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 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과연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믿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실제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히11:27)”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사는 것,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사는 것입니다. 현실에 있지 않고 보이지도 않지만 그것을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누리며 사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히11:1)” ‘실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모양이나 상태를 말합니다. 똑같은 단어가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히1:3)”는 말씀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기 ‘본체’라는 말이 ‘실상’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실체라는 말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소망하는 것, 바라는 것의 실체입니다.
어떤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며 삽니다. 그것은 분명 미련한 것입니다. 진리가 아닌 것을 바라보고 따라가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하다는 것은 진리입니까? 많은 이들이 그것이 진리인 줄 알고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믿음만이 진실된 것이고 그렇지 않는 것들은 모두 거짓입니다. 성경의 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보면 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멀리 떨어진 하나님의 약속들을 현재의 것처럼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역시 그러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보지 못했지만 주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을 본 적도 없는데 그 죽음이 나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나의 현실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들입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마음 속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멀리 있는 그 일이 현재 나의 일이 되고 오늘날 그것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다시 오시리라는 것을 지식적으로 알지만 자신에게는 아무런 확신도 즐거움도 없습니다. 믿음과 화합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본적도 없고 음성을 들은 적도 없지만 그분의 약속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 믿음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했기 때문에 애굽의 모든 보화를 버릴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으리라 하셨을 때 그것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나이가 90이 다 된 할머니가 마트에 가서 아기옷을 고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손녀 옷 사세요?”라고 물으면 “아니, 내가 낳을꺼야”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비오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은 우산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던 아브라함 역시 그러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을, 메시야도 천녀왕국도, 그들 생애에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앞으로 올 그것을 생각하며 즐거워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믿음으로는 육체적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이 믿음의 눈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주님이 곧 오실 것이고 이 땅은 불탈 것이며 하늘나라에 새로운 기업이 있고 우리가 그곳에 가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육신은 날로 후폐하여 지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롭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적으로 늙어갈수록 영원의 삶을 생각하며 주님의 오심을 기대하고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파트 분양을 받았거나 집을 짓고 있다면 하루하루가 갈수록 그곳에서 살 날이 가까워지므로 기대로 가득찰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늘나라에 기업을 준비해두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고 주님의 오심도 가깝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사실이고 진리입니다. 그러한 사실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현재 내것으로 삼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조금 이상한 사람들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늘나라의 실체들이 내 것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소망 중에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1:8)” 우리가 말씀을 늘 묵상하면 성령님께서 우리의 영안을 밝혀주셔서 하나님의 약속들을 볼 수 있게 하십니다.
믿음의 예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분명 아벨은 하나님에 대한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진리를 바탕으로 해서 제사를 드렸고 하나님께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모든 인류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아담 이후로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믿음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누렸던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에게 이 세상을 물로 멸망할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 때까지 노아는 비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노아가 아라랏산에 방주를 지을 때 사람들은 그의 모습이 이상해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에게 있어서 그것은 믿음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노아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경고를 나의 것으로 삼고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내 것이 되어 있다면 우리 역시 믿음의 선진들처럼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기뻐할 수 있고 고난을 이겨낼 수 있으며, 현실적인 욕심을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이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믿음이 아닌 그저 이론일 뿐입니다. 당연히 삶의 변화도 올 수 없습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렇게 산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또한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는 사람도 미련한 사람입니다. 믿음은 하늘나라의 기업이 지금 여기 내게 있어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아직 멀리 있지만,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서 지금 여기서 누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은 며칠을 굶은 사람이 ‘배부르다, 배부르다’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분명 존재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계시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누리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지금부터 누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