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내 증인이 되리라

본문: 사도행전 1장 3-11절

설교자: 조정의

오늘은 사도행전 두 번째 시간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날까지 하신 일에 관하여 살펴보기 원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십 일을 제자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의 눈앞에서 승천하셨다. 한 달 넘게 그들과 함께 계시면서 예수님이 집중적으로 하신 일은 제자들을 증인으로 세우시는 일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다(행 1:8). 예수님은 곧 그들을 떠나실 것이고, 그들은 예수님 없이 끝까지 예수님의 증인으로 충성스럽게 행해야 했다. 그래서 사십 일간 예수님은 그들을 특별히 훈련하셨다. 그들이 증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시는 데 총력을 다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1)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셨고, 2) 성령으로 세례받은 증인이 되게 하셨으며, 3) 하나님의 권한 을 인정하는 증인이 되게 하셨고, 4) 다시오실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셨다. 다른 말로 하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 1)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확신, 2) 성령의 능력, 3) 하나님의 권한 인정, 4)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이 필요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는 우리도 예수님의 특별 훈련이 필요하다. 성령께서 오늘 말씀을 통하여 당신을 훈련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스러운 증인으로 살도록 빚으시길 원한다.

1.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인(3절)

만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바로 승천하셨다면, 사도들은 예수님의 증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라고 확신을 가지고 그분을 전파할 수 있었을까? 절대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을 보기 전까지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한숨 쉬며 말했던 것처럼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던 사람, 메시아로 착각했던 사람에 불과했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목격한 여인들의 말을 허탄한 듯 듣고 믿지 않았고, 빈 무덤을 확인하고도 믿지 못했다. 엠마오로 간 두 제자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경을 풀어 증명해주신 예수님을 증언했어도, 그들 중에 주님이 나타나셨을 때, 놀라고 무서워 귀신 보는 것처럼 여기고 마음에 의심했다(눅 24). 그런 반신반의 상태로 어떻게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겠는가? 메시아인지 아닌지 모르면서 어떻게 목숨 걸고 예수님을 땅끝까지 전파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예수님은 계속해서 그들에게 나타나 살아나셨다는 것을 확증하고 그들이 전파할 메시지를 분명히 가르치셔야 했다.

3절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고난 받으신 후에 다시 말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신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확실히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셨다. 심증과 물증을 많이 남기셨다는 말이 아니라 가장 결정적이고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셨다는 말이다. 살아나신 예수님을 친히 보여주시고 음식을 잡수시거나 옆구리, 손과 발을 만져보게 하셔서 의심할 수 없도록 만들어 주셨다(눅 24:39-43). 

사복음서와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에 기록한 내용에 따르면 예수님은 적어도 막달라 마리아(막 16:9-11; 요 20:11-18), 무덤가 여인들(마 28:8-10), 예루살렘에 있던 베드로(눅 24:34; 고전 15:5), 엠마오로 간 두 제자(막 16:12-13; 눅 24:13-35), 닫힌 문 뒤에 있던 열 제자(도마 제외, 눅 24:36-43; 요 20:19-25), 열한 제자(도마 포함, 막 16:14; 요 20:26-31; 고전 15:5), 갈릴리에 고기 잡으러 갔던 일곱 제자(요 21:1-14), 갈릴리 산에서 만난 열한 제자(마 28:16-20; 막 16:15-18), 오백여 명의 군중(고전 15:6), 형제 야고보(고전 15:7) 등 수많은 사람에게 친히 자신을 여러 번 나타내셨다. 사십 일 동안 그렇게 하셨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까지 계속 제자들과 함께 지내셨던 건 아니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이기에 충분할 만큼 오랜 기간 여러 차례 친히 자신을 나타내셨다. 

사십 일 동안 주님이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의 일이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천국 곧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는데(천국 비유-달란트, 전도 훈련), 이제 그 말씀을 하신 분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다. 본격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일이 제자들에게 맡겨진 것이고, 그 사명을 맡기신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자신이 참 메시아이고 그들이 전파할 하나님 나라 복음이 얼마나 확실하고 진실하한 것인지 친히 증명하셨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폭발적인 전도의 근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사십 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확실한 증거를 많이 보여주심으로 예수께서 살아계심을 확증하셨기 때문에, 사도들은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 나라의 일, 곧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복음을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하는 일을 담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예수님의 증인은 우리다. 우리는 고대문서에 나오는 허구 인물이나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영웅을 전파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전파하는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이며, 우리가 전파하는 복음은 죄로 죽은 자를 살리고, 죽을 몸도 다시 살리는 복음이다. 자신감 없이 소극적으로 말하거나 창피해하지 말라. 담대하게 부활의 주를 증언하라.

2. 성령으로 세례받은 증인(4-5절)

예수님은 이제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셔야 했다. 그 말은 하나님 나라의 일, 사명이 오롯이 제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의심 많고 연약한 제자들, 두려워하며 낙심하는 그들을 예수님은 홀로 버려두실 것인가? 그렇지 않다.

4절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절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사도와 함께 모이셨을 때(‘소금을 쳐서 먹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부하셨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명령이다. 왜? 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미 말씀하신 대로(내게서 들은 바, 요 14:16-17),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몇 날이 못되어 제자들은 성령을 받게 될 것이다(승천하신 후 열흘 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가리켜 했던 말을 기억나게 하셨다.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눅 3:16). 요한의 말대로 예수님은 며칠 후 제자들에게 성령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성령 세례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 위에 임하셨고,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행하시는 모든 일 가운데 능력과 지혜를 더하셨다(눅 3:22). 마찬가지로 곧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베푸실 성령 세례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주시는 능력과 지혜와 기쁨을 부어주사 그들로 하나님 나라 일, 증인의 사명을 다할 수 있게 하실 것이다.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에 따라 말했으며(행 2:4), 성령에 충만하여 백성 관리와 장로들과 맞섰고(행 4:8), 다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행 4:31), 성령으로 교회의 범죄를 다루고(행 5:3), 성령으로 일꾼을 세웠고(행 6:3-5; 20:28), 성령에 이끌려 복음을 전하고(행 8:29), 성령의 위로를 받고 기뻐했으며(행 9:31; 13:52), 성령으로 이방인뿐만 아니라 많은 영혼의 거듭남을 경험했고(행 10:45), 성령에 따라 선교사를 파송하고(행 13:2), 선교지를 결정했다(행 16:6; 20:22).

사도행전에 기록된 폭발적인 전도의 능력은 오직 성령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70번 등장). 예수님은 살아계심을 증명하셔서 제자들이 증인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확신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성령을 부어주셔서 증인의 역할을 능력있게 하도록 만드셨다.

우리는 이 땅에 홀로 남겨지지 않았다. 우리의 손에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달려있다는 과도한 부담을 안고 살아갈 필요가 없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께서 우리와 언제나 함께하시며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 

그러므로 증인의 삶은 홀로 무거운 책임감 아래 완수하지 못할 목표를 향하여 억지로 나아가는 삶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그분이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신 목표를 향하여 기쁨으로 나아가는 삶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과 행동을 통해,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지혜롭고 능력있게 나타내시기를 간절히 구하라. 그리고 그분의 도움과 인도에 따라 기쁨으로 예수님을 증언하라.

3. 하나님의 권한을 인정하는 증인(6-9절)

6절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이니이까” 하니 7절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8절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한 이 질문은 그들이 예수님이 주신 사명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민족으로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실 것이라 기대했다. 그리고 그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믿지 않는다.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한 영적(참) 이스라엘이라 믿고,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 영원한 불못만 남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 무슨 말이냐? 이제 내 나라는 교회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부정하지 않으셨다. 서신서와 계시록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은 재림하셔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실 것이다. 천년 동안 회복된 이스라엘 나라를 통해 천하를 통치하실 것이다. 제자들이 잘못 이해한 것은 계획이 아니라 때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크로누스)는 순수한 연대를, 시기(카이푸스)는 시대의 특징과 상황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언제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될지 그때가 시작되는 징조나 특징이 무엇일지 알려고 하지 말라고 못 박으셨다. 추측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다. 아버지만 아신다(마 24:36,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나님께서 자기 권한에 두신 것을 알려고 하지 말고 대신 이 일에 집중하기 원하셨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 세례를 받고 그 능력을 통해 제자들이 예수님이 거절당하고 죽임당한 예루살렘을 시작으로 온 유대인의 땅뿐만 아니라 유대인의 원수이자 상종하지 못할 자들로 여긴 사마리아 사람들이 사는 곳,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러 모든 민족에게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에 힘쓰라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오늘날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믿는 관점을 가진 교회가 복음에 열정을 보이면서도 예수님이 알려고 하지 말라고 명하신 때와 시기를 추측하고 헤아리는 일에 몰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진, 온난화,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지구멸망설, 베리 칩, 제3 성전 등 각종 징조나 특징으로 주 오심을 계산하고 추측하는 일에서 손을 떼라.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 아래 두신 것에 신경을 쓰지 마라. 동기부여가 된다? 휴거를 기다리는 우리는 예수님이 도적같이 오늘도 임하실 수 있다는 걸 믿는다. 그걸로 충분히 동기부여가 된다.

오직 우리가 전심전력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 아래 있는 것을 어떻게든 훔쳐보려는게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권세를 받으신 예수님이 명하신 일이다.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세상 끝 날이 언제인지 계산하지 말고,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능력으로 그분이 맡겨주신 사명에만 전심으로 충성하라. 예수의 증인되는 일, 그것만이 우리가 전심으로 할 일이다.

4. 다시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증인(9-11절)

9절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절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절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9-11절은 예수님의 승천을 기록하고 있다. 제자들이 가진 사명에 관한 이해를 바로 잡아주신 예수님은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셨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3km) 나가셨다고 말했는데(눅 24:50), 12절을 보면 제자들은 감람원이라는 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1km). 베다니가 감람산 동쪽 기슭에 위치한 동네였기 때문에 “베다니 앞”과 “감람원”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같은 장소를 가리킨다.

예수님의 승천 장소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왜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승천하셨을까? 왜 하늘로 올려져 가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을까? 왜 그냥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으시고 하늘에 오르셨다는 것을 눈으로 보게 하셨을까? 누가의 기록을 자세히 보면 그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먼저 누가는 예수님이 ‘올려져 가셨다’고 말한다. 나중에 두 사람(천사)이 제자들에게 말할 때도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라고 말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예수님이 하늘로 올려지신 것이다. 

누가 예수님을 하늘로 올리셨는가? 하나님 아버지시다. 올려져 가신 예수님을 “구름이 가리어 보이지 않게” 했다. 구름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하실 때, 성막과 성전 위에 임하실 때(출 13:21-22; 16:10; 19:9), 예수님이 변화되셨을 때 “이는 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실 때(눅 9:35) 하나님 아버지의 임재와 함께 나타났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하늘로 올리셨고, 구름과 함께 나타나 아들을 맞이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올라가실 때에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이 모든 장면을 목격했다.

여기서 승천의 의미가 끝난 게 아니다. 두 사람,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홀연히 나타났다(원문에는 이두, ‘갑자기’ 포함).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로 제자들에게 전달할 메시지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말하기를 “갈릴리 사람들아(열 한 제자 모두 갈릴리 출신),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약간의 책망이 담겨있다. 하늘을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에 의해 하늘로 올려지셨다. 무슨 뜻인가?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하늘 보좌에 앉으셨다는 말이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4장 10절에 말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려고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가 되셨다.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제자들이 이 땅에서 증인으로 사명을 감당할 때 통치자와 중보자로 함께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담대하게 주님을 증언할 수 있다(스데반,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행 7:55).

그리고 예수님은 하늘 보좌와 함께 그들이 본 그대로 통치하러 이 땅에 내려 오실 것이다. 이것이 제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가? 주님이 왕국을 이끌고 이 땅을 심판하러 오실 것이 분명하니 세상이 제자들을 이기는 것처럼 보여도(환난, 핍박, 비방, 순교),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이기며 맡겨진 임무에 충성을 다하라는 의미이다

오늘날 예수님의 증인인 우리도 그분의 다시 오심을 믿고 기다린다. 예수님은 오늘도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사 우리 삶과 만물을 통치하시고 우리를 위해 중보하신다. 이것은 주님의 증인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된다. 

교회를 비방하고 복음을 무시하며 그리스도인을 거스르는 세상과 맞서 싸우고, 그 속에서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말하고 행동할 때, 주께서 다스리시는 그 나라가 분명히 이 땅에 임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지고 있는 게임이 아니라 이기고 있는 게임을 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 담대하게 승리의 주를 증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제자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의 증인이다. 우리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는 부활의 증인이다. 우리는 성령이 함께 하시는 능력의 증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한을 겸손히 인정하며 오직 전심전력으로 주를 증거하는 증인이다. 우리는 지금도 만물을 통치하시고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며 다시 오실 만 왕의 왕을 선포하는 증인이다. 그러므로 오늘 당신이 있는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을 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