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주님과의 동행
본문 : 출애굽기 17장 7절
설교자: 조성훈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면 그들은 동행하는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영접할 때 우리는 주님과 더불어 영원토록 함께 동행하게 됩니다.

오늘날 70억이라는 인구가 있는데 그 중 가장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민족을 꼽으라면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들과 가장 가까이 동행하셨던 시기는 광야에서 가나안에 이르기까지의 출애굽 시기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지 않겠다 하셨을 때에도 모세의 간청으로 인해 하나님은 다시 그들 중에 계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광야길을 여행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17:7)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여행할 때 하나님은 하늘에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들 중에 계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지키셨고 가는 곳마다 물을 준비하셨으며 매일 만나를 내려 먹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장막 칠 곳을 준비하셨고 대적을 몰아내셨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과 함께 가까이 계셨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 중에 계셨던 것처럼 오늘날도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들과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실까’, ‘과연 나를 사랑하실까’하는 의문을 갖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손길에 목말라하고 주님을 보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님과 함께 하늘나라를 향하여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향하여 광야 길을 하나님과 함께 살아갔던 것처럼 말입니다.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암3:3). 부부간에 대화가 안 통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주님과의 대화도 잘 통하지 않을 때가 있을까요? 주님과의 대화에 세대차이가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동행하는 데는 많은 대화와 신뢰, 그리고 공동의 목표가 필요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과 동행했던 대표적인 인물은 에녹이었고 노아 역시 그러했습니다. 아브라함과 레위인들도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말2:5,6).

두 사람이 동행하려면 그들에게 대화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말씀을 하십니다. 구약에서는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고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꿈을 통해서나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은 여러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의 사람들 역시 하나님께 직접 말하기도 하고 선지자를 통해 말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믿는 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신앙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주님과 대화가 잘 됩니까? 그렇지 않다면 아마도 여러분이 하나님께 뭔가를 달라는 기도만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은 대화가 아닙니다. 부부간의 대화에서도 서로 유일하게 하는 말이 돈을 달라는 것밖에 없다면 그 부부관계가 좋을 리가 없습니다. 기도는 마음 속에 있는 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밤늦도록 형제 자매와 대화를 나누듯이 주님과도 그런 대화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께 저의 마음을 아뢰는 기도를 할 때 혼자 공중에 헛소리를 한다고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주님이 정말 살아계시다고 믿으십니까? 내 마음 속으로부터 주님께 드리는 말들, 때로는 푸념같고 때로는 질문으로 가득 찬 기도를 주님이 정말 들으신다고 믿으시나요? 그렇다면 왜 주님께 기도를 드리지 않으시나요? 우리의 기도가 너무 구하는 것에만 치우쳐 있지는 않나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5,16).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여행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곳 가나안을 잊어버렸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과연 우리와 함께 계신가’하는 의심을 부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보아야 할 곳은 하늘나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가’ 의심합니다. 이런 질문을 할 때는 분명 내가 원하지 않는 환경에 처했을 때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그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어느 날 낚시를 하러 갔을 때,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오랜 세월 목회를 해온 사람이니 하나님께서 고기를 많이 잡게 해주시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고기가 잘 잡히지 않자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광야에서 다른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컸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의심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잊은 것은, 가나안의 약속을 잊어버렸기 때문이고,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험난한 광야의 삶을 40년 동안 허락하신 이유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하나님을 버릴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신뢰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풀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어려운 환경을 허락하신 것은 우리를 훈련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쳐주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잊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이적과 역사들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서에는 하나님의 이적을 보았던 사람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을 섬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하나님께서 지난 세월 나를 인도하신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주 우리가 받은 은혜를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며 많은 영역에서 풍족한 삶을 살고 있는데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의 동행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떠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우상숭배를 하고 하나님을 의심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그들의 마음이 멀어졌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중에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을 체험하면서 날마다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든 만물에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난다고 했고 사도 바울은 마음의 눈을 열어 하늘의 기업과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기쁨으로 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에게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요즘은 직접적인 계시를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은 모두 가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경을 깊이 묵상하고 그 말씀에 젖어있을 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에 생각나게 하시고 환경을 통해 말씀하시며 형제자매의 설교나 말을 통해서, 환경 중의 많은 일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저는 지난 날 사역의 어려움으로 인해 힘들어하면서 하나님께 분명한 뜻을 보여 달라고 기도했을 때, 문득 성도들이 부르는 찬송가 가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꿈이나 환상, 직접적인 계시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별 탈 없이 무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기적이 아닙니까? 살인병기와 다르지 않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몇십 년을 무사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가 안 계신가를 생각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눈이 어두워져 날마다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예전에 비해 물질도 시간도 많아지고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도 있는데도, 점점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고 주님의 사랑에 목말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시는 것을 영적인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만물과 내 삶에서 일어나는 기적들을 볼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삶에서 멀어졌다고 느낀다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들에 믿음이 흐려진 것입니다. 구약의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동행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눈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볼 때 매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눈이 열린다면 날마다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나를 절대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 내 삶을 주관하시고 계시는 하나님, 필요에 따라 공급하시고 나를 보호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지 않으시고 우리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한 순간이라도 살아있을 수 있을까요? 주님은 우리와 날마다 동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징은 그들이 믿음의 사람들이었고 말씀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음의 눈을 통해서 보고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이 기쁨으로 넘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날마다 만나를 먹고 닳지 않는 신발과 옷을 입으면서도, 낮에는 구름 아래서 밤에는 불빛 아래서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가를 의심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1초도 살아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고 그 말씀을 묵상하시며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자신의 마음을 주님께 아뢰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과 동행하십시오. 마음의 눈을 열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기업의 풍성함, 약속과 은혜의 풍성함과 부활의 소망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찰 때 찬송으로 화답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보면서 주님의 기이함에 대해 찬양합니다. 우리도 그와 같이 영안이 밝아져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동행은 날마다 주님과 대화를 나누고 뜻을 나누며 약속을 바라보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날마다 그런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나와 모이기를 힘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분의 신앙이 교회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매일의 삶은 주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위로를 받으며 주님을 찬양하는, 실질적인 삶이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