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서로 돌아보라
본문: 히브리서 10장 24절
설교자: 조정의

하나 됨, 서로 사랑, 시리즈에 이어 “서로 돌아보라”는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자세한 문맥 설명은 18일 주일 설교에서 25절을 다룰 때 하겠습니다. 오늘은 “서로 돌아보라”는 명령의 의미와 그 구체적인 적용을 살펴보겠습니다.

24절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

1. 의미

먼저 “서로”는 교회가 함께 순종해야 할 명령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서로” 명령은 언제나 내가 “먼저” 순종해야 완성되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에 예외가 되는 성도는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각자는 먼저 다른 사람을 돌아보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돌아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기 “돌아보다”에 사용된 단어(κατανοέω)의 원래 의미는 ‘심사숙고하다’ ‘마음을 쓰다’ 입니다. 그래서 새번역 성경에서는 24절 말씀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24절 서로 마음을 써서 사랑과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합시다

이 말은 성도가 성도를 대할 때 특별히 마음을 써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심사숙고하여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무엇일까요? 뒤따라 나오는 말씀이 보여주는 것처럼,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도를 대할 때, 어떻게 하면 사랑과 선행을 하도록 격려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서 “격려하다”는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단어(παροξυσμός)는 신약성경에 두 번 사용된 강력한 단어인데,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는 “선동”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 여행을 앞두고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섰다고 말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행 15:39).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의 마음을 선동하고 자극하여 심한 다툼이 일어난 것처럼, 긍정적인 측면에서 성도는 서로의 마음을 자극하고 동기를 불러일으켜 사랑과 선행이 일어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격려하다”는 말은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이 단어는 “휘젓는다”(Stir Up)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마실 때 수저로 휘젓습니까? 그럴 필요가 없죠. 하지만 믹스 커피를 만들어 먹으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수저로 저여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컵의 바닥에 내용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성도에게 사랑과 선행을 격려한다는 것도, 이미 그 성도 안에 사랑과 선행이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우리는 성도에게 없는 사랑과 선행을 억지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도라면 그들 안에 있어야 할 사랑과 선행을 불러일으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를 분명히 가르칩니다.

먼저, 구원받은 사람에겐 형제 사랑의 마음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소아시아 성도를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벧전 1:22)

그들이 복음의 말씀, 진리에 순종하여 깨끗한 영혼을 입었을 때, 그 결과 거짓 없이 형제를 사랑하는데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거듭난 사람의 분명한 열매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요일 3:10).

선을 행하는 것 역시 구원받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하였습니다(딛 2:14). 

선을 행하는 것이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에 그 목적을 두셨을 뿐 아니라 그 목적을 우리 안에서 직접 이루십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그러므로 누구든지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구원의 결과로서 그 안에 형제를 향한 사랑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을 행하려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어떻게 그들 안에 있는 사랑과 선행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주어진 명령의 참 의미입니다.

해리 포터와 그 친구들이 마법 지팡이를 들고 다니다가 주문을 걸 대상을 만나면 지팡이를 휘두르는 것처럼, 우리는 성령이 주신 말씀의 지팡이를 가지고 성도를 만날 때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마음에 있는 성도를 향한 사랑과 선을 행하려는 소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2. 적용

그러면 이제 어떻게 이 말씀을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겠습니다. 1) 성도 사랑을 격려하는 것 2) 선행을 격려하는 것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릴 내용은 절대 법칙은 아니지만, 오늘의 말씀을 실천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먼저 밝힙니다.

1) 성도 사랑을 격려하는 방법

첫째로 성도 사랑을 격려하는 방법은 서로 문안하는 것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성도 사랑의 방법입니다. 사랑의(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는 것입니다(롬 16:16; 고전 16:20; 고후 13:11; 살전 5:26; 벧전 5:14).

여러분, 세상 말에도 “인사만 잘해도 먹고는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반갑게 진심으로 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인간관계 속에 호감을 산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안에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구원의 열매로 주어졌습니다. 그 사랑을 가지고 진심으로 문안하는 것, 인사하는 것이 우리가 성도의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예전에는 잘 아는 사람이든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든 성도가 만나면 무조건 밝게 인사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엔 문화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잘 아는 사람, 친한 사람하고만 인사를 합니다. 교회가 주님 안의 한 가족이라고 생각할 때 이것이 얼마나 이상하고 잘못된 모습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지가 일하고 들어왔는데 아무도 아는 척을 안 하고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면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모여 있는 하나님의 집에서 우리는 서로 사랑의 인사를 나눠야 합니다. 특별히 지금 세대 아이들, 학생들, 청년들은 잘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하지 않는 문화 속에 자라고 있기 때문에, 말씀의 지팡이를 가지고 그들의 마음을 휘저어 줘야 합니다. 서로 문안해야 한다는 것을 말로 가르치기도 하고, 먼저 인사하여 본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수준의 서로 사랑을 격려하는 방법입니다.

특별히 교회 새로 더해진 성도나 방문자들은 성도의 따뜻한 문안이 필요합니다. 그것으로 성도의 사랑을 가장 먼저 느낍니다. “서로” 그리고 “먼저” 사랑으로 문안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성도 사랑을 격려하는 방법은 화평을 이루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롬 14:9).

여러분, 교회 안에는 화평과 덕을 세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분쟁을 일으키고 해를 끼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한 자매가 다른 자매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그 어려움을 또 다른 자매에게 털어놓습니다. 그러면 그 말을 들어준 자매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교제 후에 화평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교제 후에 오히려 더 큰 분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에 따라 어떻게 하면 성도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불러일으킬까 심사숙고한다면 어떻게 교제해야 하겠습니까? 나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 그 성도의 마음에 화평과 사랑이 일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와 대화를 나누고 오히려 판단, 정죄, 비난의 마음이 일어난다면 “서로 돌아보라”는 명령에 불순종한 것일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행한 것이 되고 맙니다.

때로는 성도의 마음을 헤아려주기 위해 공감해주고, 다른 성도의 분명한 죄가 문제인 경우라 그것을 언급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에든지 참되고, 경건하며, 옳고, 정결하며, 사랑받을 만하고, 칭찬받을 만하고, 덕이 있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빌 4:8). 그래서 결과적으로 성도 안에 있는 다른 성도를 향한 사랑이 일어나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강력하게 촉구합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셋째로 성도 사랑을 격려하는 방법은 성도를 돌보는 것입니다(살전 5:14). 오늘날 많은 교회가 목사와 평신도로 구성되어, 목사가 모든 평신도를 돌보거나, 목사가 꾸린 인도자 그룹이 평신도를 돌보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적인 모델은 성도가 성도를 돌보는 것입니다. 물론 목사에게 성도의 영혼을 돌볼 책임이 주어졌습니다(히 13:17). 하지만 그것이 성도가 성도를 돌아볼 책임을 제거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살전 5:14)

목사에게만 주어진 명령이 아닙니다. 모든 형제 그리고 자매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라고 명령합니다. 게으른 자를 찾아가 경고하고, 약한 자들을 찾아가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찾아가 붙들어 주고, 모든 사람을 참아야 할 책임이 모든 성도에게 주어졌습니다. 

한번 생각해봅시다. 만일 세 목사에게 교회 성도를 돌아볼 책임이 주어졌다고 생각하고, 성도가 서로를 돌보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게으른 자를 찾아가 경고해야 하는데, 세 목사 모두가 다른 사람을 돌보느라 바쁘면, 때를 놓칠 것입니다. 마음이 약한 자를 격려해야 하는데, 그 성도를 만날 차례가 아직 멀었다면, 격려를 받지 못하고 약한 마음으로 넘어질 것입니다.

교회는 절대로 극소수의 인도자의 돌봄만으로는 충분한 목회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교회는 성도 개개인이 서로를 돌봄으로 목회가 이루어집니다. 성도의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돌보는 것입니다.

가족도 친척도 없이 홀로 참석 중인 청년이 외로워하는 게 보인다면 가서 사랑으로 돌보십시오. 교회 더해진 지 얼마 안 된 가정이 눈에 띈다면 가서 사랑으로 돌보십시오. 격려가 필요한 성도를 찾아가 격려하고, 위로가 필요한 성도를 위로하십시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십시오(롬 12:15). 

적어도 한 가정이 또 다른 가정 혹은 성도 한 사람을 돌보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사랑을 받은 성도는 그 사랑을 또 다른 성도를 돌보는 일에 사용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성도 안에 있는 사랑을 격려하는 강력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2. 선행을 격려하는 방법

다음으로는 선행을 격려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두 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죄에서 돌이키도록 돕는 것입니다(갈 6:1). 바울은 이것을 “짐을 서로 지는 것”이라 표현했고, 이것이 그리스도의 법 곧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갈 6:2).

우리는 성도의 죄를 발견하면 불쾌하게 여기거나 속으로 정죄를 하고 심지어 뒤에서 험담하고 그렇게 소문을 퍼뜨리기도 합니다. 그것은 절대로 성도에게 선행을 격려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는 마땅히 성도가 죄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나도 그 형제/자매처럼 같은 죄로 넘어질 수 있다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온유한 심령으로 죄를 범한 성도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자주 분노하는 형제가 있을 때, 흔히 우리는 ‘왜 또 저래?’ 속으로 생각하고 그냥 넘어갑니다. 하지만 그 형제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을 행하기 원한다면, 그것을 불러일으키기 원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 형제를 개인적으로 찾아가 그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온유하고 겸손하게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도 그런 권면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아주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말해주는 데도 처음에는 그 말이 달콤하지 않고 씁쓸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 그 말을 해준 사람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잘못을 고치고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할 수 있게 해준 것이 참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죄를 고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성도가 죄에서 돌이키도록 서로 도와야 합니다.

선행을 격려하는 두 번째 방법은 선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선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며(롬 12:1), 아들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고(롬 8:29), 성령의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갈 5:22-23).

우리는 성도와의 교제 중에 선을 격려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자주 품는 잘못된 생각 중 하나는 성도의 교제에 말씀의 정답을 말하는 건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기뻐하지 못하는 환경에 대해 말하는 중에 ‘그래도 우리 주님을 생각하며 기뻐합시다’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런 생각이 어디서부터 올까요? 절대로 하나님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선을 행하도록 격려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행하도록 서로를 격려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의 서신서들을 보십시오. 교회에 편지를 통해 나눈 교제는 얼마나 정답으로 가득차 있습니까? 우리는 교제 중에도 어떻게하면 이 교제의 방향을 서로에게 선을 행하도록 격려하는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 심사숙고 해야 합니다.

선행을 격려하는 것은 교제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가능합니다. 가장 크고 강력한 방법은 선을 행하는 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죄를 멀리하고 선을 행하시는 본을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는 성도에게 선을 행하는 본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성도 안에 그리스도를 위해 선을 행하고 싶은 소원이 있기 때문에, 옆에 있는 성도가 그 소원을 따라 적극적으로 선을 행할 때, 함께 선을 행하고 싶은 욕구가 솟아납니다. 더 적극적으로 함께 선을 행하자고 권면하는 것도 성도 안에 있는 선행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좋은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모이기에 힘쓰는 것, 25절에 나오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고, 주일에 기회가 될 때 제가 나눌 부분이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심히 참석하는 부친님과 모친님은 다른 성도의 마음에 큰 교훈을 줍니다. 큰 격려가 됩니다. 수요집회 늦게라도 참석한 새로운 성도는 나머지 성도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 모습을 통해 서로가 격려를 받고 더 모이기에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잘 나오지 못하는 성도에게 함께 모이기에 힘쓰자고 권할 수도 있습니다. 

비슷한 예로는 만찬 예배 참여를 들 수 있습니다. 각자가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 그리고 같이 참여하자고 권하는 것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선행을 격려할 수 있습니다.

결론

여러분 저는 유평교회가 사람이 넘치기보다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서로 뜨겁게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우리를 보고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줄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려면 오늘 우리에게 주님이 보여주신 명령에 따라 우리가 서로를 보며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각자의 마음에 있는 성도 사랑과 선을 행하려는 소원을 불러일으킬 것인가? 어떻게 성도에게 사랑과 선행을 격려할 수 있을까? 이것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총 다섯 가지 구체적인 적용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 우리는 서로 사랑으로 문안해야 합니다.

둘, 우리는 서로 사랑으로 화평을 이뤄야 합니다.

셋, 우리는 서로 사랑으로 돌봐야 합니다.

넷, 우리는 서로 죄에서 돌이키도록 도와야 합니다.

다섯, 우리는 서로 선을 행하도록 권해야 합니다.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고 서로 사랑하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 각자의 삶에 말씀하시기를 원합니다. 다섯 가지 적용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을지 여러분의 마음속에 보여주시고 행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유평교회가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뜨겁게 사랑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