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성경에서 말하는 집사
본문: 사도행전 6장 1절-6절
설교자: 조성훈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오늘날 기독교계 안에서 집사만큼 오해받고 있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다들 집사인데 자신만 집사가 아니라서 교회를 안 나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집사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점점 커지다보면 그 안에 일이 많아지고 그 일을 분담하는 것이 필요하게 됩니다. 교회에는 성도들을 영적으로 이끌어갈 목자가 세워지고, 그가 본연의 임무에 전념하기 위해 집사를 세워 교회의 세부적인 일들을 담당하게 합니다. 그것이 와전되어서 오늘날은 집사를 하나의 계급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례로 어떤 사람은 교회에 몇 년 다녔냐고 묻고 그런데 왜 아직도 집사가 되지 못했냐고 묻습니다. 마치 교회를 오래 다니다보면 당연히 집사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직장에서 시간이 가면 직급이 올라가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화장실을 일 년 동안 청소할 집사님을 뽑겠다고 하면 누가 자원할까요? 어떤 사람이 추천을 받아서 집사가 되었다면 그는 기뻐할까요? 사람들이 집사를 계급으로 생각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어떤 사람을 집사로 세워야 할까 고민합니다. 후보자 중에 집사가 되지 못한 사람이 낙심할까 걱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이런 사람들이 없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자신이 왜 집사나 장로가 되지 않냐고 저에게 찾아와서 따지는 사람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6). 당시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고, 성도들은 자신의 밭을 팔고 재산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물질을 가져다 놨습니다. 그러한 물질들을 나누는 일이 감당할 수 없이 많아진 것입니다. 사도들은 본래 그들이 해야할 일, 말씀을 전하는 것과 기도하는 일, 영적인 일들에 전념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한 부류의 헬라파 사람들이 소외되고 그들 중에서 불만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1). 사도들이 고의적으로 빠뜨린 것은 아니었을 것이나, 헬라파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차별받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2). 이제는 그런 물질을 나눠줄 합당한 일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3). 물질을 나누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들을 선별하라고 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장로와 집사의 자격은 거의 비슷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장로 아래에 집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는 이와 같은 자격이 필요합니다. 집사는 재정을 보는 일, 구제하는 일 등 교회 안에서 할 일이 많습니다. 모든 교회 안의 일들에는 신실한 일꾼들을 필요로 합니다.

사도들은 말씀을 연구해서 성도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는 것이 본연의 임무입니다. 성도를 영적으로 양육하고 말씀으로 권고하며 상담하고 기도하는 일들을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의 많은 다른 일들로 그 일이 방해받을 때가 있습니다. 저 역시도 때로 화장실을 고치기도 해야 했고 교회 지붕에 칠을 하는 일도 해야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다행히 제 본연의 일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3). 이 말씀에서는 집사의 자격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딤전3:8-10).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딤전3:11).

집사들은 신중하고 일구이언하지 말아야 합니다. 술을 좋아하지 않고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않는 자여야 합니다. 또한 깨끗한 양심과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합니다. 또한 그의 아내도 신중하고 남을 헐뜯지 않는, 절제된 사람이어야 합니다. 집사가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딤전3:12).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 그의 자녀들도 부모를 잘 순종하는 자라야 집사의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집사의 일을 하는데 그런 자격이 꼭 필요한 것일까요? 교회의 일꾼으로 일할 때 하나님은 그와 같은 자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이 영적인 일이고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일들은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 관련이 있고 하나님의 집이므로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아내와 싸우면서, 정직하지 못하게 살면서, 직장에서 부당한 이익을 취하면서 교회의 일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일에 거룩한 자, 성실한 자,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식하는 자를 필요로 하시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합니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목적은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함입니다. 어떤 직장이 좋은 직장인가요? 일을 적게 하고 돈을 많이 버는 직장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하늘나라의 행정직을 모집한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올 것입니다. 그 급여가 한 달에 우주의 별을 한 개씩 주는 수준이라면 말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고, 집사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것이 청소를 하는 것이든, 말씀을 전하는 것이든,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이든,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이고 하나님의 칭찬과 평가를 받는 일입니다. 집사의 일도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신실하고 충성스럽고 맡은 일을 충성스럽게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4).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딤전3:10). 집사들에 대해 그들이 신실하고 청결한 양심을 가진 자인가를 시험하여 보고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직분을 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딤전3:13). 집사의 직분을 잘하는 사람은 성도들로부터 존경과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1).

집사의 직분을 잘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믿음 안에서 담대함을 가지고 나갈 수 있습니다. 집사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입니다. 세상에서는 누가 더 높은가의 싸움이 있지만 교회 안에서는 누가 더 낮은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장 밑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22:27).

우리 역시 자신을 평가할 때 ‘나는 유평교회에 섬기는 자로 있다’라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반면 우리의 본성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늘 싸워야 합니다. 보통 우리가 기분이 나쁜 것은 나보다 못한 사람이 나를 무시할 때 아닙니까? 우리의 본성은 높아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제자들을 섬기셨습니다. 우리도 그런 자세를 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누군가 집사로서 선택될 때 그 자신은 성도들을 섬기는 종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일들을 하면서 머지않아 주님이 오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까지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빌립도 스데반도 놀라운 역사를 행한 일꾼들인데 우리 안에서도 그와 같은 일꾼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 그것이 주일학교든 학생회든 어떤 부서이든 주님을 위해 충성할 때 주님의 칭찬과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섬기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는데 사람을 섬기는 데는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믿는 형제들을 섬기는 것이 곧 나를 섬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지금 하늘나라에 계시고 우리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이 헐벗고 계신다면, 지금 병원에 누워계신다면 찾아가서 섬기는 것에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도들을 섬기는 삶입니다. 누가 집사로 세워진다 하더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그 일에 충성스럽게 일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일이 청소를 하는 일일지라도 그것은 특권입니다. 집사의 직분을 충성스럽게 잘하는 사람은 상상을 초월하는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 썩을 것이 아니라 썩지 않을 것으로 보상받게 될 것입니다.

사도들은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교회에 많은 성도들이 더해져서 일이 많아지자, 집사를 세워 그 일들을 감당하게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이 성경에 나와 있느냐 없느냐로 따지기도 하지만, 성경에 나와 있지 않아도 교회를 위해 어떤 일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적으로 볼 때 합당하고 성도와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면 용납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맡기실 때 즐거움으로 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