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여호와를 알지 못하느냐?

본문: 사사기 2장 6~10절

설교자: 이병권

 

사사기 말씀을 1장부터 차례로 읽다보면 2장에 와서 좀 이상하다 싶은 것이 있습니다. 1장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2장에 와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사사기 1장 1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시작합니다. 1장에는 여호수아의 죽은 후에 각 지파가 했던 일들이 차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2장 6절에 다시 여호수아가 나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의 죽음이 언급됩니다. 처음 사사기가 시작되었던 시점으로, 1장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습니다.

사사기는 이렇게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두 번에 걸쳐서 서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장에서 첫 번째 서론이 나오고 2장에서 두 번째 서론이 나옵니다. 이렇게 두 번의 서론이 나오면서 지금 이스라엘의 모습이 어떠한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1장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첫 번째 서론에서는 이스라엘 각 지파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했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반쪽짜리 순종을 보여줍니다.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지만, 가나안 풍습을 따라합니다. 이익을 위해서 그 땅의 백성들을 살려주고 종으로 부립니다. 그리고 그 땅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철병거 때문에 싸우기를 포기하기도 하고, 가나안 성읍의 사람과 언약을 맺기도 합니다. 단 지파의 경우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땅을 차지하는데 실패합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그들의 불순종을 책망했고 백성들은 울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여기까지가 2장 5절까지 첫 번째 서론의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듯이 구체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 본문에서부터 3장6절까지의 기록이 두 번째 서론인데, 뉴스에 비유를 하면 첫 번째 서론은 실제 사건을 그대로 전달한 것이고, 두 번째 서론은 사건에 대해서 기자가 요약하고 평가한 것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서론은 사건에 대한 해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작가는 오늘 본문인 두 번째 서론의 첫 단락(2:6-10)을 성경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세대가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세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시작은 좋았습니다. 여호수아가 각 지파에게 땅을 나누어 주었고, 그 땅으로 백성들을 보냈습니다. 백성들은 기업으로 받은 땅으로 가서 그 땅을 차지해 나갔습니다.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동안 백성들은 여호와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도 여호수아와 함께 했던 장로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모두 죽은 후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여호수아의 죽음은 암울한 역사로 바뀌는 전환점이 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이 어떤 백성입니까?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이 어떤 일인데 그 일을 모른다니요! 수백 년이 지난 후에 벌어진 일입니까? 아닙니다. 아버지가 죽은 후에 다음 세대인 그 아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합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백성들이 하나님이 누구신지 전혀 몰랐을까요? 살면서 한 번도 들어 본적이 없었을까요?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하신 일, 애굽에 내려진 열 가지 재앙, 홍해와 요단강을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시고 날마다 만나를 내려주시고 반석에 물을 내시며 여리고성이 무너뜨린 일, 백성들은 하나님이 하신 이런 일들을 전혀 몰랐을까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아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말이야“ 이렇게 말했을 때 아들이 ”네? 그게 누군데요?“ 이랬을까요? 아닙니다. 여기서 그 후에 일어난 세대가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말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알다’라는 말은 관계적이고 체험적으로 안다 것을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나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지 경험적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수아 이후의 백성들은 그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함께하신 특별한 역사, 히스토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이 역사를 유산으로 이어 받았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그 역사에 담겨있는 신앙은 이어 받지 못했습니다. 그 역사가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입니다. 나의 삶과는 연결시키지 못합니다. 역사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사실을 단지 지식으로만 안다면, 그 역사에 담겨있는 정신과 나에게 주는 교훈이 없다면,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것 때문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모른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서 더 이상 하나님이 중심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잊은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무엇을 기뻐하시고, 무엇을 미워하시는지, 그분을 어떻게 섬기는지, 그분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합당한지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이방 나라에 하나님을 전하며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스라엘이 자신의 정체성을 잊어버린 채, 가나안이 하는 것을 따라하며 삽니다.

사사기의 비극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것, 이것이 사사기에 나오는 모든 문제의 원인입니다. 한 세대가 경험했던 하나님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지 못한 것, 이것이 비극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그 후에 일어난 세대를 어떤 세대라고 말합니까? “다른 세대”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표현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백성들은 이전 세대와 같지 않습니다. 다릅니다. 다른 세대입니다. 사사기는 이 다른 세대가 겪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큰 도전으로 다가오지 않습니까? 지금은 괜찮을지 모릅니다. 문제가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이 문제는 우리에게도 현실이 될 것입니다. 사사기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방심하면서 엉뚱한 곳에 마음을 빼앗겨 한 눈 팔고 있으면, 우리는 세상에게 다음 세대를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우리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빠르게 타락해가고 있습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죄라고 말하는 것들이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죄를 더 이상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TV에는 죄악 된 삶을 아름답게 꾸미고 매력적인 것으로 소개합니다. 남녀가 서로 좋으면 같이 자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뉴스를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낯 뜨거운 사건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사람들이 돈을 좇아서, 쾌락을 좇아서, 자신의 인생을 내던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 자녀, 우리 손자, 손녀를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다음 세대에게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어떻게 물려줄 수 있을까요? 자녀들을 향한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 답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미리 말씀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실패했습니다. 우리도 동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한다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은혜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실패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다음 세대를 위한 대책은 신명기 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1) 모세는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행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 그 목적을 말씀합니다.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2)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 너뿐만 아니라 네 자손들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잘 살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명령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3)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복을 누리며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요?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듣고 행하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에 대한 대답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 백성들이 눈으로 볼 수 있었던 애굽의 신들과 가나안 신들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신들과 같지 아니하시고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 여호와이십니다.

그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하라고 명령합니까? 어떻게 하면 그 땅에서 나와 나의 자손들이 잘 살 수 있을까요?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5)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말씀에 순종하라’, ‘내 명령을 지켜 행하라“가 아닙니다.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말씀을 기록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너와 자손들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잘 살기 위해서 항상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것, 가장 중요한 것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야!‘ 예수님은 이 말씀을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2:38).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라는 명령 앞에는 다른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먼저 사랑을 명령하셨습니다. 마음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에게 한 말씀인가요?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가르치라는 명령입니까? 아닙니다. 누구에게 한 말씀인가요? “너는입니다. 자녀들이 아닙니다. 네가 부모로서 자녀를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야! 자녀를 가르치기 전에, 뭔가 방법적인 것을 고민하기 전에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야!‘

이것이 해결책입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그들이 다른 세대가 되지 않도록 붙들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해서, 뜻을 다해서, 힘을 다해서,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음 세대에게 믿음을 전달 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올바른 교리를 가르치고, 자녀를 세상의 죄로부터 막아 보호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삶이 자녀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는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르치는 것과 내가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살피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자녀들은 그 차이를 보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날 세상의 모습을 보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지금도 세상이 이렇게 타락해가고 있는데, 우리 자녀들이 커서 살아가는 세상은 또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면 마음에 걱정과 두려움이 생기는 겁니다. 하지만 저에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 자신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가치 있다고 말하면서 정작 나는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그냥 빈껍데기 같은 신앙으로 의무감으로 순종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는 정말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고 감사함으로 수고하고 있는 걸까? 하나님을 섬기는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함이 식어져버린 나에게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그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내 말과 내 삶이 다를 때, 그것은 악한 세상보다 더 두려운 것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게 타락한 목회자가 아닙니까? 뉴스에 나와서 욕을 얻어먹는 목사들만 타락한 목사일까요? 아닙니다. 비록 뉴스에 나오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이 못난 자를 붙들어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목사님이라는 소리를 들으니까 내가 뭔가 된 것처럼 착각에 빠져서 배 좀 불렀다고 하나님을 잊고 그냥 이 땅에서 편하게 살려고 애쓰는 그런 자격 없는 자가 될까 두려운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 멀어져있다면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괜찮아 보인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다른 외적인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한순간에 다 무너질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삶에서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섬기려 하지 않고 사랑으로 인내하지 않고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산다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다른 세대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말씀을 하나 암송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암송하는 말씀을 내가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단지 이론이 아니라 단지 입술이 아니라 그 말씀을 믿음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삶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왜 교회를 떠나는지 아십니까? 교회가 재미없어서요? 아닙니다. 젊은이들이 교회에서 기대하는 것은 재미가 아닙니다. 재미있는 것은 세상에서 얼마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교회에 기대하는 것은 세상과 다른 모습입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세상과 다른 모습을 보지 못할 때 떠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주님! 외치며,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세상과 똑같이 누구보다 돈을 사랑하고, 누구보다 이기적이고 자신만을 생각하니까 그 모습을 보고 실망하는 겁니다.

오늘날 세상이 교회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왜 이렇게 욕을 먹고 있을까요?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를 따른다고 하면서 전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닙니까?

그런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삶으로 우리 믿음을 증명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말씀의 제목으로 다시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여호와를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을 다음 세대, 나의 자녀와 손자들도 알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분을 잊지 마십시오. 그분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십시오. 주중에 까맣게 잊고 살다가 잠깐 교회 와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정작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죄의 유혹 앞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매 순간마다 우리 하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행하신 위대한 일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 합당하게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삶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증거와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냐 하거든”(20)

언제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훗날에 자녀가 물어볼 것입니다. 부모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이유를, 왜 부모가 그렇게 사는지 왜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지 그러면서도 왜 기쁨으로 행복해하는지 궁금해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도 하나님을 섬기는 삶의 가치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신앙의 진실 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로서 자녀를 정말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자녀를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