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12):
습관적인 게으름 어떻게 해결할까요?

*2013년 7월 31일부터 8월 3일까지 유평교회에서 있었던 제1회 <말씀과 진리 콘퍼런스>에서 나왔던 질문입니다.
중복되는 질문을 제하고 25개의 질문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성경은 게으름에 대해 경고합니다.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태만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잠 19:15)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를 통해 삶을 허비한 사람에 대한 평가를 하십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마 25:26)

사도 바울은 타협의 여지 없이 게으르지 말 것을 명령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

스스로 열심히 일하여 가족을 돌볼 생각을 하지 않는 젊은 과부를 바울은 이렇게 책망합니다.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딤전 5:13)

 

아마도 질문한 사람은 게으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해결하기 위해 질문했을 것입니다.
성경이 경고하고 책망하며 멀리할 것을 요구하는 게으름. 왜 문제일까요?

 

게으름은 열매 없는 삶

게으름을 뜻하는 단어 아르고스는 생산하지 못하거나 유익이 없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 야고보서 2장 20절에서는 “헛된 것”을 가리킬 때, 마태복음 12장 36절에서는 “무익한 말”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

가치를 보고 투자한 것이 물거품이 되는 것, 믿고 바라며 노력한 것이 헛수고가 되는 것, 많은 희생을 통해 기대를 하고 얻어낸 소중한 것이 그 값어치를 하지 못하는 것…

아무리 게으른 사람도 이러한 경우를 좋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게으름은 정확히 이러한 삶을 사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에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베드로의 설명을 들어보십시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벧후 1:3-9)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다

하나님께서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기록된 성경,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 앎을 통하여 우리는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은 자로서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의 통제 아래 내 욕심대로 육체의 원하는 대로 살다가 영원히 멸망할 진노의 자식이었으나(엡 2) 하나님의 보배로운 약속은 우리가 더는 정욕으로 세상에 썩어질 것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신성한 성품을 우리 안에 이루는 자로서 살게 합니다.

영적인 불구자였던 우리에게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습니다. 지독한 죄인인 우리에게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죄인이 맺어야 하는 썩어질 것들이 아니라 신의 성품을 맺는 자로 살게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이 보배로운 약속을 위해 하나님이 치르신 희생이 얼마나 큰지 우리는 압니다. 그 아들 독생자의 보배로운 피가 우리를 위해 흘려졌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대가를 우리를 위해 치르신 것입니다. 아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실 만큼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마땅한 삶의 자세: 부지런함

그러므로…
베드로는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에 대한 우리의 마땅한 반응을 기술합니다.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

어느 하나 게으름과는 어울릴 수 없는 덕목입니다. 이것이 주께서 우리 삶에서 맺기 원하시는 아름다운 열매라면 우리는 마땅히 날마다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힘써 열매를 맺기 위해 수고해야 합니다. 게으름을 떨쳐 버려야 합니다.
넘치도록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지금부터 영원까지 누리면서 어찌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허비할 수 있겠습니까? 게으름은 바로 그 일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된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게으름은 망각

게으름은 눈이 먼 것과 같습니다. 게으름은 망각입니다. 장차 우리가 만나게 될 하나님에 대해 잊어버린 것이고 자기의 모든 죄가 깨끗이 씻겨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베드로는 그 망각에서 돌이키라고 소리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10-11).

쉽게 말하면 베드로는 이렇게 외치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하나님이 너희를 어떤 은혜로 부르셨는지 생각해보라
너희를 택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보배로운지 헤아려 보라

힘써 부지런히 사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부지런함은 열매 맺음

부지런함은 열매 맺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에 합당한 삶이며, 실족하지 않고 나아가는 삶입니다. 믿음과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을 맺는 삶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가에 들어가는 자는 이런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 열매가 그가 넉넉히 그 나라 사람임을 확증합니다.

반대로 게으름은 하나님 나라 사람에게 따라붙는 물음표와 같습니다. 열매 없는 삶이며 허무하고 무익한 삶입니다. 실족하는 삶이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지가 항상 위태로운 사람입니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잊어버린 삶이고 죄에서 깨끗함을 입어 다시 오실 구세주를 만날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는 맹인과 같은 삶입니다.

그래서 게으름은 성경에서 치명적으로 묘사됩니다. 단지 이 땅에서 우리를 잠들게 하고 굶주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소경으로 영원한 주림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갈지라도 알지 못하고 살게 만듭니다.

습관적인 게으름은 더 무섭습니다. 게으름이 가지고 있는 이런 어두운 면모가 삶에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보인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영적으로 갓 태어난 이에게 철저하게 규모 잡힌 삶을 요구하며 그래야만 거듭난 사람이라고 협박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삶에서 습관적으로 보여야 할 열매는 게으름이 아니라 절제와 인내라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 스스로 물어야 할 질문은 “어느 정도 게으름을 내 삶에 허용해도 괜찮을까?”가 아니라 “내 삶의 어떤 영역에 절제를 맺어야 할까?”입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절제하며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입은 우리는 모두 의의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부지런히 다투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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