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믿음의 도를 위한 싸움
본문 : 유다서 1:1-4
설교자 : 조  성  훈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2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는 순수한 믿음이 공격받지 않은 때는 없었습니다. 항상 성경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도 가라지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유다가 전해준 것은, 순수한 하나님의 복음과 진리가 공격을 받을 때 믿음을 지키기 위해 힘써 싸우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곳에서 복음이 전해지지만 그것이 많이 변질되어 있습니다. 사실 사단이 가장 공들여서 노력하는 것이 복음의 변질이 아닙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도 당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복음은 잘못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켜야 의롭게 된다고 했고 자신들이 만든 법을 지키게 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도 두 가지 측면에서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는 불신 세계의 박해이고 또 하나는 기독교계 안에서의 성경 왜곡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순수하게 믿는 사람들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병든 자에게라야 의원이 쓸데 있다”고 하셨고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목 마르지 않은데 억지로 물을 마셔야 할 때 참 괴롭습니다. 사실 복음이라는 것도 목마른 자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영혼의 갈증을 채우기 위해 사방을 다 찾아보지만 없어서 예수께 나와서 그 갈증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전도자들이 목마르지 않는 사람에게 복음을 말합니다. 억지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보지만 그가 구원받을 확률은 별로 없습니다. 또한 그렇게 복음을 전하면 그의 구원은 지식적인 것이 되기가 쉽습니다. 예수님이 왜 오셨는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잘 알지만 그 사람 안에는 참다운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주님을 만나서 목마름을 해결한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많은 이들이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건지 그저 아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진정한 복음은 목마른 자들이 찾는 것이고 그들이 주님을 만나 갈증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병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는 것입니다. 암 진단을 받은 사람에게 암 치료약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은 얼마나 반가운 소식입니까? 자신이 병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메시야를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기독교도 어떤 사업처럼 규모가 커져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로 교회를 채웁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에서 “무거운 짐”은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지게 된 부채의 짐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이 쉴 곳이 없어서 지고 있는 무거운 죄의 짐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 안에 양심의 법이 있어서 마음 속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데 그 짐을 벗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런 사람에게 쉼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사업이 잘 안 되어 힘든 사람, 집에 우환이 있어 괴로운 사람에게 그러한 일들을 교회에서 해결해준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는 잘못된 그리스도인들로 가득차게 됩니다. 이것은 분명 사단이 원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공짜가 아닙니다. 그것은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셔서 죄 값을 지불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은 절대 공짜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 잘못 가르치면 마치 복음을 공짜로 받은 것으로 생각하여 삶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전도자는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예수님께서 이미 지불하셨고 우리는 그것을 감사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신비한 체험을 해야 구원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방언을 했다, 기도원에서 환상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은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고 났더니 전도가 저절로 되고 성경이 저절로 깨달아지고 원수도 저절로 사랑해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도 정상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육체의 정욕과 성령의 소욕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눈을 떠서 주님을 섬기려고 하면 육체의 거센 반발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을 볼 때 우리의 마음 속에서는 두 가지 소리가 나지 않습니까. 하나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또 하나는 보기 싫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예수님 믿은지 40년 이상이 되었지만 아직도 성경을 보려면 싸움을 해야 합니다. 사단이 모든 사람들에게 성경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절로 원수를 사랑하게 되고 성경이 저절로 깨달아지고 전도가 저절로 된다는 것은 이 육신이 죽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 안의 영과 육의 싸움은 죽을 때까지 지속됩니다. 어쩌면 주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싸움이 치열해집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진정한 복음이 전해지는 경우가 드뭅니다. 율법적이거나 체험적인 구원을 가르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우리가 믿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 우리가 받은 구원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고 있기에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볼 때 모든 성도가 같은 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 번에 주신 믿음의 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일순간으로 믿고 영원히 거듭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아도 언젠가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이 두 가지가 여러분 가운데 확실하게 일어났다 할지라도 신앙적으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구원은 동일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내용을 알기는 하지만 삶에 성령이 역사하시는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의 구원은 지식적인 구원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도덕적으로 교리적으로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도덕적으로 타락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 제일 큰 장로교 교단에서 동성애자를 용납하여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축하하고 심지어 동성애자 목사가 있습니다. 많은 교회 사람들이 세상의 타락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신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도덕적으로 세상과 성별되어 살지 않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부터 텔레비전이나 핸드폰 미디어를 통해 도덕적으로 세속화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세속화되지 않았는지, 도덕적인 거룩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점검해봐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교리적으로도 공격받고 있습니다.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 교회들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말씀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왜곡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진화론에 동조합니다. 예수님은 동정녀를 통해 오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목사들을 양성하는 신학교의 80퍼센트 이상이 오염되어 있다고 합니다. 교리적으로도 우리가 믿는 것을 지키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천주교는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무슨 신이든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말합니다. 이름 있는 목사들도 그렇게 말합니다. 교회가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빛을 비추지 않습니다. 그 안에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하늘나라가 있다고 믿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왜 살지는 않습니까. 구원이 잘못된 것입니까, 내 삶이 잘못된 것입니까. 우리가 100퍼센트 순종은 못해도 성령의 역사가 삶에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방송에서 이틀 뒤에 지진이 난다고 하는데 피난을 가지 않는다면 그는 그 방송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믿는다고 말해도 그에 따른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믿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리운 자니라” 믿는 자에게는 성령의 역사와 육체의 정욕 사이에서 심한 싸움이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승리했을 때 기쁨이 있고, 육체의 욕심이 열매를 맺을 때 괴롭습니다.

 

어떤 사람이 연속극을 보면서는 눈물을 흘리지만 성경을 보면서는 냉랭하다면 그는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자신을 잘 점검해보십시오. 내 안에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의 싸움이 있는가, 내가 도덕적으로 세속화되지는 않았는가, 점검하고 하나님께로 회복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시고 늘 성경을 가까이 하시며 도덕적으로나 교리적으로 깨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가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는 사람들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더 많이 공부하여 우리의 신앙이 도덕적으로 교리적으로 바로 서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