 하는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일을 계속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이 명령은 지금 우리에게도 주어졌습니다.

나 자신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일,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는 일, 하나님이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일, 우리가 이 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실 때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 일은 나와 교회를 살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계속 해야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을 근거하여 본이 되는 삶으로 가르치는 일을 계속 하시기 바랍니다. 때로 만나게 되는 반대들도 말씀에 집중함으로 이겨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은사를 사용함으로 자라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통해서 배우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끝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