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9):

상처받기 싫어서(?) 먼저 공격하는 말을 해서 상대를 눌러버립니다.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요?

*2013년 7월 31일부터 8월 3일까지 유평교회에서 있었던 제1회 <말씀과 진리 콘퍼런스>에서 나왔던 질문입니다.
중복되는 질문을 제하고 25개의 질문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상처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처에 더 민감한 사람은 있는 것 같습니다. 똑같이 넘어져도 상처를 느끼는 강도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것처럼 감정적인 상처를 받아들이는 강도도 다른 것 같습니다. 마음이 더 여리고 세심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사람일수록 다른 이에게 상처를 더 많이 주기도 합니다. 질문한 사람처럼 자신이 상처받는 것이 싫기 때문에 먼저 다른 사람을 위협하고 공격하여 나에게 상처를 줄 가능성을 미리 제거하는 것입니다.

공격을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 단지 말로 표현하지 않을 뿐이지 상처 준 이를 불편하게 느끼고, 무례하다고 생각하고, 거칠고 악의적인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럴 의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공격한 사람도 다른 사람과 관계가 멀어지고 내가 입기 싫었던 상처를 상대방에게 주었다는 죄책감과 불편함에 기분이 상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이 싫어질 수도 있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분노할 수도 있습니다. 먼저 상처를 준 사람으로서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것도 어려운 성격입니다.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의 계획을 타고 난 내 성격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의 성격이나 성품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낙심합니다. 평범하고 유연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왜 이렇게 나는 모난 성격을 가지고 있나? 탄식하고 불평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 세상에 완전한 의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좋은” 성격이라고 평가받는 사람도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성격을 가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죄에 대해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중심을 정확하게 다 보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사람은 상처받기 싫어하는 여린 성격이라 힘들지만, 또 어떤 사람은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이라 어려움을 겪습니다. 사람마다 제각기 다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신묘막측한 섭리에 따른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시 139:13-16)

다윗은 흠이 없는 사람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으신 것이 기이하며 자신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들이 이미 하나님의 책에 기록되어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주관하고 계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노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시 139:17)

하나님은 실수로 당신을 그렇게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이 가지고 태어난 성격, 자라면서 형성된 성품, 겪는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처럼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니 일단 불평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며 근심하지 맙시다. 왜 이 모양이냐고 따지지 말고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지금 나의 상태를 감사함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입시다.

사고로 신체 일부를 잠시 사용하지 못하게 되거나 영구적인 손상을 입었을 때 참된 회복은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불평하고 분노하며 현실을 거부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회복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지체됩니다.

정신적인 문제나 일상의 사소한 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이 선하신 그분의 속성에 따라 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누구나 모가 나 있습니다. 누구나 죄로 인해 타격을 입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을 거부하는 세상 속에서 싸우고 있고 누구나 이런저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누구나 다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에 따라 주어진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 성격, 내가 겪고 있는 환경,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 둘러싼 외부적인 요인들 모두 하나님의 손에 완벽하게 붙들려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자리에 둔 내 마음의 우상

바울은 로마서에서 모든 죄의 문제가 바꿔치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그 외 다른 것들(썩어질 사람, 새, 짐승,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과 바꾸는 것이며(롬 1:23),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과 바꾸는 것입니다(롬 1:25).  

상처받기 싫어하는 마음은 어떤 면에서 하나의 증상입니다. 우리는 왜 그런 증상이 나오는지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의 인정을 받기 원하는 마음이 커서 원하는 만큼의 인정을 받지 못할 때 상처를 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통제하려는 욕구가 크기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통제에 실패했다는 말을 들으면 상처를 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너무 크고 어떤 사람은 자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일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자기 안에 있는 속사람의 실체를 들키는 것이 부끄럽고 싫어서 벽을 만들어 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존심은 높은데 남들 앞에서는 초라하게 보일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상처받기 싫어하는 마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다 알 수 없지만, 각자 스스로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분명히 원인은 있습니다. 내가 언제 주로 상처를 받는지, 왜 상처를 받게 되는지, 어떻게 그 상처의 강도가 깊어지는지 잘 생각해봅시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일은 로마서 말씀처럼 결국 문제의 가장 궁극적인 본질은 내가 상처받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사실 나의 우상이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정보다는 사람의 인정을,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온전한 주권과 그분의 통제를 신뢰하기보다는 내가 통제하고 주관하려는 욕심 때문에 이와 같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 연약함 가운데 강하게 빛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기뻐하기보다 내 강함 속에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기 원하는 마음이 나를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나의 신분을 인식하고 그것으로 자랑스럽게 여기기보다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내 신분을 크게 높여서 다른 이의 경배를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만일 다른 형제와 자매가 내게 상처를 준다고 해도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아시고 내가 받는 상처와 부끄러움을 통해 그 형제자매를 거룩함에 이르게 하시고 억울함 가운데 내가 보인 인내와 용서에 대해 보상하시며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내 마음의 왕좌에 좌정하시고 그곳에서 내 삶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면서 모든 일을 합력하여 나를 거룩하게 만들고 계신다면(때론 상처를 통해서도 그 일을 하신다면) 고통스럽다 해도 이후에 얻을 영광을 위해 참아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내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과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일에 사로잡혀 있다면 내가 받는 상처는 오히려 하나님과 성도를 사랑하기 위해 내가 감수하는(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수단이 될 것입니다.

순금같이 흠 없는 거룩함을 이루기 위해 기쁨으로 감수할 수 있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형제자매가 내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중심에 그 상처를 미워하게 만드는 어떤 욕구와 욕망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내 삶이 움직여지지 않고 내 욕구가 원하는 대로 내 혀를 통해 형제자매에게 먼저 상처를 입히는 공격적이고 위협적인 말을 내뱉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구원 받기 전 우리의 상황이 그랬습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3) 

 

3. 해결책은 결국 하나님을 원래 자리에 모시는 것

결국 해결책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원래 자리에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구원받은 후 우리가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삶입니다. 우리 육체의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특별히 상대방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 바울은 에베소서 말씀에 이렇게 설명합니다.

①서로 친절하게 하며 ②불쌍히 여기며 ③서로 용서하기를 ④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세 가지 명령과 한가지 본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본에 따라 우리가 서로를 세 가지 모습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친절하게 대해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가 많은 우리를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있는 자리까지 내려오시고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다 받아주셨습니다. 그리스도만큼 상처를 많이 입으신 분이 있을까요? 그분은 육체적으로는 가시 면류관과 채찍, 따귀와 침 뱉음, 못과 창으로 죽기까지 치욕적이고 고통스러운 상처를 받으셨습니다. 

정신적인 고통은 어떻습니까? 사랑하는 제자들이 은 삼십에 자신을 팔아버리고 수제자로 세워놓은 제자는 눈앞에서 맹세하며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끝까지 따르겠다 말한 측근들까지 모두 다 예수님을 떠나버리고 부드러운 손으로 만지시고 고쳐주셨던 백성들마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하나가 됩니다. 배신감, 억울함, 분노, 낙심… 예수님만큼 상처 입은 사람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겸손과 온유로, 사랑과 자비로 우리를 대하셨습니다. 우리도 서로를 그렇게 대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힘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성령을 통하여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그 아들 예수를 우리를 위한 희생제물로 삼아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라고 말합니다(엡 2:4).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것처럼 우리는 서로를 대할 때 상대방이 죄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 나와 똑같은 모나고 연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긍휼 하심을 가지고 상대를 바라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넓은 마음으로 상대방의 연약함을 포용하고 감쌀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누구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누구도 혼자 설 수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한 몸으로 지으셔서 우리가 서로를 세워주도록 하셨습니다. 성령이 주신 하나님의 은사를 가지고 우리는 서로의 연약함을 채워줍니다. 서로 받고 서로 용납하고 서로 이해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상처를 받으면 고통스러운 것처럼 상대방도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상대방이 당신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한다면 그에게 있는 옛사람의 욕구가 그를 제어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고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당신을 불쌍히 여기신 그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분의 원수로 활동할 그때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용서하시고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우리가 닮아야 할 본이 바로 그것입니다. 나에게 혹시 상처를 줄 수도 있는 형제자매, 혹은 이미 상처를 준 형제자매를 우리는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용서할  힘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랑의 크기는 우리가 받은 그 어떤 상처를 압도하는 크기입니다. 내 안에 있는 분노와 상처를 잠재우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상처받았을 때 내 안에 욕구가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고 쓴 말과 공격적인 행동을 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다시 앉으셔서 옛사람의 욕구를 물리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대로 상대방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고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합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지혜와 사랑으로 당신을 이끌어 주셔서 당신의 입에서 누구를 만나든지 친절함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담긴 말이 흘러나오게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혹 당신이 상처를 입었을 때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풍성히 경험한 용서의 힘으로 상대방을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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