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우리 교회를 살리는 힘, 섬김

본문: 로마서 12장 11절 외

설교자 : 이병권

 

우리 교회를 살리는 힘이 어디에 있을까요? 섬김에 있습니다. 섬김이 우리 교회를 살립니다. 이 말은 지금 우리 교회가 안 좋은 상태에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교회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비결이 섬김에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시고 주님이 교회를 살리십니다. 주님이 우리 교회의 힘이 되시고 생명이 되십니다. 주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포도나무가지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양분을 공급하시고 우리를 살아있게 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측면에서 사람의 책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의 일을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하십니다.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 교회가 힘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 교회의 미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만큼 교회에 있어서 섬김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양한 모양으로 하고 계시는 일들이 정말 중요합니다. 교회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섬김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교회로서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섬김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 교회에 섬김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습니다. 섬김이 없다면 우리는 애찬을 나눌 수 없습니다. 섬김이 없다면 만찬도 할 수 없습니다. 섬김이 없다면 반주도 없고 화면의 가사도 없기에 찬양을 할 수 없습니다. 섬김이 없다면 앞에서 말하는 소리가 뒤에서는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섬김이 없다면 예배당을 따뜻하게 할 수 없고 깨끗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섬김으로 말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다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보이게 혹은 보이지 않게 크고 작은 많은 섬김 들이 있기에 우리가 이 자리에서 편하게 예배드릴 수 있고 교회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는 것처럼 누군가 섬김을 행함으로 우리가 편함을 누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섬김은 불편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섬김은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본성에 맞지 않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섬기기보다 섬김을 받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수고함으로 내가 뭔가를 하기보다 다른 사람이 해주는 것이 더 좋습니다.

다시 말해, 섬기는 일은 그냥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왜 섬겨야 하는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이유도 모르고 그냥 해야 될 것 같으니까 하고 눈치가 보이니까 하고 하라고 그러니까 마지못해 한다면, 제대로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과는 다른 원리를 가지고 섬김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왜 섬겨야 하는지를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섬김에 대해서 세 가지 질문을 가지고 생각해보려고 하는데 첫 번째 질문이 섬김의 이유입니다.

우리는 왜 섬기는가? 섬김의 이유, 첫째는 받은 명령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섬김을 명령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 사도 베드로가 말합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섬김은 명령입니다. 우리에게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하면 좋지만 안 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분에 따라서 하고 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믿는 자라면 당연히 섬겨야 하고 섬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회사에 출근했을 때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 선택이 아닙니다. 당연히 일을 해야 합니다. 회사는 일하러 가는 곳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오실 때에도 분명히 생각하셔야 합니다. 내가 믿는 사람이라면 주님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섬기는 자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주님이 부르신 사역자입니다. 우리 모두가 섬기기 위해 주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서로를 위해 섬기는 일을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교회에 오실 때 섬기러 온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섬기는 일을 하기 위해서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섬김이 우리 교회를 살리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회사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섬기는 일은 회사에서 일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교회는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이기 때문에 우리가 교회에서 섬기는 것은 회사보다 가정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 섬김의 둘째 이유입니다.

섬김의 이유, 둘째는 받은 사랑 때문입니다.

받은 사랑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동기가 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해할 수 없는 넘치는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쓴 편지에서 그렇게 애쓰며 주를 위해 수고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 5:14)

여기 강권한다는 단어는 강하게 붙잡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붙잡아서 이 일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면, 섬김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자판기에 동전이 들어가면 음료수가 나오는 것처럼, 우리 마음에 주님의 사랑이 들어가면 섬김이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에 힘이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움직이고 우리 삶을 변화시킵니다. 섬김을 받으려하는 우리의 본성을 거스르고 섬기는 자리에 가도록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것은 받은 사랑에 대한 반응입니다. 너무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겁니다. 그 사랑이 너무 감사하기에 부족한 내가 뭐라도 하고 싶은 겁니다. 바로 우리가 그러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이 우리 섬김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섬김의 이유, 셋째는 받을 보상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막 9:41)

우리는 내가 했던 섬김에 대해서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했던 일들을 다 장부에 기록해놓고 기억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참 은혜로운 사실은 주님께서는 다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정말 작은 섬김이라 할지라도 주님은 빼놓지 않으시고 다 보상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수고에 대해서, 그 모든 섬김에 대해서 갚아주십니다. 섬김에 대해서 지금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무 것도 없다하더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늘나라 통장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물 한 그릇을 주는 섬김에 대해서도 보상하시는데 우리가 하는 여러 섬김에 대해서 어떻게 보상하실까요?

우리가 다양한 모습을 섬기다보면 이런 저런 말을 들을 수도 있고 좋은 마음으로 하다가도 마음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완벽한 사람들만 모여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그런 교회는 없습니다. 이 땅에 문제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주님 닮아가는 중에 있는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런 저런 일들을 함께 하다 보니 마음 상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아십니다. 여러분의 수고와 마음을 주님이 다 아십니다. 그리고 보상하십니다. 그러니 섬김의 수고를 계속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왜 섬겨야 합니까? 우리가 받은 명령이기에 받은 사랑 때문에 받을 보상이 있기 때문에 섬기는 것이 마땅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섬김의 방법에 대한 질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섬기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세 가지로 대답합니다. “더 충성”, “더 겸손”, “더 사랑” 우리는 더 충성해야 하고 더 겸손해야 하며 더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섬김에 대해서 무엇으로 평가하실까요? 섬김을 통해 얼마나 큰일을 이루었는지, 얼마나 성과가 좋았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게 되었는지, 주님은 이런 것들로 우리의 섬김을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 달란트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 25:21)

얼마나 많은 달란트를 남겼는지 그 성과를 두고 평가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충성스럽게 그 일을 감당했는지를 두고 평가한 것입니다. 주님의 평가 기준은 “충성”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

우리의 섬김에서 무엇이 나타나야 합니까? 충성이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는 충성으로 무장한 상태에서 섬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충성이라는 말은 신실함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 맡기신 일에 대해서 신실함을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비행기에서 뛰어내려야 하는 상황인데, 낙하산이 두 개가 있습니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는 정말 최고급 브랜드의 값비싼 낙하산입니다. 다만 약간의 문제가 있는데 아주 가끔씩 작동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그저 그런 제품의 낙하산인데 언제나 작동이 잘 됩니다. 여러분은 어느 낙하산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섬김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아무리 재능이 많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성실하지 않으면, 충성스럽지 않으면 함께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섬김에 대한 삶의 우선순위를 더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왜 섬김에 대해서 충성스럽지 못할까요? 섬기는 일이 나에게 있어서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에 섬김이 뒤로 밀려나게 되는 것입니다. 더 우선되는 일이 있고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섬김에 대해서는 한 걸음 물러날 수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한 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주님을 믿는 자로서 어떤 태도로 섬기고 있는지 말입니다. 여러분은 충성스러운 일꾼입니까? 주님의 칭찬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섬겨야 합니까? 더 충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겸손해야 합니다.

섬김은 우리 신앙에서 참 실제적인 부분이고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의도와는 다르게 다른 사람에게 어려움을 주기도 하고 오해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 섬김입니다. 누군가의 부족함이 나에게 더 큰 부담으로 나에게 손해로 다가옵니다. 누군가의 부재가 나에게는 원망과 불평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이 하는 실수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쁨으로 섬길 수 있고 감사함으로 섬길 수 있는데 우리의 기쁨과 감사를 빼앗아 가는 것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태도입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겸손입니다. 더 겸손해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이런 명령을 합니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 2:14)

그런데 바울이 이 명령을 하기에 앞서, 먼저 언급한 것이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8)

주님의 겸손, 철저히 낮아지신 주님, 그 주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섬김에 있어서 원망과 시비가 사라질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이 그러한 죄에서 우리를 지키고 섬김을 더 멋지게 할 것입니다. 섬김이라는 정말 귀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겸손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쉽게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불평하게 될 것입니다. 좋은 일을 하면서 말로 다 깎아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섬김이 낭비되지 않도록 좋은 일을 좋은 마음으로 하고 좋은 결과를 거두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겸손을 기억하십시오. 겸손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라는 질문에 대한 마지막 대답은 더 사랑입니다.

섬기는 일에 대해서 사랑이 빠지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적용되는 원리가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게 사랑으로 서로의 종이 되라고, 사랑으로 섬기라고 명령했습니다(갈5:13) 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회에게는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 16:14)하고 명령했습니다.

사랑은 우리의 특징입니다. 우리 삶의 특징이며 우리 섬김의 특징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사랑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우리의 섬김을 더 따뜻하게 합니다. 물론, 사랑 없이도 섬길 수 있습니다. 사랑 없이도 봉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 없는 섬김은 삐걱거리며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자동차가 엔진에서 나오는 힘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엔진 오일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 섬김의 힘이 제대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망가집니다.

우리 교회에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섬김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정말 섬김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를 살리는 것은 사랑의 섬김입니다. 그냥 섬김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랑의 섬김이 우리를 살립니다. 사랑으로 행하는 섬김이, 사랑이 담긴 섬김이 우리 교회를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그동안 섬기는 일들을 많이 하셨고 잘 해오셨기 때문에 섬김에 대해서 좋은 습관으로 몸에 익히고 계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교회를 인도하는 입장에서 참 감사하고 든든합니다. 그런 본이 되는 모습을 믿음의 후배들에게 계속 보여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나이를 떠나서 주님을 믿는 우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섬기는 일을 계속 감당해가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합니까? “”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잘하고 계시기에 더 그렇게 하시라고 말씀드립니다. 더 충성하시고, 더 겸손하시고, 더 사랑하십시오.

우리는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섬기는 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보는 사람 없을 때에도 섬기는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기분 좋을 때 어려움이 없을 때 섬기는 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어려울 때 힘들 때 그 때에도 섬기는 일을 할 수 있을까요? 특별한 날 한 번 나와서 섬기는 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매번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계속해서 성실하게 섬기는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섬김의 이유와 방법을 모른다면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섬김이 주는 기쁨과 만족을 모른다면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함께 하심을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정말 할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김을 계속하시겠습니까? 세상과는 다른 길을 섬김의 길을 계속 걸어가시겠습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세 번째 질문과 그 답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 번째섬김의 대상에 대한 질문입니다. 우리는 섬김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를 섬기고 있습니까?

이 질문은 너무도 쉽고 너무도 당연한 대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깁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자입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자주 잊어버립니다. 섬기다 보면 일만 보이고 내가 누구를 섬기고 있는지 놓치는 겁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깁니다. 어려움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질문의 답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다 알고 있고 대답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문제는 섬기는 중에는 이것을 깜박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복해서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섬김의 수고를 할 때마다 봉사의 일을 할 때마다 난 지금 누구를 섬기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 눈에 보이게 주님이 직접 이 자리에 계시고 우리가 이 자리에 계신 주님을 직접 섬긴다면 내가 지금 주님을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은 주님을 직접 섬길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섬김의 대상이 누구인지 반복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놀라운 신비가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섬기는 것은 놀랍게도 주님을 섬기는 일이 됩니다. 교회를 섬기는 것이 바로 주님을 섬기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40)

우리는 주님을 섬깁니다. 그리고 주님을 섬기는 것은 지금 내 눈에 보이는 형제를 섬기는 것입니다. 난 형제를 섬기지만 실제로는 주님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 섬김을 자신에게 한 것으로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섬길 때마다 나는 지금 누구를 섬기는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난 지금 주님을 섬기고 있는 중이야!’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여러분은 정말 주님을 섬기고 있는 중입니다.

언젠가 한 성도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며 저를 섬기셨던 적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제 마음에 큰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주님께 하는 거야!’그 말씀을 통해 주님을 향한 섬김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실제로 섬김을 받은 것은 저이지만 그 성도님은 제가 아니라 주님을 섬기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마음으로 주님을 위해 하셨던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태도로 서로를 섬기는 자가 되면 어떨까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하듯이 서로를 섬기는 겁니다. 부족함이 있더라도 용납하고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서로를 섬기는 겁니다. 그렇게 우리가 주님의 본을 좇아서 서로를 섬기는 겁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섬기셨기 때문입니다. 섬김을 받으셔야 하는 분께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시기까지 섬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처럼 섬기는 자가 되어서 서로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주님을 닮아 서로를 섬기는 자로 살아갑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은 어떤 것보다 강력한 세상을 향한 우리 믿음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정말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일까요? 질문을 좀 바꿔서 그러면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일까요? 기회가 되어서 어느 교회를 방문했는데, ‘이 교회 정말 살아있네!’ 어떤 교회면 이런 말이 나올까요?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힘 있게 선포되는 교회일까요? 전도의 열정을 가지고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교회일까요? 아름다운 찬양과 풍성한 예배로 마음을 감동케 하는 교회일까요? 정말 뜨거운 사랑으로 서로를 돌아보고 함께 하는 교회일까요? 이 모든 것이 다 있는 교회가 살아있는 건강한 교회가 아닐까요?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함께 섬기는 교회가 그러한 교회입니다. 말씀을 맡은 자는 말씀을 전하는 일에 충성하고 복음 전하는 자는 복음을 위해 수고합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가 한 마음으로 서로를 돌아보고 각자의 역할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교회, 그렇게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주어진 일에 충성하고 겸손하게 하나 되어서 사랑으로 섬기는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누가 그 일을 해야 합니까? 우리 모두가 함께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각자의 위치에서 섬길 때, 그렇게 우리가 함께 주님을 섬길 때,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 귀한 일에 동참하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