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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그리스도인의 탄식

본  문: 마태복음 7장 13-14절

설교자: 조 성 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만 일 여러분이 회사에 들어가는데 하루 8시간 근무와 월 300만원, 4대 보험 가입이 입사조건이었는데 실제로 12시간 근무에 월급이 100만원, 보험에도 가입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입니까? 물론 계약을 어긴 회사의 잘못입니다. 그러나 입사조건과 같은 대우를 받는데 불평이 생겨 데모를 한다면 그것은 누구의 잘못일까요? 처음부터 그 조건이었다면 그것은 본인의 잘못입니다.

 

주님은 믿는 자들에게 본문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좁 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주님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거짓 조건을 내걸지 않으십니다. ‘문이 좁고 가는 길이 협착하다’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삶이 참 힘들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문도 크고 길도 넓어서 가기 쉬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잘못된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출애굽해서 가나안까지 가는 데는 광야라는 매우 힘든 길이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었습니다. 내일 것은 없어도 오늘 것은 있었습니다. 낮에는 구름으로 햇빛을 가려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비춰주셨습니다. 물이 귀한 광야에서 물을 마실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했습니다. 가나안 땅이라는 소망이 마음 속에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광 야의 길이 쉬울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가고 있습니까? 우리 역시 애굽을 나왔지만(구원) 아직 가나안 땅(하늘나라)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베드로가 말한 것같이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입니다. 광야를 지날 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곧 이르게 될 가나안 땅입니다. 그 소망으로 오늘의 괴로움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장 파 마늘이 먹고 싶다고 불평하고 오히려 애굽에서의 삶을 그리워했습니다.

 

그 리스도인들 중에는 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처음부터 주님은 이 길이 쉽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말입니다. 주님은 이 길이 쉽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를 따르기 전에 계산해보라고 하셨습니다. 망대를 지을 때 돈이 충분할지, 적군이 쳐들어올 때 이길 승산이 있을 지 계산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생각하지 않고 일단 좁은 문으로 들어와 보니 가는 길이 좁고 힘들어 황량한 광야만이 보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들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것과 일치합니다. 바로 먹을 것과 입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내려 먹이시고 의복과 신발이 닿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인간에게 저주가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그 죄의 결과로 우리는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뭔가 힘들지 않고 편히 살 것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기대입니다. 죽을 때까지 얼굴에 땀이 흘러야 먹고 살 수 있으리라는 것은 예수님을 믿어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무엇이든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믿지 않는 사람보다 우리에게 더 잘해주기를 은근히 바랍니다. 그러나 악인의 논에도 비를 내리시고 의인의 논에도 비를 내리십니다. 다 른 사람의 삶은 더 낫고 쉬울 것 같아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죽을 때까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다른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평생 수고와 슬픔 뿐인 인생에서 하늘나라의 소망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이 힘든 또 하나의 이유는, 주님을 위해 살고 싶은데 우리의 육체가 말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 가는대로 사는 것은 참 쉽습니다. 미워하고 싶으면 미워하고 좋아하고 싶으면 좋아하는 것, 물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것은 편하고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을 육체가 원하지 않을때 그것은 참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롬 7:15)”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늘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을 주시는데 우리의 육체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일하면서 ‘오늘 퇴근해서 집에 가면 성경을 꼭 읽어야지’ 하는 마음을 가졌다고 합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는데 텔레비전이 켜져 있고 마침 즐겨보는 프로그램이어서 밤늦도록 시청한 뒤에 잠자리에 들었다면 어떨까요?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을까요? 구원받은 사람은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이 들어도 전혀 양심의 가책이 없는데 믿는 사람은 마음이 괴로운 것입니다. 주를 위해 살고자 하는 강한 열정과 마음대로 되지 않는 육체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이 육체를 벗어날 때까지 우리는 그런 고통 가운데 살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이 힘들게 사는 이유는, 세상의 타락과 싸우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직한 그리스도인은 사회에서도 미움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성 경을 보면 의인 롯이 소돔의 타락에 의해 심령이 상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타락은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세상과 반대방향으로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전철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계단을 거꾸로 올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쉬운 삶을 기대해선 안 됩니다. 주님은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계약서를 잘 읽어보지 않은 것은 바로 우리입니다. 나에게 좋은 것만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늘나라 간다는 것만 알고 어려운 광야 길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처음부터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급속도로 타락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시대를 사는 것은 광산촌에 살면서 흰옷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만큼 힘이 드는 일입니다.

 

세 상은 그리스도인을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우리를 정죄하고 미워할 것입니다. 험난한 광야 길에서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현실적인 것에 마음이 가 있으면 안 됩니다. 주님은 자기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당장의 고난이 아닌 그 너머의 즐거움, 즉 영혼의 구원과 영원한 하늘나라를 본 것입니다.

 

사 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광야만큼 어렵지는 않습니다. 미얀마나 방글라데시 성도들이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이상하게 여길지 모르겠습니다. 텔레비전과 핸드폰, 인터넷 등 우리의 영적인 삶을 유혹하는 것들이 많지만 사실 우리에게 육체적인 고통은 별로 없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은 마치 우리를 특별대우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에스겔서를 보면 선지자 에스겔의 아내가 죽었는데 하나님은 그에게 슬픈 기색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이 얼마나 잔인한 일입니까? 또한 바벨론에게 항복하라는 말을 전하게 하십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북한에게 항복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에 따르기 위한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모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겪었던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요.

 

 

그리스도인의 삶은 처음부터 힘든 삶입니다. 그러니 기대하지 마십시오. 오늘날은 초대교회 때처럼 주님을 믿는다고 죽이거나 감옥에 가두지는 않지 않습니까? 세상이 여러분을 욕하고 따돌리고 왕따 시킬지는 모르지만, 때로 먹고 살기 힘든 것은 있지만, 우리의 마음이 하늘나라에 가 있으면 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 리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 전기를 끊고 호롱불을 켜고 산다면, 차와 핸드폰을 버리고 자녀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편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삶의 수준을 높이고 그것에 맞춰 살려고 하니까 모든 일이 어려운 것 아닙니까? 문도 좁고 길도 협착한 길. 이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약속하신 원래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영원한 안식처인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