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그리스도인의 싸움
본문: 갈라디아서 5장 16절~18절
설교: 조 성 훈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나면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게 됩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17). 어떤 사람은 이것을 ‘내 안에 흰 개와 검은 개가 매일 싸운다’고 표현합니다. 믿는 자에게는 성령이 그 안에 내주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마음이 생깁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마음속에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는 거듭나지 않았거나, 거듭났어도 완전히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는 경우입니다. 신앙의 양심이 마비되어 있거나 그 안에 성령이 계시지 않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우리에게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바른 길을 가도록 책망하고 인도하십니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서로 대치되는 것은 큰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끊임없이 서로를 미워하고 헐뜯는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 있는 남편의 마음과 같습니다. 놀라운 것은 여러분이 점점 영적으로 성숙해갈수록 이 갈등이 더욱 심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주를 위해 살고자 하면 할수록 발목을 잡는 육체의 정욕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양심을 창조하셨기에 믿지 않는 사람도 때로는 이런 데서 갈등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양심과 자신의 행동 사이에서의 갈등은, 믿는 자들이 겪는 갈등과는 다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싸우지는 않습니다.

믿는 자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진실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육체의 쾌락일까요? 믿는 자라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원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성령의 소원을 따라 살 때 이런 열매를 맺게 됩니다. 반대로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면,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둘 사이에서 싸움을 하게 됩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16).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날마다 육체의 소욕과 싸우고 때로는 성령의 소욕을 묵살하고 넘어질지라도 그것이 절대 우리의 거룩과는 상관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것 때문에 하늘나라에 가지 못하는 일이 없고 우리의 행위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더 거룩해지거나 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에 의해 우리를 영원히 거룩하다고 판결내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가 거룩하게 살면 하나님 앞에서도 더욱 거룩해질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의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의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을 입고 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매일의 삶이 여러분의 의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하나님이 보시기에 영원히 의롭게 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매일 죄와 육신의 소욕과 투쟁하고 싸울지라도 구원은 영원히 안전한 것이고, 그 싸움이 우리의 신분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하신 순간부터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우리 안에는 새로운 욕구가 생깁니다.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지 10-20년이 되어도 그에게서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에게서 주를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면 뭔가 이상한 것입니다. 때로는 육신의 소욕에 져서 넘어질지라도 다시 하나님을 향해 일어서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어쩔 수 없는 죄인이야’라며 스스로를 정죄합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끝나지 않는 싸움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육체의 소욕은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참 끈질기고 강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악랄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님을 섬기지 말고 성도를 사랑하지 말라고 하며, 육체의 욕심에 따라 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이 싸움은 하늘나라에 가기 위한 싸움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는 종교인입니다. 자신이 의를 이뤄서 하늘나라에 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마음과 육체의 소욕 사이에서 싸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성도를 사랑하며 하늘나라를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벌이는 싸움인 것입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3). 우리는 몸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데 쓸 수도 있고 육체의 소욕을 이루는 데 쓸 수도 있습니다. 매일 우리는 이 둘 중 하나에 우리의 육체를 맡기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몸을 의의 병기로 드리라고 말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우리 몸을 살아있는 제물로 드리라는 것은 육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말을 잘 안 듣는 것이 바로 우리의 육체입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 7:18).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2-24). 믿는 자라면 이런 탄식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이런 싸움을 싸웁니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에 대해 말하면서 그가 장막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늘을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이라면 솔로몬처럼 풍성한 재물을 가지고 넓은 성을 짓고 살고 싶은 것이 육체의 소원일텐데, 아브라함은 어떻게 평생 장막에서 살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늘에 하나님이 지으신 성을 생각했기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 16:8). 다윗은 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육체를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느냐, 육체의 소욕을 위해 사용하느냐의 싸움입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여러분의 생각을 육체의 소욕이 지배하느냐, 성령의 소욕이 지배하느냐에 달린 싸움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골 3:16). 어떻게 해야 풍성히 거할까요?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늘 젖어있어서 그것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한다면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늘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항상 텔레비전을 켜놓고 홈쇼핑 채널을 돌려가며 세상의 다양한 물건들을 늘 들여다본다면 그의 머릿속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날마다 육체의 소욕을 돕는 것들을 먹고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끝이 없습니다. 조금만 이뤄지면 만족이 있을 것 같은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썩을 열매, 인간을 파멸시키는 열매를 맺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스마트폰을 열어 보기 시작하면서 하루 종일 육체의 소욕을 자극하는 것들만 보고 가까이 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신명기 6장 말씀처럼 우리는 육체의 소욕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을 누가 지배하느냐의 싸움입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자로서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서 오는 싸움입니다.

성경은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지 말라”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서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라”고 말씀합니다. 스쳐가는 생각을 막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것을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합니다. 늘 말씀을 가까이하고 생각을 그리스도께 향해 있을 때 우리는 성령의 소욕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들에 핀 꽃보다 못한 것이 이 땅에서의 인생인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가장 남는 인생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승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손에서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낭비하는 시간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멀어져 잘못된 것에 복종하며 많은 이들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우리가 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다르게 볼 것입니다. 우리에게서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길 것이고 그 향기를 맡은 이들은 우리에게 다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올 것입니다.

우리는 모여서 함께 말씀을 나누고 격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초창기 그리스도인은 늘 주님에 대한 것들로 밤새 교제했습니다. 늘 주님을 높이고 말씀을 나누며 주님의 오심이 가까운 이 시대를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때 즐거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마음속에서부터 솟아나는 기쁨을 맛본 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메마른 자가 있습니다. 그의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삶에 메말라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풍성히 거하면 절대 메마르지 않습니다. 그는 즐거움과 만족에 싸이게 될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핸드폰 대신 성경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전에도 성경이 들리도록 해야 합니다. 모든 집회에 참석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모든 말씀과 교제의 집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 여러분의 신앙을 건질 수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