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누가 승리하게 하는가?

본문 : 시편 60편

설교자 : 최종혁

 

9절에서 다윗은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 까?”라고 묻는다. 에돔에 가고 싶은데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에돔과 전쟁을 하는 상황에서 하는 말이다. 이 전쟁에 누가 함께  가서 승리할  수 있게  할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이 시편의 표제는 어떤 상황이 배경에 있는지를 말해주고,      그 배경에서 다윗은 이렇게 물은 것이다.

“다윗이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소바와 싸우는 중에 요압이 돌아와 에돔을 소금 골짜기에서 쳐서 만 이천 명을 죽인 때에”

다윗은 왕이 된 후에 주변국과 정복 전쟁을 벌였다. 사무엘하 8장을 보면, 서쪽의 블레셋, 동쪽의 모압을 쳤고, 북쪽의 소바와 싸울 때는 다메섹의 아람 사람들이 소바와 연합해서 다윗을 대적했다. 다윗은 그들을 정복했고 13절에 따르면 남쪽의 에돔도 정복했다. 이 표제를 보면 다윗이 북쪽 전쟁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남쪽의 에돔이 유다를 침공했던 것 같고, 이에 다윗은 먼저 요압을 보내서 에돔을 막고 후에 자신도 내려가서 완전히 에돔을 점령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사무엘하 8장의 말씀은 다윗의 정복 전쟁을 요약해서 기술하면서 계속해서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라고 말씀한다. 이 시편의 표제도 그런 승리의 상황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편의 내용은 좀 의외다.  승리에 대한 감사      와 찬양이 아니라 뭔가 비참한 패배를 당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내용 이기 때문이다.

즉, 사무엘하에는 다윗의 결과적인 승리가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과정에서는 이러한 패배와 어려움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3절에서 다윗이 이 패배에 대해       서 묘사하는 것을 보면 이 패배는 “한번쯤 질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버리신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패배였다. 어쩌면 당연한 승리를 기대할 때 맞이한 패배를 통해 다윗은 교훈을 얻고 또한 교훈을 주고자 이 시편을 기 록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배워야할 교훈이기도 하다.

참혹한 패배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에돔의 견고한 성으로 싸우러 가야했다. 앞서 재구성해본 상황이 맞다면, 그는 이미 북쪽의 연합군과 싸우고 있는 중에 군대를 나눠서 남쪽의 적군과도 전쟁을 해야하는 불리한 상황에 있다. 그래서 그가 던졌던 질문이 “누가” 나와 함께 그곳으로 가겠느냐였다. 이 질문은 지원군이 필요하다는 말도 아니 고, 위험한 전장에 함께  나설 군인들을 격려하는 말도 아니다. 다윗은  그 질문을 사  람이 아닌 하나님께 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 아니냐가 전쟁에서는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잘 알기에 다윗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구했다.

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가 전쟁에서 가장 중요했을까?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했던 말처럼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쟁만  하나님께  속한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했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말이다.

여기가 오늘날 다윗과 같은 전쟁을 하고 있지  않은  우리들과  다윗이  만나는 지점이  다. 이미 싸우고 있는 싸움들로 힘들 때, 또 다른 싸움이 우리에게 찾아올 때가 있다. 하나의 싸움이 끝나면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된다. 우리를 넘어뜨리기 원하는 사탄은 우리가 영적으로 평안하게 그냥 두지 않는다. 외부의 적, 내부의 적, 우리가 사는 환     경, 우리 육신의 연약함 등 그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우리를 공 격한다. 당연한 승리를 기대할 때 맞이하는 패배는 더 참혹하고 치욕스럽다.

그런 패배의 순간에 다윗에게 중요한 것은 ‘주권자 하나님’이셨다. 그리고 우리도 마 찬가지다. 이 시편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다윗이 보이는 3가지 모습을 살펴 보면서 함께 교훈을 얻기 원한다.

  1. 현재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1-5절)
  2. 과거에 보여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한다(6-8절)
  3. 미래에 함께하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간다(9-12절)

I.    현재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1-5절)

1-5절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계속해서 ‘하나님’이 주어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먼저 1-

3절에 나오는 패배와 관련된 표현들을 보라. – 버리다, 흩다. 분노하다, 진동시키다, 갈라지게 하다, 어려움을 보이다, 마시게 하다

현재의 패배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패배의 원인과 책임을 묻는 것과는 다르다. 물론 이 시편의 내용에서 다윗이 자신들의 어떤  죄나 불순종을 말하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주를 경외하는 자’(4절), ‘주께서 사랑하 시는 자’(5절)와 같은 표현을 보면 이 패배에 있어서 특별한 죄의 문제를 찾을 수는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더 충격적인 패배일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2절에서는 이 패배를 지진과 같은 자연 재해로 묘사한다. 예상치 못한 일인데 너무나 그 피해는 심각한 상황이다. 3절은 그들이 어려움을 경험한 것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하신 일이며,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비틀거리게 하는 포도주”, 진노의 잔을 마시게 하셨다고 표현한다. 이 상황은 마치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범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분노하시고 그들을 버리시고 깨뜨리신 것 같은 상황이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다윗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고 답답할  수도 있는  상황이  다. 분명한 죄의 문제가  있어서 이런 일을 당한 것이면 회개하면  되는데, 그런 것을  찾을 수는 없고, 눈에 보이는 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분노하셔서 자신들을 버리신 것  같은 그런 상황이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여전히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 이런 일들     이 벌어진 것이 하나님이 힘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면, 지금의 이 패배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일어난 일이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패배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와 동일한 논리로 하나님께 회복과 승리를 구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패  배에 대해서 뿐 아니라 승리에 대해서도 인정하는 것이다. 1, 2절에서 짧게 그런 기도를 했고 – “우리를 회복시키소서”(1절), “그 틈을 기우소서”(2절) – 4-5절에서 더 구체 적이고 분명한 기도를 드린다.

 

“[4]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 (셀라) [5]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시고 응답하소서”(4-5절)

다윗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거절하고 대적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임을 강조한다. 이 패배에 있어 자신들의 무고함을 직 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이런 표현은 그런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라는 표현은 꽤나 확신에 찬 표현이다. 지금 마치 하나님께서 나에 대해서 분노하시고 나를 버리신 것 같은  그런 상황인데, 그와 정반대     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라는 표현을 자신들에 대해서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만큼 다윗은 지금 상황에 대한 확신도 있었던 것 같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깃발을 주셨다. 그들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진리에 바탕을 둔 삶을 통해 하나님을 세상 가운데 드러내는 사명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신다면 계속해서 이런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하시고 지금 이 기도에 응답해 달라는 것이 다윗의 청원이다.모든 것에 있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패배든 승리든 하나님께로부터 온 다는 것을 안다. 다윗은 그래서 지금의 패배를 바라보면서 여전히 하나님께서 주실 승리를 바랄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을 만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다른 속성들을 오해하기 쉽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도 어쩔 수 없으셨다는 식으로 말하거나 혹은 ‘하나님은 선하지 않으시다’고 결론을 내린다. 즉, 하나님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는 식으로 말해서 하나님의 전능 하심에 흠집을 내거나 혹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으니 하나님  은 선하지 않으시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둘 다 옳지 않다. 우리가 꼭 다 우리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있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  에게 드러내지 않으실 때가 있다.

주권자 하나님을 안다면, 우리는 그럴 때 하나님께서 드러내주신 진리에 먼저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해할 수 없는 패배이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알고 불평이나 원망을 멈춰야 한다. 승리하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이것이 1-5절에서 우리가  패배를  대하는  다윗의  모습에서  배울  수  있는 첫번째 교훈이다.

다음으로 다윗은 패배의 순간에 과거에 보여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한다.

II.    과거에 보여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한다(6-8절)

“[6] 하나님이 그의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7]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 유다는 나의 규이며 [8] 모압은 나의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나의 신발을 던지리라 블레셋아 나로 말미암아 외치라 하셨도다”(6-8절)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 기록된 시편의  몇  안되는  부분  중  하나다.  이  말씀은  특별히 이 때 다윗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계시일 수도 있지만, 아마도 이미 하나님께서 보여주셨던 약속을 기억하며 정리한 것일 것이다.

“그의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다윗은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거룩하심으로 하신 말씀이라고 말한다.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예언적 말씀이다.

“내가 뛰놀리라”

뛰논다는 것은 하나님께는 잘 사용하지 않는 표현인데, 마치 땅을 정복한 자가 기쁘

게 그 땅을 나누어주는 것처럼 하나님을 묘사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   안 땅을 정복하게 하셨고 그들에게 땅을 배분해주시기를 기뻐하셨었다. 그러면서 땅 들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세겜 … 숙곳 골짜기”

숙곳은 야곱이 라반에게서 도망하여 처음 머물렀던 곳이고 그 후에 세겜에 정착했다. 요단강 동편과 서편을 상징하는 이 땅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실 것을 나타낸다.

“길르앗, 므낫세, 에브라임, 유다”

길르앗, 므낫세는 요단의 동편, 에브라임과 유다는 요단의 서편을 대표한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모든 기업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 하나님은 에브라임을 머  리의 투구(힘)으로 삼으시고 유다를 규(주권)로 삼으셨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선택하   신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지파들뿐 아니라 이방 나라들에 대해서도 주  권을 행사하신다.

“모압, 에돔, 블레셋”

이 나라들은 이스라엘을 둘러싼 나라들이고 지금 다윗이 지속적으로 싸움을 벌이고 있는 나라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도 하나님의 종일뿐이다. 목욕물을 받고 신발을 씻기는 종들이다. 자신의 승리로 인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해서 소리쳐야 하는 자들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약속이고 따라서 다윗이 확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서 약 속하셨던 바로 그 땅에 자신이  살고  있고,  또한  유다  지파로서  하나님의  규가  되어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고 있는 사람도 다름 아닌 자신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 땅뿐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의 주권자가 되신다는 것도 의심할바 없는 사실이다.

이 패배의 순간에 다윗과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은 근거없는 낭만이나 긍정적 생각    이 아니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와 같은 말들은 누군가에게는 격려가 될 수도 있지만, 의미없는 격려로 끝날  때도 많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린 것  같은 이 순간에     도 여전히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구원해달라고 구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렇게라도 희 망의 불씨를 잡고 싶어서가 아니라 온 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알기 때문이고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여러가지로 자신의 뜻을 드러내시지만 그중 가장 객관적이고 분명한 것이 바로 기록된 말씀이다. 이 말씀은 절대로 변하지 않고 반드시 성취될 약속의 말씀이     다.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말씀들이 바로 그런 약속의 말씀이었다. 패배의 순간에 감 정적으로 무너질 수도 있지만, 그것을 바로 잡는 것은 바로 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 말씀에 비추어서 내가 여전히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 라면, 나는 여전히 하나님께 나아가서 도우심을 구할 수 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많이 의지해서 눈에 보이는 것에 많이 속는다. 알면서도 속 는다. 다윗 앞에 예상치  못한  패배가  찾아왔을  때,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고 더 이상은 함께하지 않으실 것 같아 보였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분명하고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내 눈에 보이는 것, 지금 나의 감정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위에 서야한다. 이것이 우리가 패배한 다윗에게서 배울 수 있는 두번째 교훈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과거에 보여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했다면, 이제 미래에 함께 하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야 한다. 이것에 세번째 교 훈이다.

III.    미래에 함께 하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간다(9-12절)

9절에서 다윗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처음에 만났던 그 질문이  다.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까”(9절)

전쟁은 계속되어야 했다. 피할 수 있는 전쟁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승리하느냐다. 지금은 큰 패배를 경험했다. 다윗은 이 패배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고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을 기억했다. 그리고 이제 나아가야 하는데,  그냥 나아간다면 같은 패배를 경험할 뿐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질문을 한 것이     고 그 답은 10절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10절)

[킹흠정] “오 하나님이여, 우리를 내던지신 주께서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오 하나님 이여, 우리의 군대들과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신 주께서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우리를 버리신 하나님이 함께 나아가셔야 했다. 하나님이 돕지 않으시면 아무 소용이 없다. 누가 승리하게 하는가?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신다.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11절)

사람은 아무런 필요가 없고, 사람의 노력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을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없이 사람의 구원은 헛된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도우셔야 한다. 그래서 다윗은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구한다. 그리고 모든 확신 가운데 이렇게 결단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 다”(12절)

하나님을 “의지하고”는 약간의 의역이다. 문자적으로는 “함께”다. 즉, 하나님과 함께 우리는 용감하게 행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다.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 대적을 밟으실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께서 함께 하  심을 믿고 이제 용감히 행하겠다는 다짐의 말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그것은 상관없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기만 하시면 된다. 미래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주권자이 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가지 더 생각해볼 만한 표현은 ‘우리가 용감히 행한다’다. 주권자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다윗은  우리가  뭔가  하려고  하다가  패배했으니 이제 하나님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하실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겠습니다 라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도우심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알기 때문에 행 한다. 움직인다. 실제로 에돔을 소금 골짜기에서 쳐서 만 이천 명을 죽인 사람은 요 압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간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의 대적을 밟으셨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기 때문이  다. 이것이 우리가 패배한 다윗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세번째 교훈이다.

도전

정리해 보면, 이 시편에서 우리는 패배한 다윗의 모습에서 3가지 교훈을 얻었다. : 현 재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1-5절), 과거에 보여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한다(6-8절), 미래에 함께하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간다(9-12절)

혹시 지금 패배를 경험하고 있다면,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만나  괴로워하고  있다면 이 시편의 말씀을 자신의 상황에 맞게 다시 써보라. 하나님, 지금 제가 이 상황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지금  저에게 이런 일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이 속해 있습니다. 저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언제까지나 함께 하십니다. 감당할 수 없는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   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제가 나아갑니다. 두렵지만 용감히 행하겠습니다.

평탄하기만 한 삶은 없다. 성경에 다 기록되지 않아서 우리가 다 모를 뿐이지 믿음의 선진들은 평탄하기만 한 삶을 살지 않았다. 때로 그들 삶의 일부만 보면서 ‘하나님께     서 저렇게 해주시면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삶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으면서 보이는 적들과의 치열한 싸움을 했다. 승리하기도 하고 패배하기도 했다. 그들의 영적인 싸움이 그러했고,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의 삶도 그렇다. 패배의 순간에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기억하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약속을 기억하라. 그리고 그분과 함께 담대히 나아가면 우리는 또 다시 승리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승리를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