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령의 위로가 충만한 교회

본문 : 사도행전 9장 32절~43절

설교자 : 조 정 의

 

오늘 설교의 제목은 31절에서 나왔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 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 지니라.

누가는 여기서 중간 정리를 한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교회는 이제 온 유대, 갈릴리, 사마리아까지 확장되었다(행 1:8). 교회를 잔멸하려 했던 원수 사울을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셨고, 그리하여 교회는 평안을 찾았다. 각 지역에 흩어진 교회는 점점 힘을 잃어 가지 않고 오히려 든든히 서 가고 그 수가 더 많아졌는데, 그 이 유는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에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가 충만했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예시를 오늘 본문에서 두 사건을 통해 살펴보기 원 한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1) 성령께서 교회를 위로하시는 분 이시며, 2) 성령이 성도를 통해서 교회를 위로하신다는 사실, 3) 그리고 그 결과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진리를 배우기 원한 다. 오늘 말씀을 통해 당신이 성령의 위로를 간절히 구하기 원하며 주를 경외함으로 성령의 도구가 되어 성도를 위로하는 자 되 기를 간절히 원한다.

1.    성령께서 위로하신다

먼저 우리는 두 가지 사건 모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 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룻다에 사는 중풍병자 애니아를 자리에서 일으킨 분은 성령님이셨다(34절). 욥바에 살 던 여제자 다비다를 죽음에서 일으킨 분도 성령님이셨다(40절). 성령께서 어떻게 놀라운 역사로 교회를 위로하셨는지 살펴보자.

첫 번째로 성령이 위로하신 애니아는 룻다에 살고 있었다. 룻다는 구약시대 ‘롯’(대상 8:12) 혹은 ‘로드’(스 2:33; 느 7:37; 11:35)라고 불린 지역으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베냐민 지파의 한 히브리인이 세운 성읍이었다. 항구도시 욥바와 예루살렘을 연결하는 큰길 교차로에 있었고 군사, 상업의 요충지였다. 룻다에는 성도들이 살고 있었는데(32절),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애니아였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8년이 되었다(33절).

중풍은 “뇌혈관의 장애로 갑자기 정신을 잃고 넘어져서 구완괘사 (얼굴신경마비), 반신불수, 언어 장애 따위의 후유증을 남기는 병”이다. 애니아는 얼굴과 몸이 마비되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침상에 누워 누군가가 몸을 돌려줘야 하고, 일으켜 앉혀 줘야 하고, 음식을 먹여줘야 하고, 몸을 씻어줘야 하는 상태로 8년, 2920일을 살았던 것이다.

이렇게 오랜 기간 병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은 그 삶이 얼마나 힘 들고 고통스러운지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병자에게도 큰 고통이 지만 늘 병자를 수발해야 하는 가족에게도 보통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삶의 질이 바닥까지 뚝 떨어진다. 희망이 사라진 다. 삶의 의미를 찾기 힘들다. 마음이 항상 우울하고 지쳐있다. 그렇게 끝없이 반복되는 고통스러운 일상 속에 성령님은 참된 위 로자로 애니아를 찾아오셨다.

먼저 성령님은 베드로를 애니아에게 보내주셨다. 베드로는 사방으로 두루 다니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 내려갔다(32절). 바로 거기서 애니아를 만난 것이다. 이것은 우 연이 아니다. 성령께서 사도행전의 주인공이시며 장기판의 말을 움직이는 주권자이시다. 그분이 빌립을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보 내시고, 그분이 베드로를 룻다에 사는 애니아에게 보내셨다.

베드로가 애니아에게 뭐라고 말하는지 보라.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34 절). ‘내가 너에게 명하노니’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신다’이다. 왜 이것을 성령의 위로라고 말하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 라”라고 말씀하셨다(요 14:12).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는데 어떻게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할 수 있는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또 다른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서 베드로와 함께 계셔서 예수님이 행하신 그 일을 하게 하신 것이다. 보혜사는 위로자 (Comforter, KJV)라는 뜻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많은 중풍병자를 고치셨다(마 4:24). 가장 유명한 장면 은 지붕을 뚫고 내려온 중풍병자일 것이다(마 9:2). 성령은 예수 님이 하신 그 일을 하셨다. 성령은 빌립과 함께 하시면서 많은 중 풍병자를 고치셨고(행 8:7), 베드로를 통하여 중풍병자 애니아를 고치셨다. 성령의 권능으로 애니아는 8년간 괴롭힌 병에서 즉 시 고침을 받았다. “곧 일어”났다(34절). 얼마나 큰 위로였을까?

두 번째 사건은 욥바에서 일어났다. 욥바는 다시스로 도망가기 위해 요나가 이용한 항구 도시로 유명하다(욘 1:3). 솔로몬의 성 전 재료였던 백향목이 선적되었던 곳이도 하다(대하 2:16; 스 3:7). 헤롯은 욥바 사람을 싫어하여 북쪽으로 50km 떨어진 곳에 최신식 항구 도시인 가이사랴를 건설했지만, 여전히 욥바는 아름다운 항구도시로 예루살렘을 오가는 사람들이 자주 이용했 다. 룻다에서 욥바까지는 17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성령께서 위로하신 두 번째 인물은 욥바에 살던 다비다(아람어)/도르가(헬라어)라는 자매였다(36절). 그녀의 이름 뜻은 ‘사슴’이 었는데, 이름보다 더 아름다운 건 그녀의 삶이었다. 36절에 나오는 것처럼 그녀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다(약 1:27; 경건). 대표적으로 과부들에게 속옷과 겉옷을 바느질로 지어 입히는 일을 했다(39절). 안타깝게도 그녀는 병들어 죽었고, 사람 들은 그녀의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었다(37절).

교회에서 많이 섬겼던 이들이 죽을 때 큰 슬픔이 있다. 사랑을 받고 섬김을 받은 사람들은 섬겼던 이들을 그리워하고 더 이상 볼 수 없음을 안타까워한다. 다비다가 부지런히 바느질하여 만든 옷을 입고 있던 과부들은 자신들이 입고 있는 옷을 베드로에게 보이면서 자신들이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울었다(39절). 욥바의 성 도들에게 참된 위로가 필요했다.

룻다에서 욥바까지는 이동하는 데 6-8시간 소요된다. 제자들은 베드로가 룻다에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하지 말고 와 달라고 간청했다(38절). 베드로에 대한 소식을 어떻게 들었을 까? 그리고 그에게 와 달라고 간청한 믿음은 어디서부터 난 것일 까? (본래 사람이 죽으면 향품을 바르고 따로 보관함)

성령 하나님은 제자들 마음속에서도 역사하셨고, 베드로를 통해 서 다시 한번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다. 베드로는 사람을 다 내보 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40절).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 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 로 기도했을 것이다(요 14:14).

성령께서 베드로를 통해 죽은 다비다를 살리신 장면 또한 예수님 이 하신 일의 판박이다.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그리고 아이의 부모 외에 모든 사람을 내보내시고는 ‘달리다굼’이라 말씀하셨다(막 5:41). 베드로는 다비다의 시체를 향하여 이렇게 외쳤다. “다비다야 일어나라”(아람어: 다비다굼, 40절). 성령께서 주를 사랑하던 여인의 눈을 뜨게 하시고 죽음에서 일어나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다비다와 많은 과부들, 성도들을 위로하셨다.

성령님은 지금도 교회를 위로하신다. 물론 성령이 항상 병을 기 적적으로 고치시거나 죽은 자를 언제나 살리시는 건 아니다. 하 지만 성령은 지금도 성도의 교제 가운데, 성도가 베푸는 긍휼과 자비 가운데 참된 위로를 주시는 원천이 되신다(빌 2:1). 병들었을 때 성도가 기도하는 힘으로 성령께서 병을 낫게 하신 경험이 있지 않은가? 병을 이길 힘을 주시고 유약한 마음을 강하게 만들어 주신 일이 있지 않은가? 사랑하는 성도가 먼저 주님 품에 안겼을 때, 오직 성령만이 주실 수 있는 평안과 기쁨으로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며 슬픔을 이긴 적이 있지 않은가? 성령님은 교회의 위로자로서 신실하게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신다.

2.    성령께서 성도를 통하여 위로하신다

두 번째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령께서 성도를 위로 하실 때 성도를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애니아를 일으킨 능력 은 성령의 능력이었고 그 능력으로 애니아와 제자들이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베드로를 통하여 그 일을 하셨다. 사방으로 두루 다니며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 내려간 사람은 베드로였다. 베드로 가 애니아를 만났고 그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일어나라고 말했 다. 성령께서 베드로를 통해 애니아를 위로하신 것이다.

다비다 역시 성령의 능력으로 죽음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성령 은 베드로를 통해서 그녀와 성도들을 위로하셨다. 베드로가 제자들의 간청을 받고 8시간을 이동하여 욥바에 이르렀고, 울고 있던 모든 과부들의 말을 들었으며, 다비다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였다(41 절). 성령께서 베드로를 통하여 욥바 교회를 위로하신 것이다.

성령님은 지금도 성도를 통하여 교회를 위로하신다. 보혜사(위 로자) 성령을 받은 성도는 모두 성령의 대리인으로 위로의 사역을 행하는 자가 되었다(살전 4:18).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모 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신다(고 후 1:4). 당신이 하나님께 받은 위로를 다른 성도와 나누라. 위로 가 필요한 성도를 찾아가 성령의 능력으로 교제하라. 긍휼과 자 비가 필요한 성도에게 성령의 능력으로 사랑의 위로를 베풀라. 위로가 필요한 성도를 생각나게 해달라고 구하라. 그리고 위로 자 성령님이 사용하시는 위로의 아들이 되어 성도를 위로하라.

3.    성령께서 성도를 통하여 위로하실 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마지막으로 성령께서 성도를 통하여 위로하실 때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주목해보자. 먼저, 성령께서 베드로를 통해 룻다에 사는 애니아와 그 주변 성도들을 위로하셨을 때, 35절을 보면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왔다. 사론은 룻다 인근의 넓은 평야 지역으로(폭 15km, 길 이 80km) 근방에 사는 많은 이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다비다와 욥바 교회를 성령께서 베드로를 통해 위로하셨을 때 역 시 유사한 역사가 일어났다. 42절을 보면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었다. 또한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머물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는데,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 머물었다(43절). 무두장이는 짐승의 껍질을 무두질하여 가죽을 만드는 일로(피장), 죽은 동물의 사체를 멀리해야 할 베드로에게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장소였지만, 바로 여기 머물다가 베드로는 이방인의 첫 구원의 역사를 보게 되었다(10장). 성령께서 교회에 이방인을 더하신 놀라운 역사를 이루신 것이다.

구원의 역사는 성령의 말씀과 성령의 위로가 충만한 교회에서 일어난다. 주를 경외하는 설교자는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 씀을 두려운 마음으로 신실하게 선포하고, 그 말씀을 듣는 성도는 주를 경외하여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한다. 성령 충만한 교회는 또한 성령께로부터 받은 위로의 능력으로 서로 위로한다. 이렇게 성령의 말씀과 성령의 위로가 충만한 교회는 세상에서 평안 과 기쁨이 없어 목말라하는 영혼, 진리를 찾아 헤매는 영혼의 갈 증을 해결해준다. 그래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교회를 인도하는 자에게 성도가 줄 수 있는 가장 기쁜 소식은 무엇일까? 사도 요한은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 가이오와 그가 속한 교회에게 “내가 내 자녀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라고 말했다(요이 4, 요삼 4). 그리고 그 진리 안에서 행하는 가장 큰 열매는 성도가 서로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었다(요이 5, 요삼 5).

말씀과 진리에서 멀어진 성도를 바라보는 건 참 슬픈 일이다. 혼 자 동떨어진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를 생각하면 참 안타깝다. 하 지만 정말 힘이 되고 격려가 되고 큰 기쁨이 되는 건, 진리를 사 랑하고 진리 가운데 행하는 성도가 누군가를 위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다. 누군가를 만나 교제를 나누고 누군가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고 누군가를 위로했다는 말을 들을 때다. 우리에겐 과부를 위해 조용히 바느질하는 성도가 필요하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사람을 보내어 와 달라고 간청하는 성도가 필요하다. 병 든 자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가 필요하고, 우는 성도와 함께 우는 성도가 필요하다.

오늘 이 진리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가 되지 말 라. 진리 안에서 행한다면 성도를 위로하라. 성령의 위로가 충만한 교회가 되어 성령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역사가 우리 교회에 서 끊이지 않고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