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칭의에 관한 나의 이해와 생각은 주 되심 문제를 공부하는 동안 더 깊어졌다. ‘주 되심 구원(Lordship salvation)’이 이신칭의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하는 주장에 나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 존 맥아더, “참된 무릎꿇음”, 16-17pp

필자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 LA에 위치한 마스터스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동시에 수년간 그레이스커뮤니티 교회에서 매 주일 설교 말씀과 여러 세미나, 콘퍼런스를 통해 가르침을 받았다. 마스터스 신학교의 총장과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의 담임목사는 동일인으로 바로 “참된 무릎꿇음”(The Gospel according to Jesus)의 저자이자 “주 되심 구원” 혹은 “주재권 구원”(Lordship Salvation)을 강조한 존 맥아더였다. 

2013년 한국으로 들어와 목회 하면서 “주재권 구원”에 대한 미국 교계의 시각과 한국 교계의 시각이 사뭇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아가 ‘주재권 구원은 이신칭의”(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비판이나 주재권 구원을 “행위구원”으로 간주하는 모습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존 맥아더의 견해를 책으로만 대한 것이 아니라 책과 함께 삶과 가르침과 교회에 적용하는 실질적 모습까지 지켜보고 그 안에서 경험한 사람으로서 한국 교계가 존 맥아더의 “주재권 구원”을 바라보는 시각이 대단히 잘못되어 있음을 여실히 자각했다.

그래서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와 “주재권 구원”이 결코 상충하는 것이 아님을 이 칼럼을 통해 밝히기 원한다. 나아가 종교개혁의 다섯 가지 핵심 교리인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주재권 구원”이 가리키는 구원의 교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 칼럼 시리즈를 통해 설명하기 원한다. 특별히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복음, 사도들이 듣고 전달한 복음, 종교개혁자들이 지켜낸 그 복음이 치우치지 아니하고 온전히 재발견되기 원하고 주재권 구원이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기 원한다.

 

구원 얻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먼저 오늘은 “구원 얻는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보기 원한다. 

 

오직 믿음

성경은 계속해서 구원을 얻는 수단으로서 “믿음”을 강조한다(요 3:18; 5:24; 롬 3:27-8; 4:5; 5:1-2; 갈 2:16, 21; 3:24; 5:6; 딛 3:5). 에베소서 2장 8-9절 말씀은 “이신칭의”를 가르치는 대표적인 본문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바울은 분명하게 “은혜”에 의하여(τῇ γὰρ χάριτί), “믿음”으로 말미암아(διὰ πίστεως)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 에베소서 주석을 쓴 해럴드 호너(Harold W. Hoehner, “Ephesians”, Baker, 2002)나 헬라어의 전치사를 연구한 머리 해리스(Murray J. Harris, “Prepositions and Theology”, Zondervan, 2012)는 “은혜”와 “믿음”이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수단(“means”)이자 원인(“cause”)이라고 말한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은혜”가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원인(cause)이다. 바울은 에베소서 본문에서 이를 분명히 밝힌다(“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엡 2:4,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엡 2:5). 베드로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고 선포하였고, 그의 서신서에서는 “이 구원에 대하여”라고 소개하면서 “구원” 그 자체를 “너희에게 임할 은혜”라고 표현한다(벧전 1:10). 구원은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다.

“믿음”은 우리가 구원을 얻는 수단(means)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은 믿음의 통로로 우리에게 부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믿음”을 우리의 행위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믿음”을 구원의 “원인”으로 보고 우리 쪽에서 먼저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해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수 있다고 설명해서는 안 된다. “믿음”을 행위로 보면 은혜는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다. 물론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을 믿어야 할 책임과 그에 따른 결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로마서 8장 30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은혜를 원천으로 시작하여 우리에게 내려주신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 풍성한 은혜를 우리에게 끊임없이 제공하신다. 그런 측면에서 “믿음”은 나 스스로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구원자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존 맥아더는 “그 믿음까지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일부이지 사람이 자기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맥아더 성경주석”, 1390p).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통하여 주어진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며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했던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이 여기에 근거한다.

 

믿음과 행함의 관계

문제는 종교개혁자 루터가 ‘지푸라기 서신’이라 부른 야고보서를 비롯하여 여러 성경 구절이 “믿음”이 포함하는 “순종”을 강조하여 성경이 스스로 모순이 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약 2:24)

존 맥아더 목사가 “참된 무릎꿇음”의 가장 핵심적인 구절로 선택한 마태복음 7장 21절 역시 예수님께서 직접 선포하신 복음이 요구하는 믿음에 순종이 포함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R. C. 스프로울은 “믿음”과 “행함”(혹은 순종)의 관계를 이렇게 수식화하여 이해를 돕는다(“구원의 확신”, 생명의 말씀사, 2012). 특별히 칭의에 필요한 수단으로 행함을 추가한 가톨릭의 관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로마 가톨릭의 관점: 믿음 + 행함 = 칭의

ROMAN CATHOLIC VIEW: Faith + Works = Justification

스프로울의 결론처럼 이와 같은 수식은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에베소서 말씀처럼 의인은 오직 믿음 하나로 구원 얻는다. 그래서 은혜다. 만일 행함이 구원에 요구되는 또 다른 수단이라면 아무도 구원 그 자체를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는 사람이 한 부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구원이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서 의인에게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기 위해서는 의롭다 하심을 얻는 수단이 오직 믿음 하나여야 한다. 하나님은 거룩한 삶을 근거로 우리를 의롭다 하신 것이 아니다. 거룩한 삶을 목적으로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다 하셨다(엡 2:10).

 

개신교의 관점: 믿음 = 칭의 + 행함

PROTESTANT VIEW: Faith = Justification + Works

스프로울은 개신교의 관점을 성경적으로 정확히 제시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말한다(약 2:17). 믿음 그 안에는 믿음에 따르는 결과로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7장에서 “행함”을 강조하시기 직전에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고 하신 것처럼, 믿음이라는 씨앗의 열매로서 행함은 필수적이다. 성경에서 믿음은 언제나 지적 동의를 넘어 믿음에 따른 결과를 기대한다. 이는 존 맥아더 목사의 주재권 구원을 비판한 장두만 박사도 지지하는 것으로 “‘믿다’라는…표현을 자세히 연구해 보면 그 속에 순종 또는 헌신의 개념이 포함돼 있다”고 말한다(기독교 포털뉴스: http://www.kporta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423).

따라서 구원 얻는 믿음은 순종이 필수적이다. 베드로는 소아시아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그들의 택하심에 대해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 부른다(벧전 1:2). “순종”은 그들의 택하심에 포함된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이다. 구원 얻는 믿음에서 행함을 빼면 그것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 성장하지 않는 씨는 죽은 씨다. 믿음이라는 씨앗에는 행함이라는 열매가 반드시 포함된다.

쉽게 말하면 다음과 같다.

 

성경은 “믿음”과 “행함”을 분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믿음”과 “행함”을 분리하면 그 자체로 죽은 것이라 확정한다. 구원 얻는 믿음은 그 결과로서 행함이 포함되는 것이 마땅하다.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신 말씀은 믿음과 행함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묶음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한다. 그러나 이 “믿음”조차 하나님의 은혜다. 에베소서 2장 8~9절의 말씀이 이를 가리킨다.

“주되심” 혹은 “주재권”은 모든 순종의 근거다. 왜냐하면, “주되심”은 주인이신 예수님과 종 된 신자의 관계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주인으로서 종에게 요구할 권리를 갖고(“주재권”) 종은 주인에게 순종으로 반응할 의무를 갖는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주”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아버지 뜻에 순종하는 자”라고 하신 부분과 제자들에게 하신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라는 말씀을 생각해보면 예수님을 주인으로 혹은 스승으로 모시는 자는 마땅히 자기 부인과 철저한 복종이 요구된다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 

이 사실은 도표에서 보는 것과 같이 “믿음”이 단지 지적인 동의가 아니라 “행함”이 포함되는 하나의 묶음이라는 사실을 확증한다. 그래서 주재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단지 지적으로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라는 정보를 취득한다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순종을 끌어내는 근거로서 예수님과 나의 관계를 제대로 자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종교인이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없이 종교적인 행위를 끌어낸다. 하지만 그것이 믿음의 결과라고 말할 수 없다. 참된 열매는 참된 관계 속에서 맺는 것으로 ‘주재권” 혹은 ‘주되심’을 인정하는 것은 참된 관계를 맺는다는 것과 동의어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을 따르는 종이 되는 것이다. 주인으로서 갖는 “주재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장두만 박사는 이 부분에 동의하면서 “‘주님’이라는 단어가 ‘주인, 통치권, 소유권’ 등을 의미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객관적 의미에서 하나님으로만 인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의 주인이고 통치자임을 고백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구원은 과거에 나 자신이 주인이 되어 내가 원하는 욕구에 따라 살던 죄인이(엡 2:3) 회개하여 하나님이 제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로 돌이킬 때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다. 흥미롭게도 에베소서 2장 3-10절은 종교개혁의 다섯 가지 핵심 교리를 확증한다.

오직 은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4절), “그 은혜에 의하여”(8절)

오직 믿음: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8절),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9절)

오직 그리스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5-6절)

오직 하나님께 영광: “이는…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7절)

이 모든 핵심 구절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오직 성경”에 근거한다. 10절을 주목하여 보면 “믿음”에 “행함”이 작정 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목적에 대해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선한 일 가운데 행하지는 못하는(행함이 없는) 신자를 창조하지 않으신다. 성장의 속도와 열매 맺는 정도의 차이는 분명히 있고 죄와 옛 자아(육신), 세상과 마귀의 끊임없는 공격이 있지만, 하나님은 의롭다 하신 자를 반드시 영화롭게 하신다(롬 8:30). 칭의에서 영화에 이르는 과정을 성화라 하는데 영적인 탄생을 칭의로 본다면 완성을 영화, 성장을 성화라고 말할 수 있다. 성화 역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며 주권적인 역사다(엡 5:26; 살전 5:23; 히 2:11; 벧전 1:2).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은 신자를 영화롭게 하신다. 우리의 순종 혹은 행함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성화의 은혜를 우리 삶에 가져오는 축복의 수단이며 통로다. 

 

결론

결론적으로 구원 얻는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수단이다.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요 주인이라는 사실을 지적으로 동의하는 수준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와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전제한다. 그리고 그 관계를 맺기로 미리 정하시고 관계 속으로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며 영화롭게 하실 주권자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과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근거로 신자의 순종(행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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