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새 언약과 새 계명
본문 : 요한복음 13장 34-35절
설교자 : 조성훈

인간이 범죄한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할 계획을 세우시고 한 민족을 택하셔서 계약을 하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옛 계명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구약과 신약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 한 언약을 세우셨는데 그것이 옛 언약입니다. 누가복음에서 제자들과 앉으셔서 떡과 잔을 가지시고 이것을 새 언약이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에서 많은 언약을 주셨지만 대표적인 것이 십계명이고 그것을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계명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새로운 언약을 세우셨기에 새로운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리하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것을 알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성도들에게도, 신약의 성도들에게도 우리를 통해 하나님 자신을 세상에 알리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이고 복을 받는 것을 보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언약을 주시고 새로운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을 가장 잘 요약한 것이 고린도전서 13장입니다.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해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고 자랑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모든 것을 참으며 바라며 믿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 쉽지 않으냐하면 우리의 본성이 그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3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상실한 마음 그대로 두셨다고 했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상실한 마음은 온갖 더러운 것들이 섞여있는 상태입니다. 사랑은 뜨거운 감정이 아니라 오래 참고 온유하고 내 유익을 구하지 않고 다른 이의 유익을 구하고 자랑하지 않는 것인데 우리의 육신적인 본능은 이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후 아담과 하와의 자식들인 가인과 아벨 중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실 때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사람을 만들자’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속성에 따라 창조된 것을 말합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 온유, 공의, 자비 등에 따라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사단에게 속기 전에는 사랑하는 것에 전혀 문제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래 참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범죄하기 전이었다면 시기심때문에 싸웠을 리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죄가 들어온 다음에 시작되었습니다. 죄의 소원이 인간 안에 들어온 이후에 원래 속성과 죄의 속성이 싸우게 된 것입니다. 그 처음 경우가 가인과 아벨입니다.

그 둘은 한 가정에서 함께 자란 형제입니다. 둘 사이에는 사랑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둘의 제사 중 가인의 제사가 거절되었을 때 처음으로 그에게서 나오는 반응은 시기심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아이는 매일 20점을 받아오는데 옆집 아이는 100점을 받아올 때 여러분의 마음속은 어떠합니까? 거의 대부분이 부정적인 반응일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마음도 있습니다. 가인의 마음속에도 그럴 것입니다. 아벨을 죽이고만 싶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의 소원이 우리에게 있지만 그것을 다스리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매일 겪는 일입니다.

성경에서 말한 것처럼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것은 육신을 쫓지 말고 즉각적인 반응, 부정적인 반응에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반응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타인이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 우리 마음에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은 항상 이것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사도 바울입니다. 원하는 것은 내게 있으나 원하지 않는 것도 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있다고 하면서 자신을 곤고한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두 마음이 있으니 힘든 것입니다. 한 쪽 마음에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사랑하고 오래 참으려고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그렇지 않은 마음이 지배하려고 합니다. 사단이 우리에게 주는 생각입니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하는 것을 보면 서로 종노릇하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 모임을 가질 때 내가 섬기는 것보다 섬김을 받고 싶은 마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목회자 수양회를 가면 나이에 따라 방을 배치합니다. 그러다가 생일을 따져 방장을 정합니다. 섬기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오는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런 마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성령의 역사가 있어서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려면 성령의 역사에 따라 행해야 합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은 육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합니다.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온갖 죄악들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 3:1-2)’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짐을 지고 서로 종노릇하며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유평교회 성도들에게 감사한 것은 많은 분들이 영적으로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을 희생하고 봉사하는 성도들이 귀한 시대입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한 이들을 존경하는 것은 그들이 성공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다스리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언컨대 원수를 보자마자 속에서 기쁨이 넘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마음 한 쪽에서는 ‘그래도 사랑해야지, 참아야지, 내가 도와야지’하는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이고 구원받은 자의 특징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그리스도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매주 토요일, 주일에 어깨에 띠를 메고 전도지를 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것을 알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일방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최근에 저는 손주를 보았는데 딸이 아기를 키우는 것을 볼 때 부모의 사랑이 참 일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그와 같습니다. 제 딸이 노트에 아기에게 밥을 먹이고 씻긴 것을 적으며 그 대가를 적어놓지 않습니다. 아기가 하는 일마다 너무 귀엽고 예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시면서 잠잠히 사랑하시며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이를 사랑하는 어미의 모습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와 같습니다. 아이가 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어미는 그에게 사랑을 듬뿍 쏟습니다. 하나님의 나에 대한 사랑이 그와 같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서 하는 말은 대체로, 그동안 나를 키우느라 애쓰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해준 것이 무엇이냐고 말합니다. 세상에서는 진정한 사랑을 찾기 힘듭니다. 대부분의 사랑이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결혼한 사람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어떤 남자를 만나야 행복할까를 생각하지 내가 누구를 만나서 행복하게 해줄까라고 하지 않습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여자를 만나야 내가 행복할까를 생각합니다. 세상의 대부분의 사랑이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그나마 부모의 사랑이 가장 훌륭한 사랑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요일 3:1)’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서로에게 오래 참으라고 하시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서로 봉사하고 위로하고 서로 짐을 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계명입니다. 저 역시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저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를 하면 저의 반응이 좋지 않습니다. 그럴 때 참는 것입니다. 누군가 나에 대해 좋지 않은 얘기를 할 때 내 마음은 좋지 않지만 내 안에 성령이 계셔서 그를 참아야 한다, 감당해야 한다고 하시기에 그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마음에 들게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목자들이 인도하는 방식이 다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그 마음을 긍정적으로 바꿔서 주님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계시기에 감사합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의 생각을 따라 행동하지 말고 성령의 생각을 따라 행동하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을 사로잡아서 복종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잘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 때 모든 사람이 내 제자인 것을 알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성도들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기 힘듭니다. 주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우리가 주님의 제자인 것을 알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언약을 세우시고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어떤 조건도 없습니다. 다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계신 것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 사랑은 참아야 하고 희생해야 하고 짐을 져줘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낮아져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오래 참는 것도 참 힘듭니다. 주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면 우리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주의 제자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성도들이 주님을 드러낼 때 이타적인 사랑이 없는 세상 속에서 우리의 사랑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 나라에 가면 상급이 클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저보다 상을 많이 받을 분들이 많습니다. 믿는다는 것 때문에 다른 성도들을 위해 참아주고 다른 이의 짐을 덜어주고 용납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형제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다스려야 합니다. 처음으로 오는 부정적인 생각을 다스리십시오. 항상 사단과 육신이 우리에게 주는 첫 생각을 다스려 주님이 주시는 생각으로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구역모임을 위한 질문들

  1. 옛 계명과 새 계명에 대해 말해보라
  2. 사랑이 어떤 것인지 말해보라
  3. 서로 사랑하기가 힘든 이유를 말해보라
  4. 어떻게 하면 주님의 이 계명을 지킬 수 있는지 말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