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그리스도인과 우상숭배
본 문: 고린도전서 8장 10-13절
설교자: 조 성 훈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숭배하는 사람들’과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외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나오기 전에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우상 숭배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그 삶이 우상숭배와 관여하고 있습니다. 숭배하는 대상이나 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그 모든 경우들의 배후에 사단이 있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여러분의 조상은 여러분이 지내는 제사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상숭배에 관여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느 날 밤 택시운전사가 예쁜 새댁을 태웠는데 거울을 봐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택시비를 내지 않고 내려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자 그 집에 들어가 봤더니 그날이 제삿날이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제삿날 죽은 사람이 돌아와서 음식을 먹는다고 믿습니다. 죽은 자가 나타나 춥다고 말해서 묘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부들도 새로운 어장이 형성된다고 하면 틀림없이 그곳에 가서 제사를 지냅니다. 바다 깊은 곳에 용왕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차에 타면 앞에 명태가 걸려있거나 부적이 걸려있습니다. 건축 준공식이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때에도 사람들은 제사를 지냅니다. 세상의 많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삶이 우상숭배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오늘날 우리가 우상숭배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심하게 젖어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중동, 동남아 지역의 사람들과 비슷합니다. 그들은 집집마다 가게마다 제단이 마련되어 있고 매일 그곳에 꽃과 음식을 바치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도 주님께 돌아오기 전의 삶이 우상숭배에 찌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제사가 제물 중심이었습니다. 소나 양을 잡아 제물을 바쳤는데 그 때 사용된 수많은 제물들이 처분될 때 시장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그것을 사먹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거리낌이 되었고 어떤 이에게는 자유함이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성도들 간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거기에 신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조종하는 사단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큰 나무나 큰 바위 등을 신성시 여기고 그곳에 가서 절을 하고 굿을 했습니다. 그런 어떤 형상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우상이라고 생각하니 걸림이 되는 것입니다. 시장에 가서 맛있는 사과를 사왔으면 그것을 먹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지만, 제사상에 차려진 과일을 먹으려고 하면 왠지 거리낌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우상숭배에 대한 의식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고 살아계신 신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우상숭배가 많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믿는 자들의 결혼식에도 폐백을 할 때 밤을 던지고 깨무는 등의 의식을 합니다. 돌잔치 때도 돌잡이라는 것이 있어 실을 잡거나 연필을 잡거나 돈을 잡는 등의 행사를 합니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그런 토속신앙에 물든 행동들을 합니다. 장례식에 가보면, 기독교식의 예배와 불신자의 제사는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제사지낼 때 우리는 찬송을 한다는 것 뿐입니다. 발인식과 하관식은 무엇입니까?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이 꼭 제사의식과 같습니다. 어느 날 어느 성도로부터 심방요청이 들어왔는데 꿈자리가 사나워서 기도하고 찬송해주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액땜하러 심방을 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삶에 스며들어 있는 우상숭배의 잔해를 없애야 합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식생활에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사에 차려놓은 음식을 먹는다고 더러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걸림이 된다면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기를 먹는 것이 형제들에게 거리낌이 된다면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서로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것입니다.
 
내 삶에는 얼마나 많은 우상숭배의 잔해들이 있는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토정비결을 재미로 보고 계십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합당치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로서 우리의 삶에 스며들어 있는 우상숭배의 잔해들을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 소풍으로 가장 많이 간 곳이 절이었습니다. 또한 어릴 때부터 토속신앙적인 문화에 젖어왔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봐도 전혀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외국에서 온 선교사를 데리고 절에 구경 갔는데 그는 우상숭배의 현장에서 가슴이 뛰어서 못 있겠다고 괴로워했습니다. 우리의 삶에 우상숭배가 지나치게 배어있는 것은 아닌지, 이교도적인 우상숭배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그것을 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