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자 갈렙
본문: 민수기14장 24절
설교자: 최종혁

 

갈렙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이렇다.

 민 14: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하나님은 이 말씀에서 갈렙과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교하신다. 갈렙은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음’이 달랐고 그에 따른 ‘선택’이 달랐고 그에 따라 ‘결과’가 다를 것이라고 하신다.

 

결과가 다름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와서 이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바란 광야에 도착했을 때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갈렙이 맞이할 결과가 완전히 다를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민 14:21-23 [21] 그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하노니 [22]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갈렙, 그리고 뒤에서 언급하는 여호수아를 제외한 어떤 어른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보지도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민 14:29-35 [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31] … [32]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33]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34] … [35]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대부분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말씀하실 때 여전히 남아있는 기회도 함께 말씀하신다. 즉, 다가 올 심판을 말씀하실 때 항상 하나님은 아직은 심판의 때가 아니니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함께 주신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것이 없다. 이 말씀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 판결이다.

민수기가 바로 하나님의 이 심판이 기록된 말씀이다. 민수기에는 두 번의 인구조사가 기록되어 있다. 1장과 26장에 기록된 인구조사의 수는 60만명 정도로 큰 변동이 없다. 숫자는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같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민 26:63-65 [63] 이는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계수한 자라 그들이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가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계수한 중에는 [64] 모세와 제사장 아론이 시내 광야에서 계수한 이스라엘 자손은 한 사람도 들지 못하였으니 [65]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 하셨음이라 이러므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을 볼 수 있다. 갈렙은 자신이 광야에서 살아 남은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수 14: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그저 우연찮게 혹은 갈렙이 튼튼한 사람이어서 광야에서 살아 남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에 따라서 이루어 진 것이다.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죽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노예 살이에서 구원해 내셨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 한 것이다. 그 궁극적인 이유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민 32:11-12 [11] 애굽에서 나온 자들이 이십 세 이상으로는 한 사람도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을 결코 보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온전히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2] 그러나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온전히 따랐느니라 하시고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것. 그것이 이들의 생과 사를 결정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것을 선택하고 그런 삶을 살았고,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지 않기를 선택하고 그런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 선택과 삶에 대한 결과를 그들이 받은 것이다. 그럼, 갈렙이 선택한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삶’은 무엇을 말하는가?

 

선택이 다름

온전히 따랐다는 말은 성경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표현은 아니다. 사실 상당히 예외적인 표현이다. 본래는 두 단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득 채우다”는 의미의 단어와 “~뒤에, ~를 따라서”를 의미하는 단어다.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여호와를 따라 (자신을) 가득 채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표현의 의미는 갈렙을 통해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단어가 갈렙과 관련되어 가장 많이 그리고 밀접하게 사용되기 때문이다.

출애굽 후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 반도를 빙 돌아서 바란 광야에 이르게 되고 그곳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정탐군들을 보낸다. 각 지파에서 1명씩 총 12명의 수령, 즉 지도자 급에 있는 사람들을 보내면서 모세는 크게 두 가지를 알아 오라고 한다. 하나는 그 땅이 좋은 땅인지이고 다른 하나는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지였다. 여기에 추가로 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라는 임무를 주었다. 땅에 대한 것은 그들의 생활과 관련된 것이고 사람들에 대한 것은 전쟁과 관련된 것이었다.

정탐꾼들은 40일 동안 정탐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리고 모세와 백성들에게 정탐의 결과를 보고 한다. 이들의 보고를 보면 정확히 모세가 알아오라고 한 것들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먼저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인 과일들을 보여주며 땅에 대한 보고를 한다.

 민 13:25-27 [25] 사십 일 동안 땅을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27]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23절에 따르면 이들은 포도송이와 석류, 무화과 등을 가지고 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불평을 할 때 물과 함께 이 과일들을 함께 언급했다(민 20:5,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즉 이 과일들은 그들이 좋아하고 익숙한 과일들이었고 그래서 정탐꾼들이 이 과일을 가져왔을 것이다.

그들은 이 과일들을 보이면서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임을 보고 한다. 젖과 꿀이 실제로 땅에서 흐르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풍요롭고 농업, 목축을 하기에 좋은 땅이라는 의미다. 하나님은 처음 모세를 출애굽을 위해 부르실 때부터 이스라엘 자손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할 것을 약속하셨었다(출 3:8). 애굽을 나와 광야를 지나면서 그들은 의심했을지 모르지만, 이제 그들 눈 앞에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그 땅의 좋은 열매가 놓여있다. 백성들은 기쁨의 함성을 질렀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탐꾼들의 보고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곳 거주민에 대한 것으로 이어진다.

 민 13:28-29 [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그 땅의 주인들은 강했다. 사람들만 강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성읍은 견고하고 거대했다. 심지어 키가 크고 위협적인 아낙 자손들이 있는 것도 그들은 보았다. 이것이 정탐꾼들의 보고였다. 그들은 땅에 대해서 그리고 그곳 거주민들에 대해서 모세가 요구한대로 정보를 얻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들의 보고는 객관적이기 보다 주관적이었다. 그들은 그들이 본 사실을 단지 전달한 것 같지만, 그 안에 자신들의 생각을 은연 중에 삽입해 놓았다. 바로 접속사 “그러나”다. 그들은 “땅은 비옥했고 그곳의 거주민들은 강하고 성읍도 견고했습니다.”라고 보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땅은 좋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 강하고 성읍도 완벽하게 방어가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거인들도 있습니다.”라고 그들은 보고했다. 그들의 보고에는 ‘우리는 그들을 정복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이 내포되어 있었다.

이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단번에 그 내포된 의미를 알아차리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기쁨의 함성은 곧바로 불안과 원망의 수군거림으로 바뀌었다. 그 때 갈렙이 나섰다.

 민 13: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갈렙은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그 보고에 대한 올바른 행동 반응을 제시한다. 우리말 번역에서는 ‘곧’과 ‘능히’ 정도로 번역을 했지만, 사실 갈렙은 훨씬 더 강하게 말했다. “우리는 반드시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해야 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이길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그는 힘주어서 백성들을 독려했다. 갈렙은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정탐꾼들은 절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들은 이제 그들의 본심을 정확히 드러낸다.

 민 13: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갈렙이 한 말을 정확히 뒤집는다. 우리는 올라가서 그 백성들을 칠 수 없다. 그 백성들이 우리보다 강하다는 것이 이유다. 이것이 정탐 후 그들이 내린 결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땅과 백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민 13:32-33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그들이 보고하면서 했던 말과 지금 하는 말이 다르다. 그들은 땅에 대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했었는데 지금은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라고 말한다.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이지만, 결국 거주민에게 좋을 것이 없다는 의미다. 즉, 차지해 봐야 좋을 것 없는 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곳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들의 보고는 달라진다.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이 거인들이라고 말한다. 과장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들 중에 노아 홍수 전에 존재 했었던 네피림이라는 용사들의 후손까지 있다고 말한다. 과장에 과장을 더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들을 볼 때 자신들은 메뚜기 같았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니 싸울 이유도 없고 싸워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다수의 의견이었다. 이들은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리더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말을 들은 백성들은 반응은 이러했다.

 민 14:1-4 [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백성들은 울고 그들의 지도자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다. 그리고 그 원망은 하나님께로도 향했다. 하나님은 도대체 왜 우리를 그냥 죽게 내버려두지 않고 이곳까지 오게 만들어서 칼에 죽게 만드셨냐고 원망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해결책도 찾는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우리를 죽게 만드는 이 사람들 말고 다른 사람을 지휘관으로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행하셨던 그 모든 일들이 지금 그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백성들의 이런 반응에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서 여기까지 인도한 지도자 모세와 아론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다만 백성들 앞에 엎드렸다. 아마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이 상황을 위해 백성들을 위해 기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그 땅을 보고 온 자로서 갈렙, 그리고 여호수아는 아직 할 말이 남았다. 그들은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비통해하며 옷을 찢고 말한다.

 민 14:7-9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른 정탐꾼들이 했던 말을 다시 뒤집는다. 그 땅은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과 같이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고 강조한다. 그 땅의 현 거주민들이 자신들보다 강하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의 먹이라”, 좀 더 와 닿는 표현은 “우리 밥이다”일 것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나 허풍이 아니었다.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땅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만 하면 우리가 이긴다. 이것이 이유였다. 그러니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고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싸우러 올라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기뻐하셔서, 우리가 이긴다는 것이 정해진 결말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패배하게 되는 원인은 우리 상대가 우리보다 강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으시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하지 말자고 말한다.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 어쩌면 다른 10명의 정탐꾼들이나 갈렙이나 그리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각자가 조금씩 다른 생각과 선택을 하며 살았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따라 이곳 광야에까지 왔다. 그리고 같은 상황을 마주했다. 하나님 말씀과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보았다. 그리고 그 땅에 있는 사람들도 보았다. 그들은 강해 보였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요새들은 크고 견고 했다. 두려웠을까? 두려웠을 것이다. 열명 뿐만 아니라 여호수아와 갈렙도 그랬을 것이다. 모두가 그런 마음을 나눴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땅으로 올라가서 싸우라고 말씀하셨다.

이 선택의 때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 따르기를 거부했다. 절대로 따르지 못하겠다고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했고 다른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모세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은 미워하셔서 애굽에서 자신들을 인도해서 여기서 죽게 하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따르자고 말하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까지 했다(14:10).

이 동일한 상황에 갈렙이 서 있었다. 그 역시 선택을 해야 했다. 그도 그 땅 백성들의 강함과 성읍의 견고함을 보았다. 싸우러 가는 것이 두렵지 않았을까? 두려웠을 것이다. 하나님이 정말 이런 곳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하신 것일까, 우리가 혹시 잘못 온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선택의 순간이다. 대다수는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따르지 않겠다는 선택을 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미워하시고 그래서 우리는 저 강한 백성들에게 전멸할 것이 뻔 하다고 생각했다. 갈렙은 다른 선택을 했다. 끝까지 하나님을 따르겠다는 선택을 했다.

이 순간에 갈렙에게는 하나님을 따르지 않을 많은 이유들이 있었다. 그가 마주한 적군은 거대했다. 도저히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광야 생활에 지쳐있다. 싸울 힘도 없을 뿐 아니라 싸우고 싶지도 않다. 하나님은 올라가서 싸우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지도 않으셨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돌아가자고 한다. 대부분이 그렇게 하자고 한다. 그것도 나쁜 선택 같지 않다. 올라가서 싸우자고 하면 오히려 역적이 되는 상황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이유들로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선택을 했다.

이 때 갈렙은 하나님을 계속해서 따르기를 선택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만나를 주시고 메추라기를 보내시고 광야에서 물을 내실 때만 하나님을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눈 앞에 보이는 상황과 달라 보이고 그의 생각과 다른 이 순간에도 하나님을 따르기로 선택했다.

이 모습에 대해 하나님은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다”고 말씀하셨다. “내 종”은 그동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만 사용하셨던 표현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갈렙을 “내 종”이라고 하신다. 그가 전적으로 순종했기 때문이다. 상황에 관계없이, 결과에 관계없이, 지금 자신이 처한 위험에 관계없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것이다.

 

마음이 다름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열매다. 그런 열매를 맺는 것은 사람 안에 있다. 하나님은 갈렙의 마음이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고 말씀하신다. 특별히 여기서의 ‘마음’은 ‘영’으로도 번역할 수 있는 단어로서, 갈렙의 속사람이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는 말로서 이해할 수 있다. 무엇이 달랐을까?

사실 이 시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같은 마음이어야 했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그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기록했다.

 신 1:29-33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무슨 말인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해 행하셨던 그 놀라운 일들을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처음 모세가 바로 앞에 서서 이스라엘 백성들 보내 달라고 했을 때, 바로는 거절했고 오히려 노역을 더욱 힘들게 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불평했었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은 10번의 재앙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다. 홍해가 앞에 있고 뒤에는 바로의 병사가 쫓아올 때, 그들은 두려워했고 ‘이 광야에서 우리를 죽게 하려는 거냐’며 차라리 다시 애굽의 종이 되겠다고 했다. 불평하고 원망했던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바로의 군사들을 물에 잠기게 하심으로 그들을 구원하셨다. 이것이 그들이 경험했던 일이다.

이 일을 통해 그들은 무엇을 배웠을까? 무엇을 배워야 했을까?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통해 그들이 ‘하나님 알기’를 원하셨다. 출애굽기 15장에 기록된 찬양을 보면 그들이 하나님을 알았던 것을 볼 수 있다. 능력의 하나님, 주권자이신 하나님, 인자하신 하나님,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그들이 알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신 것도 광야 생활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광야에서 그들의 발이 부르트지 않게 신발도 닳지 않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셨다. 그들이 먹을 것, 마실 것이 없다고 원망할 때 먹을 것을 주시고 마실 것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셨다. 그들을 불과 구름으로 보호하시며 인도하셨던 분도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은 항상 먼저 행하시고 믿음으로 따라오라고 하셨다.

그들이 이런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았다면, 그런 하나님을 그들 마음 속에 진심으로 믿었다면 그들의 반응은 갈렙과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갈렙과 그들의 마음이 달랐다. 갈렙은 하나님을 경험으로 알아가면서 하나님을 믿었고, 다수는 그저 그런 하나님을 경험만 했던 것이다. 하나님 편에 서려고 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자신의 편에 섰을 때 얻는 것으로만 즐거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셨지만 그들의 하나님은 아니셨던 것이다.

갈렙의 말과 다른 정탐꾼들의 말을 비교해 보면 이들이 마음이 어떻게 다른지를 볼 수 있다. 다른 정탐꾼들은 계속해서 그 땅의 사람들과 자신들을 비교한다. 그들이 우리보다 크다,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 같다, 그러니 절대 이길 수 없다, 여기서 포기하자, 돌아가자. 이 이야기의 결론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이들이 하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고 안타깝기까지 하다. 왜 이렇게 믿음이 없을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이들의 말은 과장된 면은 있지만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백성들은 이들의 말을 들은 것이다. 직접 보고 온 사람들이 그들이 본 사실에 기초해서 내린 결론이었기 때문이다. 합당한 결론이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을 보면 이 합당한 결론에 치명적인 오류가 숨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에는 이런 말이 들어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의 말에는 하나님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다른 정탐꾼들의 생각에는 하나님이 빠져 있었다. 그들의 생각과 계산에 하나님을 넣지 않았다. 하나님을 따라 자신을 가득 채우지 않았다. 그 결과로 따라 온 것이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었고 불순종이었다.

갈렙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계셨다. 그래서 그는 그 땅으로 올라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다. 그가 본 땅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동일했다면, 그 백성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동일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 상황에서도 의심하지 않았다. 우리가 하나님만 거역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셔서 그 약속을 현실로 만들어 주실 것을 그는 믿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다른 백성들과 달랐다.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가장 높은 자리에 계셨기 때문이다.

 

도전

갈렙에 대한 또 다른 역사적 기록은 여호수아 14장에 나온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갈렙이 여호수아 앞에 나온다. 그의 나이 85세였다. 그는 45년 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에 들어왔고, 이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을 기업으로 달라고 요구한다. 문제는 그곳에 여전히 그가 40세 때 정탐하면서 보았던 사람들과 성읍이 그대로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컸고 성읍은 여전히 크고 견고했다. 두려웠을까? 갈렙은 이렇게 말했다.

 수 14:10-12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면 하나님의 약속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은 현실이 되었다.

 수 14: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갈렙은 끝까지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고 하나님은 그의 믿음에 보상하셨다.

참 멋진 삶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누구나 원하는 삶이고 누구나 원하는 삶의 결말일 것이다. 부러워하라고 하나님께서 갈렙의 이야기를 성경에 기록하신 것은 아니다. 무엇을 배워야 할까. 갈렙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를 배워야 한다. 갈렙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이 다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배우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애굽의 헛된 신들이 아니라 성경의 하나님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었다. 그 하나님이 전능하신 주권자이시며 자기 백성에게 선을 행하시는 분이심을 믿었다. 그것이 그의 삶을 바꾼 것이다.

그 믿음은 대가를 필요로 했다. 자기 생각을 버려야 했다. 사람들을 반대에 직면해야 했다. 목숨의 위협도 당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믿음이다.

모습은 다르지만 갈렙과 우리는 같은 상황에 있다. 하나님은 정말 좋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의 일부만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믿음으로 따라 오라고 하신다. 그 믿음에는 대가가 필요하다고 하신다. 예수님의 말씀을 빌리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따라 오라고 하신다. 세상이 나를 미워하고 심지어 하나님도 나를 미워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럴 때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좇을 수 있게 하는 힘이 바로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다. 어떤 하나님을 알고 믿고 경험하고 있는가? 이 성경의 하나님을 더 알고 믿고 경험하길 바란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선하심을 보이시고 또한 그들을 통해 높임을 받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